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맴돌았던 후문 골목 [0] |
2025-11-20 09:5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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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꽂힌풍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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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애인이 있습니까?"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고,
"아니요..."
무슨 마음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아니요."
그리고 교수는 그 위치에 선 사람이 할 수 있는 권한을 마음껏 활용했다.
주책 부리기
"그냥 물어봤습니다. 두 사람이 잘 어울려보여서"
.
.
.
신기한 강의였다.
학점을 채우기 위해 편한, 좋은, 괜찮은 강의만 찾아다니던 나에게
글쓰기라는 즐거움을 알려준 강의
원래 혼자 낙서마냥 끄적이는 글쓰기를 좋아하긴 했지만,
배우는 것과 쓰고 싶을 때 끄적거리는 글은 다르지 않을까 염려했던 나에게는 좋은 뒤통수였달까
A와 출석번호가 붙어있였던 것도, 같은 성을 쓰는 사람이 오직 2명 뿐이었던 것도
매우 설레는 뒤통수였다.
자리도 바로 옆자리였던건 조금 오버스러운 신의 배려였지 않았을까
A는 나에게 너무 설레어서 두려운 이방인이었다
출석을 불러서 알고 있는 이름도 다시 의례상 물어볼 정도로 나에게는 어려운 이방인
왜 그랬을까, 고양이를 떠올리게 했던 그녀 덕분에 내가 지금도 고양이를 좋아하는 걸까
젊고 혈기 왕성한 나이에 그저 여자라면 좋다고 정신을 못차려서 그랬던 걸까
그렇게 오고가며 인사만 가까스로 하던 와중에
대망의 과제 떄문에 엮이게 되었다.
글을 쓰는 수업이니 글을 쓰는건 당연했겠지만,
하필 과제가 서로의 글을 비평하기인지는 예상못했지...
처음으로 글에 정성을 담아 써보았다
퇴고라는게 이렇게 어렵고 고민이 많아지는 일이라는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냥 배설하듯이 끄적였던 낙서와는 무게감이 달라서였을까
아니면 A에게 어떻게든 잘보이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본심은 후자였겠지만, 당시에는 전자라고 굴뚝같이 믿고 있었더랬지
생각보다 내 글은 모두에게 호평을 받았고, 나로서도 뿌듯했다
그렇게 자신감이 차올랐고, 전혀 상관관계 없는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지금은 플러팅이라 부르는 그 무언가를 열심히 A에게 시도했던 것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냥 뻘짓에 불과했지만,
그리고 교수님은 그 뻘짓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러니 과제와 동일했던 기말 과제 발표 시간에, A와 나의 글 논평 이후에
모두가 보는 앞에서 저런 주책을 역대급으로 감사하게 털어주시지 않았을까?
다른 학생들에게서도 오오오 라는 함성이 자연스럽게 나왔던걸 보면
다른 사람들도 다 알고 있었던 거 같긴하다
그리고 나는 그 분위기라는 버프에 힘입어 인생 처음으로 데이트 신청이라는걸 해보았다.
그런데 왜 분식을 먹으러가자고 했을까
어디 괜찮은 파스타집으로 가지 그랬니
그리고 약속시간, 보다 30분이나 일찍 기어나온 설레임 탓에
나는 그 겨울에 한참이나, 후문 뒷골목을 운동하듯 전전해야했다
그리고 그녀가 10분 늦게 나왔을때,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고 이야기했을때
그녀는 이미 눈치챘었던 거 같다.
얼굴이 여간 빨간게 아니었거든
"혹시 일찍 나와서 몇바퀴 돌고 있었어요?"
라고 내 명치를 후두려 깐걸 보면,
그날 식사가 어떻게 흘러난건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A는 남자친구가 있다고 조심스럽게 고백했다.
그 분위기에 있다고 이야기하기가 어려워서 없다고 이야기했노라 담담하게 고백했다.
사실 정확하게 뭐라고 이야기했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그냥 불어터진 떡볶이를 뒤적거리다가
병신처럼 A가 계산하는 것도 말리질 못하고, 어버버버안녕히가세요
그 때는 당황스러움, 자괴감, 배신감（?）에 범벅이 되어 제정신을 못차렸지만,
지금에와서 남는 후회는 이런 수준의 얄팍한 이야기다
강의 내내 이번 학기 내내
당신으로 인해서 나는 즐거웠다고
학교를 가는게 설레는 하루가 매주 생겨서 좋았다고
그 말이라도 전했어야 했는데, 라는 생각...
그리고
A가 남친이 있는지도 모르고 야심차게
그 당시에 준비했던 다른 이야기들...
전하지도 못할 그 이야기들을 중얼거리며,
후문 골목을 방황했던 그때의 내가
조금은 눈물 겹다 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