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입장에서 알려주심 감사드릴게요.
여중 2학년 한 반을 운영하고 있는 담임인데요. 3년차 거의 신규입니다.
제가 첫 반 천사같은 아이들과 너무 추억도 많아서
올해 아이들에게도 최대한 잘해주었어요（그때도 2학년이었음）.
부담주지않고 풀어줄땐 풀어주고 혼낼땐 혼내고 그냥 항상 제 스타일대로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반 아이들은 뭐랄까
너무 목소리 큰 반장 말만 듣고 담임은 아예 투명인간취급한다고 할까요
아침조회 종례 전달사항도 듣는둥 마는둥 제가 무겁게 얘기를 해도 그때만 조용할 뿐
몇초뒤 바로 원래대로 돌아옵니다.

제가 준비한 재밌는 얘기도 많이 있었는데
아예 담임 말에 관심이 없으니 이젠 아이들앞에서 재밌는 얘기도 못하게 되었어요
한마디로 카리스마를 잃어버렸고 뭘해도 억지같은 상황이 되었습니다.

제가 한 명 한 명 진로상담도 해주고 오늘도 하고 왔지만
해줘도 굉장히 귀찮아하는 티를 내고
왜 이런걸 하지 얼굴에 다 쓰여있으니 정말 힘이 드네요

다행인 것은 1/3정도 아이들은 저를 잘 따르고 저의 고충을 알지만
나머지 2/3이 반장에게 아예 주도권이 잡힌 것 같아요.

출근해도 일할 맛도 안나고 교무실에서도 의욕도 안생겨서 투명인간처럼 있다가 가는 것 같습니다.
삶의 의욕이 안생겨서 안좋은 생각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제가 만약 아이들 포기하면
그렇게 커뮤니티 구설수에 오르는 '아이들에게 무관심한 담임' '형식적으로 일만 하다 가는 담임'이 되겠지요.

그런데 웃긴건 제가 이러면 이럴 수록 아이들도 동료교사도 더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최근 외조부님도 돌아가셔서
생각보다 동료 교사분들이 많이 챙겨주셔서 보답도 해드리고 싶은데
의욕이 안생기니 밥먹는것도 자는것도 억지로 하는 느낌이고

억지로 동료 샘들에게 말걸고 억지로 동료샘들 말에 반응해주고
그렇다고 가만히만 있자니 뭔가 제가 안좋은 생각중인 그걸 다 주변사람도 느낀다는 거예요
그럼 더더 멀어지는게 느껴지고요ㅜ

나머지 수업들어가는 반 아이들이랑은
너무나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냥 숨만쉬어도 웃어주는 아이들도 있고요ㅎㅎㅎ
하지만 가장 가까운 저희반이 가장 멀게 느껴집니다.
제 노력을 알아주는 것 만으로도 고마워서 퇴근이고뭐고 다 퍼다줄텐데
고마워하지않고 편해지기만 하고 이제와서 무게를 잡자니
아이들은 귀찮은 관리자라고만 생각하고 있는게 느껴져요

제가 담임으로서 뭘 해야 아이들이 따라줄까요?
제가 이런 생각해서 스스로 나약하다곤 생각하진 않습니다.
지극히 이 상황에서 생기는 당연한 생각이라고 알고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뭘해도 안될거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니 안좋은 생각은 좀 드는 것 같습니다.
평소대로 했을 뿐인데 정말 길이 안보이고 포기하자니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아서 글을 쓰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