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컷 출처 - 네이버 영화정보
https://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hn?code=187310

몇 년 전 어떤 오디션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이민자 자녀로 추정되는 외국 이름, 한국 성의 출연자는
자이언티의 '양화대교'를 열창했다.
자기 가족사를 담아 개사까지 하여 부른 그 노래는 여러모로 화제가 되었다.
노래를 하는 내내 그 출연자는 '엄마'와 '아빠' 등
가족의 이름 앞에 눈물을 참지 못하였고,
눈물 젖은 무대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관점에선 엉망이었기에
그 출연자가 탈락 위기에 놓이는 걸 본 기억이 있다.

살면서 거의 처음으로 그들의 존재를 인식하고,
애환에 대해 공감하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음악은 감정과 밀접하게 닿은 예술이기에
나는 그 사람의 재능이 아니라 아픔이 노래를 빛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영화 또한 비슷한 일을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미국 이민자 자녀인 감독 정이삭 님과 배우 분들,
그리고 우리의 할머니 그 자체인 원로 배우 윤여정 님.
이들이 그려 낸 80년대 미국 남부 한인 이민자 가정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는
미국과 우리나라에서 관객들을 울리고 웃기고 있다.

소위 말하는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미국으로 이민을 간 평범한 가정이
새 삶의 터전에서 뿌리를 내리고 굳세게 살아가려는 이야기는
죽어나가는 수컷 병아리들을 보여 주며
'쓸모 없는 사람이 되면 안 된다'고 교육하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아버지는 영화 내내 병아리의 신세에 곧잘 대입되곤 한다.
반면 할머니가 물가에 심는 미나리는 병아리와 대구를 이룬다.
어디서든 뿌리를 내리고 잘 자라며,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알싸한 향을 내는 풀.

창작자에게 있어 '무엇을 쓸 것인가'는 주요한 고민거리이다.
하지만 때론 '무엇을 쓰지 않을 것인가'가 더 중요한 고민일 때도 있다.
그 고민에 있어 이 영화는 현명한 길을 택하였다.
80년대 한인 이민자 가정이 미국에서 받은 차별을 소재로 다룬다면
내용이야 엄청나게 풍부하게 채워질 것이다.
영화는 이 소재에 대해 최소한의 긴장감만 유지할 뿐
그것이 주로 다루어지진 않는다.
물론 지금 보면 심각한 차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언행들이 나오지만
시대를 생각해 볼 때 이 영화의 미국인들은 굉장히 선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이 지점에서,
'이민자 한인'의 이야기에서 인간 일반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스테레오타입을 그대로 간직하며 이질적인 사회에 녹아들려 하는 주역들과,
그들과 어울리고 친구가 되려 하는 주위의 선한 사람들.
모두가 그 자체로 쓸모 없는 병아리가 아닌, 미나리처럼 서로 빽빽히,
볕 좋은 곳에 모여 사는 인간들인 것이다.

감독과 배우들이 겪으며 살아왔을 아픔들은
힘들게 살아온, 그리고 오늘도 양화대교를 건널 모두에게 희망을 전한다.
원더풀 미나리, 원더풀 라이프라고.

여담.
윤여정 배우님의 연기를 보면서는
네이티브 한국어 구사자라는 사실이 오랜만에 참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