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빽했던 도로에는 마치 장난감을 잔뜩 어지러뜨린 아이들의 방처럼 보이드 카들이 이리저리로 널부러져 있었다.

긴 도로의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엎드려 있는 린다만이 유독 눈에 띄었다. 린다를 제외하고는 흰 타이즈를 입은 남자도, 그 누구도 도로 위에 있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린다의 긴 금발 머리카락의 끝자락에는 검붉은 덩어리가 잔뜩 엉겨 찐득거리고 있었고 그녀의 보드랍고 따뜻했던 살결은 차갑게 식어 굳어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품 속에서 자그마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이안이였다. 그녀가 죽기 직전까지 꼭 끌어안아 지켜낸 바로 그 소년이였다. 이안의 감은 눈은 울다 지쳐 잠이 든 것처럼 발갛게 부어있었다. 아무래도 린다와의 마지막을 예감하고 울음을 터뜨린 모양이다.

' 타박 '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타박, .. 타박 '

일반적인 걸음걸이와는 조금 다른 듯한 소리였다. 걸음의 폭이 굉장히 넓은 듯한 , 무거운 것을 세게 내려놓는 것 같은 소리였다. 발걸음은 점점 가까워졌고 고요한 도로 위에 서서히 은빛의 무엇인가가 보이고 있었다. 걸어 올 때마다 조용히 들리는 기계 소리가 그것이 로봇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은빛의 몸을 했지만 얼굴만은 인간과 비슷해 보이던 이름 모를 로봇은 린다와 이안에게 점점 가까워지더니 이내는 그들의 머리 맡까지 도달했다. 인간과 비슷해 보였던 그 로봇의 얼굴은 어딘가 굉장히 익숙한 얼굴이였다. 그녀는 바로 케일라였다. 그녀는 고개 숙여 린다를 바라보더니 작게 탄식했다.

" 세상에... "

케일라는 웅웅 거리는 소리를 내며 쪼그려 앉더니 엎드려 있던 린다의 몸을 돌려 누였다. 그녀의 죽음을 확실하게 파악하려는 모양인 듯 했다. 케일라는 린다 품 속의 이안을 발견하고는 아이의 손목에 그녀의 오른 검지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이안의 손목에서 맥박이 느껴졌다. 아이의 조그마한 손목에서 느껴지는 작은 파동은 케일라를 알게 모르게 안도하게 했다.

이안이 살아있음을 알게 된 케일라는 린다의 굳은 팔에서 서서히 이안을 꺼내어 그녀의 품 속에 안아들었고 그 상태로 잠시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얼마 안가 그녀는 찾고 있던 것을 발견했는지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목적지까지 도달한 듯 그녀는 천장이 다 뜯겨져 있는 흰색 보이드 카 옆에 섰고 조금 떨리는 듯 천천히 열려 있는 차의 앞문을 통해 내부를 확인했다.

" 주인님... 오, 이런... "

케일라는 특유의 기계음 섞인 목소리를 내며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펜이 끔찍한 모습으로 핸들 위에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본 것이였다.

그녀의 삶의 목적은 그녀가 모시는 집의 주인들을 모두 보호하고 지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동안 그녀가 모셔왔던 주인들 중 두 명이 누군가에 의해 죽어버렸고, 그녀가 보호해야 할 대상은 이제 오직 한 명 뿐이였다. 이안이였다.

케일라는 잠시 가만히 서 있더니 그녀의 차가운 품에 안긴 이안을 꼭 안아들고 어딘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 끔찍한 광경을 더 이상은 볼 수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이안에게 보여주기 싫었던 것인지 그녀 조차도 알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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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한 가지만이 남은 나무들이 여기저기 서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검은 울타리가 둥그렇게 쳐져있고 그 안은 이파리가 다 떨어진 식물들이 심어져 있었고 그 밖은 세 개의 벤치들이 울타리를 따라 놓여있었다.

세 개의 벤치들 중 가운데에는 이안이 누워있었고 바로 오른쪽의 벤치에는 케일라가 정자세로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가벼운 흙먼지 바람이 이안의 볼을 간질였다. 이안의 감겼던 눈이 서서히 뜨이기 시작했다. 이안은 팅팅 부은 눈을 힘겹게 뜨며 황색 하늘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집이 아닌 걸 보니 어제의 일이 꿈이 아니였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였는지 이안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만 자꾸만 끔뻑였다. 한참을 고개만 숙이고 있던 이안은 갑자기 고개를 홱 들더니 천천히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안의 시야에 보이는 것은 앙상한 가지들 뿐인 것 같았다. 그리고 서서히 이안의 고개가 오른편으로 향하였고 케일라가 보였다.

" 케일라? "

살짝 놀란듯한 표정을 지으며 이안이 말했다.

하지만 케일라는 반응이 없었다. 이상하게 여긴 이안은 자그마한 발을 땅에 딛고는 케일라에게 다가갔다. 여전히 케일라에게서는 아무런 반응도 일지 않았고 이안은 그녀의 몸체에 손을 조심스레 가져다 댔다. 이안의 따뜻한 손이 케일라의 차가운 은빛 몸에 닿자 케일라에게서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 위이이이잉 '

케일라에게서 기계가 작동하는 소리가 시끄럽게 나기 시작하더니 서서히 잦아들어갔다. 그러자, 케일라의 감겼던 눈이 갑자기 떠졌다. 그리고는 그녀 눈 앞의 이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 도련님, 깨어나셨군요. "

" 으응.. 그런데, 엄마랑 아빠는 어디있어? "

이안은 케일라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실은 이안도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물었던 것이었다.

" 아마도... 큰 주인님들은 당분간 만나뵈실 수 없으실 것 같아요. "

케일라가 이안과 마주치고 있던 눈을 살짝 옆으로 돌리며 말했다.

" 헤헤, 그렇구나... 그래, 알았어. "

이안이 나이 답지않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케일라의 말에 답했다. 그리고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말을 이어갔다.

" 음.. 그럼, 우리 이제 어디로 가는거야? 집으로는 갈 수 없단 건 알아. 뉴스... 다 들었어. 뭐 무슨 말인지는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집에는 갈 수 없는 거잖아? 그치? "

" 네, 맞아요. 도련님께서는 이 곳을 떠나 안전한 곳으로 가셔야만 해요. 하지만, 어느 곳이 안전한지는 정보가 파악이 되지도 않고 이 일이 얼마나 많은 곳까지 확산이 되었는지도 정보가 확보되지 않아서 어느 곳을 목적지로 할 지는 아직 잘 모르겠네요. "

그러자 이안은 아무 말 없이 케일라의 오른 검지손가락을 잡고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곳은 한참 건너편에 있는 유리창이 다 깨어진 전자제품 가게였다.

" 저기로 가보자, 케일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