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에 지인이 겪었던 실화입니다.
편의상 1인칭 시점으로 각색해 보았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당시 우리집은 부모님과 13살 터울의 형은 늘 가게 일을 나가서는 저녁쯤에나 들어오곤 했다. 부모님은 기사식당을 운영하셨는데 제법 손님이 많았는지 형까지 가세하여 일손을 돕던 시절이였다. 어린 나이였지만 일찍 철이 들었던 나는 별 불평없이 혼자 집을 잘 지켰던거 같다. 가끔 부모님이랑 형이 보고 싶어서 집에 가지 않고 버스를 타고 식당으로 찾아간 적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어여 집에가서 숙제나 하고 있으라는 아빠의 꾸지람에 곧장 집으로 가는게 익숙해진터였다.

우리집은 한적한 주택가에 허름하게 서 있던 상가건물 3층에 있었다. 건물도 낡았을뿐더러 센서등도 잘 작동되지 않는 날이 많아서 4층 옥상문이 닫혀있는 날이면 3층은 어둡기 일쑤였다. 3층에는 우리집과 옆집, 두 가구가 있었는데 옆집은 무슨 권리다툼 때문에 꽤 오랫동안 비여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교와 속셈학원을 모두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오후 4시쯤이었다. 그날도 여느때처럼 센서등은 켜지지 않았고ㅡ당시 내 키가 작아서 인식이 안되었던걸수도 있다ㅡ 비상등에 의지해 간신히 열쇠를 집어넣고 문을 열어 집에 들어갔다.

역시 아무도 없었다. 이따금 외롭기는 했지만 4시간 뒤면 형과 엄마가 오고, 6시간 뒤면 아빠가 온다고 생각하며 꿋꿋하게 엄마가 미리 차려 놓은 밥을 챙겨 먹었다. 그리고 늘 그랬듯 내 방으로 건너가 알림장을 펴서 학교숙제와 학원에서 내준 숙제를 하기 시작했다.

그날따라 피곤했었는지 한창 숙제를 하다가 책상에 앉은 채로 여러번 졸았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졸고 있는데 현관 벨소리가 들렸다ㅡ옛날식 벨소리였는데, 꾀꼬리가 울다가 잠잠해지는 소리였다. 지금도 그때의 기억때문인지 아주 가끔 그 벨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매우 나쁘다.ㅡ.

깜짝 놀라서 자리를 박차고 현관으로 뛰어간 나는 '누구세요?'라고 했던거같다. 평소 엄마는 내게 문을 열어 주기 전에는 그 누구라도 반드시 누구세요?라고 물어보고, 모르는 사람이라면 절대 열어주지 말라고 귀가 닳도록 얘기했었기때문에 나는 자연스레 문 단속을 잘 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밖에서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그때 나는 정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날이 어둑하긴 했지만 시간을 확인하려고 문득 거실의 시계를 보았는데 이제 겨우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형과 엄마가 오려면 아직 2시간이나 더 남은 시간이었고, 만약 형과 엄마라면 대답을 하지 않을리도 없었기에 나는 덜컥 겁에 질렸던거 같다.

그리고 다시 그 기분 나쁜 벨소리가 울렸다. 이때쯤 나는 벌써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이 그렁거리기 시작했었던거 같다. 어린 마음에, 벨이 울렸으니 누구냐고는 물어봐야한다는 생각때문이었을까,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누구세요?'라고 물었다.

잠시 몇 초 뒤 밖에서 '엄마야 문 열어'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나는 그게 엄마가 아니란걸 바로 알았다. 여자를 흉내내는 남자 목소리였다. 그때부터 나는 사시나무 떨듯 현관에 선 채로 벌벌 떨기 시작했다. '엄마야 문 열라니깐'. 다시 그 목소리가 들렸고 이번엔 동시에 현관문을 쿵쿵하며 두들기는 소리도 났다. 나는 울고 있었지만 억지로 울음을 꾹 참으며 울음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입을 틀어막았었다.

이번엔 방금 전 보다 더 세게 현관문을 쿵쿵대며 '빨리 문 열어 엄마래도!'라고 하는 그 남자가 당장이라도 철로 된 현관문을 부수고 집 안으로 들어올것만 같았다. 아예 대놓고 문을 쿵쿵거리기 시작했다. 얼굴이 시뻘개져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나는 숨이 넘어갈듯 다급해졌고 뭐라도 해야할것만 같았다. 그래서 기껏 한 것이.. 아주 울먹이는 목소리로 '엄마 아니잖아요!!'
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밖은 다시 조용해졌다.

온 몸이 떨렸던 나는 제자리에 서서 다리가 아픈줄도 모르고 그렇게 한참토록 진정해갔다. 시계는 저녁 7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직 형과 엄마가 오려면 1시간이나 더 남은 시간이었다. 떨림과 울음은 멈췄지만 나는 여전히 긴장해 있었다. 그 남자가 아직 현관 밖에 있을것만 같았다. 나는 문득 부모님과 형이 있는 식당으로 전화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전화기가 있던 거실로 걸음을 땠다.

그 순간 다시 현관문이 강하게 쿵쾅거리며 '어디가? 아빠야 문 열어! 문 열어 어서!'라는 묵직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ㅡ지금 생각해보면 그 남자는 현관에 귀를 대고 그때까지 내 소리를 쭉 듣고 있었던 모양이었다ㅡ. 나는 몹시 놀라 내 방으로 쏜살같이 달려가 방 문을 잠그고 거의 발작하다시피하며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찌나 놀라고 울었었는지 기절을 했었나보다.

눈을 떴을 때 엄마는 조금 울고 있었고 형과 아빠는 몹시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다독였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 나와 우리 가족은 어느 병원 침실에 있었다. 먼저 퇴근한 엄마와 형은 아무리 문을 두들기고 전화를 해도 기척이 없자 열쇠 아저씨를 불러서 문을 열고 집을 들어왔었고 잠긴 내 방문을 거의 부수다시피해서 연 후 방에 쓰러져 있던 나를 발견했다고 한다. 몹시 놀란 엄마와 형은 나를 들쳐업고 바로 병원에 왔던 것이었다.

약 기운에 취해서였을까,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나는 겪었던 일을 담담하게 말했다고 한다.

그런 일을 겪은 후 이사갈때까지 2개월동안 형은 식당에서 잠깐 나와서 늘 학원으로 제 때에 날 데릴러 왔었고 나 역시 식당에서 가족과 함께 있었다. 아빠와 엄마와 형은 괜히 그 일을 상기해서 내게 좋을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의식했던건지 그 일에 대해서만큼은 내 앞에서 함구했다. 그리고 끝내 그 남자는 잡히지 않았었다. 경찰은 부모님께 현관 CCTV를 설치할 것을 권유했었는데 정황상 우리집 사정을 잘 알던 남자였던 것으로 비추어 보아 부모님은 아예 이사를 가는 것이 좋을것이란 판단이였다.

그리고 중학교 무렵 그 예전 일을 엄마와 나누다가 들은 새로운 사실이 있었는데 그날 그 남자가 그랬었는 지 3층 센서등이 모조리 분해되어 있었고 내 방문 앞과 안방에 남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신발 자국이 군데군데 찍혀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