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 이상하리만큼 맑았다. 대부분 처음으로 사람을 죽이면 죄책감과 두려움에 제대로 몸을 가누질 못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도덕교육을 받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럴 것이다. 매일 뉴스에서 누군가를 죽이는 소식을 듣게 되면 저런 개망나니, 쓰레기, 인류의 악. 이것저것 심한 수식어들이 붙는다. 우리들은 그렇게 교육을 받아왔다.

‘더러운 새끼…….’

하지만 나는 이 순간 그것들이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미칠 듯한 분노 때문에 저기 바닥에 있는 큰 고깃덩어리를 몇 번이나 찔러댔는지도 모른다. 녀석의 턱을 덥수룩하게 덮고 있던 수염은 이미 붉은 빛으로 염색된 상태이고, 하반신도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을 만큼 흉측한 몰골이 되어있었다. 그 어떤 이가 오더라도 그를 ‘사람’이라고 지칭할 수 없을 거다.
복수를 하면 남는 게 없다. 끔찍한 결과만이 남는다. 자신을 파멸로 이끌게 될 것이다. 인생을 버리는 일이다.

‘그 어떤 누가 지금 나한테 그런 소릴 할 수 있을까?’

유치원이나 초등학생 시절. 누군가가 자신에게 피해를 입혔을 때 그 피해를 되갚아줬을 때 다들 어떤 느낌이었는가? 우울함? 두려움? 죄책감? 아니, 분명 다들 다른 것을 느꼈을 거다.

‘안도감.’

거기서 더욱 큰 피해를 줬을 때 몇 배로 되갚아줬을 때에는 우월감마저 느꼈을 거다. 그 사이에 부정적인 감정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조금씩 사회의 교육을 받으면서 세뇌되어갔다. 그러면 안 된다고. 그런 짓을 하면 쓰레기라고……. 정부에는 모든 이들에게 그런 교육을 가르쳐야만 한다. 그래야지 나라가 부드럽게 돌아가니까.
하지만 그 중에서도 그런 틀에 박혀있지 않은 사람들도 분명 존재했다. 가만히 참으면 호구로 본다. 보복하지 않으면 우습게 본다. 그런 말들이 이제는 유행처럼 번져갔다. 모두들 사실은 알고 있었다. 복수는 자신을 우월하게 만들며 타인이 나를 무시하지 못하게 하는 하나의 보호 수단임을. 복수는 필요한 것이다. 그러니 내가 죄책감을 들고 우울해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는 나를 죽이려고 했고, 강간하려고 했다. 당연한 결과다.
강간한 자에게는 사형을. 살인을 저지른 이에게도 사형을. 받은 만큼 돌려주어라. 그것이 살인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해서 살인자로 몰리더라도 당당할 거다.
오늘 난 이 쓰레기 덕분에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니 나에게는 죄책감이 아닌 복수를 해냈다는 쾌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덕분에 시간 벌었네.’

돼지가 내 방으로 오기까지 거의 20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즉, 다른 사람이 내 방에 올 시간이 적어도 몇 십 분 후가 될 거란 뜻이다. 정신이 깨끗해진 나에게 있어서 그 정도 시간은 탈출을 위해 충분한 시간이었다.

‘먼저 이 층이 어딘지 알아야겠네.’

창문 하나 없는 폐쇄공간이라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일단 움직이기로 했다. 수술대 옆에 떨어져있는 벨트를 다시 허리춤에 묶은 뒤 주머니에 메스 몇 개를 챙겼다. 무슨 일이 생길 걸 대비해서 바로 뽑을 수 있게끔 손잡이가 위로 향하게 주머니에 넣었다. 워낙 날카로운 도구라서 주머니에 구멍이 날지도 몰랐지만 일단 괜찮다고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넣었다.

‘자, 가볼까.’

녀석이 들어온 문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살짝 문에 귀를 갖다 댔다. 아무런 인기척도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좋아.’

오른손에는 메스를 쥐고 있었기 때문에 왼손으로 문고리를 돌렸다.

끼익.

작은 소음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마치 스피커라도 달아놓은 것처럼 크게 들리는 듯 했다.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살짝 고개를 밖으로 내밀어 주위를 살폈다. 그 순간 온 몸에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다.

‘미친……. 여긴 대체 어디야?’

복도가 있었다. 그 복도에는 일정거리마다 형광등이 설치되어있었다. 그렇게만 본다면 별 거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제외한 것들이 문제였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여긴 폐쇄된 병원이었다. 여기저기 깨진 유리병과 곰팡이가 가득 핀 침대 시트. 정체를 알 수 없는 핏자국까지……. 만약 공포영화를 만들려는 감독이 있다면 반드시 이곳을 추천하고 싶을 정도였다. 없던 영감마저 튀어나올 곳 같은 곳이었다.
귀신보다 사람이 무섭다고는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귀신이라는 존재가 훨씬 더 공포로 다가왔다.

‘괜찮아. 귀신같은 건 없어.’

그렇게 자신을 다독이며 밖으로 나왔다.

‘어디로 가지.’

일단 복도를 따라 걸었다. 만약 정말 여기가 병원이라면 분명 어딘가에 이정표가 있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얼마나 걸었을까. 눈앞에 사거리가 나왔다. 그 사거리의 천장에는 낡은 이정표가 붙어있었다.

‘오른쪽 엑스레이 촬영실……. 왼쪽은 식당인가? 정면은 뭐지?’

이정표에는 이것저것 검은 얼룩이 묻어있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아무데나 갔다가 누구한테 들킨다면…….’

방금 그를 죽일 때 그는 누군가를 부르려고 했었다. 즉, 이 근처에 분명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뜻. 섣불리 여기저기 쏘다닐 순 없었다.

‘그것보다 정말 음침한 곳이네.’

동영상에서 본 회전 종교（편의상 이렇게 말하겠다.）는 큰 종교였다. 그런데 왜 이런 곳을 사용하는 걸까. 당장이라도 좀비가 튀어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 곳이었다.
사람이 많다는 건 금전적으로 여유롭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 이런 비위생적인 곳을 사용할 리가 만무하다. 사람은 누구든 지저분한 곳에 있다 보면 병에 걸리고, 불쾌감을 느끼니까.

‘분명 무슨 이유가 있겠지.’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떠오른다.
회전 종교는 원래 이런 지저분한 곳을 추구하는 집단이거나 아니면 정부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라서 함부로 병원 개조를 할 수 없거나……. 만약 건물 인테리어를 새로 하기 위해 자재를 들고 왔다 갔다 하다가 경찰들의 의심을 살 수도 있으니까. 내가 생각하기에 후자가 가장 유력하다고 판단됐다.
그리고 이곳에 핏자국이 있는 이유는 아무래도 방금 전처럼 인육을 들고 설치는 녀석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딴 생각보다 먼저 여기를 탈출해야 된다니까.’

잡념을 가볍게 털어내고는 다시금 어디로 향할지 고민했다. 이곳에 한시라도 더 있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냥 일단 전진해볼까.’

복도에 엄폐물이 듬섬듬섬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그 엄폐물을 이용해 이동했다. 좀비 게임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지만 사실은 아주 위험한 상황이다. 게임처럼 죽었다가 다시 되살아날 수도 없고, 녀석들 중 한 명에게라도 걸렸다가는 단체로 나를 잡으려 몰려올 것이 뻔하다.

‘후, 부정적인 생각은 관두자. 바로 출구가 나올 수도 있잖아.’

지푸라기 같은 희망을 품으며 조금씩 앞으로 전진해나갔다. 손에 쥐고 있던 메스가 땀이 흥건하게 묻어났다.








네이버웹소설
http://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2345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