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본인이 대부분인 상품진열 팀이고
대부분의 한국 애들은 캐셔 팀에 있음

안 그래도 최근에 연말연시 가까워져서
신상품이니 뭐니 해서 물류량 터져서 창고도 겁나 복잡하고
그만큼 물건 싣고 내리는 것도 불편해져서 짜증나는데
어쩌다 캐셔팀 한국애한테 들으니 나랑 동일 시급 받음

물론 걔네는 사람을 상대하니까 나름대로 고충이 있다고 생각은 하는데
나는 매일같이 상하차해서 허리 무릎 아파서 퇴근하면 스트레칭부터 하는데
시급이 같다 소리 들으니까 아 시발 내가 뭐하고 있는거지 싶더라

그리고 캐셔 팀이 일본인도 많고 외국인도 많고
하여간 사람 자체가 많은데
심지어 얘네는 대부분이 20대 젊은 애들이어서
한가할 땐 사담도 가능해갖고 글로벌하게 친해지더라
근데 나는 4,50대 아저씨 아줌마들이랑 일하면서
쉬지않고 몸 쓰는 일이다보니 뭐 사담은 할 생각도 못하고
하루종일 하는 말이라곤 하이, 와까리마시타이고ㅋㅋ..

어쨌든 내가 생각했던 워홀 라이프에서 조금 벗어난 감이 들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즐겁게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문제는 오늘 연락처 교환할 일 있으면 하려고 만든 인스타 보다가
캐셔팀 한국애들끼리 회식한 사진 올라온거 보고
결국 부러워서 무너지고 현타 오더라
같은 돈 받고 개같이 일하는데 일본인 친구를 사귀기는 커녕
하다못해 한국인 무리에도 끼질 못하는구나
나도 나름 얼굴 맞대면 캐셔 애들하고 재밌게 이야기하고 하는 사이지만
이렇게 팀 단위로 놓고보면 걍 외부인1이구나
같은 한국인이어도 모임 같은데에 부를 이유가 없구나 싶더라

최근에 뭔가 일본에 온 이유가 애매해져가는거 같아서
고민이었던 차에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니까
친구마저 못 사귀고 있는 내가 너무 한심한데
그렇게 스스로를 한심해하는 내가 더 한심해서
그래서 더욱 더 취미활동에 매진하자고 다짐함
극장에서 애니도 열심히 보고
그냥 집에서 조용히 꼼지락대던 악기 해보러 스튜디오도 가보고
라이브 갈 수 있는거 찾아서 다 찔러보고 가보고
도쿄 벗어나는 여행도 해보고

그냥
그냥 내가 이렇게 안 하면
정말 남들은 친구 사귀고 다같이 놀러다니면서 멋진 추억 만들때
혼자 해외에서 월세만 몇 십 만원씩 내면서
프리터짓한 걸로 내 소중한 1년이 끝날거 같아서

예전처럼 아 나는 불행해 로 끝나는게 아니라
좀더 긍정적으로 내다보고 나름의 해결법을 찾아서
나아가려는 계획까지 세울 정도로 많이 강해진 나이지만
이렇게 되니까 서운하고 나 자신에게 연민이 드는건 어쩔 수가 없네

오랜만에 대나무숲 해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