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많이 취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었다. 허리에 팔을 감은 채. 그녀도 몸을 나한테 맡겼다. 약간 쌀쌀한 초겨울의 바람이 불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그녀의 체온이 더 따스히 느껴졌다.


"그거 아니?"
"뭐."
"남자 2호는 한 번도 날 집에 데려다준 적이 없어."
"왜?"
"길치거든. 나 데려다주고 다시 버스정류장을 못 찾아가. 그래서 내가 오지말라구 해."
"그게 말이 되?" ㅋㅋㅋㅋ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덧 그녀의 집 앞이었다. 저번에 이어 두 번째였다. 조금은 더 과감하게 그녀 앞에 섰다. 안고 싶었는데 눈치를 챘는지 쏙 집에 들어가버렸다. 어이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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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들어가자 전화가 왔다.


남자 1호였다. 만나지 않은 지도 오래되었지만 전화도 실로 오랜만이었다.

"어.. 오랜만이네."
평상시와는 달리 낯설기도하고 솔직히 거북했다. 방금 그 녀석이랑 있어서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니네 집 앞이다."
"응?"
소름이 돋았다.
"니네 집 앞이라고."
"이 시간에?"
시계바늘은 새벽 두 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왜 찔려?"
"뭐가.. 아.. 지금 뭐하는건데? 나 나가?"
"아니. 그냥 전화로 할게."
"뭘.."
"알고 있었다. 나 말고 다른 남자친구."
"..."
"그런데 오늘은 걔도 아니고 또 다른 남자더라. 뭐 상관은 없어."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남자 1호는 전혀 화나지 않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짜증이 났다.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쳤다.

"헤어지자."
"뭐."
"헤어지자고. 그동안 행복했다."
"지금 뭐하는건데? 아 차라리 화를 내. 뭐하는거야."
"요즘 너 안 만나면서 뭐했는줄 알아?"
"뭐했는데."
"됐다."
"아.. 그래 헤어져. 어차피 우리 지금 이게 사귀는거니? 그래 나 양다리 걸쳤어. 왜 그동안 그걸 쳐다보면서 뭐 시발 어쩔려고 그랬는데."
"화 낼 사람은 나아니냐?"
"그래 그러니까 화를 내라고. 존나 소름돋는다. 그동안 뭐 다 지켜본거냐?"
"응."
"하아.."
"그 새끼. 그래 나보다 다 난거같더라. 키도 나이도. 주말마다 니가 그 새끼 만날 때 항상 나도 그 근처에 있었다."
"아.."
"그래 나.. 아니다. 고마워. 하긴 나같은 놈이 어디서 여잘 만나겠어. 오랜 시간 덕분에 행복했다."
"아 시발. 진짜 무섭다 니. 왜 아아아, 아아악."

소름이 끼치게 무섭고 다 부셔버리고 싶었다.



"그래 그래 시발 그래. 나도 팍 죽어버리고 싶다. 너 만나기 전에도 이제 너랑 헤어지고난 뒤 어차피 여자는 없겠지. 널 사랑해서? 아니 나같은 병신을 누가 만나주겠냐. 고맙다 나같은 병신하고 사귀어줘서. 그리고 미안하다. 변하지 못해서."

우리 집 앞에서 그렇게 전화로 우리는 헤어졌다. 전화를 끊으니 메세지가 하나 왔다.

[너랑 연락하지 않은 요즘 가장 너에게 가까이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지. 가까이 있어도 가까이 있는 게 아니라는걸.]

'아.. 뭔 개소리야.. 아..'



남자 1호를 사랑하긴 했었다. 남자 1호는 변변치 않지만 작은 직장이지만 나름 위치도 있었고, 못생겼지만 그래도, 착했고, 나를 좋아해주었고.. 어쩌면 나한테는 괜찮은 남자였다. 그래.. 난 못생겨서 어려서부터 힘들었다. 못생긴 여자는 어려서부터 못생김이 얼마나 여자에게 괴로운건지 체감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고졸인 내가 쥐꼬리같은 월급 받아가면서 이 거지같은 삶을 지내는데 갑자기 나타난 그는 그동안 만났던 시시껄껄한 남자들과는 달리 안정감을 주었다. 그래서 그를 사랑했을지 모른다.


남자 1호의 부모님을 뵌 것도, 남자 1호를 우리 부모님께 소개해준 것도 사실 어느정도는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상 남자 1호에게 결혼하자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본능적으로 싫다는걸 알 수 있었다. 게다가 그 때가 남자 2호를 막 만나기 시작할 때였다. 남자 1호보다 더나은 남자 2호와 연애를 하면서 굳이 남자 1호.. 아.. 나도 이런 내가 싫다. 남자 2호는 1호보다 더나은 남자였다. 그 역시 재미는 없었지만..



남자 1호와 헤어지고 나서 2주동안 아무하고도 연락하지 않았다. 남자 2호의 모든 연락도 다 씹었다. 물론 그 놈 것도. 아예 핸드폰을 거의 꺼두었다. 우리 집을 모르는 남자 2호는 어찌 방법이 없었는지 애타게 폰으로만 연락하고 있었다. 난 슬펐다. 뭐가 슬픈 지는 모르겠는데 슬펐다. 2주가 지난 초저녁, 회사에서 퇴근해 침대에 누워 멍하니 있는데 집밖에서 누군가 소리치는 고함소리가 들렸다.

"윤서야, 윤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