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제게도 처가 있고, 아이가 있습니다.

귀엽고 착한 아이였습니다. 웃음이 많은 아이였지요.

제가 퇴근하면 아장아장 걸어와 절 껴안을 때 그 따듯한 체온에 절로 미소가 나오곤 했습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그 착한 아이의 반만큼도 닮지 못했죠.

저는 늘 웃으며 사람을 대할 수 없었고, 남들에게 피해를 끼친 적이 없다고 할 순 없을 겁니다.

제가 기억하는 것만도 몇 개인데, 제가 모르는 부분에서는 얼마나 많은 피해를 줬을까요.

그렇지만 아이가 보기에 부끄러운 아버지는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제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선한 선택을 하려했고, 선한 의도를 가지고 남들을 돕고자 했습니다.

제가 행한 일들 중 가장 선한 행동이라면, 단연코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이죠.

어느 여름날 밤이었습니다.

횡단보도에는 유모차를 밀고 가는 여자가 있었고.

차 하나가 감속하지 않고 달려들고 있었죠.

그대로 횡단보도를 덮쳐 비극이 일어나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보자, 정신을 차렸을 때 제 발은 엑셀을 부서져라 밟고 있었고, 그 차를 의도적으로 들이받았습니다.

에어백 너머로도 느껴지는 큰 충격과 함께 기절했지만, 흐릿해진 시야에서 황급히 길을 건넌 사람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선한 의도가 항상 선한 결과로 이어진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제가 들이받은 차 안에는 저처럼, 한 가정의 버팀목이 타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홀로 키우는, 저보다 열약한 환경에 처한 가정의 아버지였죠.

저는 기적적으로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그 사람은 비극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혼수상태에 빠졌고, 저는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죠.

다행히 감시카메라가 상황을 녹화해, 제 행동에 대한 변호가 조금은 되었습니다만.

제가 물어야 할 벌금과, 그 분의 아이에 서린 핏발 선 눈은 제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겠지요.

그렇지만 선생님. 전 제 선택에 대한 후회는 없습니다.

다시 같은 상황이 온다고 해도 저는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는 걸 주저 없이 말씀드립니다.

문제는 제 가족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인은 이제 서른 중반을 넘겼음에도 불구하고도 조금씩 건망증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가끔 아예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잊어버리고 있기도 하고요.

간혹 밤마다 제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듯이, 혼란스러운 눈길에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제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말이 어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걱정스런 마음에 병원에 데려가 검진을 받으니 발달장애가 의심된다고 합니다.

분명 그런 징후는 없었는데 말이죠.

선생님. 밤마다 제 머리맡에서 피흘리며 절 노려보는 건 충분치 않으셨나요?

제가 선생님의 아이에게 너무 미안하다며 진심으로 건넨 사과와, 제가 도의적 책임으로 내놓은 돈이 충분한 배상이 되지 않으셨나요?

원망스럽기도 하면서 이해합니다. 아이의 성장을 옆에서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억울하셨으면.

얼마나 사무쳤으면.

그런데 말입니다.

원망은 제게 쏟아주세요.

절 상처 입히고 절 힘들게 하고 절 고통 받게 만드십시오.

선생님이 원망을 쏟아야 할 것은 오롯이 저입니다. 제 가족이 아니라.

여기까지는 부탁이었고, 이제부터는 경고입니다.

선생님이 가족을 끔찍이 여기시는 만큼, 저 역시 가족을 위해서는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전 웃는 얼굴로 제 행동을 얼마든지 포장할 것이고, 제가 선망하는 선함은 헌신짝처럼 버릴 것이며, 기꺼이 지옥불로 뛰어들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선생님의 아이.

어여쁜 아이입니다. 힘든 일을 겪었음에도 굳게 이겨내려 하고 있고요.

어디 사는지,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친구는 누구인지, 어느 길로 하교 하는지.

저는 철저히 조사했습니다. 항상 제 옆에서 절 지켜보고 계신 선생님이 더 잘 아시겠지요.

제가 어제 무엇을 구매했고, 지금 제 안주머니에는 무엇이 있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전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제가 준비한 변변찮은 술상을 드시고, 부디 제 가족을 내버려 둬 주신다면.

저 역시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겁니다. 아니, 오히려 저 아이가 커 갈 때마다 제가 도움이 되겠다고 약속드립니다.

그러니 부디 좋은 곳 가시고, 저 역시 좋은 곳 가시기를 빌어드리겠습니다.

제가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는 건 오늘이 마지막일 겁니다.

부디 서로에게 좋은 선택 해주시기 바랍니다.

눈 그렇게 뜨지 마.

씨발 나라고 사람 못 찌를 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