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남자는 못생겼으니까 35점.
저 여자는 지저분해 보여서 28점.
저 남자는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옷을 거지같이 입었으니까 52점.
애초에 기대치 따윈 없었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실망감만 커져간다.
70억은 된다는 지구 인구. 냉철히 보자면 90퍼센트는 죽는 게 나은 수준이다.
겉으로 보기에도 그렇지만, 대부분은 속까지 되먹지 못한 인간들뿐이니까.
그래서 좋은 사람을 찾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관찰하는 이 작업은 괴롭고도 지루하다.
힘들고 지치는 작업이지만
매일 이렇게 번화가 카페 창문자리에 들러붙어 지나가는 사람을 쳐다보는 데는 깊은 뜻이 있다.
이상적인 사람. 완벽하게 나와 어울리는 이상적인 사람을 찾기 위한 작업.
성별. 나이나 인종도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내 옆자리에 앉을 수 있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면 된다.
어디 하나라도 부족한 사람과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다.
그게 내 다짐이고 마땅히 요구해야 할 나의 권리임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이미 얼음만 남아버린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빨대로 휘저으며 다시금 지나다는 사람들을 채점했다.
저 여자.
제법 반반하긴 한데 보나마나 수술로 뜯어고치고 업소나 다닐법한 여자니까 63점.
저 남자는 잘생겼지만 어깨가 너무 좁으니까 51점.
여전히 한숨만 나올 지경이었다.
못해도 90점은 넘어야 희망이라도 생길 텐데 커트라인 근처도 보이질 않는다.
역시 오늘도 꽝이구나 싶어 슬슬 일어나려던 그때,
남자 하나가 따뜻한 카페모카를 한잔 들고 와서는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가끔씩 이 카페에서 보이던 남자.
언제나 따뜻한 카페모카를 시켜서는 저 자리에서 한동안 책을 읽다 가곤 했다.
내 탐색 작업은 카페 밖은 물론 안에서도 멈추지 않기 때문에 그 남자도 진작 관찰했었다.
밝은 계열 니트에 손목에 찬 시계는 제법 고급져 보였고
안경을 쓴 채 책을 읽는 모습은 제법 지적인 것 같았다.
대신 피부가 어두운데다가 손가락이 짧고 헤어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 72점을 주었었다.
남자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미소를 띄우며 내게 가볍게 목례를 해 보였다.
보통이라면 모른 척 하겠지만, 이번엔 특별히 마주 고개를 까딱 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오늘은 머리를 새로 했는지 웨이브 펌을 한 모습이 꽤나 잘 어울려 5점정도 더 올려도 괜찮을 것 같았다.
77점. 한참 모자라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은 점수다.
집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왠지 신경이 쓰여서 조금 더 관찰 해 보기로 했다.
휴대폰은 최신형 아이폰. 1점 추가.
센스 있는 신발 1점 추가.
책을 집어 들고 독서에 몰두한다.
문학적 소양이 뛰어난 걸로 보이니 또 1점 추가.
눈썹이며 수염을 보니 관리를 열심히 하는 것 같아 2점 추가.
82점. 근래에 들어 이렇게 높은 점수를 얻은 사람은 없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억누르며 다시금 차분하게 남자를 살펴보았다.
카페모카를 가볍게 한 모금 마시고 입에 붙은 휘핑은 티슈로 가볍게 닦아 낸다.
품위 있는 모습을 보였으니 2점 추가.
책을 넘기는 모습이 천박하지 않고 우아하니 또 2점 추가.
살짝 걷은 소매 사이로 보이는 팔에 혈관이 두드러지니 2점 추가.
목덜미가 섹시하니 2점 추가.
이걸로 90점.
드디어 최소 조건에 충족하는 사람을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당장이라도 움직이고 싶었지만 우선은 참기로 했다.
이제 겨우 최소점수를 맞추었을 뿐이다.
결승선이 아닌 시작점에 선 것이다.
흥분감을 감추고 조금만 더 지켜보며 결격 사유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다시 보니 피부색이 그렇게 어두워 보이지 않는다. 3점 추가.
저 정도면 충분히 남자답고 예쁜 손이다. 3점 추가.
두꺼운 니트를 입고 있지만 그 안에 탄탄한 몸이 자리 잡고 있으니 또 3점 추가.
여자를 잘 알고 또 배려심 깊고 자상한 마음을 가졌으니 또 3점 추가.
내 여자를 위해 아낌없이 돈을 쓰며 손가락 하나 까딱 안하게끔 모든 걸 다해줄테니 5점 추가.
매일 밤 날 만족시켜 주고 쉴 새 없이 내 귓가에 사랑을 속삭여 줄 테니 5점 추가.
날 공주처럼 떠받들어 주고 비싼 외제 차에 날 태운 채 어디든 데려다 줄 테니 7 점 추가.
어떤 상황에서 내 편이 돼 주고 호텔 레스토랑에서 초호화 프러포즈를 준비 할 테니 8점 추가.
신혼여행은 해외 유명 관광지의 초호화 별장에서 보낼 테니 10점 추가.
이미 100점은 한참 넘어간 걸로 보이지만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관찰하고 평가해온 나기에 완벽하고 절대적인 파악이 가능하다.
때문에 알 수 있었다.
내 눈앞에 있는 저 남자는 나와 함께 할 자격.
아니 날 책임지고 미래를 함께 할 자격이 있는 남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 남자가 날 미치도록 사랑하고 있으니 마땅히 관용을 베풀어 주어야 한다.
적어도 날 사랑할 자격은 충분히 갖춘 사람이니까.
이제 내가 할 일은 그저 이곳에 고고하게 앉아 남자가 내게 다가와 사랑을 고백하길 기다리는 것뿐이다.
난 평소의 고고하고 단단한 자세를 풀고
언제든 그가 부담 없이 다가올 수 있도록 마음을 열었다.
분명 진중하지만 가벼운 농담으로 시작될 것이다.
내 기대 이상의 로맨틱한 말을 해준다면 추가 점수를 줄 의향도 있었다.
모처럼 기쁜 마음으로 그를 기다렸지만 남자는 왜인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5분이 지나자 슬슬 기분이 나빠졌기에 1점을 깎는 걸로 하고
만약 다음 5분 안에 다가오지 않으면 3점정도 더 깎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5분이 경과하기도 전에.
남자는 여자친구의 전화를 받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멀어져 갔다.
그 갑작스러운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여자친구.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 눈에 띄기 위해 그렇게 애를 써 놓고 여자친구라니?
부정 하고 싶었지만 남자는 분명 전화에 대고 ‘자기야.’ 라고 이야기 했다.
그 ‘자기’가 나를 향한 말이 아님은 확실했다.
난 언제나와 같이 차분하고 냉철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곧 결론을 낼 수 있었다.
어떤 한심하고 멍청한 여자,
아마도 27점 쯤 되는 쓰레기 같은 여자가 내 남자를 꼬셔낸게 분명하다.
약이든 최면이든 협박이든
뭔가 추악한 짓거리를 해서 이따위 터무니없는 상황을 만든게 틀림없다.
보통의 하등한 사람들이라면 아무것도 모르고 넘어가겠지만 나만은 다르다.
수십 번의 객관적인 자기 평가에서 100점 이하가 나온 적이 없는 완벽하고도 완벽한 나는
다른 멍청한 사람들과는 달리 모든 상황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다.
진실을 추리해 냈으니 다음에 할 일은 명확하다.
마녀 같은 그 계집을 찾아서 찢어버린 다음에 나만의 왕자님을 구출해 오는 것.
머릿속에는 이미 구출을 위한 완벽한 작전이 12개쯤 떠올랐으니 망설일 필요 없다.
50점도 안 되는 같잖은 것들이 주제 모르고 다가올걸 대비해
핸드백 안에는 염산이나 날붙이 같은걸 구비해 두었으니
남은건 이걸로 그 27점짜리 계집의 얼굴을 헤집어 놓기만 하면 된다.
가능하면 다시는 되돌릴수 없도록 눈코입을 조각조각 내서 사방에 던져버리고 당당하게 내 남자를 맞으면 된다.
다짐이 빠른 만큼 움직이는것도 빨랐기에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내 남자의 뒤를 쫒았다.
그 마녀가 내 남자에게 말을 거는 그 순간이 그녀의 최후가 될것이었다.
멍청한 여자에게 속은 덕에 5점정도 깎였지만,
그럼에도 140점은 되는, 나와 가장 잘 어울리고 내 옆에 있어 마땅한 완벽한 내 남자를 위해 난 다급히 움직였다.
By. neptun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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