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헤어질까해."
"내가 보기에는 그 남자 놓치면 니 후회한다."

한 놈은 빨갛고 맞은 편에 앉은 여자도 빨갛고 둘다 빨갛게 됐다. 소주병은 3병정도 비워져 있다.

"참 남자1호는 착한데.. 능력도 별로고, 나이도 많고.. 이제 좀 질린다."
"남자 2호는?"
"걘 능력은 좋은데 뭐랄까 재미가 없다."
"아주 지랄도 풍년이다. 니 양다리 걸친지 이제 한 1년 됐나?"
"응. 1년 넘었지."

빨간 놈은 그녀를 훑어본다. 오늘따라 이쁘게 화장을 했지만 감추어지지 않는 못생김, 작은 가슴 그리고 앉아서 구분은 안 가지만 그만큼 작은 키. 요리조리 뜯어봐도 지금 남자 둘 놓고 한탄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외모다.

"근데 걔네 정말 니가 양다리 걸치고 있는 거 모를까?"
"응 몰라."
"남자 1호가 아무리 둔해도 그렇지. 알고 있을 거 같은데. 연애한지 3년도 넘었잖아. 아니다 4년짼가."
"뭐 어차피 연락 자주 안 하니까."
"하루에 몇 번 통화하는데."
"한 번 정도. 의무적으로. 지금 안 만난지는 1달 넘었어."
"그게 사귀는거냐?"
"아몰라. 이제 곧 헤어질까해."
"남자 2호도 어쩌면 알고 있을거야."
"뭐 걘 주말마다 만나니까."
여자는 말끝을 흐린다. 둘은 소주를 다시 한 잔 들이킨다. 언핏보기에도 여자는 술이 약한데 억지로 쑤셔넣는다.

"연애를 해도 연애를 하는 것 같지가 않아."

남잔 뭐라고 할려다가 그냥 작게 웃고만다. 그리고는 한탄을 한다.
"난 연애 못한지 너무 오래돼서 느낌도 없다."
"능력도 없고 차도 없고 게다가 못생기기까지하니까 그렇지."
"괜찮아. 난 매력이 있잖아."
"풋."
"맨날 하는 소리지만, 니 꼬실려고 맘만 먹으면 바로 꼬실 수 있다니까."
"꼬셔보라니까. 남자 3호 할래?"
"됐다."

어느덧 시간은 2시가 넘어간다. 둘은 미지적거린다.
뭐 시간은 딱 모텔갈 시간이네. 

"야 피곤하다. 그만 가자."
여자가 말을 꺼낸다.
"아 오늘 밤새준다며."
"미안해. 근데 피곤해서 더 못있겠다."
"그럼 난 어디가서 자냐."
"첫 차 다닐려면.. 5시라고 했냐?"
"어."
"그냥 잘 버티다 가라. 혼자 잘 놀잖아."
"와 니가 오라고 해놓곤 버리냐."
"미안해. 근데 진짜 너무 피곤하다."

잠깐 정적.

"그렇다고 니랑 나랑 모텔갈순없잖아."
여자가 먼저 말을 꺼낸다.
"뭐 어때 가면 되지."
"미친놈."
"그럼 술 더 먹던지."
"그래그래 가자 가."

아직 그들은 함께 자본 적이 없었다. 오늘은 어쩌면 처음이 될 수도 있겠다.
남잔 작은 눈을 잠깐 반짝였지만,
"가자. 집에 데려다줄게."
그리곤 여자 손을 잡고 택시를 탄다. 여자 집까진 5천원정도 되는 거리?

"네가 내 남자친구였다면 바로 무릎에 베고 눕고 싶을만큼 피곤해. 이해좀 해줘."
"그럼 누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여자는 남자 무릎을 베고 눕는다. 남자는 누운 그녀의 머릿결을 쓰담는다. 다른 한 손은 그녀의 손을 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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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리링. 띠리링.

여자는 벨소리에 눈을 뜬다. 남자 2호다.
"어.. 어."
"자고 있었구나."
"응.. 어제 술을 너무 늦게까지 마셨어."
"조금만 먹지. 회사 사람들이랑 먹었다고 했나."
"응. 자긴 지금 서울이겠네."
"아.. 이번 주에 갑자기 일이 생겼어. 주말근무하란다."
"아.. 그럼 이번 주는 서울 못 오는거야."
"아니 오늘만 근무하고 내일은 갈 수 있을 거 같아. 내일 보자."
"그래 그럼."

남자 2호는 서울에서 2시간정도 떨어진 곳에 직장이 있다. 예전에는 평일에도 종종 일 끝나고 왔다가 새벽에 다시 회사로 돌아가곤 할만큼 자상한 남자다. 물론 요즘은 그만큼은 아니지만. 주말에는 이틀내내 보곤 하지만 어제 술을 많이 마셔서인지 오늘 만나지 못하겠다는 그의 말이 썩 기분 나쁘지는 않다. 오히려 작은 휴가를 얻은 기분이다. 그녀는 다시 잠이 들려다가 어제 그 놈이 생각났다.

[잘 들어갔냐]
메세지를 하나 보냈다. 답장은 없다. 자나 보네. 그녀도 다시 눈을 감는다. 그 때 메세지 알림이 울린다.
[버리리까 좋냐]
[미안하다니까. 정말 너무 피곤했어 미안해ㅠㅠ]
이모티콘 잘 안쓰는데, 미안해서 써준다.
[담에 술 한 번 사라]
[ㅇㅋㅇㅋㅇㅋ]

이런 사이. 나쁘지 않다. 다시 잠을 자려고 하다가 오랜만에 남자 1호한테 먼저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막상 하려니까 하기 싫다. 그러고보면 요즘엔 남자 1호한테 연락도 잘 오지 않는다. 어제 그 놈 말처럼 지금 우리가 사귀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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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걔가 생각난다.
'그냥 잘 걸 그랬나.'
연애를 못한지 너무 오래 돼서 그런건지, 아님 어제 상황이 너무 꼴린건지 모르겠는데 계속 머릿속에서 맴돈다. 어차피 휴일이어서 침대에 계속 누운채 이불을 돌돌 말아 사람처럼 만들고 끼안고 있다. 뭐 굳이 걔라고 생각하는건 아니지만 여자라고는 생각하면서.

섹스를 못한지 오래돼서 성욕이 끓기도 하지만, 그보다
연애를 못한지 오래돼서 마음이 끓는게 더 심한 거 같다. 어제 택시 안에서 그녀의 머리를 쓰담을 때 성욕보다 쾌감이 큰 포근함을 느꼈다. 

"둘 다 헤어질까해."

그녀가 어젯밤 했던 말이 메아리처럼 맴돈다. 굳이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뭐지. 잠깐 그녀와 연애를 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러다가 피씩 웃는다. 돈도 없고 능력도 없는데 연애는 무슨 연애. 그리고 걘 못생겼다. 그나마 어제는 화장이 좀 먹었는지 괜찮긴 했지만. 그러고보니까 어제 심심하다고 자기 동네에서 만나자고해서 그냥 편하게 입고 갔었는데 완전 풀로 꾸미고 나왔었다. 그래서 조금 당황.

돌돌만 이불을 그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하복부를 이불에 비비기 시작했다. 어젯밤으로 돌아가서 술집에서 나와 모텔로 향하는 상상을 한다. 시바, 어차피 상상하는 거 조금 더 심하게 모텔로 향하는 길에 그녀의 남자친구와 마주친다. 남자 1호가 좋겠다. 남자 1호는 그녀에게 다가와 나를 가르키며 누구냐고 따진다. 손만 잡고 있던 우리는 일부러 팔짱을 낀다. 그리고 그녀는 말한다.

"그냥 친군데? 왜."
나는 실실 쪼개면서 남자 1호를 바라본다. 남자 1호는 부들부들. 
"모텔갈거야."
어리벙벙하고 있는 남자 1호에게 그녀는 말한다. 더 쾌락적이게 아예 남자 1호를 델꼬 들어가 그의 눈 앞에서 섹스를 하고 싶다.

'하아..'
역시 연애를 하고 싶지 않다. 남자 1호가 되느리 차라리 지금처럼 남자 3호가 되는 것이 낫겠다. 사실 어젯밤 그녀의 남자들 이야기를 들으며 바람은 아니었지만 약간의 바람 비슷한 느낌을 받기는 했다. 남자 1호는 알고 있을까? 그녀가 이러고 있는걸. 그러고보면 나도 예전에 남자 1호의 처지와 비슷했다. 어쩌면 겨우겨우 연애를 시작한 남자들은 모두 남자 1호와 비슷한 처지일지도 모른다. 그건 남자 1호가 일단 못난거고, 그러니까 여자는 잘못이 없고, 남자 3호도 나쁜건 아니고. 그냥 남자 1호가 못난거다. 시발.

굳이 연애를 하고 싶지 않은 것은 남자 1호가 되기 싫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