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장난질은 계속됩니다..'-'）/

기천이가 준혁에게 바퀴벌레 장난을 하고

승지가 원인모를 장난 내지 협박을 받은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는군요.

그동안 두사람과 그들의 비뚤어진 가정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을까요?

그리고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우선 두 사람의 주변 상황이 어드렇게 변했는지 살펴 보러 가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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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어둠의 문（cafe.daum.net/blacknovel） & 리얼판타（www.realfanta.com）

작가 : RoLLo



15






준혁이 다시 학교에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고 나서였다. 갑자기 나타난 그의 얼굴을 보고 담임은 무척이나 당황한 모습이었다. 준혁의 얼굴이 너무도 창백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딘가 초점을 잃은 듯한 눈에 몸에선 소독약 같은 냄새가 풍겨나고 있었다. 입술은 말라 있었고, 피부는 각질이 일어나 있었다.

" 이 녀석아. 그동안 어디 있었던 거야? 연락도 안되고. "

" 요양원에....... 있었습니다. "

준형은 복화술을 하는 인형처럼 맥없이 입술만을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목소리는 마치 다른 곳에서 들리고 있는 것 같았다.

" 그럼 선생님한테 연락이라도 했어야지? 너희 부모님한테도 연락이 안 오고..... 집에 찾아가도 아무도 없으니. 내가 얼마가 걱정했는지 알아?!"

" ........... "

" 그래....... 몸은 좀 괜찮아졌니? "

" 별로요. "

" 언제 한번 부모님하고 얘기 좀 해야겠다. "

" .......... "

" 부모님이 바쁘시면 내가 너희 집으로 직접 찾아갈까? "

" 지금은...... 잠깐 멀리 가 계세요. "

" 그래?......... 그럼 돌아오시는 대로 선생님이 한번 뵙겠다고 전해드리렴. "

" 알겠습니다. "

" 수업 시작하겠다. 얼른 교실로 들어가. "

" 예.......... "

준혁은 천천히 교무실을 빠져나갔다. 담임은 그런 준혁의 뒷모습이 왠지 불안해 보였다. 그의 지금 모습은 한 달 동안 요양원에 있다온 사람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병들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 도대체 요양원에서 뭘 하다 왔길래..... "

반 아이들은 준혁을 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전교에 퍼진 소문을 일축하고 나타난 준혁의 모습에 아이들은 조금 실망한 눈빛이었다. 사실 그런 해괴한 소문이 사실이었으면 하는 바램들이 있었던 것이다.

" 뭐야, 저 자식 살아 있었네. 역시 소문은 거짓이었잖아. "

" 뻔하지. 석호가 또 뻥을 친 거야. "

" 그런데 요양원에서 뭘 했기에 저리 상태가 더 안 좋아 보이냐? "

" 혹시 거기서 바퀴벌레라도 먹고 온 게 아닐까? 큭큭...... "

모두들 준혁에 대해 한 마디씩 늘어놓았지만 기천만큼은 그럴 수가 없었다. ' 대체 녀석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온 걸까. 귓속에 들어간 그 벌레는 어떻게 됐을까 ' 하는 생각이 기천의 머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기천도 준혁 못지 않게 많이 야위어 있었다. 기천은 밤마다 바퀴벌레들이 준혁을 먹어치우는 끔찍한 악몽에 시달려야 만 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끔찍했던 것은 바퀴벌레들이 준혁을 아무리 갉아먹어도 준혁은 좀 채로 죽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눈을 파먹고, 내장을 파먹고, 심장을 파먹어도 준혁은 살아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천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 이제 곧 쇼타임이라고. "

" 기천아 넌 어떻게 생각해? " 순오가 멍하니 넋을 놓고 있는 기천에게 말했다.

" 뭐?..... 뭐가 말야? "

" 너 요즘 왜 그렇게 멍해있냐? "

" 아냐. 좀..... 근데 무슨 말인데? "

" 준혁이 말야. 안색이 더 안 좋아 보이지 않냐? 그냥 단순한 간질이면 저렇게 까지 되진 않았을 텐데 말야. "

" 그.... 글쎄. "

기천은 곤혹스러웠다. 만약에 자신이 준혁에게 그런 몹쓸 장난을 쳤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된다면 학교에서 매장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준혁의 부모가 자신을 경찰에 넘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그렇게 되는 날엔 난 소년원에 가게 되고 말 거야. 젠장, 젠장, 젠장..... ' 기천이 준혁 쪽을 슬쩍 한번 쳐다봤을 때, 공교롭게도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당황한 기천은 얼른 고개를 숙였다.

' 뭐야, 저 녀석 아까부터 날 쳐다보고 있었던 거야?! '

기천은 양호실에서 자신을 보던 준혁의 눈빛이 떠올라 괴로웠다.
기천은 수업시간에도 준혁에게서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 녀석은 그때 양호실에서 나를 본 후로 줄곧 날 범인으로 생각하고 있던 게 분명해. 이 녀석! 서서히 나를 불안하게 해 미치게 만들 작정이구나. 빌어먹을...... 개같은 자식 ' 기천의 고민은 끝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거듭해 나가고 있었다. 마치 마뜨료쉬까（러시아 전통인형-양파 껍질처럼 벗기면 벗길수록 안에서 작은 인형들이 계속해서 나온다.）를 벗기듯 어느새 그 본질은 잃어버린 채 또 다른 고민에 빠져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때, 기천은 준혁의 왼쪽 귀에서 가는 머리카락 같은 것이 나와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단번에 그것이 무언인지 알아 차렸다. 그것은 벌레의 더듬이였던 것이다.






16







승지는 자신을 노리는 누군가의 시선에 의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익명의 편지는 매주 금요일마다 어김없이 날아 왔고, 가끔씩 신발장이나 책상서랍에서 끔찍한 것들이 튀어나오곤 했다. 승지네 가족은 범인을 잡기 위해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영특한 범인은 절대로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가장 의심이 가는 미선이 일당을 추궁해 보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그들에겐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어 미궁 속의 범인을 잡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범인이 잡히지 않자 그녀의 스트레스는 날로 심해져 갔고 학교 성적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어 스트레스는 더욱 가중되었다. 결국 그녀는 거식증에 탈모증세까지 생겨 당분간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되었다.
그나마 조금 나아진 게 있다면 새엄마에 대한 승지의 감정이었다.

" 똑똑... 승지야. 아직도 자니? 일어나서 밥 먹어야지. "

" 안 먹을래요. " 기운 없는 목소리로 승지가 말했다.

" 그렇게 계속 안 먹으면 어떡하려고 그러니? 승지야 제발 일어나서 밥 좀 먹어. "

승지는 새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하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계는 벌써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몸이 약해지니 늘어가는 건 잠 뿐이었다. 전신 거울 앞에 서서 승지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다. 푸석푸석해진 머릿결, 움푹 들어간 눈, 혈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피부, 앙상한 팔 다리. 완벽했던 자신의 모습은 이제 온데 간데 없었고, 눈앞에 보이는 거라곤 뼈만 남은 불쌍한 소녀뿐이었다. 승지는 거울 앞으로 가까이 다가가 손으로 자신의 머리 속을 들춰보았다. 거울에 비친 승지의 머리는 100원짜리 동전 크기정도로 머리가 빠져 있었다. 승지는 머리를 들추던 손을 내리고는 자신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식탁에 앉은 승지에게 새엄마가 따뜻한 사골국 한 그릇을 갖다주었다.

" 이럴수록 먹고 힘내야 하는 거야. 많이 먹으렴. "

승지는 힘겹게 한 숟가락을 떴지만 목구멍으로 넘기기에는 무척 힘이 들어 보였다. 그 도시락 사건이후로 승지는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쳐다보는 것 자체도 질색할 정도였다. 어떤 음식이건 간에 입에 대기만 하면 마치 바퀴벌레들이 입안에 우글거리는 기분이 들어 삼키지도 못하고 그냥 뱉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동안 정신과로 통원치료를 다니며 받았던 심리치료와 최면요법 때문에 그나마 국물이 있는 음식정도는 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 승지의 극도로 예민한 성격 탓에 음식에 대한 혐오감을 완전히 고치려면 상당히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게 담당의사의 소견이었다.

" 맛있네요. "

승지는 말하고 나서 쑥스러워했다. 처음으로 새엄마에게 하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새엄마도 그런 승지가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 어서 먹어. 먹고 한 그릇 더 먹어야 해? 알았지? "

" 이것도 배불러서 다 못 먹어요. " 승지가 피식 웃었다.

" 얘 봐. 이렇게 다이어트 걱정 없을 때 많이 먹어둬야 한다구. 난 지금 체중이 불어서 걱정인데 "

" 풋..........새엄마는 지금 임신중이니까 괜찮잖아요. "

" 하지만 애 낳고 나서도 계속 뚱뚱해져 있을 까봐 그래. 나도 그런 걱정 없이 한번 실컷 먹어봤으면 좋겠다. 얘 "

두 사람은 처음으로 모녀지간의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승지는 새엄마에게 마음을 여는 것이 이렇게 간단할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모성애에 승지는 이 사골국 만큼이나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 앗! 내 정신 좀 봐. 장을 보러간다는 게..... 그만 너하고 얘기하느라 깜빡하고 있었지 뭐니? "

" 이따 저랑 같이 가요. "

" 안돼. 넌 아직 환자야. 더 쉬어야지. "

" 새엄마도 임신 중이라 무리하면 안되잖아요. "

" 어머.... 이 집에서 날 걱정해 주는 사람은 승지 너 밖에 없구나. 하지만 괜찮아. 대한민국 아줌마는 강하거든. "

" 하하..... "

새엄마는 장바구니를 들고 서둘러 장을 보러나갔다. 사실 승지는 비린 맛이 나서 사골국을 별로 좋아하진 않았지만 이제 다시는 새엄마에게 반찬투정을 하지 않기로 다짐했기 때문에 꾹 참고 먹어야만 했다. 승지는 비린 맛을 없애보려고 소금을 좀 더 집어넣어 보기도 했지만 역시 비린내는 가시지 않았다. 이럴 때는 정말 자신의 비위가 약한 게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승지는 하는 수 없이 미원을 넣어서 먹기로 했다.
미원을 찾기 위해 찬장을 열어보았다. 평소 집안 일에는 관심이 없던 탓에 조미료 하나 제대로 찾을 수가 없었다. 여기 저기 뒤지다가 끝내 찾아낸 곳은 여러 가지 조리도구를 넣어두는 맨 밑 찬장에서였다. 미원 따위가 이런 평소에 잘 열어보지도 않는 맨 밑 찬장 안에 처박혀 있는 이유는 화학조미료를 많이 먹는 사람은 머리가 나빠진다고 믿는 아빠 때문이었다. 만약에 그런 것이 아빠의 눈에 띄기라도 한다면 당장에 갔다버렸을 것이다.
승지가 미원을 꺼내려고 팔을 뻗었을 때 무언가 낯익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승지는 왜 이런 것이 여기에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냥 별생각 없이 그것을 다시 제자리에 갔다 놓기 위해 맨 위 첫 번째 찬장을 열었다. 그런데 똑같은 것이 거기에 또 있었다. 그것은 두 개였던 것이다.

" 왜 내 반찬 통이 두 개나 있는 거지? 그것도 따로따로...... "

순간 승지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 설마..... 그럴 리가 없어. 아냐. 뭔가 착각했을 거야. "

하지만 어째서 자신의 반찬통만 하나 더 있는 지 그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그것도 각각 다른 곳에 넣어둔 채로..... 여분으로 사 둔 거라면 당연히 기천이 것도 있어야 할텐데, 찬장엔 오직 자신의 노란색 반찬통만이 있을 뿐이었다. 승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반찬통 하나만 산다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건 세트라서 특별히 부탁을 하지 않는 이상 따로 살수는 없었을 텐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승지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때 승지의 머릿속에는 그 날 아침에 있던 일이 떠올랐다. 새엄마가 반찬통을 열어 자신에게 장어구이를 보여줬던 것을........

" 승지야, 엄마가 오늘 장어구이를 쌌으니까 애들한테 뺏기지 말고 너만 먹어. 알았지? "

반찬통을 들고 있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승지는 재빨리 안방으로 들어가 새엄마의 물건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장롱을 열어 그 안에서 작은 사물함들을 살펴봤다. 아줌마들은 곧잘 자신에게 중요한 것들을 죄다 장롱 속에다 보관해 두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장롱 속에선 이렇다할 증거는 찾지 못했다. 승지는 눈을 돌려 방안을 살펴봤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 쌓여있는 여성잡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새엄마는 유독 잡지를 좋아해서 매달 정기 구독하는 잡지만 3개나 되었다. 승지는 그 중에서 자신이 편지를 받기 시작했던 두 달 전 호의 잡지를 빼서 훑어보았다. 그리고 그만 믿을 수 없는 것을 보고 말았다. 페이지 중간 중간마다 글자들이 하나씩 오려져 있었다.






17







새벽 2시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남자는 전화벨소리가 10번 이상 울리고 나서야 간신히 잠에서 깰 수 있었다.

" 여보스여 " 잠이 덜 깬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발음이 꼬이고 말았다.

" 김지환 선생님 댁입니까? "

" 네...... 그런데요. "

" 김 선생님이십니까? "

" 네...... 제가 김 선생입니다. " 짜증석인 말투였다.

" 여긴 XX동부파출소인데요. 잠깐 와주셔야 될 것 같습니다. "

" 예?! 이보세요. 지금 새벽2시잖아요. 제가 무슨 잘못이 있어서 이 시간에 거길 간다는 말씀입니까? "

" 선생님께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선생님 제자 때문에 그렇습니다. "

" 누구요? 또 방석호 녀석입니까? "

" 아닙니다. 이 학생 이름은 이준혁이라고 하던 데요. "

" 아니.... 걔가 왜요? "

" 지금 저희가 데리고 있습니다. 빨리 이쪽으로 와주십쇼. "

' 걔가 거기 왜 가있습니까? 걘 환자인데요. "

" 자세한 건 오시면 말씀드리겠습니다. "

" 아니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걔가 왜 거기가 있는 겁니까? "

김선생은 다소 흥분해 있었다. 분명 뭔가 잘못돼가고 있는 것을 자신만 모르고 있는 것 같아 답답했던 것이다.

" 저의 순경이 공원 순찰 중에 이 학생을 발견했는데요. 글쎄 자기 집이 어딘지 모르겠더랍니다. 아이 상태를 보니 정상이 아닌 것 같아서 신분증명이 될 만한 걸 찾다가 가방에서 선생님 이름으로 된 편지를 발견하게 된 거죠. "

" 편지요?......... 아! 네. " 사실 그것은 김선생이 일주일 전에 준혁에게 시켜 부모님께 갔다드리라고 했던 바로 그 편지였다.

" 그리고 안에서 다른 것도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선생님이 직접 와주셔야 될 것 같은 데요."

" 뭐가 나왔습니까? "

" 칼이거든요. "

" 칼? "

김선생은 그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아직 잠이 덜 깬 자신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 칼입니까? 칼이 나왔다고요?! "

" 예.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자기 집 부엌칼인 것 같은데요. 칼에 피가 묻어 있는 걸로 봐선 아마 다른 용도로 사용한 것 같습니다."

김 선생은 수화기를 든 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18







학교 안은 아침부터 준혁이에 대한 이야기로 뜨거웠다. 교무실은 이 엽기적인 사건을 취재하러온 방송사 취재진들로 인해 인산 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학교간부급 임원들은 긴급 간부회의를 열었고, 학부모로 구성된 몇몇 육성회 간부들도 눈에 띄었다. 교장은 일체의 언급을 피했고, 각반의 담임선생님들에게 학생들 입 단속을 철저히 할 것을 신신 당부했다. 교장은 한 학생이 그런 끔찍한 짓을 한 것에 대해 교육자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기보다는 50년 역사의 학교 명예가 땅에 떨어질 까봐 그것이 더 걱정되었다.
하지만 바늘구멍으로 빠져나온 소문은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퍼져 2교시가 되기도 전에 이미 전교생이 이 사실을 다 알고 있었다. 또 발빠른 녀석들은 자신의 핸드폰으로 다른 학교 친구들에게 문자를 날리기 시작했다. 소문은 이제 그 진실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변형되고 왜곡되어져갔다. 어차피 진실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오로지 그가 저지른 살인만이 모두의 기대를 충족시켜주기에 충분했으니까. 살인에 대한 " 어째서 " 라는 명제보다는 " 어떻게 " 라는 것이 더욱 그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것이었다. 어느새 그 순진하고 연약하기만 했던 준혁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이제 교실에 남은 것은 희대의 살인귀라는 그의 새로운 이미지뿐이었다. 학생들은 이 사건에 대해 저마다 한마디씩 떠들어대기 바빴다. 어딜 가든 둘 이상만 모이게 되면 준혁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전에는 준혁을 왕따라며 상대도 안 해주던 녀석들이 이제는 마치 자기가 준혁을 잘 알고 있었다는 말투로 떠들어대고 있는 것이었다. 학생주임은 그런 녀석들을 보면 벌을 주며 호되게 야단쳤지만 그래도 준혁에 대한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그 중에서도 가장 열성적인 녀석은 바로 동훈이었다. 그는 장래 꿈이 소설가인 만큼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데 있어 천부적인 재능의 소유자였다. 오전 내내 녀석의 입에서 침이 마를 새가 없었다.

" 그거 알어? 교무실에서 들었는데 준혁이 새끼가 자기 부모를 죽인 게 글쎄 한달 전 이었데...... 그 새끼 그러고도 버젓이 학교에 나왔던 거야. 대단하지 않냐? "

" 진짜야? 야~~~~ 무섭네. "

" 근데 그 새끼가 죽인 게 자기 부모만이 아니었데. 칼에 다른 사람의 피도 묻어 있었다는 거야. "

동훈은 자신의 말에 아이들이 즐거워하자 더욱 신이나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옆에서 책상에 엎드린 채 자는 척하며 얘길 엿듣고 있던 기천은 그런 동훈의 입을 찢어 놓고 싶었다.

" 이야...... 완전 미친놈이구만. 그럼 뭐야. 우리가 연쇄 살인마하고 같은 교실에서 공부했다는 거야?!..... 으...... 소름끼친다. "

" 그런데 진짜 이상하지 않냐? 어째서 그렇게 순딩이 같던 녀석이 하루아침에 그런 살인마로 변할 수 있느냐 말이야. 안 그래? "

" 그래, 석호가 딸딸이라도 치라면 치던 녀석이 어떻게 그런 끔찍한 짓을 할 수가 있었을까? "

" 내 말이 그 말이야. 그리고 정말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건 녀석이 변하기 시작했던 게 바로 그때 귀가 아프다고 학교를 빠지고 나서부터였잖아. "

엎드려 있던 기천이 순간 몸을 움찔했다.

" 혹시 요양원에 있으면서 미쳤던 게 아닐까? 왜 안수기도를 너무 심하게 받았던지 아니면 밥을 굶겼던지 해서 말야. "

" 아무리 그렇다고 부모를 죽이기야 하겠냐? 무슨 다른 이유가 있었을 거야. "

" 넌 뭐 짐작 가는 거라도 있는 거야? "

갑자기 동훈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 내 생각을 말해줄까? 난 말이지 이번 사건이 그때 준혁이 귀가 아프다고 한 것과 무슨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 "

" 그게 대체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 "

" 잘 생각해봐. 이 사건은 언제부터 준혁이 변하기 시작했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되는 거야. 그럼 당연히 녀석이 귀가 아프다고 한 날부터가 시작인 거지. "

" 오~~ 그래서? " 모두들 동훈의 말에 동요하고 있었다.

" 그럼 더 자세히 들어가서....... 준혁이 귀가 아프다고 했을 때가 언제였지? "

" 그야 점심시간이 끝나고 나서지. "

" 그때 준혁은 어디에 있었지? "

" 양호실이었잖아. 당연한걸 왜 물어봐. "

" 그래, 양호실이었어. "

기천은 말할 수 없는 두려움으로 몸이 떨려왔다. 지금 동훈이 하는 말은 하나도 틀린 게 없었다. 즉, 그렇게 본다면 가장 확실한 범인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게 돼버리는 것이었다. 기천은 죽을 맛이었지만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동훈은 재미있어 죽을 지경이었다.

" 그럼, 좀 대담한 추리를 해볼까? 만약에 그 날. 누군가 준혁에게 이상한 짓을 했다면, 그래서 준혁에게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주었다면, 준혁은 혹시 그런 충격으로 인해 변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

" 에이~~ 뭐야..... 너 지금 소설 쓰냐? "

" 잘 들어봐. 이건 어디까지나 가정이니까..... 만약에 그렇다고 친다면 그때 준혁이 말고 양호실에 갔던 사람이 있다는 얘기가 되잖아. 그런데 양호실이라는 곳은 너희들도 경험이 있겠지만 괜히 4교시쯤에 꾀병 한번 부려서 푹 쉬다가 점심시간이 되면 밥 먹으러 다시 돌아오잖아. 안 그래? "

" 하하.... 맞다, 맞어. "

" 그럼 그 날 점심시간에 양호실에 남아있던 사람은 진짜 환자말고는 아무도 없다는 얘긴데. 그럼 당연히 준혁이 혼자 남게되는 거지. 내가 혹시나 해서 양호선생님께 물어봤는데 그 날은 준혁이 말고는 다들 배탈이었다는 거야. 큭큭..... 왜 하필 4교시에 배탈이 날까? 그때쯤이면 이미 먹은 게 다 소화돼서 배고파 질 땐데 말야. 너무 뻔한 레파토리지. "

" 큭큭.... 그래 나도 그랬어. 이젠 빈혈 같은 걸로 바꿔야 될까봐. "

" 그럼 준혁은 혼자였고. 범인은 그 점심시간에 양호실에 간 놈이었다는 건데....... 과연 누굴까? 그 시간엔 다들 밥 먹는데 혈안이 돼 있어서 교실 밖으론 개미새끼하나 안 나오는데 말이지 "

" 음........ 꽤 일리가 있는 추리인데. 그렇다면 말야. 범인은 우리 반에 있는 사람 중에 하나여야 하잖아. 그래야 준혁이 양호실에 간걸 알고 미리 준비를 했을 테니까 말야. 그런데 그때 밖에 나갔던 사람이 있었던가? 없지 않나? "

" 아냐..... 딱 한사람 있어! "

기천은 도저히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고개를 든 기천의 얼굴엔 어느새 굵은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모두들 그런 기천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기천은 그런 시선을 애써 외면한 채 주섬주섬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리고 그런 기천이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동훈이가 결정적인 한마디를 던졌다.

" 기천아...... 그때 양호실에서 뭐했어? "

" 헛..... "

기천은 정신이 멍해지고 주위에서 환청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모두들 긴장한 채 그런 기천의 반응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분명 뭔가 대단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대감을 품고...... 하지만 기천은 모두의 바램을 저버린 채 천천히 교실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기천이 나가는 것을 보고 동훈은 크게 한 숨을 내쉬었다.

" 휴~~~ 한 대 맞는 줄 알았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