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 담배연기 속에 너를 그리다









한 남자가 공원 벤치에 앉아있다.

후우-

길게 내뱉는 담배연기가 그의 심란한 마음을 대변하듯 어지럽게 흩어진다.

하아-

담배와는 상관이 없는 긴 한숨.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 된 거지?

남자가 자신을 책망하며 괴로워하고 있을 때, 누군가 대뜸 말을 걸어왔다.

"저기요오~"

"......"

남자는 자신을 부른, 낮선 여자를 말없이 쳐다보았다.

"......"

"......"

잠시간의 침묵. 그 침묵을 깬 것은 남자에게 먼저 말을 건네 온 여자였다.

"혹시 도를 아세요?"

정말 의외의 질문에, 남자는 벙찐 얼굴을 한 채 되물었다.

"...네?"

"저기, 시간 좀 있으시면..."

"아아, 됐습니다, 그런 거."

남자는 여자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말허리를 싹둑 잘라먹고는 앉아있던 벤치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가 여자를 피해서 움직이려고 하자, 여자는 당황한 듯 그에게 재차 말을 걸었다.

"아, 저기요~ 제 말은..."

남자는 정말 귀찮다는 듯 귀를 막고 유치하게 떠들어대었다.

"아~ 아~ 아~ 안 들린다아아~"

"아, 잠시만요!!"

"안들려어~아아~"

여자가 뭐라고 떠들던 말던, 남자는 신경도 쓰지 않고 귀를 막은 채 유치한 행동을 하면서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피했따.

혼자 남은 여자는 잠시 말 없이 그의 뒤를 바라보았다.









다음날,









남자는 어제 앉아있던 그 벤치에 앉아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하아-

한숨과 섞인 담배연기.

그는 흩어지는 담배연기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거의 다 타버린 담배를 옆에 대충 비벼 끄고, 새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스읍, 후우-

그때 그의 뒤로 누군가가 몰래 다가와 나지막히 말을 건네었다.

"헤에, 담배가 그렇게 맛있나?"

"으악!"

남자는 갑자기 뒤에서 튀어나와 말을 건 누군가 덕분에, 화들짝 놀라 담배를 떨어트렸다. 그리고 뒤에서 말을 걸었던 그녀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향해 말했다.

"남자씩이나 되서, 무서워하긴. 풋."

남자가 발끈해 소리쳤다.

"너 뭐야?"

"나? 나는 김혜진 이라고 하는..."

"아니! 그거 말고!"

"이름 물어본거 아냐?"

"누가 니 이름 물어 봤냐?"

"그럼 뭘 물어 본건데?"

"너 정체가 뭐냐고! 어제도 뜬금없이 찾아와서 도가 어쩌고 저쩌고 하더니, 난 그딴 거에 관심 없다고! 신경 꺼!"

남자가 매우 화가난 상태로 씩씩거리며 소리치면, 여자인 입장에서는 조금 풀이 죽은 기미라도 보일 텐데, 그녀는 보통의 여자와는 다른지 오히려 더 태연했다.

"담배를 너무 맛있게 피길래, 한번 물어 본 건데 그게 그렇게 나쁜 건가?"

"......끄응."

남자는 더 이상 대꾸했다간 화병으로 쓰러질 것만 같았기에 어제와 같이 귀를 막고 유치한 짓을 시작했다.

"아~ 아~ 아~ 신경 쓰지마아~"

또 다시 그는 휑하니 사라져버렸다.









다음날,









그는 어김없이 그 공원의 벤치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하지만 표정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그의 얼굴은 시간이 갈 수록 얼굴이 점점 울그락 불그락 달아오르고 있었고, 이내 연달아 피고있던 담배를 집어던지며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그러면 내가 모를 줄 알았냐?"

"......"

"너 말이야, 너!"

"......"

빠직-

남자의 머리 속에서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린 듯 하다.

"신문지 뒤에 눈구멍만 뚫어놓고 숨어있는 김.혜.진.씨! 당신!"

그러자 그의 맞은편 벤치에서 신문지를 얼굴높이까지 들고 매우 어색하게 앉아있던 그녀가 신물을 살금살금 내리며 말했다.

"헤헤, 들켰네?"

"헤헤? 지금 이게 웃기냐!"

"응, 재미있어. 그것도 엄청."

"이게 어디가! 어디가 재미있는데!"

"내 이름도 기억해 주고, 풋."

"윽...그게 뭐가 재밌냐?"

"헤에? 당황했네? 얼굴 빨개진다."

"누, 누, 누, 누가! 당황 안했어!"

"풋, 부끄러워 하긴."

"아니라고 이 마녀야!"

"마녀? 우와~ 너 그런사람도 알아? 신기하네~, 나도 소개시켜줘."

"이게 지금 나랑 장난 하냐?!"

"아, 너도 장난치고 있던 거야? 에이, 말을 하지 그랬어."

"아이고, 젠장! 내가 말을 말아야지."

그러고는 남자는 다시 벤치에 철퍼덕 앉는다.

"어? 오늘은 도망 안 가네?"

"......"

"헤에~ 난 맨날 도망 가길래 엄청 소심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누, 누, 누가 도망을 갔다 그래? 그냥 간거였어!"

"응응, 그렇다고 해줄게."

"해주는게 아니고! 그냥 간 거라고!"

"알았어, 알았어, 풋. 너 되게 부끄러워 하는구나?"

"큭......"

남자는 도저히 그녀를 감당할 수 없었는지 또 다시 귀를 막고 휑하니 가버렸다.

"어, 어, 또 도망가기냐?"

"아~ 아~ 몰라~ 안들려어어~"









다음날, 그는 벤치에서 담배를 피우며 앉아있었고, 그녀 역시 그의 앞에 나타났다.









그 다음날, 어김없이 그는 그 시간대에 그 공원의 벤치에 있었다.









또 그 다음날, 그녀 역시 매일같이 담배를 물고 있는 그의 앞에 나타났다.









그렇게 약 한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는 오늘도 그 공원의 벤치에 앉아있었지만, 담배를 태우진 않았다.

그런 그에게, 그녀가 다가왔다.

"어? 오늘은 담배 안펴? 아니면 이미 벌써 다 핀건가?"

"아니, 건강...에 좋지도 안고, 누나도 담배 안 피는데 나 때문에 자꾸 간접흡연 하는것 같길래. 그냥 끊으려고."

"우와, 우리 진호가 이 누나를 그렇게 생각해 줄 줄이야."

그녀는 매우 과장된 몸짓과 말투로 그를 웃음 짓게 만들었다. 그녀는 매번, 그랬다.

그가 불치병에 걸려 우울해하고, 자책하며 괴로워하고 있을 때 어느 순간 나타난 그녀는 매번, 항상 자신을 괴롭히는 암울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만들어 주었다.

그가 처음에 의사에게 불치병에 걸려 곧 세상과 이별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지금처럼 자신이 누군가와 함께 환하게 웃으며 대화를 나눌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었다.

하루하루 그저 자신을 탓하고, 세상을 탓하기만 하다가 허무하게 죽어버리는 것만이 다라고, 그게 자신의 비참한 말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가 나타나 말은 건넨 순간부터 그는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에 의해서 희망을 가지고, 웃고, 행복해 할 수 있었다.

"아참, 근데 처음에 나랑 만났을 때, 왜 갑자기 나한테 도를 아냐고 물어 본거야?"

"아, 그거? 으음......그냥?"

"그냥이라고?"

"응, 그냥. 매일같이 공원 벤치에 앉아서 똑같은 장소, 똑같은 시간에 담배를 피워대고 있었으니까. 뭐하는 사람인가 궁금하긴 했는데 딱히 할 말이 없더라고. 그래서 그냥, 아무 말이나 한건데?"

"그게 뭐야......"

"헤헤, 지금 내가 생각해봐도 좀 웃기다. 그치?"

그는 결심했다. 현재 자신의 몸상태가 어떠한지. 그리고 그녀에 대한 마음 또한 어떠한지.

이 모든 것을 담아 자신의 진심을 반지 하나와 함께 전달해 주리라.

그는 들뜬 마음으로 내일을 기다렸다.









다음날, 그날은 비가 왔다. 기록적인 소나기가 쏟아지는 가운데에도 그는 그 공원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는 공원에 나오지 않았다.









다음날, 날씨가 화창해졌다. 그는 그녀를 기다렸지만 그날도 그녀는 그곳에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날, 그 다음날에도 그녀는 그의 아에 나타나지 않았다.









남자는 멍하니, 벤치에 혼자 앉아있었다. 잠시 후, 남자는 품속을 뒤져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들었다.

그는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려 했다. 순간, 그의 눈앞에 그녀가 아른거린다.

그녀의 얼굴, 미소. 그녀의 환한 웃음소리. 그 모든 것이 그를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뒤, 그는 자린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담배와 라이터를 벤치 옆 쓰레기통에 쳐 박아 버렸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그 벤치에 놔둔채 휑하니 사라져 버렸다. 예의 그 귀를 막는, 유치한 행동을 하면서 말이다.









그녀는 사실, 교통사고를 당했었다.

목숨에 지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양쪽 다리에 골절이 심해 얼마간 꼼짝없이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의사의 만류애도 불구하고 그녀를 억지로 휠체어를 이끌고 그 공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녀가 본 것은 벤치위에 놓여진 작은 상자 하나였다.

그녀는 그 상자의 포장을 뜯어 내용물을 보았다. 자그마한 반지가 상자 안에서 수줍게 빚을 발하고 있었다.

그 빛이 마치 그의 당황하느 모습과도 같아 그녀는 저도 모르게 풋 하고 웃음을 흘렸다.









남자는, 이제 그 공원에 다시는 가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 벤치에 자신의 마음을 두고 온 그 순간, 그는 결심했다.

반드시 살아서 그녀를 찾아갈 것이라고. 반드시 병마와 싸워 이길것이다.

불치병 따위 한방에 보내주마. 그는 그렇게 외치며 스스로에게 소리친다.

"파이팅, 김진호! 아자 아자 아자!"









저 멀리서, 누군가의 외침소리가 들려온다. 익숙한 목소리다.

풋.

그녀는 그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힘차게 휠체어 바퀴를 돌렸다.









스스로 파이팅을 외친 그는, 순간 자신을 쳐다보는 행인들의 시선에 머쓱해졌다.

김진호! 이런거에 흔들리면 안되지! 난 꼭 이길꺼니까!

스스로 그런 다짐을 하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내딛는다.

그래, 그녀가 이미 내게 주고 간 것으로도 난 충분해.









헉- 헉-

공원을 빠져나와 그의 목소리가 들렸던 곳으로 빠르게 휠체어 바퀴를 돌렸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휠체어를 움직였을때 그녀는 그를, 저 멀리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기쁜 마음에 힘껏 소리친다.

"김진호, 이 멍청아아아앗!"









"김진호, 이 멍청아아아앗!"

잘못 들은 것일까? 순간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 듯 했다.

휴우-

약해지지 말자. 이젠 그녀 없이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으니까.









저 멍청이. 내 목소리를 듣고 잠깐 움찔 거리더니, 이내 마저 횡단보도를 건넌다.

바보, 멍청이, 해삼, 말미잘! 나야, 내가 여기 있어!

그녀는 다시 한번, 그녀의 진심을 담아 외친다.

"사랑하는 김진호! 나 여기 있다고!"









"......!"

다시 한번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건 절대 환청이 아니다. 그는 방금 건너왔던 횡단보도 뒤를 돌아본다.

거기에, 그녀가 있었다.









눈앞에,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한걸음에 그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빨간색 신호등이 길을 막고 있는 지금, 신호등이 그렇게 야속할 수 없다.









그녀다. 그녀가 건너편 길에 있었다. 그녀는 지금......휠체어를 타고 있다.

역시, 무언가 일이 있었던 거야. 그래서...!









빨리, 빨리...!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기만을 기다린다.

그 짧은 시간에 그녀는 그와 마주보고 눈빛으로 대화한다.









이윽고 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뀌었다.

그녀가 빠르게 휠체어 바퀴를 굴린다.









그 역시 그런 그녀를 향해 힘차게 뛰어간다.

그때, 그의 시선에, 그녀의 오른편 너머로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오는 트럭이 보인다.

순간 불길한 생각이 든다. 트럭은 속도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언뜻 보이는 바로는 운전자가 졸고 있는 것 같다.

설마.









"꺄악."

콰당-

아까 너무 무리하게 휠체어를 몰았던 탓일까, 휠체어 바퀴가 고장나 옆으로 쓰러져 버렸다.

눈앞에 그가 있는데 다가가지 못한다니.

그래도 그가, 자신아게 달려오고 있다.









"안돼, 혜진아!"

트럭이 그녀의 지척까지 다가왔다. 백주 대낮에 저딴 졸음운전 트럭이라니!









갑자기 그가 다급하게 부른다. 뭔가 이상하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 순간, 거대한 트럭이 그녀의 시야를 압도한다.

트럭 운전자도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는지 브레이크를 있는 힘껏 밟아보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끼이이이익, 콰앙-!









휠체어의 파편이, 조각조각난 그 흔적들이 어지럽게 흩어지며 공중을 수 놓는다.

그것은 마치, 그가 한숨과 함께 내뱉었던 담배연기 처럼 보였다.

종국에는 힘없이 사라져가는, 오랫동안 남아있을 수 없는 허무한 슬픔.









그리고, 일주일이 흘렀다.









후우-

길게 내뱉은 담배연기가 그녀의 심란한 마음을 대변하듯 어지럽게 흩어진다.

하아-

담배와는 상관없는 긴 한숨. 그도 그때 이런 이분이었을까.

그녀는 지금 그가 앉아있더, 담배를 피던 그 공원 벤치에 앉아있다.

후우-

다시 한번 담배연기를 길게 뱉어 보지만, 연기는 이내 흩어져서 보이지 않는다.

"......진호야. 내가 담배 피는걸 보면, 넌 뭐라고 했을까?"

이제는 세상에 없는 그를 기억하며, 타고 있던 담배를 폐부 깊숙이 한번 더 빨아드린다.









"김진호씨는...이미 췌장암 말기로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김혜진씨가 그렇게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이겁니다."









의사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그녀의 머릿속을 자꾸 헤집어 놓는다.

후우-

이제는 담배연기인지 한숨인지 모를 그녀의 호흡이, 그가 앉아있던 벤치의 빈자리를 채워간다.

"......진호야, 너는 그때 어떤 기분이었니?"









-끝-





어디서 본적이 있는 스토리를 재구성해서 글을 썼습니다.
아마 금연 시도중에 쓴 글이라 그런지 담배에 대한 집착이 강하게 배어있네요.
결론은 금연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