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년, 대한민국의 '특별 복지 제도'
2050년 대한민국은 전례 없는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했다. 거리에는 흰 머리의 노인들이 젊은이들보다 더 많았고, 지하철에는 '경로석'이 '일반석'보다 많아지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생산 가능 인구의 급감과 노년층 부양 부담은 국가 재정을 파탄 직전으로 몰아넣었고, 결국 정부는 고심 끝에 전 세계를 경악시킬 **생애 마감 지원 제도**를 발표했다. '존엄한 안락사'라는 미명 아래, 75세 이상 노인 중 희망자에 한해 국가가 모든 절차와 비용을 지원하고 가족에게는 파격적인 보조금을 지급하는, 사실상의 자살 장려 정책이었다.

1]
김민준 씨는 여느 때처럼 퇴근 후 소파에 몸을 던졌다. 텔레비전에서는 '생애 마감 지원 제도'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 가족들의 성공 사례가 연일 보도되고 있었다. "옆집 박 여사네는 지원금 받아서 애들 유학 보냈다던데, 우리 엄마는 왜 아무 말씀도 없으실까?" 민준 씨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내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여보, 그게 할 소리예요? 어머님이 들으시면 얼마나 서운하시겠어요!"

민준 씨의 부모님은 두 분 모두 80대 중반이셨지만, 놀랍도록 건강하셨다. 매주 등산을 다니시고, 텃밭을 가꾸며 활기찬 노년을 보내고 계셨다. 하지만 그들의 건강함은 민준 씨에게 오히려 부담으로 다가왔다. 치솟는 병원비, 부모님 용돈, 그리고 언제간 일어날지 모르는 간병 부담. 민준 씨는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마다 계산기를 두드렸다. '만약 부모님이 제도를 신청하시면…'. 그는 자신의 불효한 생각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알 수 없는 해방감을 상상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심각한 표정으로 민준 씨를 불렀다. "민준아, 엄마랑 아빠가 말이야… 그 제도를 한번 알아볼까 해." 민준 씨의 심장이 쿵 떨어졌다. 그는 얼른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엄마, 무슨 말씀이세요! 저희 괜찮아요, 저희가 모실게요!"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어머니는 민준 씨의 눈빛을 읽었는지, 슬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야, 민준아. 너희 힘들게 살 필요 없어. 우리도 이제 편히 쉬고 싶단다."

그날 밤, 민준 씨는 잠 못 이루고 뒤척였다. 부모님의 결정을 진심으로 말리고 싶었지만, 마음 한켠에는 묘한 안도감이 피어올랐다. 그는 자신이 괴물처럼 느껴졌다. 과연 부모님의 선택이 진정한 '존엄'일까, 아니면 자신과 같은 자식들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비극일까. 민준 씨는 복잡한 감정 속에서 한숨만 내쉬었다.


2]
박수진 씨는 아침 일찍 거실에서 발견한 어머니의 유언장과 '생애 마감 지원 제도' 신청서를 보고 손발이 떨렸다. 어머니는 78세셨고, 최근 들어 기력이 눈에 띄게 쇠약해지셨지만, 여전히 수진 씨에게는 세상 전부였다. "엄마, 이게 다 뭐예요! 엄마!" 수진 씨는 흐느끼며 어머니의 방문을 두드렸다.

어머니는 침대에 앉아 창밖을 응시하고 계셨다. 창밖으로는 맑은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수진아, 엄마는 이제 너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구나. 매일 아침 병원갈 준비하는 너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엄마는 마음이 찢어졌어." 어머니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수진 씨의 가슴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했다.

수진 씨는 무릎을 꿇고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엄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엄마는 저에게 짐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분이에요! 제가 엄마 없이 어떻게 살아요? 제가 더 잘할게요, 네? 제발…" 수진 씨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애원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표정은 흔들림 없었다. "수진아, 이것은 엄마의 마지막 존엄을 지키는 길이란다. 너에게 짐이 되기 전에, 내 모습 그대로 너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어." 어머니의 말에 수진 씨는 목이 메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결심이 굳건함을 알았다.

수진 씨는 어머니를 끌어안고 한없이 울었다. 어린 시절, 자신을 등에 업고 노래를 불러주던 어머니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머니는 늘 강하고 따뜻한 존재였다. 그런데 이제 그 강하고 따뜻한 존재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한다니, 수진 씨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3]
정수철 씨는 한숨을 쉬며 병실 문을 열었다. 침대에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어머니가 힘없이 누워계셨다. 88세의 어머니는 치매와 여러 합병증으로 몇 년째 병원 신세를 지고 계셨다. 병원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이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어머니, 저희 왔어요." 수철 씨의 아내가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지만, 어머니는 그저 흐릿한 눈으로 천장만 바라볼 뿐이었다. 수철 씨는 주머니에서 '생애 마감 지원 제도' 신청서를 꺼냈다. 지난밤 아내와 밤새도록 싸운 결과였다. 아내는 어머니의 연명치료 중단을 간곡히 설득했고, 지원금으로 아이들 학자금을 마련하자고 주장했다. 수철 씨는 차마 어머니를 자신의 손으로 보내는 것이 괴로웠지만, 현실적인 압박은 그를 옥죄어왔다.

"어머니, 이제… 그만 편해지시는 게 어때요?" 수철 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뗐다. 어머니는 미동도 없었다. 아내가 재빨리 도장을 쥐여주며 말했다. "어머님, 여기에 도장만 찍으시면 돼요. 이제 더 이상 고통받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어머니의 손은 힘없이 늘어져 있었고, 결국 수철 씨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간신히 도장을 찍었다. 신청서에 찍힌 붉은 인주는 마치 선명한 핏자국처럼 수철 씨의 눈에 박혔다. 병실을 나서는 수철 씨의 등은 축 늘어져 있었다. 그는 과연 어머니에게 '편안함'을 준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탐욕을 채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죄책감의 낙인이 찍혔다.


4]
김영수 씨는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병원으로 달려왔다. 아버지는 92세로, 몇 달 전부터 노환으로 병원에 입원해 계셨고, 어제저녁 잠을 주무시다가 편안히 자연사하셨다는 설명을 간병하던 동생을 통해 들었다. 영수 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아버지가 힘든 길을 선택하지는 않으셨구나.

하지만 다음 날, 장례식장에서 만난 여동생 영희의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오빠, 아버지 그거 신청하셨대!" 영수 씨는 영희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생애 마감 지원 제도'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다.

영희는 영수 씨를 한쪽으로 끌고 가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솔직히 말하면,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브로커 통해서 서류 다 조작했어. 병원 의사도, 담당 공무원도 다 연결되어 있더라고. 자연사로 처리될 거, 안락사 약물 투여로 인한 사망으로 서류를 통으로 바꿔주더라. 어차피 돌아가셨고, 지원금 받아서 급한 빚 좀 갚으려고… 오빠도 알잖아, 우리 형편. 산 사람은 살아야지…빚 갚고 브로커 주고 남는건 다 오빠네로 보낼게." 영희의 얼굴에는 죄책감 대신 오히려 당당함이 엿보였다.

영수 씨는 충격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아버지는 평생 정직하게 사신 분이었다. 그런데 죽어서까지 자식들의 욕심 때문에 그런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기게 되다니. 아버지의 죽음은 가족의 탐욕으로 얼룩져 버렸다. 영수 씨는 허탈감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지원금을 조금이나마 나눠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알 수 없는 안도감이 스며들었고, 그런 자신에게 역겨움을 느꼈다.


5]
박준형 씨는 눈물을 흘리며 영정 사진 속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봤다. 아버지는 77세였다. 지난주, 횡단보도를 건너다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사고로 돌아가셨다. 비통함과 함께 밀려오는 허무함에 준형 씨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때, 장례식장 문을 열고 들어온 작은아버지와 고모들의 얼굴에는 슬픔보다는 분노와 원망이 가득했다. "형님은 대체 왜 그렇게 고집이 세셨어!" 작은아버지가 영정 사진을 향해 소리쳤다. "우리가 그렇게 말씀드렸잖아! 몸도 성치않은데 괜히 고생하지 마시고 나라 지원 받으셔서 편안하게 가시라고!"

고모도 거들었다. "맞아! 그 돈 받았으면 우리 집도 숨통 좀 트였을 텐데! 이렇게 사고로 허무하게 가실 줄 알았으면 진작에 그냥…"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준형 씨는 이성을 잃을 것 같았다. 아버지의 비극적인 죽음 앞에서 가족들이 하는 말이라곤 돈 이야기뿐이었다. 그는 울분을 토하듯 소리쳤다. "지금 그게 할 소리예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지금 돈 타령을 해요?"

하지만 작은아버지와 고모들의 눈빛은 차가웠다. "야, 박준형! 너는 그렇게 속 편한 소리 할 수 있냐? 우리까지 너희 아버지 병원비 대느라 허리 휘는 건 생각 안 해?"

준형 씨는 차마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은 슬픔 대신 추악한 인간의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영정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아버지는 과연 어떤 마음으로 이 세상을 떠나셨을까. 이 비극적인 사회에서 진정한 존엄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