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까지만 해도 따뜻했던 담요속은 유령신부를 안은 듯, 너무나 차가웠다. 어제 같이 누웠던 뜨거웠던 물병은 잠결에 발로 찼었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나는 방바닥을 더듬어서 물병을 찾아냈으나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후, 욕지거릴 내뱉고 일어나려하나 그마저도 쉽지가 않아서 베개 속에 얼굴을 파묻고 이 순간만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일어나야한다. 딱딱하게 굳은 무릎을 곧게 편 후, 일어나려하자 풀어놨던 무릎이 그래도 아프다며 비명을 질렀다. 아, 차라리 내 몸뚱아리가 기계였다면 좀 더 좋았을텐데..

화장실로 들어가자 바퀴벌레들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깨진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너무 늙어보였다. 면도를 하지않아서 까칠까칠하고 주름은 깊었으며 눈가에 낀 눈곱마저도 너는 스무살이아니라 다 죽어가는 할아버지라고 놀리는듯 했다. 날카로운 면도칼같이 찬 물을 손에 받아 세수를 하면서 다음 비누 보급은 언제지하며 오늘 날짜를 되새겨보았으나 오늘이 무슨 요일이었는지조차 생각나지않았다. 양치라도 할까 하고 치약을 뜯어내듯 쥐어짰지만 거품조차 나지않았다. 다시 집어 넣으려는데 구석에 걸려있던 컵 속에 빠진 바퀴벌레가 버둥거린다. 물을 손에 받은 후 컵속에 따라 붓자 다리를 더 힘차게 휘젓더니 얼마 못가 죽어버린다. 등신.

다시 한번 거울을 보고 머리모양새를 가다듬고 밖으로 나왔다. 방 한쪽벽을 가득 채운 소설들, 내가 누웠던 이부자리, 구석 천장에 붙은 텔레스코프와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냉장고가 내가 가진 전부다. 지금 시간이 얼마나 됐는지 모르지만 텔레스코프는 입에 뭐라도 물은듯 조용하기만하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밖은 아직 새벽이 물러가는 옅은 안개가 낀 날이다. 내가 일어났을때와 전혀 다르지않았다. 시간은 한시간은 족히 지났을텐데, 어제까지만 해도 입닥치지 않았던 텔레스코프였는데, 어찌된 일일까 하고 갠 이불에 앉아있던 나는 철제 문 앞에 기대 앉으려했었는데, 철제 문은 너무나 쉽게 열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