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에선 승지와 관련한 새로운 사건 하나가 추가로 등장했군요.

넓은 의미에서 이것도 하나의 '장난'일진대...

이것이 하지 말았어야 할 '금지된 장난'인지 아닌지는 앞으로 좀 더 지켜봐야 할 거 같군요.

기천도 친구 동훈으로부터 미심쩍은 기미를 간파당하기 시작했고..

'장난'이 '사건'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보는 것이

이 글을 읽는 재미를 가장 높이는 독서방법이랍니다.

이번 편에선 아버지가 사온 수납장과 관련한 썸띵이 알려지는군요.

어떤 전설이 얽혀있을까요?

그리고 수납장과 그 안에 보이던 바퀴벌레와의 관계는?'-'）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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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어둠의 문（cafe.daum.net/blacknovel） & 리얼판타（www.realfanta.com）

작가 : Ro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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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지의 새엄마가 학교로 불려온 건 바로 그 도시락사건이 있던 다음 날이었다.
새엄마는 착잡한 표정으로 담임과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다.

" 승지가 언제부터 그런 협박 편지를 받았나요? "

" 저도 몰랐습니다. 워낙에 저하고는 대화를 하지 않으려 해서....... 제가 좀더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

" 녀석이 머리는 좋은데 좀.......... 자존심이 너무 강한 것 같더군요. 단체생활이라는 게 혼자만 너무 튀면 피해를 보기 마련이죠. "

" 그 때문이었을까요? 그래서 친구들에게 무슨 원한이라도 샀던 걸까요? "

" 글쎄요. 요즘 애들이 워낙에 무서워서....... 예전하고는 많이 틀리니까요. "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런 심한 짓을. 어떻게 하죠. 선생님? "

" 일단 범인은 학교 내 인물이라는 것은 확실하니까요. 어떻게 해서든 잡아 내야죠. "

" 선생님. 전 이제 이 일로 승지가 더 이상 충격을 받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물론 어떤 다른 종류의 원한을 사는 것도 원치 않고요. "

" 예, 무슨 말씀이 신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학교의 기강을 위해서라도 교장선생님께서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길 바라고 계십니다. 최소 무기정학만큼은 피할 수가 없겠죠. "

" 알겠습니다........ 학교의 뜻이 정 그렇다면........ 다만 승지가 하루빨리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해나갈 수 있길 바랄 뿐입니다. 이제 고등학생이라 대입도 준비해야 되는데........ "

"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승지가 지금의 페이스만 유지한다면 서울대도 무리는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

" 감사합니다. 선생님. "

" 뭘요. 다 승지가 똑똑해서 그런 건 데요. 하하 "

" 그럼 다음 육성회 때 한번 더 뵙도록 하죠. "

" 예, 알겠습니다. 그럼 살펴가세요. "

새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말고 뭔가 생각이 난 듯 핸드백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흰 봉투하나를 꺼냈다.

" 전에...... 선생님 여름 양복이 너무 낡은 것 같아서........ "

" 아..... 이러시면 안됩니다. 승지 어머님. " 담임은 당황해 했다.

" 이건 애 아빠가 거래처에서 받은 양복티켓인데 남편은 이미 양복이 많이 있거든요. 그러니 필요한 사람이 써야 하지 않을 까요. 비싼 건 아니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말아주세요. "

" 이러면 곤란한데......... "

" 필요한 사람이 쓰는 것뿐인데요. 뭐.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선생님. "

" 예, 그럼 살펴 가십쇼. "

승지엄마가 나가는 것을 보고 나서 담임은 흰 봉투 안을 슬쩍 열어봤다. 그리고는 곧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14






정민철은 약속시간보다 10분 일찍 자리에 나와 있었다. 그것은 그의 오랜 사업 습관이기도 했다. 그는 이 바닥에서 꽤 알아주는 30년 경력의 골동품 브로커였다. 그가 오늘 만나기로 한 사람은 얼마 전에 자신으로부터 수납장 하나를 매입한 고객이었다.
잠시 후 약속시간에 맞춰 한 중년의 남자가 문을 열고 커피숖 안으로 들어 왔다. 민철은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그는 기천의 아버지인 최준영이었다.

" 어이구.....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

" 사장님이야말로 그동안 별고 없으셨는지요. "

" 저야 뭐 항상 평균이죠. 좋지도 나쁘지도 않고. 하하. "

둘은 웨이트리스에게 레귤러 두 잔을 시키고 나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 우선 바쁘실 텐데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 사실 전화 받고 조금 당황했습니다. 혹시나 제가 잔금을 다 지불하지 않았나 해서요. 허허..... "

" 당치도 않습니다. 사장님처럼 철저하신 분이 그런 실수를 하실 리가 있겠습니까. "

" 하하. 농담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

정씨는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에 최 사장이 언짢아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그는 자신에게 있어 최고의 고객이었으므로 혹시나 이번 일로 인해 그가 자신과의 거래를 끊는 불상사라도 생긴다면 큰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까지 그가 이런 결단을 내리게 된 것은 그것이 단순한 전설로 치부하기엔 좀 섬뜩한 면이 있어서였다. 그는 이야기에 앞서 물을 한 모금 마셔야만 했다. 지금 자신의 혀가 너무 말라있었기 때문이었다.

" 제가 오늘 사장님을 만나기로 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 수납장 때문입니다. "

" 아니 왜 그러십니까? 무슨 하자 라로 있는 물건입니까? " 최준영의 얼굴에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 그건 아닙니다. 물건은 진품이 확실합니다. 제가 보증하죠. "

" 그럼 뭐가 문제입니까? " 준영은 다시 차분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

정씨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 실은....... 그 물건에 대해 좋지 않은 소문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

" 네? "

" 일종에 전설 같은 겁니다만..... "

정씨가 곤란한 표정을 짓자 최사장은 그를 보며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 하하하........ 난 또........ 정사장님도 상당히 그런 것을 좋아하시나 봅니다? "

" 저도 미신 따위는 잘 믿지 않습니다. "

농담으로 던진 말에 정씨가 냉담하게 반응하자 최사장은 조금 무안해졌다.

" 원래 이런 일을 자주 하다보면 여러 가지 안 좋은 소문을 듣게 마련입니다. 우선 물건 자체가 남이 쓰던 물건이기 때문에 부정이니 저주가 붙었느니 하는 해괴한 소문이 들리기도 하는 거죠.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사기입니다. 자신이 산 물건이 마음에 안 들거나 자기 실수로 파손되었을 때 그런 식의 변명을 해대는 거죠. 이걸 산 이후로 집안에 마가 꼈다느니 이상하게 주위사람들이 다친다느니 하면서 말입니다. "

" 허허.... 그것 참...... 그런데 거의 다라는 것은 진짜도 있을 수 있다는 말씀처럼 들리는군요. "

" 극히 일부분이지만 그 중엔 믿기 어려운 사실도 존재합니다. 바로 사장님이 사가 신 그 수납장 같은 경우가 그런 케이스라 할 수 있죠. "

" 네?! "

정씨의 말이 끝나자 웨이트리스가 커피를 가져왔기 때문에 두 사람은 잠시동안 어색한 표정으로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웨이트리스가 가자 조바심이 난 최사장이 곧바로 말문을 열었다.

" 자세히 좀 말씀해 보시죠. 어떤 소문인지...... "

" 그 수납장은 18세기 프랑스의 유명한 탐험가였던 쟈크 드 샹블랭 경이 이탈리아에서 사들인 것으로 나중에 아프리카에 파견됐을 당시 함께 가져갔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당시는 한창 영국과 프랑스가 검은 땅을 놓고 식민지 경쟁을 벌이고 있었을 때였죠. 그때 샹블랭 경은 오고우에강 유역 탐험을 위해 하구 남쪽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

" 그렇군요. 전 세계사엔 깜깜한 편이라....... 하지만 그 수납장이 이탈리아에서 아프리카까지 옮겨다녔다니. 정말 대단하군요. 아! 말을 끊어서 죄송합니다. 계속하시죠. "

" 사실 샹블랭 경은 탐험보다도 그 근방 토착민들의 주술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가 직접 주술사로부터 여러 가지 의식을 체험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리고 나서 그는 오고우에강 탐험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얼마 후 그의 저택에서 무서운 역병이 돈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었고 심지어 마을사람들까지도 하나 둘 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왕실은 그가 아프리카에서 전염병을 가져왔다고 믿고 그의 집을 불태우고 식솔들을 모두 격리시켜버렸습니다. 그들은 이미 패스트의 공포를 익히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얼마 후 샹블랭 경과 그의 식구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프랑스의 위대한 탐험가였던 그에겐 너무나 허탈한 죽음이었죠. "

" 그랬군요. 하하....... 충분히 공감이 가는데요. "

최사장은 아직까지 정씨가 하는 얘기가 피부에 와 닿지 않았다. 그에겐 단지 먼 나라 얘기로만 들릴 뿐이었다. ' 아프리카라니......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야. 그런 얘기나 하자고 바쁜 날 불러낸 건가? ' 라며 그는 속으로 비아냥거릴 뿐이었다.

" 물론 여기까지는 단지 전설일 뿐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

" 문제는 ? "

" 이 수납장의 악연이 여기서도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

" 이어지다니요? "

" 제가 이 수납장을 경매에서 구입하려 하자 모두들 저를 말리더군요. 하나같이 재앙을 불러오는 물건이라고 하더란 말입니다. 그때 저는 좋은 물건을 싸게 구입할 수 있다는 욕심 때문에 그런 얘기들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저는 뜻밖의 소식을 듣고 생각을 달리 하게 되었습니다. 그 수납장의 바로 전（前） 주인이었던 김사장님의 측근으로 부터 부고（訃告）가 날아왔습니다. "

정씨의 입술이 조금씩 경련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최사장은 알 수 있었다.

" 그 일이 있고 난 후로 전 알수 없는 죄책감으로 인해 미칠 지경이 되었습니다. 바로 눈앞에 김사장님의 망령이 아른 거리는 것같아 잠조차 제대로 잘 수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전 나름대로 최근 10년간 그 수납장의 행적에 대해 조사를 해보기로 결심 했습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으니까요. 물론 부질없는 짓이라는 건 알지만 이미 제 정신상태는 그런 것을 논리적으로 따질만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전 그 수납장의 거래 내역을 역추적해 보았습니다. 거래전표, 은행계좌, 계약서.... 이런 것들이 제가 알아 볼수 있었던 단서의 전부였습니다. 그중엔 이미 주소나 계좌번호가 바뀐 것들도 있었지만, 다행이도 대부분이 그대로 남아있어 주었습니다. 10년 동안에 그 수납장의 주인은 모두 8번 정도 바뀐 것 같았습니다. 그중 확인이 가능했던 사람은 5명 정도였는데. 하나같이 그 수납장을 팔고 나서 얼마 안 있다 죽고 말았다고 하더군요. "

" 그런....... 그럼 혹시 모두 전염병으로? "

" 거기까진 알 수 없었습니다. 유족들이 사인을 밝히길 꺼려했으니까요. 저도 경찰이 아니기 때문에 그 이상 캐물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바로 전 주인이었던 김사장님의 사인만큼은 병 따위가 아니었다는 것을 말씀드릴 수 있을 뿐입니다. "

" 그분은 어떻게 돌아가셨습니까? 사고사였나요?"

" 사고가 아닌 고의적인 살인이었습니다. "

" 살인?! 저런 세상에........ "

준영은 뭔지 모를 불안감이 점점 자신의 목을 조여 오는 것 같아 답답했다.

" 그럼 그건 단순한 우연이겠군요. 어차피 전설하고는 맞지 않으니까요. 이런 얘기를 하면 고인에게 죄송한 일이지만 살인이야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게 아닙니까? 강도나 또는 누군가에게 원한을 샀다던가 해서 말이죠. 안 그렇습니까? "

"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닙니다. "

" 아니, 그럼 대체 뭐란 말입니까?! " 준영은 자신도 모르게 큰소리를 치고 말았다.

" 문제는 김사장님을 살해한 자들이 다름 아닌 그의 가족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

" 뭐라고요? "

" 어떻게 된 일인지 가족들 모두가 합세해서 김사장님을 죽였다는군요. 다행히 그 동네사람의 제보로 인해 범행 하루만에 잡히게 된 것 같습니다만...... "

" 허허...... " 최사장은 실성한 사람처럼 웃었다. 하지만 일말의 자존심이 정씨의 말에 부정하고싶은 강한 충동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 하지만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남의 집안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하루만에 동네사람이 알고 제보를 했을까요. 가족들 모두가 합세했다면 분명 외부로 알려지지 않게 조심했을 텐데 말이죠. "

" 냄새로 알았다 군요. "

" 냄새? "

" 그 집에서 타는 냄새가 진동을 했답니다. 우연히 지나가던 동네사람이 그 집에서 연기가 나오는 것을 보고는 119에 전화를 걸게 된 거죠. 그때까지는 단순한 화재로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문을 부수고 들어간 소방서 대원들이 본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연기가 나오고 있는 화장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욕조 안에서 타고 있는 한 구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었죠. "

" 세상에......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요. "

" 저도 그랬습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던 거죠. "

" 정사장님은 이 일을 그 물건과 연관지어 생각하시는 겁니까? "

"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이런 일을 오래 하다보면 직감이라는 것이 놀랄 만큼 발달해서 웬만한 것은 한 눈에 진품인지 가짜인지 알 수 있게되죠. 그 수납장을 처음 봤을 때 전 그 전설이 사실일 것만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 하지만 그래도 이해가 가질 않는군요. 왜 그런 멍청한 짓을 했을 까요. 사람을 죽이고 난 후 집안에서 태우다니........ 모두 미친 게 아니었을까요? "

" 물론 제정신으로 그런 짓을 할 순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끔찍한 짓보다도 그들이 했던 대답이 더욱 엽기적이었다는군요. 글쎄 왜 한 집안의 가장인 사람을 살해하고 나서 그것도 모자라 태우기까지 했느냐고 묻자 ....... "

정씨는 잠시 뜸을 들였다. 그는 지금도 그들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 그래서? 뭐라고 하던가요? "

애가 타기 시작한 최사장이 정씨를 닥 달하자 그때서야 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 그래야만 다시 살아나지 못할 것 같았다 라고 하더군요. "

" ......... "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대답을 들은 최사장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지금까지 자신이 들은 허무맹랑한 이야기 중에 가장 터무니없는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각자 자신들의 찻잔만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