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사람의 평균 수명이 100세를 넘기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과학잡지 한켠에 실렸던 글이다.

가장 최근에 죽었던 사람. 나의 할아버지는 189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할머니는 그보다 전에 죽었다.
그녀의 나이 160세쯤, 시내 한 가운데를 150km이상으로 질주하던 미치광이 이탈리아제 고급 스포츠카에 뛰어든 것이다. 덕분에 운전자는 늑골이 부러지고 두개골이 파손되어서 9개월간 병원신세를 져야했고, 보험회사에서는 천문학적인 보상금을 지불했야만 했다. 물론 스포츠카 파손의 대가로써 말이다. 이 시절은 사람의 가치가 한낱 고철덩이보다 못하다. 너무 오래 살기 때문이다.

내가 빼놓고 하지 않은 말이 있다. 나는 미래 사람이다. 사람이 100세를 못 살던 과거에 비하면 그보다 훨씬 후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미래 사람이다. 아마 그때는 상상조차 못했겠지.

이 시절에는 사람이 죽는 일이 거의 없다. 아버지의 말을 인용하자면 의학이 발전했기 때문에 원래는 죽어야 할 사람도 멀쩡히 산다고 말할 수 있다. 오히려 그전보다 더 건강하게. 새로운 제품이 완성되는 원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의사들이 엄청나게 큰 대량생산 기계를 가지고 수천명의 인간들을 찍어낸다는 상상. 어쨌든 그것은 소름끼치는 일이다.

미래의 가장 큰 변화를 꼽자면 그것은 보험회사의 비약적인 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보험회사들은 지독하게 오래사는 인간들로 부터 막대한 돈을 거둬들인다. 얼마전 조사에 따르면 보험 외판원의 인기가 의사를 눌렀다는군. 모든 젊은이들이 보험 설계사가 되려고 한다. 사람들은 20세부터 150세가 될 때까지 의무처럼 보험회사에 돈을 납부한다. 보험회사는 막대한 이득을 챙긴다. 그리고 그중 1%도 안 되는 돈을 가지고 자선사업에 투자한다. 여지없이 회사의 엠블렘과 역겨운 회장의 웃는 얼굴이 그곳에 남는다. 경제와 자본의 원리. 어떻게 보면 가장 밥맛 떨어지는 학문인지도 모르겠다.

할머니는 보험에 들지 않았다. 그들을 나라가 인정한 공식적인 사기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름 없는 도로 바닥에서 즉사한 그 순간 그녀는 후회하지 않았을까. 최후의 순간까지 그녀의 곁을 지켜주는 보험 설계사가 한 명도 없었다는 건 정말 슬픈 사실이다. 하긴 그 사실을 알리가 없는 그녀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이제 내 나이 34살이 된다. 그래 아직 젊다. 젊다는 거 왠지 기분좋은 일인 것 같다. 어쩌면... 사실 나는 26살 쯤 죽었어야 되는 사람이다.

심장이 약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단지 약하다는 게 지독한 통증까지도 수반한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10년 전 나는 갑자기 가슴을 쥐어 뜯으며 쓰러졌다. 마치 소설속에 나오는 비운의 여주인공 처럼, 비내리는 멋진 광경이 연출되지는 않았지만 나름데로 최대한 멋지게 쓰러지려고 노력은 했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정도 성공했다. 아직까지 그때 일을 못 잇는 친구들이 내게 자주 이야기를 했으므로 대충 알 수 있다. 하지만 멋지게 쓰러진 것이 내가 의도한 것 만은 아니었다. 실제로 나는 많이 아팠다. 아파서 기절하기는 그때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마지막이 될 지도 몰랐지만...

나는 눈을 떳다. 병원. 여전히 가슴은 아팠다. 기분나쁜 약냄새가 코를 찔렀고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가족들이 보였다. 모두들 웃고 있었다. 그때 당시까지 살아 있었던（지금은 스포츠카 범퍼와 함께 땅에 뭍혔지만） 할머니는 눈물을 훔쳤다. 아버지가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무어라 말을 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어쨌든 내가 살았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았다. 막 잠이들기전 아버지의 목소리가 어설프게 들리는 것 같았다. '이건, 의료기술의 성공이야. 기적이라구!'

삶은 기적일지도 모른다. 살아 있다는 것. 공기를 들이마쉬고 친구들와 이야기하고, 떠들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기분 좋은 일들이 일렬 종대로 예약되어서 끝까지 다 느껴볼 수 없이 긴 줄이 내 앞에 있다면 나도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다. 삶은 기적이야! 하지만 나는 그 말을 할 자신이 전혀 없다. 죽을 때까지도 결코 할 수 없을 것 같다. 삶은 기적이 아니다. 이런 명료한 진리쯤은 40이 되기전 누구나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애써 그것을 부인하려는 비겁자들은 '삶은 기적이다' 라는 말 따위로 허위의 포장을 하지만 나 까지 속일 수는 없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2년 동안 잤다. 공식적으로 내 심장은 내가 가슴을 쥐어 뜯으며 쓰러졌던 그 순간 멈췄다. 병원으로 옮겨져서 마술 같은 수술이 진행되었고, 왠지 가망이 없어 보이는 일이에도 기적같은 능력을 행사하는 의사선생들이 나를 살린 것이다. 나를 살리기 위해서는 심장이식이 불가피 했는데, 때마침 시기 적절한 순간에 기증자가 나타났다. 고맙게도 어딘가에 부딪혀서 머리통이 반쯤 날아간 상태로. 그 사람의 심장은 아직 신선했고 내 가슴속에 들어오면서 80%쯤 되는 신선도를 100%까지 올려놓았다. 고마운 사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의 심장은 아직도 일을 잘 하고 있다. 약하지도 않고, 더이상 통증도 없는 훌륭한 제품이다. 내 몸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긴 이야기를 한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나는 심장이 약한 소녀였고, 독실한 크리스천 부모 밑에서 귀하게 자라다가 심장마비로 죽을 뻔（?）한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살아난다. 얼마후에 할머니는 빨간색 스포츠카를 보고 성난 황소 처럼 달려들다가 저 세상으로 간다. 황소가 아니었으므로. 그리고 나는 정말 무던히도 평범하게 살다가 나중에는 결혼해서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

그리고...

수술후. 집에 도착한 나는 다시는 앉지 못했을 뻔한 내 낡은 책상의자에 앉아서 조용히 방을 둘러 보았다. 기분이 좋았다. 어느 순간 내 눈이 작은 액자에 멈췄는 데, 학교 정문에서 교복을 입고 찍은 내 사진이었다. 그러니까 아주아주 어렸을 때 모습이군... 액자를 들고 오랫동안 내 사진을 바라봤던 것 같다. 전혀 모르는 사람을 본 것 처럼... 사진을 내려놓고 나는 엎드려서 한참동안 펑펑 울었다. 방문을 잠궜기 때문에 아무도 들어올 수 없었다. 아버지가 방문을 두드렸다. 가족들은 무슨일이 난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문을 열라는 아버지의 말소리, 어디 아픈건 아니냐는 어머니의 걱정 어린 목소리. 아팠다. 그래 나는 그때 정말 아팠다. 심장이... 내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