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망했어요.’ 라는 현수막을 내건 상점들이 눈에 띈다. 도매가에 가깝게 판다고는 하는데, 그렇게 싼 것 같지는 않은 물품들이 잔뜩 쌓여 있다. 양말과 몸빼바지, 스타킹과 목도리 같은 것들이 박스에 그득히 쌓여 있고, 박스 날개에는 자릿수가 네 개를 넘지 않는 숫자들이 큼지막하게 하나씩 쓰여 있다. 나는 마땅히 필요한 것도 없으면서 물건들을 대충 훑었다가, 지갑을 확인하고는 이내 가던 길을 간다.

나는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인생이 망했어요.’ 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점포를 여는 상상. 나는 출생으로부터 도매가로 떼어 온 시간을 잔뜩 내놓고, 자릿수가 네 개를 넘지 않는 숫자로 시급을 적는다. 비루한 스펙, 부질없는 경험, 상처와 아픔 같은 것들. 알량한 마음으로 쓴 글과 야윈 육체가 대강 쌓여 있다. 사람들은 내 점포를 훑었다가, 이내 다른 점포로 향한다. 내 점포에는 사고 싶은 것이 어디에도 없다.

도매가로 떼어 온 시간들. 얼마나 남았는지 재고파악도 잘 되지 않는 그 시간들을 널어놓고 파리만 날리는 좌판 앞에 서서 오들오들 떨고 있다. 파리는 언제 날리는가. 죽은 것 위에 날린다. 나는 나의 과거들이 남긴 사체를 잔뜩 떼어다가 팔고, 그것들이 당신의 내일에 요긴하게 쓰일 것이라고 홍보한다. 허나 어느 누구도, 이런 것들을 살 이유는 없다.

사장님이 결국 미치지 못했어요.
그래서 제 시간을 팝니다. 어서 들어오셔서 보고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