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정말로 다시 왔다.
처음 왔던 날로부터 사흘 뒤였다.
특별한 연락도 없었고,
예약 같은 건 애초에 받지도 않았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익숙한 회색 후드티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별다른 표정도 지어보이지 않고
그저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그도 아무 말 없이 손을 들며 가볍게 인사를 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익숙한 공기 속으로 조심스럽게 스며들었다.
“자리, 똑같이 써도 되죠?”
“네. 상관없어요.”
그는 다시 그 안쪽 테이블에 앉았고,
노트북을 꺼냈다.
책상 위엔 물 한 병과 검은색 이어폰,
그리고 작은 메모장 하나가 놓였다.
나는 그가 노트북을 켜는 동안
책장을 정리하는 척하면서
그를 흘깃 바라보았다.
뭔가를 쓴다는 건
언제나 조금은 외로운 일이다.
그 고독 속으로 들어가려면
익숙한 무관심이 필요하고,
같이 있어주는 듯 아닌 듯한 거리도 필요하다.
그는 그걸 아는 사람 같았다.
“이상하네요. 여기 오면,
괜히 말을 조심하게 돼요.”
그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나는 잠시 멈칫했다.
“왜요?”
그는 눈을 떼지 않은 채
자판을 몇 번 두드리고,
이어서 말했다.
“말소리보다 조용한 것들이
여기선 더 잘 들리는 것 같아서요.”
그 말이 꽤 오래 마음에 남았다.
말소리보다 조용한 것들 ―
바람, 시선, 한숨, 멈칫하는 손끝.
어쩌면 우리가 정말 마주하고 있는 건
그런 것들일지도 모른다.
“여기, 간판 없죠?”
“네. 없어요.”
“처음 올 땐 반신반의했거든요.
블로그 보고 위치 찾아왔는데,
진짜 여기 맞나 싶어서 좀 망설였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이상하게… 다시 오고 싶더라고요.”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풀잎은 여전히 같은 방향으로 흔들리고 있었고,
햇빛은 오후의 끝자락에 걸려
바닥에 길게 드리워지고 있었다.
“요즘 좀 지쳤었거든요.
지나온 일도 있고,
앞으로의 일도 잘 모르겠고.”
그는 무심하게 흘리듯 말했지만
나는 그 말에서
낯익은 피로감을 느꼈다.
이 공방을 열기 전,
내가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순간이 떠올랐다.
“여기, 오래 하실 건가요?”
“모르겠어요.
당장 내일 문 닫아도 이상하지 않을 공간이라.”
그는 웃었고,
나도 웃었다.
조금은 서툰 대화였지만
그 서툶이 나쁘진 않았다.
“그럼 닫기 전에 자주 올게요.”
“네. 자주 오세요.”
그렇게 우리는
더 이상의 말 없이 각자의 자리에 앉아
각자의 조용한 시간을 이어갔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공간이 살아 있다는 건
크게 떠드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누군가가 앉아 있는 일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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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다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