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케이 소설입니다.

그동안 올렸다가 내렸다가를 반복했던 글인데

이제 어느정도 분량도 확보되고 해서 쭈욱 연재 들어갑니다.

매주 수요일, 일요일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잡설 말고 글 올릴게요.


-------------------------------------------------------------------------------

프롤로그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주위에는 사랑에 관한 명언들이 수도 없이 우리 곁을 맴돌며 사랑의 축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한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노희경 저（著）-
사랑한다는 말 뒤에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영원히"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 -이외수-
사랑은 삶의 최대 청량, 강장제이다 -파블로 피카소-
사랑은 인간 생활의 최후의 진리이며 본질이다. -슈와프-
사랑의 괴로움처럼 기쁨은 없다. 사랑에 죽는 것처럼 행복은 없다. -E.M. 아른트-
사랑하는 것이 인생이다. 기쁨이 있는 곳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결합이 있는 곳에 또한 기쁨이 있다. -톨스토이-

이쯤에서 당신에게 질문을 하나 던져보겠다.
지금, 이 순간, 이 시대를 살아가는 당신...
당신은 정말 이렇게 생각하는가?


1. 숙취

"...우리...헤어지자."
그녀는 울지도, 망설이지도 않고 단지 느릿느릿하고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응...?"
핫초코를 마시려던 난 손을 잠시 멈칫하고는 이내 머그컵을 집어들었다.
하지만 입가로 가져간 머그컵은 내 의도와는 다르게 떨리고 있었다.
최대한 침착하려 애쓰며 한 입 마신 핫초코의 맛은 평소의 달콤한 맛이 아니었다.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아무 맛도...
떨리는 머그컵을 겨우 부여잡고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우주에 나 혼자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기분 나쁜 현기증이 내 눈을 감게 만들었다.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나에게 벌어지고 있었다.
이 세상의 모든 커플들은 헤어지기 직전 그에 합당한 증세를 보이게 마련이다. 전화가 뜸해진다던지, 상대방이 귀찮아진다던지, 하다못해 애인에게 돈을 쓰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던지...
이런 증세들은 마치 암에 걸린 환자가 여러 가지 보일 듯 말 듯 한 증세를 보이며 서서히 죽어가는 것처럼 아주 사소하게나마 보여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그런 것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내 앞에 앉아있는 그녀는...어제까지만 해도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저께까지만 해도 나와 함께 '평생'을 이야기하던 사람이었다.
헤어짐을 눈앞에 둔 이 순간, 나는 그 자체에 대한 슬픔을 느끼기도 전에 미치도록 괴로운 물음을 끊임없이 되뇌었다.
갑자기 왜? 대체 무엇 때문에? 무얼 바라고?
"...이유가 뭐야?"
그녀는 이미 모든 것을 결심한 듯 한 치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유? 이유야 간단하잖아. 네가 싫어졌어. 그 뿐이야."

난 터벅터벅 길을 걸어 집으로 향했다.
그게 말이 되냐고...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있을 것 아니냐고...
최대한 이성을 찾으려 노력하며 말을 꺼냈지만 결국 그녀에게서 들을 수 있는 단지 '헤어지자'라는 말 한마디였다.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반드시 있을 거라고...내가 싫어진 건 절대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내 자신을 달래고 또 달랬다.
하지만...내 자신을 달래려고 몸부림칠수록 공허해져가는 것은 내 마음뿐...
...세상 모든 것이 하나씩 하나씩...지워져간다.
거리를 달리는 차들...길을 따라 서 있는 가로수들...바쁘게 어딘가를 향하는 사람들...곧게 뻗은 빌딩숲...
결국 남은 것은 오로지 내가 밟고 있는 길과 나 자신뿐...
그렇게 세상 모든 것이...사라져간다...

정신을 차려보니 난 어느새 집에 들어와 있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 온 걸까...
그런데...왜 이렇게 낯선 거지...
어제까지만 해도...아니,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그토록 편한 곳이었는데...
왜 이렇게 낯선 거지...왜 이렇게 추운 거지...왜 이렇게 이 곳이...곳곳에 그녀의 손길이 묻어있는 이 곳이...왜 이렇게 낯선 거지...
집 가운데 노끈을 따라 주욱 걸린 그녀와 내 사진들...
저 여자...내 여자가...아니...내 여자였던 그녀 얼굴이...
왜 이렇게 낯설고 거북한거지...
또 다시 현기증이 내 머리를 때렸다. 속이 메스꺼렸다.
하루아침에 달라진 그녀의 변심에 멀미가 났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올라오는 구역질에 나는 화장실로 뛰쳐 들어가 변기통을 붙잡았다.
"우웨엑..!!"
한바탕 게워내고도 계속 나오는 헛구역질에 괴로워 몸부림치면서도 내 머릿속은 온갖 생각들로 가득찼다.
“쓰읍...후우...”
속을 게워내니 한결 기분이 나아짐을 느꼈다. 나는 변기의 물을 내리고 세면대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는 얼굴이 허옇게 뜬 한 사내가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신차리자, 강진우...이럴 때일수록 머리를 차갑게 만들어야 한다.
스스로에게 되뇌이며 거울 속의 나에게 다짐을 했다.
그렇게 거울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문득 웃음이 났다.
후우...누가 보면 어제 술 진탕 마신 줄 알겠네...몰골이 말이 아니다. 큭큭..
갑자기 왜 이런 상황에서 웃음이 나는 것일까.
한참을 낄낄거리다가 문득 깨달았다.
그래...나는 술을 마셨었구나...
사랑이라는 달콤하고도 독한 술을 잔뜩 마셨구나...
그래서 이렇게 얼굴이 허옇게 뜬 거구나...술 줄이기로 마음 먹었었는데...2년 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세상에서 가장 독한 술을 마시고 있었구나...
술을 진탕 먹고 밤새 토악질을 하며 숙취에 시달리는 날에는 누구나 하는 다짐이 있다.
'하아...다음부터 이렇게 술 쳐먹으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독한 술을 잔뜩 마시고 숙취에 시달리고 있는...허옇게 뜬 거울 속 한 사내의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다시 다짐하는 나였다.
'하아...다음부터 사랑 따위 하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2. 습관

“띠리리리~일어나세요~아침이에요~♪”
오늘도 4시 30분에 어김없이 울리는 핸드폰 알람소리가 날 깨웠다.
으음...일어나야 할 시간인가...
하아...역시 아침은...싫다...
일어나고 싶었지만 이불이 너무 포근해서 일어나기 싫다.
누가 들으면 배부른 소리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입에 풀칠하고 살려면 일어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사회인의 한（恨）중 하나다.
결국 10분을 더 이불 속에서 꾸물거리다가 겨우 일어났다.
“하암...졸려...”
다시 감기려는 눈을 겨우 비비며 샤워기를 틀었다.
‘쏴아’
샤워기를 틀자마자 나는 재빨리 물온도를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의 중간, 즉 따뜻한 정도의 온도로 컨트롤하고는 흐르는 물에 몸을 맡겼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샤워를 하면서 동시에 이를 닦는 것은 아침에는 필수 중의 필수인 스킬이다. 따뜻한 물로 정신을 차리며 나는 습관대로 칫솔에 치약을 짜낸 후 거울을 보며 이를 닦았다.
‘으음...오늘은 무슨 일을 해야하지...일단 출근해서 밴을 끌고 성은이 픽업하러 가야지...오늘 스케줄이...아 맞다, 잡지 화보촬영이 오전에 있고, 오후에는 음악중심 녹화가 있지...그리고 보자...오늘은 그 두 개구만...그래도 집에 일찍 들여보낼 수는 있겠네...나도 좀 쉴 수 있겠고...아마도 7시 쯤엔 들어올 수 있겠지...그나저나 성은이 오늘도 제대로 된 밥 먹기는 글렀네...밴에서 먹는 것 중에 맛있는 게 뭐가 있을까...그나저나 이번 앨범 잘 돼야 될텐데...성은이 녀석 요새 딴 곳에 정신이 팔려가지고...’
아침 샤워를 하며 하루의 일과를 생각하는 것은 오래된 습관이다. 씻는 거야 내 영원한 동반자, ‘습관’이라는 놈이 해줄 것이니 나는 내 생각에 몰두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습관이라는 놈은 오랫동안 나의 상당한 부분에서 많은 몫을 담당해줬다. 혹자는 ‘남자는 뇌구조의 특성상 절대로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지 못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런 주장은 습관의 힘을 과소평가하는 처사이다. 나를 보라. 지금 이 순간 오른손으로는 온 몸에 비누칠을 하고, 왼손으로는 칫솔질을 하고 있으며 머릿속으로는 오늘 일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은가.
어쨌든 그렇게 샤워를 마치고 수건으로 몸을 훔친 후, 습관대로 티비를 켜서 아침뉴스를 튼 다음 화장실 옆에 있는 내 속옷서랍을 열어 새 팬티를 꺼내 입었다. 그 후 속옷서랍 위에 올려져있는 스킨을 오른손바닥에 일정량을 받아 얼굴에 문질렀다. 그리고는 그 속옷서랍 옆에 붙어있는 옷장을 열어 진한 보라색의 목티를 꺼내고 그에 맞는 청바지를 꺼내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 뒤 습관대로 속옷서랍 위에 있는 로션에 손을 뻗어 얼굴 전체에 골고루 발랐다.
“스킨하고 로션이 섞이면 왠지 기분이 찝찝하단 말야...스킨이 흡수되고 발라야 산뜻하지, 암! 그렇고말고!”
혼잣말을 하며 어떤 행동을 하는 것도 내 습관 중 하나다. 이 습관은 생각보다 내 머릿속에 깊게 박혀서 고작 화장품 하나 바르는데도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 것이다.
로션을 바르고는 간단히 안에 입을 반팔 티셔츠를 입고 바지를 입은 후 티셔츠 위에 목티를 입었다. 그리고는 책장 위에 올려져있는 왁스를 가지고 거울 앞으로 가서 머리를 만졌다.
“오늘 머리 잘 됐고...좋아!”
기분이 좋다. 머리가 잘된 날은 왠지 하루가 잘 풀릴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옷장에서 두툼한 오리털파카를 꺼내 입고 가죽으로 된 옆가방을 든 후 집을 나섰다.
이렇듯 일어나서 하는 행동들은 모두 내 일련의 습관들로 이루어져 있다. 항상 샤워를 하고 새 팬티를 갈아입은 후 티비를 켜고 뉴스를 보면서 스킨을 바르고, 오늘 입을 옷을 꺼내 침대에 올려놓은 후 스킨이 흡수된 얼굴에 로션을 덧바른다. 그리고는 위에 받쳐입을 티셔츠를 입고 바지를 입은 후 윗옷을 입는다. 왁스로 머리를 정리한 후 겉옷을 입고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선다. 내 아침은 항상 이 순서로 진행된다.
“하아...오늘도 힘든 하루가 되겠지만...그래도 힘내자! Positive thinking!!”
출근할 때는 항상 긍정적인 주문을 한 번 외운다. 그래야 아무리 하루가 힘들어도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내 오래된 징크스 중에 하나다. 이것도 내 습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오...날씨가 꽤 춥네...”
이렇게 아침의 날씨를 느끼며 습관대로 휴대폰을 들어 1번을 길게 누른다.
그녀의 애칭과 함께 휴대폰 번호가 뜬 후 연결중이라는 표시가 휴대폰 화면에 뜬다.
연결표시를 확인하고는 수화기를 귀에 대는데...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큰 실수를 한 듯한 느낌이...
...아...우리...헤어졌지...
어제...헤어졌지...
받기 전에 어서 끊자...
“...여보세요...”
그녀가 전화를 받는다.
...젠장...
순간 나는 머릿속에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
“...왜 전화했어...”
“...”
이런 순간은...이런 순간에는...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미안해...습관이 돼서...나도 모르게...미안...”
“...”
“...나 항상 출근할 때 너한테 전화...했었잖아...그게 습관이...됐나봐...”
“...그래...이제 앞으로 우리...실수로라도 연락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잘 지내.”
‘띠리링’
통화종료음이 수화기에서 들리고, 전화가 끊어졌다.
그 순간, 나 또한 끊어진 전화처럼 머리가 멍해졌다.
“...젠장...”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습관이 참...무섭구만...하하하...”
괜히 헛웃음이 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습관이라는 놈 때문에 출근을 늦지 않게 할 수 있었고,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었지만...결정적인 순간 이 놈은 나를 이렇게 다시 한 번 지독한 슬픔으로 밀어넣었다.
그래...2년간의 짧지 않은 세월을 거치면서 생긴 내 습관 중 많은 부분은 그녀에 대한 습관이었다.
지금도 그 습관 중 하나가 나를 그녀에게 전화하게 만들었고...난 또 눈물이 난다.
“...젠장맞을...습관...오늘 하루...왠지...힘들겠구만...”
이 와중에도 내 다리는 출근시간을 지키기 위해 습관대로 부지런히 다리를 움직이고 있다.
...젠장...
지금부터 하나씩 지워가는 연습을 해야겠다.
그녀에 대한 습관들을 하나, 둘씩...
“습관이...참...무서워...”
습관이 무섭다면서 습관대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나였다.




Written by BK



COPYRIGHT @ ALL RIGHTS RESERVED BY Bohemian's Room☆™

http://blog.naver.com/in_stard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