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빼놓을 수 없는게 있다면 어떤 것을 말할 수 있을까? 음식, 잠, 집? 그리고 관계라고 나는 생각했다

지금부터 나열할 이야기는 특별함이 없는 지극히 단순한 이야기이다

나는 지금 한 여름에 극지방의 추운 얼음 덩어리 위에 놓여있다

한 조각의 치즈만 질겅질겅 씹어대면서 내게 주어진 휴대전화의 옛 카톡창만 넘겨보고 있는 것이 요즘의 내 일이다

이제 다시 그 이야기를 돌아볼 시간이다

대학교 때에는 에브리타임으로 알게 된 한 여자아이랑 연락한 적이 있었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말이 잘 통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고양이나 강아지 같다고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쉽게 토끼같은 사람이었다. 물론 토끼이빨 같은 진부한 이야기로 비유하는 짓은 하지 않는다

그때 난 처음으로 여자와 대화가 끊기지 않는 카카오톡 채팅창을 바라봤는지 모른다. 물론 거짓이지만 그렇게 해야 이야기가 좀 특별해지니까

어느 날 저녁에는 아무 이유 없이 만나서 산책을 하고 각자 자기 동생이나 학과 이야기를 한다던가, 어느날에는 학교 과제 때문에 가는 pc 방을 혼자 무섭다고 같이 가달라한다던가

룸메한테는 말 안하고 몰래 나가서 그 아이와 함께 어린 20살을 보내곤 했다. 누가 보면 사귀는 사이가 아니냐는 말을 했겠지만 우리 둘 주변에는 함께 아는 사람이 전무했기에 그런 적은 없었지만 말이다.

어느 날은 또 같이 피시방에 갔다가 돌아오는 날이다. 얘가 진짜 피시방을 혼자가는게 무서운지 나를 불러내고 싶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게 무척이나 좋았었다. 그 날이 다른 점은 어린 생각이 더욱이 심했다는거였다

남들 다 하는 킥보드 둘이서 타기. 지금이라면 몸서리칠만큼 무서운 일이지만, 사귀지도 않는 남녀 둘이 킥보드를 같이 탄다는건 연인이 아닌 둘 사이에 할 수 있는 제일 스릴있는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그러다가 턱에 넘어질뻔했지만 말이다.

그런 추억을 하나 둘 곱씹다보면 왜 우리가 사귀지 못했는지에 대해서 물음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매일 연락했고, 붙어있는 기숙사에 살았다. 때로 밥도 같이 먹고 학교 이야기도 하였다.

여름방학때는 내가 정신이 나갔는지 4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버스를 타고 가서 너와 광역시에서 하루 종일
데이트를 즐기곤 하였다. 아직도 내가 그때를 잊지 못하는 건 지워지질 않는 기억 때문일 것이다.

그 날 밤 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 기차에 잠든 너를 보면 얼마나 만족했는지 모른다. 오늘 하루가 피곤한만큼 너도 즐거웠을거란 생각에

그런데 여기서 누군가 질문을 던진다면, 당신은 왜 그 시절에 사귀지 못했는지 묻는다면

나는 그거에 명확히 대답할 도리가 없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설경이 퍼지는 사려한 여름의 극지방 얼음 덩어리 위에서 주머니에 있는 한 조각 치즈를 베어무는 인간이다

정맥에 그려진 고백은 눈에 띄지 않으니 살갖을 파보기 전에는 성공할 도리가 없다

그저 빙하 위에 조그만하게 그림을 그려본다

돌아오는 발자국엔 애저녁에 눈이 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