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어두침침한 병원 복도를 한참 걷다보니 무서운 생각이 안들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끔찍한 상상이 머리를 헤집고 다녔지만 이미 겪은 상태이고, 정말 아무런 인기척이 없는 곳이다 보니 그런 무서움도 금세 없어져버렸다. 사람의 적응력이란 대단했다.

‘그 영상에는 사람이 많았어. 그런데 그 인원이 여기에 없는 걸로 봐서 해부하는 사람은 특별한 존재거나 천대받는가보네.’

과거 백정이라는 직업은 천민들이나 하는 직업이었다. 짐승들을 죽이고 그것의 가죽을 벗겨 고기를 얻는 일. 당연한 일이지만 사람들은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천대시했다.
그러한 생각이 이 종교에서도 통용되는 건가? 평범한 백정이 아니라는 게 문제지만.

‘아무튼 숫자가 적다는 건 확실한가보네.’

만약 만난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싸울 의지가 생겼다. 방금 본 그 돼지 같이 몸이 둔하다면 아무리 집안에만 박혀 사는 나라도 어느 정도 싸울 수 있지 않을까.

‘그래, 두려움에 떨어봐야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 전진하자.’

점점 이 칙칙한 복도에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굉장히 긴 복도네. 거의 5분은 걸은 것 같은데…….’

아무리 큰 병원이라도 2~3분 정도면 벽 끝에서 벽 끝까지 도달할 수 있다. 병원도 결국 사람을 수용하게 만들어진 효율적인 형태의 건물이니까 이렇게까지 길게 이어질 리가 없다.

‘증축이라도 한 건가?’

그렇게 생각하면 방금 내가 세운 가설이 틀리다는 뜻이 된다. 이 건물이 지저분한 이유는 건물을 증축, 개조를 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내 가설이 말이다.

‘애초에 큰 건물이라던가…….’

하지만 대한민국에 이렇게 큰 병원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도 없다.

‘혹시 내가 외국으로 온 건가? 아니야……. 고작 기절 한 번이라고……. 외국으로 올 때까지 깨지 않았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돼.’

그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이 길게 이어진 복도에 대한 의문은 깊어만 갔다.

‘그럼……. 한국이라는 소린데……. 내 기억으로 한국에 이렇게까지 큰 병원은…….’

그렇게 생각하다 갑자기 머리에서 번쩍거리면서 레지던트이블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회전 종교는 공개적인 종교가 아니다. 단순한 암호……. 아니, 애초에 내가 회전이라는 단어를 몰랐다면 절대로 들어갈 수 없었을 만큼 은밀한 종교이다. 하지만 그렇게 베일에 싸인 종교라고 하더라도 그 영상이 계속 그 사이트에 있다면 결국 누군가의 손에 의해 퍼지게 되어있다. 그런데 나는 지금껏 단 한 번도 그렇게 끔찍한 지옥 같은 영상을 본 기억이 없다.
글 솜씨를 늘리기 위해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나다. 바깥을 돌아다니는 시간보다 컴퓨터 앞에서 인터넷을 돌아다니는 시간이 훨씬 많다. 그런데도 내가 그런 영상을 못 봤다는 말은…….

‘정부에서 관리하는 사이트라는 뜻이지.’

정부가 실시간 모니터링을 하며 접속된 아이피를 따라가서 단숨에 컴퓨터를 해킹하여 그 사람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 지켜보고 있다면? 정말 어이없는 가설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 영상이 인터넷에 떠돌지 않는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다. 보아하니 꽤 오래된 종교 같으니 까 말이다.

‘정부도 이 종교에 관련이 있다는 건가?’

처음에는 단순한 살인마를 주제로 글을 써보려는 욕심 때문에 시작된 일이었다. 하지만 내 글은 단순한 살인마의 이야기 따위가 아니었다. 나라는 한 사람의 손에서 해결할 수 없을 만큼 큰 그림자가 숨겨진 소설이었다.

‘그래, 그럼 이 복도가 이렇게 긴 이유도 설명이 가능해.’

맨 처음 나는 빛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수술대 위에 있었다. 그래서 이곳이 어딘지 전혀 알 수가 없었었다.

‘그래, 그 순간을 돌이켜보면…….’

수술실에 창이 있을 리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이 ‘지하’라는 생각 따위는 해보지 못했었다.

‘여기가 지하라고 생각한다면 모든 것이 설명이 돼.’

긴 복도의 존재는 대한민국의 땅 위가 아닌 땅 밑이라면 가능하다. 민간인인 내가 당연히 알 리가 없었다. 이로서 정부의 개입이라는 한 가지 가설이 확신으로 바뀌어졌다. 정부의 개입이 없다면 이런 큰 지하시설을 얻을 수 있을 리가 없을 테니까.

‘그래, 지금까지 내가 겪은 것들을 조금만 바꿔서 소설로 내고, 당장 여기서 손을 떼는 거야.’

이 순간에도 나는 소설을 포기할 수 없었다. 이쯤 되니 나라는 놈에게 질릴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엄청난 소재를 두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거의 무조건 대박 터지는 소재. 단순히 소재라고만 생각해서 크게 와 닿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이런 소재를 글로 써서 베스트셀러 소설을 내고 나면 인생은 탄탄대로인 거다. 돈으로 환산한다면 몇 십억은 가볍게 벌 정도의 소설인 거다.
그 후의 후속작들 역시 당연히 대중들의 관심을 받게 될 것이고, 후속작을 조금 못 쓰더라도 이미 내 소설을 본 독자들이라면 멋도 모르고 극찬할 거다. 사람들이란 그런 거다. 자신이 느끼는 예술성보다 타인이 말하는 예술성이 더욱 비싸고 값져 보이는 것이다.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베스트셀러라면 무조건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그러니 포기할 수 없지.’

다시 한 번 마음을 다 잡고, 복도를 걸었다.

‘후, 목마르다.’

물을 마시지 않은지 얼마나 지났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목구멍이 가뭄이 들어 바짝 마른 땅 같았다.
그렇게 갈증을 느끼며 걷던 중 갑자기 무슨 소리가 고막에 닿았다. 조금 방심하고 있던 나는 화들짝 놀라며 급히 눈앞에 있는 쓰러진 침대에 몸을 은폐했다. 그리고는 숨소리마저 없애기 위해 입으로 숨을 내쉬며 귀를 기우렸다.

‘아직 멀어서 자세히 들리진 않네.’

목소리가 오가는 걸로 봤을 때 2명으로 추정됐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한 쪽이 다른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방금 전 느꼈던 공포가 순식간에 되살아났다. 손이 미친 듯이 떨려왔다. 공포를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괘, 괜찮아. 긴장하지 말고.’

그렇게 깊게 심호흡하고 있을 때였다.

땅그랑.

‘어?’

내 발 밑에서 경쾌한 쇳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쥐고 있던 메스였다.

‘이, 이런!’

심호흡하며 잠시 넋을 놓는 그 순간 손에 힘이 빠진 것인지 메스를 놓쳐버렸던 거다. 급히 메스를 다시 주웠지만 이미 쏟아버린 물이었다.

“여기서 들린 것 같은데.”

녀석은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