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르 개봉일 다음날 바로 보러 갔습니다.

인기있는 프랜차이즈라 그런지 평일 낮인데도 IMAX관에 명당자리는 듬성듬성 비긴했어도 인원들이 어느정도 차더라구요.

토르를 다 보고나서 제일 처음으로 드는 생각은 '너무 퉁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이제는 마블영화가 기존 영화들의 서사 문법에서 많이 벗어난 줄은 압니다.

서로 다른 영화가 하나의 세계관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다 보니 많은 이야기들이 쌓였고, 언제든지 가져다 쓸 수 있으니까요.

심지어 멀티버스라는 마법봉까지 쥐고 있는 마블이니까요.

그래도... 그래도 말이죠... 관객들한테 이해를 '요구'하는 건 너무 하지 않나요?

고르는 정말 크리스찬 베일이 했기 때문에 그나마 빌런 포스가 있었던 것 같아요.

부족한 서사를 그냥 연기력으로 메운 느낌이라고 해야될까요?

크리스찬 베일이 나오는 영화마다 모습을 다양하게 변화하면서 등장하고 굉장히 몰입도 있는 연기를 보여줘서

볼때마다 즐거움을 선사해주는 배우 중 한명인데 이번 연기도 인상 깊었습니다.

그런데 고르와 네크로소드 너무 서사가 물렁합니다.

네크로소드부터 말하자면 신을 죽이기 위한 무기라고 만들어졌는데, 왜 만들어졌는지 이런 자세한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았겠어요.

스톰브레이커도 기능으로 따지면 신을 죽일 수 있는 무기에 자아도 있는데, 왜 죽이고 싶은지, 왜 사용자를 질병에 빠뜨려 죽게만드는지.

코르그가 토르 과거일들을 구연동화 시연하듯이 얘기하는 씬들이 있었잖아요. 그냥 그런 방식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라도 하면

'납득'이라도 해보려고 생각할 것 같아요.

그냥 네크로소드는 미친（말그대로 정신이） 무기입니다! 하고 끝입니다.

이미 인피니티 사가를 거치면서 정말로 우주적인 사건을 치뤄낸 MCU인데 이런 저주받은 무기가 횡행하는 걸 가만히 냅뒀다?

몰랐다? 솔직히 이런 건 팬들을 무시하는 행위인 것 같아요. 그냥 퉁치자 이거죠. 이런 게 있었대 하면서. （우주경찰 캡틴마블은? 또 바빴다?）

고르도 뭔가 이 저주받으면서도 자식을 잃은 부모의 입장에서 끊어낼 수 없는 슬픔을 겪은 건 알겠어요.

맨 처음에 나오니까 근데 이야기를 후다닥 해버리니까, 고르에 감정이입이 안됐던 것 같아요.

갑자기 사막 횡단하다 딸이 죽고, 신은 노골적으로 고르를 모욕하고, 그 자리에 마침 네크로소드가 있었고 ...

인터넷 주작썰 같지 않습니까? 스샷 한장에서 전후사정이 다 파악되는 글을 뭐다?

심지어 이게 기냥 인트로에 유튜브 숏무비마냥 후다닥 지나가버리까 음... 고르가 마음 아픈건 알겠는데, 감정이 동하지는 않더라구요.

이것도 요구하는 것 같았어요. "이런 일이 있었댄다. 관객들아 니들이 이해해줘라, 해줄 수 있지?"

이쯤 하고, 토르 일행 서사 얘기도 하자면.

유머코드야 호불호의 영역이자, 정말 주관적인 부분이라 코멘트를 못할 것 같습니다.

전 예전부터 미드나 영화를 접해서 그런지 미국식 유머가 재밌고 받아들일만 합니다.

전 스페이스 포스 정말 재밌게 봤는데, 제 친구는 10분 보고 바로 껐다고 하더라구요.

그렇기에 전 이번 토르에 들어간 유머는 괜찮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근데 유머의 내용을 떠나서 빈도는 좀 생각해봐야 될 문제인 것 같습니다.

토르가 언제부터 유머러스하고 한없이 가벼운 사람이 되버린 건지, 입에 토니 스타크가 빙의된 거 같기도 하고..

토르가 주는 유머포인트는 제가 생각하기에 21세기에 살고 있는 지구인들이 중세시대? 이런 고 시대의 귀족을

만나서 발생되는 그 문화적 사고방식의 갭 때문에 생기는 류의 유머가 중심이라고 생각되는데

이번에는 전형적인 미국식 시트콤 농담으로 유머를 채워서 이것도 뭔가 괴리감이 있었던거 같아요.

차라리 가오갤 씬에서 지구에 코미디 쇼를 보면서 즐거워하거나 농담을 따라 연습하는 장면이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도 들기도 합니다.

이런 점 때문에 토르 인물의 감정선이 너무 가벼워진 것 같습니다.（물론 다음 3부작을 염두해두고 그런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합니다.）

그 외에 소리 지르는 염소들과 같이 약간 말초적인 코미디 요소는 재미났던거 같습니다.

비주얼적인 부분은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지구에 적응해버린 뉴 아스가르드 사람들이나 마을 풍경.

바이프로스트를 비롯한 형형색색한 컬러감들이 강조되는 가운데, 고르의 영역이었던 쉐도우 렐름이 모노톤으로 연출되어

고르가 얼마나 단편적인 복수심에 사로잡혔는지 보이는 장치로서도 좋은 연출이었다고 생각됩니다.

PC적인 요소는 이제 안빠지고 넣는가 봅니다.

발키리의 여자친구 이야기는 원래 동성애자임을 알고 깊게 언급하지 않았기에 자연스럽게 봤지만,

코르그의 동성임신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거부감이 느껴지긴 하더라구요.


아무튼 총평으로는 여전히 킬링타임 무비로는 손색없지만,

더 이상 토르는 제가 알고 있던 토르와 많이 멀어진 것 같습니다.

몇 안 남은 오리지널 멤버인데 뭔가 뒷맛이 개운치가 않았던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