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목적은 감독의 의도가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단순 상업 영화가 아니라 그 감독이 작가주의 성향을 띄고 있다면, 이런 경향은 더더욱 강해진다

이 영화는 '재미있는 게임' 을 다룬 영화다

아,물론 관객이 재미있는 건 아니다. 영화 속 싸이코패스 들만 재미있는 게임이다

그럼 감독의 의도는 뭘까?

관객을 '불쾌하게' 만드는게 목적이었을 것이고, 그 의도는 최소 120%는 성공했으리라 본다

그럼 이 영화가 못 만든 영화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다

이 영화는 조온나 잘 만든 영화다. 그래서 더 불쾌하다

별장으로 휴가를 간 가족이 달걀을 빌리러 온 싸이코 패스들에게 걸려서 인생 개박살 난다는 간단한 스토리에서

악당들은 심심찮게 제 4의 벽을 넘어서며 관객을 자신들의 살인 게임에 참가시킨다

（아래부터 스포일러 주의）

만약 이 영화가 평범한 영화였다면 개를 죽이진 않았을 것이다

이 영화가 평범했다면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들이 죽임을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평범한 영화였다면 아빠가 다리가 부러진 시점에서 어떻게든 반격에 성공해서 두 싸이코들을 죽이고 뒤늦게 경찰이 와서 수습하는 식으로 끝났을 것이다

물론 이런 클리셰 따위 감독은 우습다는 듯이 던져버린다

소급 효과라는 말이 있다. 영화 같은 영상물을 관람할 때, 관객이 스스로 이것은 픽션이라는 거리감을 두어 온전히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한다는 말인데 

감독은 일부러 제 4의 벽을 부셔버림으로서 관객을 영화 속 사건을 지켜보는 '방관자' 에서 직접적으로 싸이코들의 게임에 함께하는 '참가자' 로 만들어 버린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반전으로 '리모컨'의 존재가 나타난다. 여태까지의 결과를 모두 뒤집어 버릴 수 있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그 존재가 사실 당혹스러울 수 있겠지만, 이것 역시 감독의 의도가 여실히 드러나는 물건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감독은 평범한 클리셰로 전개할 생각이 1도 없었다.

아니, 전개는 커녕 오히려 뒤통수를 쳐버림으로서 관객의 기분을 제대로 잡쳐버리게 만든다

그럼 왜 굳이 '리모컨'이 등장할까?

이유는 정말 간단하다. 관객에겐 '어떤 영화를 선택할 수 있는 주도권' 은 존재하지만, '영화의 전개를 뒤집을 수 있는 주도권' 자체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 이런 전개의 주도권은 보통 주인공이 쥐기 마련인데, 여기선 오히려 악당의 손에 쥐어줌으로서 관객의 뒤통수를 쳐버린 것이다.그리고 영화 속 폭력은 현실에 대입해서 보면, 언론이 짜깁기한 미디어에 휘둘리는 대중의 모습이 엿보였다

감독이 언론, 영화가 미디어, 관객이 대중이라 생각한다면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진다.

물론 억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영화 속 현실이 가상의 인물들에겐 현실이다' 라는 말에서 감독은 이 영화를 단순히 픽션에서 끝낼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게 여실히 보인다

이 영화는 불쾌한 영화다.

심지어 잘 만들어서 더더욱 불쾌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