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기억들 [0] |
2023-01-10 06:5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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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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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서둘러 내게
무언가 되려 하지 않았고
기를 쓰고
당신에게
무언가가
되려 할 때
내 안간힘을
가만히 지켜본 사람이다
서두름이 지나쳐
엇박자가 났을 때도
소리 없이
왼발 오른발을
바꿔가며
함께 걸어왔던
사람이었다
늘어 나는
엇박자로 인해
눈빛마저
엇갈렸을 땐
당신과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돼버린 것이다.
지도 없는
여행자는
낯선 길에서
당황하고
긴장하기는 마찬가지
그 마땅함을
모험이라는
이름으로
앞장서며
먼 길을
돌고
막다른 길에서
뒤돌아서기를
여러 차례
작고
맑은 샘을
발견하곤
잠시의 쉼도 없이
오직 목적지에 다다르려
황급히 짐을 싸서 출발하는
도대체
목적지가
어딘지 알 수도 없는데
지금 여기라고
바꿔 버리면 되는 것을
지나쳐왔던
작고 맑은 샘이
어쩌면
종착지였음을
나중에
아주 나중에
알아버려서
당신과 나는
엇갈린 걸음으로
다른 길을 걷고 있지
사는 동안
어떠한 의미를
순간순간
부여한다면
삶은
절대로
유쾌하고
즐겁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당신과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돼버린 지금
고양이
하품에 함께 웃고
젓가락을 바꿔 쓰고
밀린 빨래쯤이야
목 늘어난
셔츠에서 밥풀을 떼 주고
향 빠진
커피 원두를 버리고
구겨진 신발로
오늘 같은 날씨에는
모카도 괜찮겠지
눈으로 말하고
매장에서
들리는
귀에 익지만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제목을
먼저 생각하고
말해주려던
아무렇지 않은 기억들이
서로를
또렷이
마주 보며
잠자는 영혼을
일으켜 세우는
성스러운 의식이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