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비누 머저리 [0] |
2025-10-21 11: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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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꽂힌풍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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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 향이 느껴진건가
그런데 비누향일 수도 있지 않을까
요즘 비누가 잘나온다더라
샴푸, 바디워시, 핸드워시, 폼클렌징과 같은
석박사들의 손 때 묻은 산업의 총아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왠만한 퀄리티로는 상품성 조차 없겠지
그럼에도 비누는 자신만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저 명절 선물세트의 알박기용 비누들 처럼
그렇지만 나는 사실 최근 몇 년 동안 비누를 사거나, 써본적이 없다
진짜 잘나오고 있는 건지는 사본 사람들에게 물어보도록
그러다보면 또 생각나는게 '말표 빨래 비누'라는 놈이시다
아마 이 친구는 빨래를 삶는 걸 좋아하는 전업 주부들에게는
빛이요 소금과 같은 존재일 것이다
나도 한때나마 이 비누 냄새 = 삶은 빨래 냄새라는 공식이 적용될 정도로
자주 사용하고 애용했고, 좋아했다.
익숙함 때문일까, 거슬리지 않는 무언가 몽글몽글함을 향으로 표현한 듯한
그 포근함 느낌에 빠져버려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네게서 났던 말표 빨래 비누향에 나는 그렇게 빠져들었나보다
좋아했다
개 같은 년아
그렇게 좋아했는데, 왜 너는 잘생겼다는 그 이유로
여자 친구도 있는 과 선배 품에 안겨 앙앙 대었어야만 했니
아침 1교시 수업들으러가는데,
그 형 집에서 같이 나오던 너와 마주친 그 순간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너는 기숙사 생이었잖아
형
형은 여자친구가 있었잖아요
씨발 그것도 존나 이쁜 여자친구였잖아요
잘생겼으면 그렇게 다 골라 쳐먹어도 되는거에요?
나는 비굴하고 찌질했으므로 내뱉지 못한 이야기들
난생 처음 느껴보는 윗사람의 구걸 섞인 애원은
나에게 우월감을 느껴지게 했지만,
그저 병신처럼 걱정스레 형만 쳐다보는 네 눈빛은 나를 더 비참하게 했었다
네 걱정을 했었어야지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닌데
그렇게 소리 소문없이 너는 사라졌다
사실 내가 병신인 거 였던 게 확실히 맞았던건지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온 단과대에
그 아이 이야기가 가십처럼 떠돌았었다
2주일만에 사라질 떡밥이었는데,
2주일만 버텨보지 그랬니
나는 가끔 콩나물 국밥을 먹는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돼지 국밥보다 아래에 존재하는 가성비 음식이다
그럼에도 헛헛한 속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빈속도 든든하게 채워주는 확실한 친구
그 콩나물 국밥은 시키면 항상 날계란을 하나 같이 준다
생으로 까먹는 비위강한 사람들도 있고,
나처럼 평범하게 국밥에 풀어서 먹는 사람도 있다
한번 해봤는데, 날 것 그대로는 못먹겠더라
나는 그렇게 비위가 강한 사람이 아닌가보다
그런데도 그렇게 충격적인 사건을 겪고서도
비누 냄새 하나에, 노랫말 소리하나에
네 얼굴을 다시금 떠올리고 마는
나는 참 확실한 머저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