챕터 1: 프롤로그

2014년 3월 8일, 현지 시각으로 새벽 12시 42분, 쿠알라룸푸르 국제 공항에서 베이징으로 향하는 말레이시아 항공의 보잉 777-200ER이 이륙했다.

항공편 명은 말레이시아 항공 370편, 혹은 줄여서 MH370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된 해당 항공편의 승객들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꿈에도 몰랐다.

기장은 만 53살의 자하리 아흐메드 샤, 전체 비행시간 18,000시간의 베테랑이며 말레이시아 항공의 비행 교관으로도 일 했다.

부기장은 만 27살의 파리크 압둘 하미드, 보잉 777에 대한 훈련을 받고 있었던 하미드는 말레이시아 항공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어찌나 신뢰를 받았는지 훈련생임에도 백업 파일럿을 태우지 않았을 정도이다. 해당 비행은 하미드의 훈련생으로써는 마지막 비행이기도 했다.

여전히 우린 이 항공편에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 항공편이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 탑승자 전원이 사망 했을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제 항공기 실종 10년이 지난 오늘, 기장의 단독 행동 및 자살 비행이 왜 가장 유력한 원인으로 꼽히는지 현재까지 알려진 정보들을 통해 단계적으로 알아보고, 더 나아가 그러한 행동들에서 기장의 의도를 알아보고자 한다.

챕터 2: 사건의 서막

다시 2014년 3월 8일 새벽으로 돌아가 보자. 쿠알라룸푸르에서 이륙한 후 해당 항공기는 관제탑의 지시에 따라 쿠알라룸푸르 ACC（Area Control Center） 에서 관리하는 영역의 경계에 위치한 웨이포인트 IGARI로 향했다. 

웨이포인트란 하늘에 존재하는 가상의 점이다. 항공기들은 이런 웨이포인트를 기점으로 비행하며, 따라서 항공로는 거의 대부분 여러개의 웨이포인트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IGARI도 그러한 웨이포인트중 하나이다.

상술했듯, IGARI는 쿠알라룸푸르 ACC 영역의 경계에서 매우 가깝다. 때문에 1시 19분 경 MH370이 IGARI를 지나기 직전, 쿠알라룸푸르 ACC에선 곧 항공기가 연락해야 할 호치민 ACC의 라디오 주파수를 알려줬다. 잠시 후 MH370이 IGARI를 지나자 기장은 쿠알라룸푸르 ACC에게 "Good night. Malaysian three seven zero" 라고 연락해 왔다. 이것이 MH370이 지상과 보낸 마지막 교신이었다.

여기서부터 기장이 전혀 다른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먼저, 어떻게 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부기장을 조종석 밖으로 내보냈다. 후술하겠지만 기장에겐 이는 타이밍이 중요한 작업이었기에 지금 이 순간, 기장은 혼자 있어야 했다. 따라서 음료를 갖다달라는 것과 같은 핑계로 조종석 밖으로 내보냈을 것이다. 이제 기장은 혼자다. 조종석과 객실 사이에 존재하는 방탄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혼자가 된 기장은 먼저 트랜스폰더를 껐다. （위 사진 Disappears from secondary radar）

트랜스폰더란 항공기에 부착되는 단말기이다. 이 단말기가 지상과 교신하며 위치, 고도, 속도등 여러 정보를 수신하는 것이다. 흔히 여객기를 레이다로 추적한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지상과 항공기가 교신할때도 레이다 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여객기를 추적하는 방식에는 트랜스폰더가 우선적으로 사용된다. 아까 타이밍에 대해 이야기 했던게 기억나는가? 이유가 있다.

MH370은 IGARI를 통과함과 동시에 쿠알라룸푸르 ACC의 관리를 벗어났으니 그쪽 스크린에서 MH370이 사라지는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고, 호치민 ACC는 스크린에 MH370이라 적힌 점 하나가 금방 나타날걸로 생각하고 있었을 뿐 MH370의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했다. 그러니까 IGARI를 통과한 그 순간, 기장에겐 트랜스폰더를 끄더라도 지상에서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을 약간의 시간이 있었다. 언젠가는 호치민 ACC가 MH370이 아직 오지 않았다는걸 알아차리겠지만 기장은 그 정도의 시간만 벌어도 충분했다.

'아니 잠깐, 그럼 이 시점에서 비행기가 공중분해 되거나 전기계통에 결함이 생겨 트랜스폰더의 신호가 사라진게 아니라 누군가가 고의로 트랜스폰더를 꺼버렸단 사실을 어떻게 알지? 잔해가 수거된것도 아닌데?' 라고 물을 수 있겠다. 좋은 질문이다. 그리고 이거에 대한 답안도 있다. 

트랜스폰더에는 여러 모드가 있지만 쉽게 보자면 트랜스폰더의 모드는 켜짐, 위치만 알림, 꺼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솔직히 필자도 트랜스폰더의 여러 모드에 대해 전부 이해하진 못했다. 하지만 필자가 이해한 것에 따르면 원래 스위치는 보통 TA/RA 위치에 놓여 있고, 따라서 스위치를 맨 왼쪽의 OFF로 돌리기 위해선 위치만 알리는 모드인 ALT RPTG OFF를 아주 찰나에 가까운 순간이지만 지나게 된다. 그리고 실종 후 사고 조사 중 그 찰나의 순간이 쿠알라룸푸르 ACC에서 기록된 정보에서 확인되었다. 트랜스폰더는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끈게 맞다.

다시 기장이 뭘 하고 있었는지를 돌아가 보자. 

기장이 트랜스폰더를 끄고 난 후에도 비행기는 아직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보잉 777엔 ACARS（Aircraft Communications, Addresing and Report System）라는 장비가 있다. 이 장비는 매 30분 마다 위성 통신을 이용해 항공기의 위치, 잔여 연료량, 정비 내역 등을 항공사 본부에 보고한다. 따라서 ACARS가 켜져있는 한, 항공사는 항공기의 위치를 매 30분마다 추적할 수 있었다. 따라서 완전히 세상에서 사라지는게 진짜 목표라면 ACARS를 꺼야한다. 근데 ACARS를 수동으로 끄게 되면 꺼지기 직전, 장비가 수동으로 꺼졌음을 본부에 보고하기 때문에 그냥 꺼버릴 순 없었다. 기장은 이를 알고 있었다.

기장이 무슨 방식으로 ACARS를 껐을지는 여전히 추정에 불과하지만, 정황상 두 엔진의 발전기를 차단시켜 조종석을 제외한 항공기 내부의 전력을 차단하여 누군가가 고의로 ACARS의 전원을 끈게 아닌 것 처럼 보이게 한 후, 위성 통신 시스템인 SATCOM과 지상 통신용 VHF 안테나를 차단했을걸로 생각된다. 이렇게 ACARS는 물론, 객실에 있는 위성 전화도 차단되었다.

이제 비행기는 세상과 단절되었다.

한 편, 기장이 이런 일을 벌이고 있었을때 기장 뒤의 객실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을까? 여러 가능성이 있지만 기장은 누구든지 간에 자신의 계획을 저지하려는 사람들을 무력화시키고자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기장 뒤에는 기장의 계획을 저지하고자 할 238명이 있었다. 조종석 문이 방탄이긴 하지만 그래도 238명이 이 문을 따려고 돌진하는 상황은 비행기를 통채로 납치하는게 목표라면 영 바람직하지 못하다. 혹은 위성 통신을 차단하기 전에 누군가가 알아채 위성 전화로 지상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조종석에 홀로 남은 기장은 238명을 제압할 수 있는 무기를 들고 타지 않았다. 

기장이 쓸 만한 무기는 이미 비행기 안에 있었다.

트랜스폰더가 꺼지기 전 비행기의 고도는 10,850m. 이 고도에서 기압은 고작 지상의 31%에 불과하다. 제대로 된 산소 공급이 없으면 사람들은 실신하기 전 까지 50초 남짓 버틸 수 있다. 

그리고 여객기엔 감압 밸브가 있다. 이걸 열면 항공기 내부 기압이 외부와 동기화 된다. 아마 기장은 파일럿 용 산소 마스크를 쓰곤 감압 밸브를 열었을 것이다. 이후 감압으로 기내 온도는 급격히 내려갔을것이고, 객실 천장에선 산소마스크가 내려왔을 것이다. 기장이 감압을 한 이유가 승객, 승무원, 부기장이 상황을 알아채고 조종석으로 들어오는걸 막는게 목적이므로 부기장이 조종석을 떠나고 웨이포인트 IGARI를 지난 직후 감압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기장이 감압했을거란 나름의 증거도 있다. 정비사들이 비행 전날 정비를 마치곤 기체에 문제가 없고 딱히 정비가 필요 없음을 로그북에 기록해 놨는데, 이후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요청으로 조종사용 산소탱크가 보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원래 조종사용 산소탱크가 주기적으로 보충되기는 하지만 타이밍이 상당히 미심쩍은 부분이다.

아무튼 이렇게 감압된 상황을 가정하고 기내에서 일어난 일이 무엇일지 추측해 보면 부기장은 비상상황이므로 승무원용 산소통을 들고 조종석으로 갔을것이다. 그리고 코드를 누르곤 조종석 문을 열어달라 요청했을것이다. 기장은 이를 무시했을것이고, 진실을 모르는 부기장은 알 수 없는 이유로 기내가 감압되며 기장이 기절했다 판단, 239명의 목숨은 자기 손에 달렸다 생각했을것이다. 부기장 입장에선 다행히 다른 방법도 있었다. 원래 조종석 문에는 내부에 1명 밖에 없는데 불미스러운 일로 그 사람이 의식을 잃었을 경우 아무도 조종석에 못 들어가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시스템도 있다. 외부에서 이전에 정해진 코드를 누르고 30초가 지나도 안에서 아무런 조작이 없는 경우 자동으로 문이 열리는 시스템이다. 근데 한편으론 비행기를 납치하려는 사람이 이 코드를 알아낸 경우 조종석으로 침입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 내부에서 이 시스템을 무력화 시키는 스위치도 있다. 굉장히 잘 만들어진 시스템이지만 이 경우엔 납치범에게 유리한 쪽으로 흘러갔다. 기장은 부기장의 진입을 거절했을 것이고, 자신이 코드를 잘못 눌렀나 의심하며 몇 번을 눌러본 부기장은 상황을 깨닫고 망연자실했을 것이다.

그렇게 어느 매우 숙련된 기장의 손에 납치된 비행기는 말레이시아와 태국 국경을 스치듯 날아갔다. 어쩌면 이것마저도 계획된 것이었을지 모른다. 보잉 777은 스텔스가 아니니 기장은 트랜스폰더와 ACARS가 꺼져도 진짜 레이다, 그러니까 군용 레이다는 항공기를 추적할 수 있다는걸 알았다. 말레이시아와 태국 국경을 지나가면 말레이시아, 태국 공군 둘 다 서로 상대편 나라가 해당 미확인 항공기의 비행을 관리하고 있다고 추측 할 수도 있었고, 또 이 진행 방향이 페낭 섬으로 가는 방향이었기에 비상착륙 하러 가는 비행기 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실제로도 군용 레이다를 운용하고 있던 누구도 MH370에게서 이상한 점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 즈음 트랜스폰더가 꺼지고 18분 후인 1시 39분 처음으로 호치민 ACC는 MH370의 부재를 확인하곤 쿠알라룸푸르 ACC에 연락했다. 쿠알라룸푸르 ACC가 연락을 시도했지만 MH370은 응답하지 않았고, 위치를 확인해 보니 MH370은 캄보디아 영공에 있는걸로 확인 되었다. 쿠알라룸푸르 ACC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자기네 장비와 항공기의 연결이 끊어지면 컴퓨터가 항공기의 마지막 속도, 방향을 반영해 예측한 위치를 실제 위치인것 처럼 보여준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까진 몇 시간이 흘렀다. 

1시 52분, MH370은 페낭 섬 상공에 도착했다. 이 즈음 기내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은 사망한 상태였을 것이다.

물론 승객들도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이건 감압이 발생 했을때 숨 쉴 수 있는 고도인 10,000피트（3,100m）까지 조종사가 하강할 만큼의 벌어주는 수단에 불과하다. 순항 고도에서 낮은 고도까지 하강에는 대개 10분 정도 걸리기에 승객용 산소 마스크는 산소를 약 20분 정도만 공급 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고, 따라서 비행기가 말레이 반도를 지나는데 걸린 30분 후 승객들은 이미 사망했거나, 저산소증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부기장은 살아있었다. 부기장이 사용하고 있던 승무원들에게 주어지는 이 산소통은 45분 정도의 산소를 제공해 주는데다가 기내에는 이런게 14개 있었다. 아마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산소통에 의지하며 부기장은 할 수 있는건 무엇이든 해봤을 것이다. 그러다가 밖을 보곤 아직 말레이시아 상공에 있음을 깨닫곤 자신의 핸드폰을 켜서 지상과 연락하고자 노력도 했다. 하지만 비행기의 순항고도에서 800km/h가 넘는 속도로 움직이면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다. 기지국을 중심으로 선회하면 800km/h가 넘는 속도에서도 기지국과의 상대속도가 줄어들기에 핸드폰이 터질 수도 있긴 했지만. 

사실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사고기가 페낭 섬 상공에서 우선회 했을때 부기장의 핸드폰이 페낭 섬 기지국에 연결되었던 기록이 발견된 것이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고 당연히 연결 상태가 좋지 않아 지상과 연락하려던 부기장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 기지국과 부기장의 핸드폰이 연결된 기록은 부기장이 지상과 필사적으로 연락하고자 했다는걸 보여준다.

페낭 섬을 기점으로 우선회한 사고기는 안다만 해에 접어들었다. 그리곤 아마 의도적으로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에서 출발해 유럽으로 가는 다른 항공기들과 비슷한 경로로 비행했다. 그 누구도 이 줄지어 가는 비행기들 중 실종된 비행기가 숨어 있는 줄 몰랐다. 이륙 1시간 40분 후, MH370은 말레이시아 공군 레이다 범위에서 벗어났다. 이제 그 누구도 MH370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낼 순 없었다.

 부기장 역시 의식을 잃거나 사망했다. 부기장이 갖고 있던 승무원용 마스크는 애초에 이렇게 고고도에서 오랫동안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 진 것이 아니다. 순 산소를 뿜어내긴 해도 마스크와 얼굴이 제대로 밀착되어 있지 않아 부기장의 폐에 들어가는 공기의 압력은 10.8km 상공의 그것과 동일했다. 반면 기장이 사용하는 마스크는 비교적 높은 압력으로 착용자의 폐에 순산소를 불어넣는 마스크다. 거기에 2명이 13시간, 현재는 기장 1명이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26시간이나 쓸 용량이 있었다. 결국 기장이 이기는 싸움이었다.

이륙 후 1시간 40분 후, MH370에서 살아있는 유일한 사람은 기장 단 한 명이었다.

챕터 3: 사라진 비행기

말레이시아 공군의 레이다에서 사라진 MH370은 3분만에 신호를 보내왔다.

두 안테나도 꺼져있고 트랜스폰더도 꺼져있는데 말이다.

 사실 기장도 몰랐던것이 있다. 아까 기장이 차단한 SATCOM, 그게 완전히 수동적인 장비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레이다 범위에서 벗어난걸 확인한데다가 기내에 자신 빼곤 생존자가 없음을 확인한 기장은 이제 더이상 발전기를 차단할 이유가 없다. 어차피 ACARS가 재부팅되어도 ACARS와 VHF및 위성 통신 안테나의 연결은 차단되어 있고, 오히려 지난 1시간 동안 냉각팬이 안 돌아가면서 전자장비들이 과열되었을 것이므로 바로 추락시키는게 목표가 아니라면 기장은 전력 공급을 재개해야만 했다.

그래서 이륙 1시간 43분 후, 기장이 전력을 복구 했을때 SATCOM이 재부팅 되었다. 물론 ACARS와 SATCOM은 연결이 끊어져 있었기에 SATCOM이 자동으로 비행기의 데이터를 송신 할 순 없었다. 근데 SATCOM의 일부인 SDU（Satellite Data Unit）도 깨어났다. SDU 역시 데이터 송신 장치는 아니다. 하지만 SDU는 약간의 능동성을 띄는 장비이다. SDU는 재부팅 되었을때 기본적으로 가까운 위성과 교신해 위성 네트워크에 연결하고자 한다는 의미의 메세지를 보내고, 이건 호주 퍼스에 있는 위성 회사 Inmarsat의 지상 기지에 기록된다. 덤으로 이렇게 위성 네트워크에 연결된 후에는 퍼스의 지상 기지에서 위성을 통해 1시간마다 주기적으로 확인 메세지가 SDU에게 보내진다. 이를 '악수' 라고 부른다.

하지만 여기서 비행기와 지상이 1시간마다 서로 악수한 내용을 보고 대충 이 시간에 비행하고 있었다는걸 제외하고 무슨 정보를 찾을 수 있는걸까? 답은 간단하다. 위성과 SDU는 매우 정확한 원자시계를 탑재하고 있다. 따라서 위성이 SDU에 메세지를 보낸 시간과 이를 SDU가 수신해서 '이 시간에 확인 메세지 받았음' 하고 답장 하는 아주 미세한 시간 차이를 이용하면 전파는 광속이므로 위성과 SDU의 거리를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비행기는 광속에 비해 아주 미미하지만 어쨌든 꽤 빠르게 이동하므로 통신 주파수의 변화량을 감지하면 도플러 효과를 이용해 속도도 추측 해 볼 수 있다.

 거리를 추측할땐 MH370이 있을 수 있는 위치가 위와 같이 원으로 표시되게 된다. 따라서 매 시간 사고기가 이동하며 '악수' 한 결과에 따라 위성과 사고기의 거리만 알 수 있을 뿐 정확한 위치를 추정할때 쓰일 수는 없다. 레이다에서 마지막으로 잡힌 후 비행기가 갑자기 인도양 정 반대편 마다가스카르에서 나타날 일은 없으니 범위를 좁혀 볼 수도 있고, 또한 상술했듯 속도도 추측이 가능하니 '항공기가 이동한 경로는 이렇지 않았을까?' 하고 재구성이 가능하기는 하다. 

그렇게 만들어진 경로가 위 사진은 노란 선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런 악수는 총 5번 이뤄졌다. 그리고 마지막 5번째 악수가 일어나고 몇 분 후의 상황을 유추해 보면 다음과 같다. 마지막 악수는 이륙한지 벌써 7시간 29분 후에 이뤄졌다. 원래 쿠알라룸푸르에서 베이징 가는 비행편은 약 6시간이 걸린다. 추가로 탑재한 예비 연료를 고려해도 연료가 떨어졌을 시간이다. 그게 사고기에 일어난 일이다. 연료가 고갈하며 두 엔진이 정지했다. 출력을 잃은것은 물론 전기 공급마저 중단되었다. 보잉 777은 이렇게 연료가 고갈되었을때 기본적인 전자장비라도 가동할 수 있도록 보조 동력 장치（APU）를 구동할 만큼의 소량의 연료를 따로 보관해 놓는다. 그래서 두 엔진 모두 정지되어 전력 공급이 중단된게 확인되면 자동으로 APU를 켜서 전력을 공급하도록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원래는 추력을 잃어 추락할 위기에 처한 비행기의 파일럿들이 최선을 다해 비행기를 살리는 것을 도울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지만, MH370에선 이게 사고기가 세상에 내지른 마지막 비명이 되었다. 

 아까 기장이 전기 공급을 복구했을때, SDU가 재부팅 되면서 위성과 연결되었던것이 기억날 것이다. APU가 전력을 다시 공급했을때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말레이시아 시각으로 오전 8시 19분 29초, 재부팅된 SDU가 위성과 교신해 위성 네트워크에 연결을 신청했고, 8초 후인 8시 19분 37초에 SDU가 네트워크 연결 승인이 확인되었다는 메세지를 다시 보냈다. 이것이 MH370에서 날아온 마지막 교신이다.

 이때 위성에 SDU가 보낸 전파를 분석해 보니 주파수에 아주 미세한 편향이 있었고, 이를 통해 MH370이 위성으로부터 얼마나 빠르게 멀어지고 있는지를 유추한 연구 결과도 있다. 오차 범위가 꽤 크지만 결국 그 하강하는 속도에 차이가 있을 뿐 MH370은 하강하고 있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챕터 4: 사고 그 후

결국 베이징에도 사고기가 도착하지 않고 위성전화도 받지 않아 지상에선 결국 비행기가 추락했다고 판단해 잔해 수색이 시작되었다. 이들은 이때까지만 해도 MH370이 남중국해에 추락했다 생각했다. 사실 MH370은 수색이 시작된 시점에서도 1시간 정도는 하늘에 떠 있었다. 이후 군용 레이다 데이터에서 실제로 MH370이 비행한 경로가 확인되었고, 기장과 부기장의 컴퓨터를 포렌식 검사 한 결과 기장의 컴퓨터에서 상당히 충격적인 데이터를 확인 할 수 있었다.

 파일럿들이 집에서 비행 시뮬레이터를 이용해 나름의 훈련 비행을 하는 일은 아주 드문 일은 아니다. 특히 항공 덕후였던 기장 같은 사람이라면 말이다. 그리고 2014년 2월 2일 그의 시뮬레이터 비행 내역에 말라가 해협을 통과해 안다만 해에 진입하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어차피 말레이시아 항공엔 말라가 해협을 통과하는 항공편이 꽤 많았다. 하지만 여기서 갑자기 기수를 남쪽으로 틀고는 실제 사고기의 비행 경로와 매우 비슷하게 인도양으로 나온 후, 인도양 더 남쪽의 지점으로 비행기의 좌표를 수동으로 설정해 더 남쪽으로 이동시키곤 잔여 연료량을 0으로 설정해 고도 37,000피트（11,470m）에서 1번, 40,000피트（13,600m）에서 활공을 한건 사고기와 소름끼칠 정도로 시나리오가 비슷하다. 다음날인 2월 3일에도 인도양으로 날아가는 비슷한 시뮬레이션을 진행 했는데 2월 3일 이 날은 시뮬레이션의 날짜 조절 페이지를 2월 21일로 설정했다.

 근데 2월 21일은 기장이 실종되지 않은 말레이시아 370편을 몰고 베이징으로 날아간 날이었다. 그리고 이 시뮬레이터상 비행 내역은 전 날인 2월 20일 모두 삭제된것이 확인되었다. 

3월 8일은 기장의 첫번째 시도가 아니었다. 기장은 원래 2월 21일 사건을 저지르려 했지만 어째서인지 이날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고 그래서 3월 8일에 비행기를 납치한 것이다.

 여전히 MH370이 진짜 어디로 갔는지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있다. 남중국해나 안다만 해에 추락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고, 애초에 위성 데이터 자체를 잘못 해석했다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현재로썬 우리가 제일 믿을 수 있는 위성 데이터로 재구성한 비행 경로도, 기장의 시뮬레이션 기록 역시 인도양 남쪽을 가리키고 있다. 또한 현재까지 발견된 대부분의 잔해가 아프리카의 동쪽 해안에 떠밀려 온데다가 최초 잔해 발견 시기와 해류의 속도를 고려해서 추측해 봐도 인도양 남쪽에 추락했다는게 제일 설득력이 있다. 아주 잠깐이지만 이쪽 구역에서 블랙박스의 신호를 잡은적도 있고.

물론 추정된 추락 지점에선 주요 잔해가 여전히 발견되지 않고 있고 이를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이미 2009년 에어프랑스 비행기가 대서양에 추락했을땐 정확한 추락 지점을 알았다. 추락이 확인되고 사고 해역에 구조선들이 도달했을때 이미 잔해와 시신들이 떠다니고 있었을 정도였는데도 주요 잔해를 발견하는데 2년이 걸렸다. 여기서 대양에서 추락한 비행기를 찾는게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다. MH370이 추락한걸로 예상되는 구역은 이것보다 훨씬 넓은데다가 추력을 잃고 위성과의 마지막 연락이 이뤄진 후에 기장이 조종간을 잡고 비행기를 활공시켰다면 100km는 더 비행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니까 MH370을 못 찾는건 어쩌면 세계 몇 대 불가사의에 들 수준의 미스터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 이제 기장 얘기를 해 보자.

 비행기 시스템에 대한 완벽한 지식을 갖고 기계장비들을 하나씩 조작했다는 점, 비행 경로가 마치 레이다 기지의 위치를 파악하고 이걸 이용한 것 처럼 보인다는 점, 그리고 시뮬레이터 기록이 기장이 범인이라고 지목하고 있다. 

 그러면 기장이 왜 그랬을까? 솔직히 말해서 전혀 이해 할 수 없다.

MH370의 기장은 말레이시아 항공 내부에선 긴 비행 경력과 실력을 인정 받아 비행 교관이라는 높은 자리에도 올라갔고, 집이 2채, 차가 3대 있었다. 2번째 집을 사면서 빚을 좀 졌지만 월급을 고려했을때 감당 불가능 한 수준도 아니었다. 사고 전에 사망보험을 들어 둔것도 아니었고, 정신병을 앓은 기록도 없으며 무엇보다 아내와 세 아이가 있는 가장이었다. 또한 기장은 자신이 할 일을 미리 계획하여 실행했다. 그가 10년 전 한 행동은 계획적으로 잘 짜여져 있고 항공기 시스템 및 말레이시아 공역에 대한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요구한다. 심지어 기장은 비행기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일을 하지 않을때도 RC 비행기를 날리며 놀았고, 일을 하지 않을때 비행기를 타고 날다가 허리를 다친 기록도 있다. 일 자체가 재밌는걸로 가득한 그런 사람일 수도 있었다. 근데 이런 배경을 가진 사람이 그 지식을 갖고 계획을 세우고 연습까지 해 가면서 저지른 일이 238명을 살해하고 누구에게도 위치를 알리지 않은채 한 5시간 가량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 후 비행기와 함께 자살한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는것이다.

챕터 5: 에필로그

실종 10년을 맞아 다시 수색이 재개될지 모른다는 뉴스가 있다. 잔해를 찾지 못하면 돈도 못 받는 조건으로 두 민간 기업이 말레이시아 정부에 접근한 것이다. 이번에는 진짜 찾을수 있겠지 싶어 약간 설레기도 하고 무엇을 보게 될지 몰라 긴장되기도 하다가 결국 드는 생각은, 잔해가 발견돠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이미 10년이 흘렀다. 사람들은 블랙박스가 발견되면 큰 실마리를 제공할거라 생각하지만 지난 10년동안 바닷속에서 있었던 탓에 저장된 정보가 피해 입었을 가능성도 크고 심지어 복구 불가능 할 수도 있다. 설령 복구가 가능하다고 해도 기장이 조종석 뒤편에 있는 서킷 브레이커 스위치를 조작해 기록을 꺼버렸다면 블랙박스에 우리가 기대하는 정보가 하나도 없을 수 있다. 물론 그런 블랙박스 데이터를 보면 기장이 고의적으로 블랙박스를 조작했단게 나름의 증거가 되겠지만 결국 우리에게 던져진 '기장은 왜 자살비행을 했는가' 라는 질문의 답은 영원히 찾지 못할 것이고, MH370은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찝찝하고 불편한 사고로 기억에 남게 될 지도 모른다.

꼭 그렇게 끝나지 바란다.

10년 전 오늘, MH370에서 사망한 239명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