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정리 111-1, 조용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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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구정면 구정리 111-1.

강릉 시내와도, 유명한 관광지들과도 멀리 떨어진 외딴 곳이다.

지도에는 분명 찍히지만,

아무도 찾지 않는,

너무 조용하고,

너무 멀고,

너무 아무것도 없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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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중심부에서 그곳에 도착하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린다.

도착하기 바로 직전, 작은 다리를 하나 건너야 하고

그 너머엔 겨우 1차선짜리 좁은 도로가 기다린다.

차가 반대편에서 오기라도 하면

양 방향의 두 차 중 한 차는 뒤로 쭉 빠졌다가 다시 가야 한다.

입구부터 조금은 불편하고,

조금은 어색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물러섬’이

이곳의 방식처럼 느껴졌다.

짧은 일차선 도로를 건너면

구정리 111-1의 입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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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언덕을 하나 올라서니

건물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그곳에는 시간이 멈춘 듯한 건물들이 흩어져 있다.

한때는 커다란 공장이었을 법한 철골 구조물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고,

그 위편엔 작고 오래된 나무집이 하나 있다.

뒤쪽으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머물렀다는 콘크리트 숙소가 있고,

그 옆에는 예전엔 냉동창고로 쓰였다는 콘크리트 건물이 놓여 있다.

가장 입구 쪽에는

그나마 정리된 채로 남아 있는 복층의 나무 건물이 하나 있었다.

바로 그곳이 지금 내가 머무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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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장소를 우연히 얻게 되었다.

돈을 주고 산 것도 아니고,

누군가 내게 선물한 것도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관리하는 조건으로 잠시 맡게 된 장소.”

사람들은 이걸 ‘공짜’라고 불렀지만

나는 그 단어가 오히려 무겁게 느껴졌다.

공짜로 얻은 공간엔

항상 어떤 종류의 책임이 따라온다.

특히 이곳처럼

오래된 기억이 쌓인 채 버려진 공간일수록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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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주인이신 노부부는

“팔리지도 않는 곳”이라며 웃었다.

부동산에 내놓은 지 오래지만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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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알고 있다.

이곳이 팔리는 날이 오면

나는 조용히 짐을 싸서 떠나야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것이 내게 상실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나는 이 공간에 집착하지 않는다.

대신 ‘조금은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게 어느 정도일진 모르지만

나에게는 분명 필요한 시간이었고,

이 공간은 그 시간을 품어줄 수 있는

시한부처럼 조용한 장소였다.

그래서 나는 이곳을

그 주소 그대로,

“구정리 111-1”이라 부르기로 했다.

이름을 새로 짓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부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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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그저 멍하니 그 공간을 바라보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그저 이 낡고 멈춘 장소 안에서

내 삶도 함께 멈춰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

한 가지 생각이 스치듯 떠올랐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조용한 글쓰기 공방을 만들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계속 글을 쓰고 있었던 그 시간들이

나에게 실마리를 건넸다.

‘나 혼자 쓰고 있는 글,

그 옆에 다른 사람도 앉아 쓰면 어떨까?’

그 단순한 상상에서

이 공간은 조금씩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구정리 111-1의 글쓰기 공방은

말없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