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방을 보자.’

무슨 일이든 순서가 중요한 법이다. 조급한 마음에 마구 날뛰다가 죽는 건 삼류 공포영화에서나 나오는 조연들뿐이다.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그런 조연들을 보면 그저 한숨만 나왔었다. 실제로 사람이 그 상황에 처하면 그렇게 허무하게 죽을까? 분명 그렇게 죽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런 조연들이 있겠지. 하지만 그런 레퍼토리를 이용한 소설, 영화를 매번 보고 있는 나로서는 염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 작품에서는 언제나 다른 가치관과 다른 시선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등장하곤 했다. 그래서 내 소설이 인기가 없는 건지도 모른다. 언제나 같은 레퍼토리를 사용하는 건 그만큼 안전하다는 뜻이니까.
마음이 가라앉으니 여유롭게도 영화 생각이나 하고 앉았다. 너무 긴장을 풀린 모양이다.

‘적당히 긴장하자고, 문호야.’

가볍게 고개를 털고 주위를 살폈다.

‘먼저 이 철 수갑을 푸는 건 무리야.’

나를 내리쬐고 있는 조명에서 나오는 빛이 철 수갑을 더욱 스산하게 빛나게 하고 있었다. 척 봐도 설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튼튼한 철 수갑이었다. 열쇠 구멍도 없는 걸로 봐서 열쇠로 여는 구형방식이 아니라는 걸 예상할 수 있었다.

‘분명 해제하는 방법이…….’

옆에 놓인 수술도구들을 잠시 살폈다가 금방 시선을 뗐다. 메스나 이런 날카로운 도구들이 있긴 했지만 철 수갑에 묶여있는 나로서는 전혀 쓸모없는 도구들이었다.
그 다음은 의료기기였다. 심박수 측정하는 기계와 처음 보는 의료기기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조금 수상하게 생긴 의료기기가 눈에 띠었다. 그 의료기기의 선은 내가 누워있는 수술대까지 이어져있었다.

‘저건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아니,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가까이에 있었다. 철 수갑만 아니었다면 바로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말이다.

‘씨발, 진짜 돌아버리겠네. 바로 눈앞에 있는데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니!’

그 순간 얼굴에 혈압이 모이는 것을 알아차리고 아차 싶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다시 잠재우며 의료기기를 제대로 살폈다.

‘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어.’

누가 봐도 의료기기로는 안 보이니 그냥 기계라고 칭하겠다.
그 기계는 투박하게 버튼 몇 개만 달려있는 스위치였다. 현대식 수술실에 비해 그 스위치는 상당히 낡았는데 얼마나 낡았으면 붉은 녹까지 슬어있었다. 이 환경과는 아주 안 어울리는 기기였다.

‘수술대에 부랴부랴 속박 도구를 붙여서 그런 모양이네.’

즉, 저 스위치만 어떻게 누를 수 있다면 탈출도 무리는 아니라는 뜻이다.

‘겨우 30cm 정도 거리인데 젠장…….’

정말 손만 뻗으면 닿는 거리인데 움직일 수 없으니 속이 타들어갔다. 혹시 녀석들도 그걸 알기 때문에 이렇게 눈앞에 둬서 절망감을 심어주려는 건 아닐까. 하긴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해부를 하고 좋아할 정도니 아니라고 할 수가 없었다.

‘잠깐만?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거지?’

순식간에 황금 같은 시간을 보낸 탓에 잔잔하게 물결치던 내 마음에 금세 큰 파장이 생겨났다. 얼마나 큰 파장인지 순식간에 호흡이 가빠졌다. 집중력이라고 말은 했지만 이 상황에서 침착하게 생각하는 것은 역시 평범한 사람인 나로서는 무리였다.

‘젠장, 젠장, 진정하라고! 발정난 개새끼처럼 흥분해서 어쩌겠다는 거야!?’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거칠게 흔들었다. 잡념을 털어내야만 한다. 그래야지 내가 산다. 이런 상황에서 침착하게 집중을 깊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지만 살기 위해서는 해야만 했다. 해야만 한다.

‘나는 문호가 아니다. 강철중. 내 이름은 강철중……. 모든 암호와 퀴즈들을 풀어내는 천재 탐정……. 강철중.’

거칠게 뛰던 심장은 그렇게 다시 잠잠해졌다. 우스웠다. 가상으로 만들어낸 존재가 나의 마음을 침착하게 만들어주니 말이다.

‘좋아.’

그렇게 마음이 가라앉자마자 생각을 시작했다. 또 다시 마음이라는 호수에 파도가 칠지 모를 일이니까.

‘정리를 해보자.’

나는 사이비 종교의 소굴에 갔다가 바보같이 납치를 당했고, 이 수술대 위에서 해부를 기다리고 있다. 옆방에서 비명이 섞인 끔찍한 소음이 들리는 걸로 봐서는 해부 당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만약 해부를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묶어두는 걸로 봤을 때 좋은 의도는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들이 해부를 하는 목적을 알 수 없지만 일단 여길 벗어나야만 한다. 그걸 위해서는 일단 이 수술대에서 내려오는 것이 우선이다.
수술실이라는 삭막한 분위기에 비해 수술대는 상당히 포근한 고급시트인 모양인지 포근했다. 거기다가 피가 튈 것을 대비해 물로 청소할 수 있게끔 비닐로 된 시트였다.
그리고 내 발목과 손목을 붙잡고 있는 철 수갑.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로 벗을 수 없다. 몇 번이나 빠져나가보려고 애를 써봤지만 내 손목에 딱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조금만 움직여도 손목이 아파왔다. 즉, 손목을 있는 힘껏 빼내서 벗어나려는 그런 물리적인 방법은 전혀 먹혀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럼 대체 무슨 방법으로?’

머리를 굴렸다. 머리를 굴렸다. 생각을 했다.

‘생각해, 생각해.’

두 눈을 살며시 감고 지금까지 읽었던 추리소설과 내가 만들었던 추리 트릭과 암호들을 모두 떠올렸다. 홈즈가 말하길 100가지의 사건을 알고 있다면 101가지의 새로운 사건도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100가지에 들어있는지부터 알아내야만 했다. 시간은 없다. 빨리. 빨리. 한 시라도 빨리.

‘이렇게 묶여있을 때 탈출했던 소설이 있었던가?’

여러 가지 소설이 있지만 그들은 대부분 손목을 탈골시켜 빠져나오거나 혹은 누군가의 도움, 아니면 다른 도구들의 도움을 받아서 탈출했다.

‘손목을 탈골시킬만한 능력도 없고, 손목을 빼낼 수 있는 기름이 있는 것도 아니야. 그렇다고 누구가의 도움을? 말도 안 돼.’

생각하면 할수록 절망스러워져갔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작가 김문호가 아니라 강철중이니까.

‘젠장, 그럼 완전 새로운 사건인 건가? 아, 잠깐만?’

그 때였다. 갑자기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떠올렸다. 정말 황당해서 몇 번이나 검토해봤지만 지금으로서는 이 방법 밖에 없었다. 얼마나 황당하냐 하면 이 방법은 추리소설은커녕 다른 게임에서도 본 적이 없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논리적인 것도 아니고, 100% 확실히 탈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할 수밖에 없잖아?’

불가능? 황당? 논리적? 그런 건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강철중은 천재적인 탐정이면서도 상당한 괴짜 탐정이다. 그에게 있어 논리적으로 생각을 한다는 것은 새로운 생각을 방해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방법을 떠올렸던 거겠지. 왜냐? 나는 강철중이니까.’

피식 웃으며 나는 바로 황당한 방법을 실행에 옮겼다. 시간이 없어 다른 방법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제야 겨우 시험이 끝났습니다. 겨우 다시 연재를 할 수 있게 됐네요. 기다리신 분들에게 죄송합니다 _ _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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