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어둠의 문（cafe.daum.net/blacknovel） & 리얼판타（www.realfanta.com）

작가 : Ro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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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천이 간 곳은 친구의 생일 파티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과 비슷한 취향으로 구성된 그룹에 속해 있었는데, 녀석들이 하는 짓이라고는 부모님이 안 계신 틈을 타 친구들과 함께 포르노를 보며 담배를 피워대는 것이었다. 마침 오늘은 순오의 부모님이 오페라를 보러갔기 때문에 모두들 준비물을 챙겨 순오의 집에 집합하게 되었다. 태식은 소주와 새우깡을, 동훈은 하드코어 포르노 시디를, 기천은 성인 만화책을, 그리고 순오는 저녁 10시까지 안전한 장소와 SONY DVD에 500만원짜리 HD TV를 준비했다.
48인치짜리 HD TV로 보는 하드코어 포르노는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277만 화소의 고해상도는 마치 실제로 눈앞에서 전라의 여인을 바라보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었고, 사방에서 퍼져 나오는 입체 서라운드는 미친 듯 울부짖는 여자의 신음소리를 생동감 있게 들려주었다.

포르노 광인 동훈이 침을 튀기며 말했다.

" 이거 정말 죽이는 데!! "

" 짜식, 놀라긴...... " 순오의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우쭐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부를 누린다는 것말고는 녀석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기생충과 전혀 다를 게 없는 삶이었다.

" 오늘 말야, 생물 시간에 들은 얘기 알지? " 엉뚱한 소리를 좋아하는 태식이 또 입을 열었다.

" 사람 몸 속에서 살 수 있는 생물에 대한 것 말야 "

도대체 어째서 그런 화제가 이 순간 튀어나오게 되었는지 태식을 제외한 나머지 3명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그것이 설령 태식이 포르노를 보다 문득 생각이 난 거라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태식만의 가치판단에 맡겨야 될 문제였다. 포르노의 대체 어떤 점이 '사람 몸 속에 살 수 있는 생물' 과 일말의 연관성이 있느냐 없느냐 따위는 일단 제쳐두고라도 말이다. （사실 선정성과 금기라는 점에선 같다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 그거야 많잖아. 회충, 십이지장충, 편충......... "

" 그런 기생충들말고......... 전혀 다른 것 말야. "

" 전혀 다른 것? "

모두들 결국엔 실망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태식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 아무래도 곤충이 제일 적당하겠지? 일단은 크기가 작아야 되니까 말야. "

" 이건 들은 얘기인데....... "

동훈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런 얘기에 빠질 동훈이 아니었다.

" 731부대에서 그런 실험을 했다는 거야. 인간의 몸 속에서 가장 오래 살수 있는 생물이 뭘까하고...... "

동훈은 말할 때 항상 '들은 얘기' 라는 말을 강조했다. 그것들은 모두 누군가에게서 들은 얘기였기 때문에 그 진실 여부를 확인하기란 거의 불가능했고, 어차피 자기도 들은 얘기이기 때문에 실컷 떠벌려 놓고도 전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설령 물고늘어지기 좋아하는 녀석이 "말해준 사람이 누구냐" 라고 따지고 들어와도 "그 사람도 다른 사람에게 들은 얘기였데." 라고 해버리면 그만이었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그 녀석의 말은 전혀 신빙성이 없는 순도 99%의 허풍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왠지 그럴싸하게 포장을 해서 말하는 녀석의 뛰어난 화술 때문에 언제나 고개를 끄덕이고 마는 친구들이었다.

" 놈들은 넣을 수 있는 곳이라면 아무데나 가리지 않았다는 거야. 위, 허파, 창자, 직장, 자궁....... 심지어 귀나 코 속 안에다 집어 놓고는 구멍을 막아 버렸데. 물론 실험대상이 된 사람들은 모두 살아 있는 상태였고. "

" 그럼 살아있는 상태에서 그런 것들을 집어넣었단 말야? 마취도 안하고? "

" 야....... 그 놈들이 무슨 서울대 외과의사인 줄 아냐? 일일이 편의 봐주면서 실험하게....... "

동훈이 한심하다는 듯 순오의 말에 빈정거리며 대꾸했다.

" 그런데 왜 그런 실험을 했을까? 실험을 한다면 무슨 목적이 있었을 것 아냐. "

" 목적? 큭큭...... 넌 마루타라는 영화도 안 봤냐? 한겨울에 동상 걸린 손에 뜨거운 물을 붓고, 진공상태가 된 압축 탱크 안에 사람을 집어넣고, 또 마취도 안하고 외과 수술을 하는 등..... 과연 그런 실험에도 목적이라는 게 있었을까? 물론 의학적인 기록은 될 수 있겠지. 하지만 말야. 사람이 사람을 괴롭히는 데는 이유란 없는 거야. 그래서 사람이 무섭다는 거지."

모두들 또다시 동훈의 뛰어난 언변에 휩쓸려 가는 분위기였다.

" 그럼 사람 몸 속에서 가장 오래 살아 있던 생물은 뭐였는데? "

" 그건 말야......... "

이제 녀석들은 포르노보다도 동훈의 말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 그건 바퀴벌레였다는 거야. "

" 쳇, 난 또........ " 순오가 빈정거리며 말했다.

" 뭐가 '난 또' 야?! 네가 아직 바퀴벌레의 생명력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은데....... 그 놈들은 가장 살기 어렵다는 위 속에서도 가장 오래 살아있었다는 거야. 그 강력한 위액을 맞고도 말이지."

" 그건 그래. 나도 전에 해외 토픽에서 그와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봤었어. 태국의 한 미식가가 무려 7년 동안이나 바퀴벌레를 날걸로 먹었는데, 어느 날 실수로 암컷을 먹어버린 거야. 그 사람은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다가 얼마 후 영문도 모른 채 죽어버리고 말았데. 그래서 사인을 조사하려고 그 사람 뱃속을 열어보니까 글쎄 바퀴벌레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는 거야. 운이 나빴는지 그 암컷 바퀴벌레의 알이 그만 뱃속에서 부화해 버리고 만 거지. 위액조차 알까진 녹여버리지 못했나 봐. 결국 그 사람은 부화한 바퀴벌레에게 내장을 뜯어 먹혀 죽게 된 거래." 태식이 열을 올리며 말했다.


" 음...... 그것 참 에일리언 같은 얘기 군. " 기천이 담배를 꺼내 물며 말했다.

" 하지만....... 한번쯤은 보고 싶기도 한데......."

기천의 머릿속에 한가지 떠오르는 일이 있었다. 오늘 아침 화장실에 나타난 바퀴벌레......
미란과 다정히 얘기하고 있는 준혁. 기천은 다음 번에 바퀴벌레를 만나면 반드시 잡아놓겠다고 다짐했다.




6




3교시가 끝나자 굶주린 무리들과 마려운 무리들이 빠져나간 교실은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남아있는 거라곤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는 교과서와 잠에 취한 여고생들 몇 명뿐. 혼자서 문제집을 풀고 있는 승지는 그 중에서 유독 빛을 발하는 존재였다.

" 탁! "

교실 뒷문을 요란하게 열고 들어온 험상궂게 생긴 3명의 여고생들이 매서운 눈초리로 교실 안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리곤 혼자 우뚝 솟아 있는 승지를 발견하더니 그쪽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성질 더럽게 생긴 여자아이가 승지가 보고 있는 문제집을 휙 집어 던져 버렸다.

" 무슨 짓이지? " 승지가 표독스럽게 노려보며 말했다.

" 야! 네가 그렇게 잘났다며? "

승지는 약간의 동요도 없이 상대방의 눈을 계속 응시했다.

" 네가 어디서 무슨 소릴 듣고 왔는지 모르겠지만, 난 너 같은 애하고 상대하고 싶지 않거든. "

" 뭐라고. 이게! "

화가 머리끝까지 난 여자아이는 승지의 머리채를 움켜쥐고는 당장이라도 뺨을 때릴 것처럼 손을 치켜들었다. 그러자 옆에서 보고있던 같은 무리의 아이가 친구를 말리기 시작했다.

" 미선아. 그만둬. 그러다 또 정학 먹으면 어쩌려고 그래. "

" 이년을 어떻게 그냥 놔둬! "

" 얘 빽 있잖아. 여기서 건드려 봤자 우리들만 피 본다고. "

" 에잇, 썅~~ "

미선은 승지의 머리채를 놓아주고는 발로 승지의 책상을 차 넘어뜨렸다.

" 야! 네가 아무리 발뺌을 해도, 그때 교무실에서 널 봤다는 애들이 수두룩해. "

" 그러셔? 그럼 한번 데리고 와봐. 걔 얼굴 좀 보게. "

" 후~~~ 네가 빽을 믿고 이렇게 설치나 본데, 너 그러다 좋은 꼴 못 본다는 것만 알아둬. "

" 흥! "

미선의 무리들은 자신들의 협박에 아무런 동조도 하지 않는 승지에게 화가 치밀었다.
오히려 승지의 표독스런 표정에 기선을 제압 당하는 꼴이었다.

" 네가 얼마나 편하게 학교 다니나 어디 두고보자. 이 학교를 다니는 이상 우리들을 피하기란 어려울 거야. "

3명의 아이들이 교실을 나가고 나서도 승지는 한동안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한바탕 소동으로 인해 잠에서 깬 아이들도 그런 승지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승지의 마음속에 시퍼런 독기가 번지고 있었다는 것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7





준혁이 발작을 일으킨 것은 4교시 영어수업이 시작 된지 30분 정도 지났을 때였다. 발작이라는 것은 정말 아무런 징조도 없이 순식간에 찾아오는 것이었다. 바닥에 쓰러진 준혁은 심하게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달려가 준혁을 만졌을 땐 이미 나무토막처럼 온몸이 딱딱하게 경직된 상태였다. 입에선 쉴새없이 거품을 흘러나왔다. 눈은 뒤집혀 진 채 흰자위만이 보일 뿐이었다. 선생님은 재빨리 손수건을 꺼내 준혁의 입에 물려주었다. 자칫하면 자신의 혀를 깨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모두들 준혁이 다치지 않게 책상을 치워주었다. 준혁의 경련은 10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준혁에게는 정말 오랜만에 찾아온 불행이었다.
반면 기천에게는 절호의 찬스였다.

준혁이 양호실로 옮겨지고 나서 수업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방금 전 소동으로 인해 수업시간이 많이 소모되었고, 얼마 안돼서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기천은 밥을 먹기 전에 잠깐 다녀올 곳이 있다며 친구들을 뒤로 한 채 교실을 빠져 나왔다. 그가 간 곳은 준혁이 자고 있는 양호실이었다. 기천은 멀리서 양호실을 훔쳐보고 있다가 양호선생님이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것을 보고는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안에는 준혁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준혁은 칸막이가 쳐져있는 4개의 침대 중 창문 쪽 맨 끝자리에서 자고 있었다. 일단 기천은 준혁의 의식부터 확인했다. 준혁이 자고 있다는 것을 확신 한 기천은 혹시나 지나가는 사람이 볼지도 몰라 커튼을 닫았다. 낡은 연두색 커튼을 뚫고 오후의 햇살이 양호실을 물들였다. 왠지 따뜻한 느낌의 색상이었다. 준혁은 조금 전 교실에서의 발작으로 인해 체력소모가 많았는지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곤히 잠들어 있었다. 기천은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서 필름케이스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뚜껑을 열어 안을 확인했다.
안에는 한 마리의 바퀴벌레가 들어있었다. 크기는 작았는데 특이하게도 날개에 흰색 반점이 있었다. 기천이 이 녀석을 발견한 것은 아버지의 서재에서였다. 아버지의 서재는 서재 겸 골동품을 진열해 두는 곳이기도 했다. 기천은 가끔 아버지 몰래 서재에 들어가서 신기한 골동품들을 구경하곤 했었다. 그 날도 새로 들어온 이태리 풍 수납장을 구경하는 중이었다. 기천에겐 골동품에 대한 안목이 없는 터라 그냥 낡은 수납장으로밖엔 보이지 않았다.

" 이런 걸 비싸게 사다니........ 차라리 그 돈으로 HD TV나 사지....... "

기천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오른쪽 밑에 있는 작은 서랍을 열어보았다. 그리고 뜻밖에도 거기서 새로운 종（種）과의 조우를 갖게 되었다. 녀석의 모양으로 봐선 바퀴벌레가 분명했지만 단 한번도 등에 흰색반점이 있는 것은 본적이 없었다. 아무래도 다른 나라 종（種）이던가 돌연변이 일지 모른다고 기천은 생각했다. 벌레는 더듬이조차도 움직이지 않은 채 얌전히 앉아 있었다. 기천이 손으로 벌레를 집었을 때 아쉽게도 이미 그것이 죽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 새로운 발견이었는데....... 상당히 아쉽군. 하지만 상관없겠지? 이걸로 장난을 치는 건 말야. "

기천은 죽은 벌레를 가지고 자기 방으로 가 필름 통에 그것을 집어넣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현재, 기천은 신기하게도 벌레가 아직까지 썩지 않고 그대로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 이 녀석 생각보다 대단한 놈일지도...... 그래도 죽었으니까 뭐....... "

기천은 필름 통에서 벌레를 꺼냈다. 그리고 옆으로 돌아누워 자고 있는 준혁의 뺨에 살며시 벌레를 올려놓았다. 이제 기천이 자고있는 준혁의 볼을 간질이기만 하면 돼는 것이었다. 분명 준혁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볼에 가져가게 되고 그때 벌레를 만지게 될 것이다. 잠에서 깨어 자신의 얼굴에 벌레가 올려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분명 준혁은 기절초풍하고 말 것이다.

" 어떤 얼굴일까? 궁금해 죽겠는데......큭큭 "

기천이 준혁의 볼에 손을 갔다대려 하자, 순간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고 말았다. 분명 죽은 줄로만 알았던 바퀴벌레가 웅크리고 있던 다리를 펴더니 잽싸게 준혁의 귀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기천은 한동안 자신의 눈앞에서 일어난 믿을 수 없는 기적에 넋이 나가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준혁이 눈을 번쩍 뜨더니 검지손가락으로 사정없이 귀를 후벼파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준혁은 정말 미친 듯이 귀를 후벼팠다. 저러다가 손가락이 귀속으로 들어가 버리지나 않을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당황한 기천은 어찌해야될지 몰라 멀뚱히 서있을 뿐이었다. 준혁의 귀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자 기천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버렸다. 준혁이 고개를 들자 기천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둘은 모두 겁에 질린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 어째서 네가.......... "

" 아냐..... 난 아무 짓도 안 했어. "

기천은 허겁지겁 문을 열고 양호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담임의 수업이 시작됐지만 준혁은 교실에 들어오지 않았다. 담임은 준혁이 귀에 이상이 생긴 것 같아 조퇴를 하게 되었다고 짧게 말했을 뿐이었다. 기천은 담임의 눈을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특별히 자신을 이상하게 보는 것 같지 않아 일단 안심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준혁의 귀에 들어간 그 이상한 바퀴벌레에 대해서만은 안심할 수가 없었다.
' 대체 어떻게 살아날 수 있었을까? ' 사실 죽었던 것이 다시 살아났다고 보긴 어려웠다. 하나님이 그런 쓸데없는 장난에 기적을 낭비하셨을 리도 없고. 오로지 지금 생각 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그 영특한 놈이 지금까지 죽은 척하며 자신을 속이고 있다가, 달아날 때가 되자 잽싸게 구멍（준혁의 귀） 속으로 달아나 버리게 된 것이다 라는 정도였다. 생물은 어떤 때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라고 했던 '동물의 세계' 마지막 맨트가 불현듯 떠올랐다. 정말 그렇다면 그것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었다. 녀석은 준혁의 귀속에 들어가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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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장난질이 시작되는 데까지.....

과연 이 사소한 동기에서 시작된 장난질이 어떤 파급효과를 불러일으킬지..

훗...기대되는군.....*-_-）y-~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