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 인간하나가 아가씨를 쫓고있다더구만?"

"뭐? 어떤 자식이야! 내 당장 그놈을 도께비방망이로 흠씬 두들겨 줄테니"

"아서라. 연월은 나에게 부탁을하였다."

도께비들은 소리가나는 곳을 쳐다보았다.

"태범님. 계셨습니까."

"어찌 네놈들은 연월의 목소리를 듣지못하는게냐. 내가 나눠준 목걸이들은 다 어디가고?"

"태범님께서 자꾸 잃어버리시는 바람에 저희들것도 다시 가져가지 않았습니까?"

"아... 그랬었지..."

"헌데, 태범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가씨의 부탁이 있었다니요? 아가씨는 지금 인간들에게 쫓기는 몸이 아니었습니까?"

"맞다. 그리고 잡혀버렸지."

"그러면 우리가 구하러 가겠습니다요."

"됬어. 이미 동섭을 붙여놓았다. 우리는 연월에게 많은 빚을졌지않나? 그 아이가 하고자 하는 것을 막는것은 안될일이야."

"정말이십니까요?"

"뭐가?"

"정말 아가씨에게 진 빚때문인것인지... 태범님 속에있는 음흉한 연심때문인것인지 쉔내는 헷갈려서말이지요."

"무... 무슨소리를 하는겐가!"

"크크크크크크"

도께비들의 웃음소리가 동굴을 울렸다.

연월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왜 웃는게냐?"

"모르겠사옵니다. 왠지 우스운 일이 일어난것 같아서요."

대혁은 연월의 웃는모습이 보기좋았다.
본디, 그림을 통해서 볼때 난생처음 보는 미녀였지만 실제로 보아하니 난생처음 뿐만아니라
앞으로도 볼 어떤 미녀들보다도 아름다울것이라 생각했다.

"아냐. 저건 도께비야. 정신차려"

연월은 작은소리로 말하는 대혁을 슬며시 쳐다보았다.
대혁은 자신을 쳐다보는 연월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획 돌려버렸다.
연월은 대혁의 행동이 의아했지만 계속해서 둘은 걸었다.

"저기 마을이 보입니다."

"그래? 벌써 도착했단 말이지..."

대혁은 한결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아... 맞다."

대혁은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품속에서 밧줄을 꺼내었다. 그리고 즐거운 표정으로 연월을 묶기시작했다.

"대혁님? 무엇을 하시는것입니까?"

"보면 모르냐? 널 묶고있지."

연월은 황당했다.
그도 그럴것이, 분명 대혁과의 대화를 나눈뒤 밧줄도없이 잘 걸어왔는데 갑작스레 자신을 묶으니 배신감이 느껴졌다.

"대혁님. 저는 달아날 마음이 없습니다.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알아. 헌데 난 널 안묶는다고 한적없어. 잘 생각해 보거라."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런 말은 한적이 없었다.
연월은 입이 튀어나와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반박할수도 없었다.
다만 대혁을 계속 노려볼 뿐이었다.

"이런 대낮에 남녀가 마을로 함께 걸어가면 쓸데없는 오해를 사서말이지.
이렇게하면 너와 나의 관계를 다른사람에게 잘 보여줄테니까 그렇게 노려봐도 않풀어줄 것이다."

다시금 연월의 등을 밀기 시작한 대혁이었다.
잠시후 둘은 마을에 들어섰다. 연월은 주위에서 자신을 쳐다보는 눈들을 의식해 고개를 숙였다.
그도 그럴것이, 죄인이 아닌이상 밧줄에 끌려가는 사람은 없을것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연월의 미모에 놀라 쳐다보았지만 밧줄을 보고는 흉을보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죄를 졌길래 대낮에 끌려가는거래?"

"귀한집 도련님한테 꼬리라도쳤나?"

"히야.. 저리 이쁜처자는 처음보는구먼, 헌데 왜 밧줄에 묶여가는고?"

대혁은 주위에서 이렇게 심한 관심을 보일줄은 몰랐다.
보통 죄인이 지나간다하면 대역죄인이 아닌이상 사람들은 쳐다보지도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다.
하지만, 예상외로 지나가는 모든사람들의 입에서 연월이 오르내리자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연월은 점점더 고개를 푹 숙이고 빨리걷기 시작했다.
대혁또한 미안한 마음에 빨리걷는 연월의 발걸음에 속도를 맞추었다.

"멈추거라. 여기다."

대혁이 멈추어도 연월은 계속해서 걸으려했다. 연월은 계속 걸음에도 앞으로 가지지 않자 뒤를 돌아보았다.

"여기서 몇일간 묶어야한다."

"예?"

대혁이 눈으로 가르킨곳은 허름한 사랑채였다. 대혁은 문을열어 들어갔다.

"아직 너를 잡으라고한 시간들이 남았다.
본래, 50일이 지난뒤 의뢰인과 만나기로 했지만 아직 40일밖에 지나지않았으니, 10일을 기다려야한다."

연월은 가만히 대혁을 노려볼 뿐이었다. 대혁은 그제서야 아직도 밧줄을 풀지않았다는 사실을 알게됬다.
밧줄이 풀리자 연월은 서둘러 방안으로 들어가버렸다.

"화난건가... 사과를 해야하나?
아니야. 저 아이는 요괴야. 어떤 퇴마사가 잡은 요괴를 마을에서 두손을 풀어주고 다니겠어."

대혁은 미안한 마음을 억지로 숨긴채 방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방안으로 들어간 연월은 아직도 귀에 사람들이 흉보는 소리가 들리는듯 했다.
처음겪는 일이었다. 아름답고 행실이 바른것으로 입에 오르내린적은 있어도 흉보인적은 겪지못했었다.
처음겪는 수치심에 자꾸만 대혁이 미워졌다.

"이제... 열흘간 뭘 해야하나?"

대혁은 방안에서 생각을 해보았다. 잡아야겠다는 생각만으로 쫓았지, 잡고난뒤는 생각하지 않았다.

"우선. 잔치를 벌여볼까!"

대혁은 임무를 마친 자신에게 상을 주기로했다. 술과 안주를 사와 실컷 취하고 싶어 밖으로 나갔다.
예나 지금이나 장터에는 사람이 붐비었다. 조금만 깎아달라는 사람과 조금 더 달라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봐, 놓쳤다면서?"

"그래. 잡았던게 달아나버렸어."

순간 대혁의 귀에 사내 둘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얼마나 고생해서 잡은건데... 잠깐 뒷간좀갔다온사이에 도망갔더라고."

"끌끌끌 그러니까 꿩은 아무나잡나? 다시잡으려면 자네 고생 꽤나 해야할거야"

대혁은 머릿속에 다시돌아온 연월이 떠올랐다. 연월이 도망갔더라면 40일을 쫓아 겨우잡았으니 최소 40일을 더 쫓아야했다. 하지만 연월은 돌아왔다.
스스로에게 화가나있던 대혁에게 돌아온것이다. 뿐만아니라 배를 채워줄 감자까지 줬었다.
생각할수록 연월을 밧줄로 묶고 마을로 들어온것은 큰 실수였다. 되려 업고 들어와야하는것이 맞았던 것이다.

"지금 사과하기엔 조금 늦었나..."

대혁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찌하면 자연스레 사과를 할수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천천히 걷던 대혁은 방울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지... "

그시각, 연월은 방에서 나와 마루에 앉아있었다. 이미 대혁에 대한 화는 사글어들었었다.
되려 자신이 화가난 모습을 보인게 잘못된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대혁님은 당연한 일을 한것이 아니냐. 어찌 내가 느끼는 모욕감때문에 남을 미워한게냐... 혹시라도 의식하고 있는걸까?"

연월은 자신이 보인행동때문에 미움을 사지 않았으면 했다. 그때 문이열리고 대혁이 들어왔다. 대혁과 연월은 눈이 마주쳤다. 서로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나와 있었느냐."

"예."

어색한 분위기가 지속되었다. 대혁은 문앞에 가만히 서있었고, 연월은 앉은채 서로 시선을 피하고있었다.

"어찌... 문앞에 서있으십니까?"

"어?"

대혁은 자신이 문앞에 계속 서있다는 사실을 께닫자 어색한 걸음걸이로 걷기 시작했다.
연월은 그 모습을 보더니 웃기시작했다.

"왜... 왜웃는게냐"

"아니옵니다. 웃지 않았습니다."

연월은 최대한 웃음을 참으면서 말하려했지만 쉽지않았다. 대혁은 이내 긴장이 풀린듯 제대로 걷기시작했다.

"술이 아니옵니까?"

연월은 자리에서 일어나 술단지를 받아들었다.

"술을 좋아하는게냐?"

"아니옵니다."

"헌데 왜 술을 받아드는게냐"

"아무리 요괴라고 하나, 여인이라 하지않았습니까. 본디 이런일은 여인이 하는법이옵니다."

"이런일?"

잠시후, 대혁은 방안에 앉아있었다.

"제법 방도 뜨끈한게... 내가 나간뒤에 바로 아궁이를 땐건가?"

오랜만에 느껴보는 온돌의 따뜻한 온기에 대혁은 피로가 날아가는듯 했다. 그때 문밖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연월입니다."

문이 열리고 연월은 상을들고 들어왔다. 상은 제법 갖가지 먹을 것들이 차려져 있었다.

"밥도 지을줄 아는게냐?"

"여인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대혁은 놀랐다. 요괴라고 생각했으나 정말 하는 말이며, 외모며, 행동이며 천상 여자였다.

"허나, 맛은 어떨지 모르겠구나"

연월은 자신이 걱정하는 것을 콕 찌른 대혁의 말에 입을열지 못했다.
대혁은 숫갈을 들더니 국을 한숫갈 떠먹었다. 그리고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에 빠진듯한 표정을 지었다.

"입맛에... 맞지 않사옵니까?"

대혁은 젓가락을 들더니 다른 반찬들도 먹어보았다.

"왜 그러시옵니까?"

연월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내 생에 이런맛은 처음이다."

"그리.. 맛이 없었습니까?"

"이토록 맛있는 음식은 처음 먹어보았다. 어찌 만든것이냐?"

대혁은 말이 끝나자마자 허겁지겁 밥을 먹기 시작했다. 연월은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안심했다.
연월은 대혁에게 술을 건네었다.

"여기 술도 있사옵니다."

연월이 한사발건네자 대혁은 순식간에 비웠다.

"캬... 정말 오랜만에 먹어본다... 너도 한사발 먹어볼테냐?"

"예? 저는 아직 술을..."

"자자자 마시거라"

연월은 전부터 술맛이 궁금했었다.
늘 도께비들이 마시는 술을 보고는 한번쯤 마셔보고싶었지만 누구하나 권하는 이 없어서
차마 먼저 마셔보겠단 말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연월은 살짝 미소를 띄며 마시기 시작했다. 순간 코끝이 찡한것이 목이 약간 타는듯한 느낌이 났다.

"캬..."

순간 대혁과 눈이 마주쳤다.

"푸하하하하"

대혁은 박장대소했다. 연월은 부끄러운듯이 고개를 돌리었다.

"어찌 이런말이 내입에서 나온것이지.."

"너 술좀마실줄 아는구나? 푸하하하"

연월은 술그릇을 내려놓았다. 잠시후 대혁의 웃음이 멎었다.

"정말... 놀랍구나."

"무엇이 말입니까?"

"나는 너를 요괴로만 알고있었다. 내 의뢰인이 도께비를 잡아달라 했거든. 헌데, 내가 지난 며칠간 너와 같이 걷는동안 느낀것인데. 말하는 것이 곱고..."

연월은 대혁의 칭찬에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행실또한 바르며..."

대혁이 이내 말을 멈추었다. 잠깐 동안의 정적이 흐르고 연월은 물어보았다.

"왜 말을 멈추시었습니까?"

'너무도 이쁘지 않느냐?'

대혁이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대혁은 헛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내 오늘 너를 밧줄로 포박해 마을로 끌고온것은 잘못된 행동인것을 알았다. 요괴라한들 여인인데... 미안하게 됬다. 내 사과를 받아주겠느냐?"

연월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닙니다. 당연한일을 하신것인데. 되려 화를 낸 제가 잘못한것이 아닙니까?"

대혁의 사과를 받긴커녕 되려 하는 연월이었다.

"흠... 이를 어쩐다... 그렇지. 혹시 퉁이라는 말을 아느냐?"

"그것이.. 무슨말이옵니까?"

"저잣거리에서 쓰는 말이다. 보통 서로 잘못이있고 사과를 하지않으려할때 쓰는말인데... 서로 사과를 하려고하니 이런상황에서도 쓰는것도 괜찮을것 같다"

"허면... 우리는 지금 퉁하였습니까?"

"하하하. 참으로 웃기는 말이다. 퉁하였다?"

무엇이 웃긴지 몰랐지만 대혁이 웃으니 자연스레 연월도 미소를 지었다. 대혁은 갑자기 무언가 생각이라도 난듯 품에 손을넣었다.

"장터에 갔다가 너에게 줄것을 하나 샀다. 사과를 하면서 주려했던것인데, 내 깜빡하고 있었다."

대혁의 손에는 작은 방울이 있었다.

"마음에 들진 않겠지만..."

"마음에 듭니다!"

연월은 기쁜 표정을 띠며 방울을 낚아채갔다. 대혁은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연월을 쳐다보았다.
연월은 방울을 이리저리 몸 이리저리 대보더니 방을 나갔다.
연월은 실과 바늘을 찼아 노리개에 방울을 달기 시작했다.

"정말 마음에 드는걸까?"

대혁은 예의상 하는 겉치레는 아닐까하고 걱정했다.

"연월입니다."

밖에서 연월의 목소리가 들리고 연월이가 들어왔다. 대혁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분명 방금전과 바뀐것이라곤 노리개에 방울을 단것 뿐이었다.
헌데 자꾸만 연월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 감사합니다. 소중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대혁은 계속에서 연월을 쳐다보았다.

"어찌 계속 보십니까..."

대혁은 순간 정신을 차린듯했다.

'정신차려. 저 아이는 도께비다. 사람이 아니다.'

연월은 계속해서 방울이 달린 노리개를 보면서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