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시각 오후 4시 3분.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오후 1시 30분이었지만 중간중간에 화장실 변기에 앉아 게임도 하고, 노래도 흥얼거리던 그였기에 아직까지 오늘 분량의 글을 완성하지 못했다. 할 땐 몰랐지만 막상 지금이 오고 나니 그때 그냥 뻘짓하지 말고 글이나 쓸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이런 인간이었으니까. 밤낮이 바뀌어버려 평균 기상 시간이 오후 9시 30분이 되어버린 그였지만 언제나 글을 쓰기 전 날에는 일찍 잠에 드는 편이다. 글을 쓰는 날에 늦잠을 잔다면 글을 못 올릴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글을 올리는 시간을 정해달라는 독자님의 말씀에 조금이나마 빨리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요즘은 더욱 더 그렇다.





그런 생각에, 오늘도 그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키보드를 누르는 속도가 점점 빨라져 간다. 글을 쓰면 쓸수록 가속이 붙는 것이었다. 생각은 끊임없이 새어나왔고 손가락은 쉴 틈 없이 움직였다. 이대로만 간다면 오늘 연재는 충분히 스트라이크 존 이내에 올릴 수 있을 것이었다. 사실 이미 글을 올려도 문제 없는 분량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편 당 1만자 이상을 고집하는 괴짜였기에, 오늘 역시 충분한 분량과 내용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키보드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그래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이었으니까.





이 내용까지만 쓰자.





그런 생각이 들 무렵에는 어느덧 오른쪽 하단의 글자수가 11,000 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조금이지만 만족감이 들어오는 그였다.





그리고 글자수가 대략 12,000 자에 다라랐을 무렵.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ㄴ → 특수문자 → “ 를 입력하는 그 순간.





삑, 하는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암전되었다.





방 안의 불이 꺼졌고, 거실의 불도 꺼졌으며, 옆 방에서 ‘전설의 출현!’ 을 띄우던 동생의 욕설이 들려왔다.





그리고.





내 눈 앞의 컴퓨터도 꺼졌다.





삑, 하는 소리와 동시에 어두워졌다. 어두운 방 안에 나 홀로 멍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내 검은 눈동자에, 검은 화면의 컴퓨터가 비추어 보였다. 멍했다. 순간이지만 세상이 날아가 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인가. 믿을 수가 없다. 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렇게 생각할 무렵, 옆 방에서 미드 오리아나를 요망한 구미호의 여우 구슬로 농락하던 동생이 달려와 내게 물었다. ‘형 내 방 컴퓨터 꺼졌는데 뭐 한거야.’





이 놈의 망할 동생은 왜 지 방 컴퓨터가 꺼졌는데 내게 와서 따지는 건지 의문이 듬과 동시에 역력히 짜증이 묻어져 나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녀석의 얼굴에 고무고무 총난타를 대략 6천 2백만 대 정도 꽃아주고 싶은 걸 겨우 참아내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동생이 물러났고, 나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정전 된것이다.





지금 같은 타이밍에.





나도 모르게 입에서 육두문자가 새어나왔다. 그래, 사실 그는 인터넷 상에선 착하고 자비로운 인간의 탈을 쓰고 있지만, 현실에선 표정이 찌푸러질 정도의 거침없는 욕도 서슴없이 해대는 몰락 인생이었음이 틀림없다. 충동적으로 흡연욕이 솟구쳤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전기가 돌아오는 걸 기다린 뒤, 컴퓨터를 재부팅하기 시작했다. 괜찮아, 임시 저장글에 저장되어 있을거야.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바닥에 대고 있던 다리를 덜덜 떨었다.





사실 컴퓨터 역시 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기에, 운이 나쁘면 이대로 컴퓨터가 영원히 켜지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컴퓨터가 가끔가다 부팅이 안되는 심각한 병을 앓고 있기에, 한번 켜지면 일주일이고 이주일이고 계속 켜놓기 때문이다. 참고로 지금은 대략 3주간 켜져 있던 상태다. 설마 지금 타이밍에 컴퓨터가 안켜질리는 없겠지. 그렇게 생각했지만 다행히 컴퓨터엔 불이 들어왔다. 그의 표정이 밝아진다.





화면이 떠오르자 그를 반기는 수많은 잡렉을 처치하기 위해 고클린을 깨끗하게 돌린 뒤, 그는 인터넷에 접속했다. 네이버 웹소설, 로그인을 한 뒤 마이페이지, 글 올리기를 누른 뒤 임시 저장글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내 그의 표정이 굳는다. 없다. 아무것도 없다. 분명 임시저장글（10） 이라고 적혀 있어야 할 터인데, 임시 저장글이 없다는 문구만이 그를 반기고 있을 뿐이었다. 순간 머리가 멍해진다. 뒷통수를 누구에게 얻어맞은 느낌이다.





왜 없는거지.





10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저장이 되는 시스템일텐데.





고클린을 돌려서? 설마 임시 저장글 목록도 지워버린 건가? 아니, 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그건 남아있었는데. 그럼 대체 왜? 설마 빌어먹을 자신이 글을 쓰는 도중 저장된 임시 저장글을 지운건가? 아니, 아무리 멍청하다지만 왜 그런 짓을 하겠어. 그 정도로 병X 은 아닌데. 그럼 대체 왜 없는 거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끓어오르는 분노와 멘탈 붕괴를 막을 수 없었다.





‘씨BA아아아아아아아아!’





대체 왜 내게 이런 시련을 내리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난 그저 오늘 분량의 글을 쓰고 싶었던 것 뿐인데. 대체 왜 내게 이런 시련을? 무교라서 그런걸까. 신을 믿지 않아서 내게 천벌을 내린걸까. 원망스럽다. 컴퓨터도, 키보드도, 어제 먹다 남은 몬스터 드링크도, 싸이코 패스의 츠네모리 아카네도, ‘임시 저장? 바보야, 저장이 아니라 하늘 나라겠지! 네 글은 하늘 나라에 갔다고!’ 하며 나를 농락하는 네이버 웹소설조차도 원망스러웠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뭘 해야할까, 의문이 들어왔다.





어느덧 그의 머릿속은 텅텅 비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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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쓸 시간에 글이나 다시 쓸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