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생생한 개꿈을 꿔서 기분이 더러워져서 씀

꿈 속에서 나는 어린애였다. 어린 시절의 나도 아니고 그냥 모르는 어린애였다. 나는 엄마 아빠를 찾고 있었는데 엄마 아빠가 보이지 않았다. 불안해져서 집 밖으로 나갔지만 어두컴컴한 밤인데다 사람 소리라곤 하나도 나지 않아서 적막했다. 내가 아는 길과 꿈에서 만들어내 모르는 길이 뒤섞인 괴상한 곳을 돌아다니다가 한 빌라 앞에 멈춰섰다.


그 빌라 앞에서 나에게 어떤 초능력이 생겼음을 알았다. 건물의 모든 방들을 내 마음대로 위 아래 왼쪽 오른쪽 아무데로나 움직일 수 있었다. 방 안의 사람은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벽에 부딪혀 죽을 것이다. 이 초능력으로 다른 사람이 내 말을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진짜 어린애라도 된 것처럼 엄마 아빠를 찾아 다니던 불안감이 한순간 사라지고 초능력을 써먹을 생각에 들떴다. 하지만 빌라의 방들을 아무리 흔들어대도 비명 하나 나오지 않았다. 방들을 땅에 내리찍어 박살을 내도 건물 잔해만 생길 뿐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 침실 앞에 섰다. 침실 안으로 들어가자 '내'가 침대에 누워있었다. 얼굴도 모르는 어린애지만 그게 나라는 건 알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도 꿈이니까 단번에 깨달았다. 엄마 아빠를 찾을 수 없게 되자 나는 나를 두 개로 쪼개 하나는 어린애인 '나' 그대로고 다른 하나는 엄마 역할을 맡게 했다.


침대 위의 어린애를 보자마자 소름이 돋았지만 나는 태연하게 엄마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꿈이니까 말도 술술 나오고 진짜 엄마와 어린 아들처럼 말했다. 침대에 누워서 나는 바로 앞에서 나를 보는 '나'를 들여다봤다. 한 침대에 어린애 두 명이 누워서 소꿉놀이처럼 부모와 자식 놀이를 했다. 그것도 완전히 똑같은 도플갱어 두 명이서 말이다.


바로 앞에 누워서 나를 가까이서 보던 또다른 '내'가 과자를 꺼내 한입 먹고 엄마인 나에게 줬다. 나는 과자를 받아서 입에 넣었다. 아들이 한입 먹고 엄마가 한입 먹었다. 그렇지만 사실은 내가 한입 먹고 내가 또 한입 먹었을 뿐이다. 과자가 입 안에서 씹히는 순간 나와 또다른 '나'는 그 적나라한 사실을 감각으로 알았다. 눈 앞의 내가 비명을 질렀고 나도 비명을 질렀다. 두 어린애가 울상을 짓고 아무도 듣지 않는 비명 소리만 가득했다. 나는 잠에서 깼다.


사실 꿈 속의 침대는 내가 자고 있던 침대였다. 그래서 기분이 더욱 더러웠다. 바로 일어나서 부엌의 정수기 물을 마셨다. 그런데 싱크대 앞에 희미한 실루엣이 보였다. 엄마인가? 하지만 밤인데 왜? 가까이 다가가니 잘못 봤나보다. 그런데 갑자기 방 하나에서 불빛이 켜졌다. 그 방에 다가가니 엄마 아빠가 잠옷 차림으로 주섬주섬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나는 엄마 아빠가 밖에서 돌아왔구나 하고 안심했다.


그런데 아직도 이상한데? 이건 아닌데?


씨발 나는 자취하고 있는데?


아직도 꿈이었다. 내가 벌떡 일어나자 진짜 어두컴컴한 원룸 안이다. 꿈 속의 엄마 아빠는 얼굴도 모르는 꿈에서 만들어낸 사람이었다. 꿈 속의 꿈을 꾼 것같다. 지금도 꿈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