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면 기지개.'
'학교에서 다리떨기.'
'줄넘기.'
이 세개만은 항상 지켰다. 공부보다 더 열심히 하였고 하늘을 보는 시간마저 양다리를 떠는 것을 자각하는 시간으로 바꿨다.
"헤헤헤."
여자아이의 해맑은 웃음. 다른 아이들과 친교적인 아이. 난 아무와도 친하지 않는 그런 아이. 사는 세계가 너무나도 달랐다.
"저기...자리있어?"
다른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야한다. 그 생각뿐이었다. 그 아이와 비슷한 등급이 되고 싶다. 그 아이의 조금이라도 닮고 싶다. 그 생각뿐이었다. 난 다른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용기가 그녀로 인해 생긴다.
"요즘 나댄다."
그 소리가 귀에 들렸다. 상관없다. 나대서 눈밖에 나도. 그 여자아이와 비슷한 등급이 될 수 있다면..
'퍽! 퍽!'
결국 그 노력은 폭력으로 돌아왔다. 눈밖에 난 것. 싸움 좀 한다는 아이들의 표적으로 변한다.
"어이. 난쟁이."
이 말을 들으며 나는 괴롭힘을 당한다.
"알겠냐? 항상 조용히 살아."
그 말에 호응할 수 없다. 그녀에게 어울리는 남자가 되고 싶다. 그 생각뿐이었다. 하지만...폭력이나 괴롭히는 것은 싫었다. 괴롭히던 xx와 패거리들, 자신들은 아니라는 듯 선생님이 말하고 나서야 외치는 더러운 새끼들. 그들과는 다른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난...내가 짝사랑하는 여자아이처럼 웃었다.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야한다.
"안녕?"
"어? 안녕.."
"헤헤. 이상해?"
"왜 웃어?"
"그냥. 헤헤."
어색한 웃음. 항상 굳어있던 얼굴은 겨우겨우 미소를 만들어낸다. 가식웃음. 이게 내 별명이 되었다. 부딪쳤다. 아이들에게 다가갔으며 또 버림받았다. 친구는 생기고 또 금세 없어졌다.
"학원을 끊는데."
들려온 말. 짝사랑하던 아이가 학원을 끊는다. 그녀는 나와 다른 고등학교로 가게 된 것.
'아직...고백도 못 했는데...'
키에 대해 큰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나는 아직 비슷한 그녀와 자신의 키로 인해 고백을 하지도 못한다. 그렇게 그녀는 떠나갔다.
"너 진짜 학원 오래다닌다."
그런 소리를 듣는다. 그녀가 떠났지만 나는 그녀의 향수로 인해 학원을 떠나지 못했다. 학원의 고등반이 되고 아이들은 항상 달라졌다. 소심한 성격은 고치지 못했으며 아이들에게 다가가 부딪치고 깨지고를 반복한다.
"하늘...."
그녀가 떠나가고 난 다시 하늘을 바라보는 아이가 된다.
"학원에 새로온 애가 온데."
그 말이 들려온다. 그리고 난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
말문이 막혔다. 다른 고등학교교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 나를 주시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 아마 나를 기억속에서 잊었을 것이다.
'오랜만이야.'
이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하지만 입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며칠이 지났다.
"안녕?"
그녀는 나를 기억했다. 오랜만이라는 듯.
"너 키 약간 컸다?"
왜소했지만 나는 키가 그 때 172였다. 그녀와 나는 학원친구라는 관계로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말랐어."
그 말에 나는 충격을 먹는다. 키만으로는...힘드나...그녀는 안쓰러운 듯 나를 바라본다.
"........"
집에 있는 역기. 그것을 들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다. 팔굽혀펴기를 그 때부터 시작했으며 밤만 되면 난 운동을 했다. 몇달 후...
'이 정도면...'
거울을 보면 배에 왕자가 나온다. 팔은 좀 말랐지만 어깨가 좀 넓어져 애들에게 운동 좀 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마른 건 변함이 없다....
"........."
묵묵히 참고서를 바라본다. 그녀가 다가와도 난 너무 소심해 그녀와 제대로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나에게 관심이 있는 듯 했다. 지금에서야 알 수 있었다. 그걸 알기에는...난 그 때 너무 어렸다.
"우와. 동물 필통이네? 나도 그런데."
그녀는 내 동물필통에 관심을 보였다. 그녀는 모를 것이다. 내가 그녀가 동물필통이 있어 조금이라도 비슷해지려고 그 필통을 가지고 다닌다는 것을.
"......"
잠깐 장난으로 창문에 동물필통을 올려논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의 동물필통을 옆에 마치 애인이라는 듯이 껴놓는다.
'뭐지?'
가슴이 뛴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다. 그 후로 그녀는 참고서같은 것을 가지고 나에게 다가온다. 나는 그 만큼 수학공부를 해야했다....그녀는 나보다 성적이 좋았다. 수학성적을 제외하면...그녀는 문과였으며 나는 이과였다. 점점 그녀가 나에게 수학을 물어보는게 사라지더니 아예 물어보지도 않는다.
"........"
그녀는 선생님에게 수학문제를 물어보기 시작한다.
"하아..."
한숨이 나온다. 그녀의 문제는 이제 나와는 다른 수학종류인 것. 내가 설명해줄 수 있는 범주가 아니었다.
'나를 좋아하나?'
그녀가 나를 향해 웃어줄 때 항상 생각했던 말. 거울을 바라보며 고백까지 연습해보았다. 고2가 되고 그녀학교의 아이들은 전부 학원을 끊었다. 내 학교의 아이들도 셋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우리 반에 와서 공부를 했다. 기분이 좋았다.
"새로운 학생이 왔어요."
그리고 고2가 되었을 때 새로운 아이들이 몰려온다. 그런데...모습이 공부할 분위기가 아니다.
"야. 끝나고 pc방갈까?"
"쉬는시간에 담배나 빨러가자."
그런 말들이 오간다. 그들은 자기 친구 한명이 여기를 다니고 공부집중이 잘된다고 하니 우르르 여기를 몰려온 것. 그리고...난 그들 사이의 괴롭힘대상이 된다.
'사랑해.'
이 말이 나오지 않는다. 괴롭힘당하는 아이. 그런 아이가 고백을 하면 그 아이는 괴롭힘 당하는 아이의 여자친구가 되는 것 아닌가? 내 신세가 너무 엿같았다.
'고백하자.'
그 마음을 수백번 되내었다. 그리고 마음을 잡고 고백하기 위해 학원에 간다.
"사귄데."
"진짜?"
"장난아니다."
그 말이 학원내에 들려온다. 여자아이들의 목소리. 하지만 그 주인공은...내가 아니었다. 여자아이는 맞지만...남자상대는 나를 괴롭히던 녀석. 둘이 사귀는 것이다.
'하아...'
밤 중에 난 모든 것을 포기하듯 쪼그려앉는다. 항상 했던 팔굽혀펴기와 아령, 기지개펴기, 다리떨기등이 너무 하찮게 생각되었다.
"아제（내 가명）야. 물어볼게 있어."
그 날 갑자기 그녀가 나에게 다가와 수학문제를 묻는다. 최대한 고개를 돌리며 대답해주는 나. 최대한 냉정해야한다.
"......."
"......."
정적. 그녀와 나는 정적만 맴돌았다.
"안녕. 아제야."
그녀의 말이 너무 구슬프다. 난 뒤를 돌아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녀는...나와 다른 세계니까.
"헤어졌데."
"벌써?"
일주일만에 그녀와 괴롭히던 놈이 깨졌다는 이야기. 그 안녕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학원도 끊은 그녀. 이제 그녀는 완전히 사라졌다.
"......"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녀가 자신도 모르게 나에게 준 습관들을 계속할 뿐이다.
"키 178."
고3초 신체검사날. 아이들이 내 키에 놀란다. 어깨는 벌어졌으며 얼굴도 나름 가꿔서（여자아이 때문에.） 좋은 인상으로 바뀌었다. 친구도 좀 늘었으며 건드리는 아이는 없었다.
"하하하. 진짜라니까."
웃는 인상.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기. 싸움은 잘 하지 않고 말잘하고 용기있는 패거리에 난 속해졌다. 난 고3중반까지 고백을 세번받는다. 하지만 그녀가 마음속에 남은 듯 나는 모두 거절한다.
"입학문제로 왔는데요."
학원선생님들과도 친화성이 높았던 그녀는 다시 학원에 찾아온다. 난 아직도 그 학원에 남아있었다.
"......."
이제 완전히 나보다 작아진 그녀. 머리크기 하나차이. 웃던 그녀는 더이상 날 보며 웃어주지않는다.
"안녕?"
내가 먼저 인사한다.
"안녕?"
웃어주는 그녀. 하지만 난 그 웃음이 가짜웃음인 것을 안다. 내가 해봤으니까...아이들에게 다가갈 때...더이상 난 그녀로 인해서 심장이 뛰지 않는다.
"어디 대학 갈거야?"
마치 친구대하듯 이야기하는 나와 그녀. 그녀도 나에 대한 마음은 없나보다. 최대한 나와 시선을 피한다.
'잡고 싶다.'
그 생각이 든다. 손을 잡고 그녀에게 외치고 싶다. '사랑했었다고. 왜 떠났냐고.' 하지만...식은 내 심장은 그것을 막는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말은 항상 부정했었다. 하지만 결국 난 긍정하게 된다.
"축하합니다. 선배님."
대여섯명의 후배들이 나에게 꽃다발은 준다. 후배들을 둔 선배. 다른 아이들보다 배는 안고 있는 꽃다발들. 뿌듯한 고교생활을 보냈다. 한 여자만 바라본 해바라기같은 내 고교시절. 여자하나만 보고 살아온 인생. 막을 내린다.
"대학가면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고..."
마트에 들른 나. 잠깐 구경할셈 치고 가전제품코너에 들른다.
"금방 갈게."
익숙한 목소리. 절대 잊지 못할 목소리. 난 목소리를 쫓아 코너를 뒤진다.
'그녀다.'
그녀는 나를 인식하지 못했다. 내가 뒤에 있는데. 그저 다른 사람일 뿐. 나를 인식하지 못한다.
'톡!'
그녀의 어깨를 건드린다.
"어?"
"안녕."
내가 그녀에게 인사한다.
"어? 안녕!"
밝게 웃는 그녀. 가식웃음이 아니다. 진실된 웃음.
'나를 이제...좋아하지않는구나.'
알 수 있었다. 다시 만났을때부터 그녀가 나에게 관심이 있었다는 것을. 하지만 어린 마음에 난 그것을 회피했다. 다시 돌아온 그녀의 진실된 웃음은 예뻤지만...나의 마음을 삭막하게 했다.
"나 가볼게."
인사하는 그녀. 이제...그녀와 완전히 헤어진다. 보내야한다.
"오빠. 다 끝났어? 어? 뭐해?"
"아니..."
"왜 울어?"
"뭐가 들어간거야."
"?""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난 화장실에 가 흘러나오는 눈물을 훔친다. 해바라기는 결국 해를 바라보기만 하다 시들뿐이었다. 가끔 난 생각한다. 만약 그녀가 나에게 웃어주지 않았다면...내 별명은 아직도 귀신이었을까하고...고교생활의 내 별명은 가식웃음....그녀를 생각나게 하는 괜찮은 별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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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20살인 몇달전까지의 이야기를 쓴 겁니다. 실화입니다. 벌써 먼 이야기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