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택배

"아, 진짜. 그럼 오빠가 지금까지 모솔이였다고, 정말?"

"어. 27년동안 처음 만난게 효린이  너야..."

"와, 대박. 그렇게 안 보이던데. 난 진짜 주변에 여자가 엄청 많은 줄 알았거든. 암튼 상준오빠, 그럼 우리 내일 만나서 뭐 할까?"

"띵똥-."

두 남녀의 조금은 상기된 듯한 통화 소리 너머로 냉랭한 금속성의 초인종 소리가 스며들었다.

"어, 오빠 잠깐. 내가 이따가 다시 전화할께. 그때 봐요옹..."

여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난해한 표정을 짓고는 현관으로 향했다.

"누구세요?"

잠시 머뭇하던 현관 넘어 밖에서는 이윽고 어떤 남자의 제법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민효린씨 맞으시죠. ㅇㅇ택배에서 지금 막 수화물이 도착했습니다."

"어, 택배 올게 없을텐데?" 

둔탁한 쇠문이 철컥거리는 비명을 토해내며 현관 밖 한 사내의 그림자를 맞이하였다.

"웃음소리가 밖에 까지 들리네. 새 남친 생기니깐 좋냐?"

여자는 흠칫 놀라며 재빨리 문을 닫으려고 했지만, 남자는 순간적으로 발끝을 걸어 제지 하였다.

"효린아, 내가 정말 잘못했어. 우리 그러니까 더도 덜도 말고 딱 10 분만 얘기좀 하자. 딱 10 분이야..."

"아니, 그러니까 난 이제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고. 진짜야!"

여자의 일방적인 태도에 남자는 표정이 일그러지며 재차 입을 열었다.

"너 진짜 이럴래. 야, 어떻게 우리가 이렇게 쉽게 헤어질 사이였어. 앞으로는 진짜 잘 할께. 술도 끊을게. 정말 미안해..."

"제발, 종민아. 이제 찾아오지도 말고 연락도 하지말아줘 부탁이야. 내가 이렇게 사정사정 할께..."

여자의 안쓰러움이 묻어나는 작은 절규에 남자는 희번득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럼 내가 니 남자친구부터 죽이고 와야 대화할 마음이 생기겠구나?"

남자의 실없는 토로에 놀란듯 여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 물어 보았다.

"뭐, 뭐. 다시 말해봐!"

"그러니까. 너, 아주 큰 실수를 하는거야. 크큭..."

차갑고 날선 미소를 머금으며 남자는 차마 해서 안 될 말을 내뱉고 있던 찰나 옆집에 사는 남자가 이 둘을 중재하려 다가가 입을 열었다.

"어이-."

전 남친이였던 종민은 옆집남자의 풍모와 기세에 눌려 아무말도 꺼내지 못 한채 숨죽여 서있을 뿐이였다.

"저기, 아가씨 도와드릴까요?"

안도의 표정을 내보이며 여자는 괜찮다는듯 약간은 단호하게 말을 꺼냈다.

"아니예요, 괜찮아요."

"야, 김종민. 너 헛소리 말고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얼른 가라!"

"..."

"아니, 이 봐요. 여자 분이 얼른 가시라잖아요!"

헤어진 전 여친과 옆집남자의 기세에 눌린 종민은 짧은 대답만 뱉고 계단을 내려갔다.

"네..."

그렇게 한 바탕, 꽤나 요란한 소동이 끝나고. 까맣게 덧칠 된 밤이 찾아와 총총 작은별들이 조곤조곤 수다를 나누며 다음날의 햇볕이 조심스레 미소를 지어왔다. 여자는 일어나 아침 일과를 마치고 어느정도 인지도가 있는 한 웹툰 플랫폼의 외주를 받아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아침깨 선선했던 바람도 그쳐 한낮의 햇볕이 쨍하게 내리 쪼일 무렵 조용히 집중하던 분위기를 산산히 박살내듯 그녀의 핸드폰은 낯익은 번호와 이름을 비추며 울리기 시작했다.

"부우우우웅-."

마치 급한 용건이 있는듯 너무나도 부산스럽게 울어대서 효린은 짜증이 섞인 한 숨을 토해내며 곧 핸드폰을 들었다.

"하아, 여보세요. 내가 전화도 하지말랬지. 너 왜 자꾸 그래?"

잠시 머뭇거리던 종민은 나즈막히 입을 열었다.

"아. 다름이 아니고 어제 일 사과하고 싶어서. 미안해 내가 술을 좀 많이 마셔서 취한 것 같았어. 그래도 우리 옛날에는..."

남자의 말이 차마 끝나기도 무섭게 여자는 다시금 단호하게 말을 꺼냈다.

"저기, 종민아. 내가 너무 힘들어서 그러니깐. 이제 연락좀 그만해줘. 응?"

"..."

효린은 재차 거절하였다.

"차단할께 잘 지내. 그동안 고마웠어."

통화종료 버튼을 누르려던 찰나 종민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저, 저기. 컴퓨터. 네가 내 생일날 사준 컴퓨터랑 나한테 준 선물들 다 택배로 보내면 되니?"

효린은 의외라는 생각이 들어 놀라며 입을 떼었다.

"괜찮아, 종민아. 필요없어 보내지마 안 보내도 돼."

그녀는 그나마 있는 정 없는 정을  소복히 담아 따스하게 대답해 주었다.

"아니, 효린아. 그 컴퓨터 안에 네 사진이랑 개인정보 다 들어있으니까, 버리더라도 니가 버려!"

그녀의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이에 아랑곳 않고 갑자기 쏘아부치듯 말을 꺼내는 종민 너머로 효린을 할 말을 잃어서 힘없이 대답하였다.

"알았어, 그럼 차단 한다..."

종민은 뭔가 할 말이 남았는지 재차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 그리고 내가 주는 마지막 선물도 같이 넣어서 보내니까 택배 꼭 열어봐. 크큭..."

그녀는 갑작스레 침체된 기분을 눌러담듯 통화종료를 꾸욱 눌렀다.  마음의 정리가 매우 힘들었지만 여자는 밀린 외주가 있었기에 이내 힘을 내고 열심히 작업에 몰두하였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들어온 외주작업도 차츰 마무리가 보여 효린은 뭔가 생각난 것이 있는듯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연결이 되지않아 삐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되오니..."

"오빠, 이거 들으면 바로 연락 좀 줘."

효린은 너무나도 걱정하는듯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어, 이상하다. 하루종일 연락이 안 되네. 무슨 일 생겼나?"

그녀는 하루종일 연락이 되지않는 상준의 행방에 일이 손에 잡히지가 않았다. 몇 시간이 지나갔을까, 퀭한 그녀의 표정 사이로 저녁의 어둠이 스며들어왔다. 한편 밖에서 작은 웅성거림이 느껴졌지만 차마 효린은 그것들을 신경쓸겨를이 없었기에 풀이 죽은채 그저 묵묵하게 있을 뿐이였다. 

"슈우우웅-. 끼익-."

밖에서는 자동차 시동이 꺼지는 소리와 함께 차 안에서 두 남자가 대화를 이어갔다.

"이 빌라 CCTV 없는거 맞지?"

"예."

"그럼 가서 문앞에 있는 택배 전부 훔쳐와라!"

이내 조수로 보이는 젊은 남자는 짧은 미소를 보이며, 차에서 내려 천천히 빌라를 향해 조용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남자가 어느정도 올라갔을때 저 만치서 택배 상자가 보였다. 도둑은 이 때다 싶어 택배 상자를 들어올렸다.

'어, 뭐야 왜 이렇게 무거워?'

순간적으로 무게를 직감한 남자의 시야 사이로 가파른 계단이 보여 남자는 '어, 어' 하는 외마디 비명을 뱉어냈다. 그때 마침 참으로 애석하게도 손이 미끄러지며 택배상자를 떨어트렸다.

'아이씨, 좆됐다...'

그 소리가 너무나도 거슬렸는지 이윽고 그때 그 옆집남자 집에 문이 열리며 사람이 나오고 도둑과 마주쳤다.

"어, 뭐야. 너 누구야?"

"으, 으악-."

도둑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고, 이윽고 효린의 집에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띵동-."

"누구세요?"

"아, 안녕하세요 아가씨. 옆집 사람 입니다. 근데 잠깐 나와보셔야 될것 같은데요?"

그녀는 무슨일인가 싶어 문을 열었었고. 옆집남자의 몇 마디 말과 함께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짧은 소동을 마무리하고 입을 열었다.

"이거, 아가씨 앞으로 온 택배상자 맞죠. 꽤 부피가 크네요?"

순간 그녀는 지난 날 전 남친 종민이 했던 말이 갑자기 떠올라 옆집 남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끄덕였고 옆집의 남자는 다시금 말을 이어나갔다.

"좀전에 어떤 도둑놈이 훔쳐가려다가 저한테 들켜서 도망갔는데,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옮겨드리기가 그래서요..."

생긴 풍모와는 다르게 꽤나 공손한 태도를 보이는 옆집남자의 말에 안심이 되는듯 효린은 너무나 고마운 나머지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어떻게 옮길지 궁리를 하던 찰나 옆집남자는 다시금 말을 꺼냈다.

"이거 부피도 엄청 크고 무게도 있어보이니까, 제가 집안까지 옮겨다 드릴께요!"

"아이고, 매번 신세만 져서 어쩌죠?"

"허허, 괜찮습니다. 저도 그쪽 만한 여동생이 있어서요..."

옆집남자가 희멀건 미소를 보이며 택배를 옮기려던 그 순간 뭔가를 직감한듯 소리쳤다.

"어라, 이거 뭐야. 이거 피 잖아?"

옆에 있던 효린의 머릿속은 곧 멍해지며 그때 그 날 종민과 대화했던 또 연락했던 순간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그럼 내가 네 새로운 남친부터 죽이고 올께. 너 크나 큰 실수를 하는거야. 아 그리고 내가 주는 마지막 선물도 같이 넣어서 보내니까 택배 꼭 열어봐. 크큭...'

넋 나간 사람처럼 머뭇거리며 서있는 효린을 달래며 옆집남자는 입을 열었다.

"뭔지 확인해 볼까요?"

"자, 잠깐만요..."

다행히도 그녀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혹시나 싶어 들고나온 핸드폰에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루-."

'서, 설마."

"연결이 되지않아, 삐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 됩니다. 소리샘 연결 후 통화료가 부과 되오니 원치 않으시면 끊어주세요. 삐-."

줄어들어가는 전화 비프음에 효린은 정신을 잃을 뻔했다.

'설마, 저 안에 오빠가?'

옆집남자는 힘없이 주저앉은 그녀를 다독이며 이내 놀란 마음을 추스르고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저, 아무래도 경찰에 신고해보는게 낫겠죠?"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지역구 경찰서 형사차, 동네 지구대 순찰차 그리고 어느 병원 응급실 구급차가 서로간의 시합을 하듯 사이렌을 높히며 달려왔다. 이 들의 소음이 얼마나 컸는지, 이 작은 동네의 적막한 거리를 순간적으로 가득 메우기에 충분했다. 이윽고 차에서 내린 형사와 순경, 응급 구조원들은 사건 현장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효린과 옆집남자의 현장진술을 들은 한 형사가 택배상자를 열어보았는데, 이 둘은 상당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헤어진 전 남친 김종민의 시체인 것이였다.

"어, 김종민. 니가 왜 여기에?"

"맞죠, 저번에 아가씨 따라 다니던 그 스토커 놈?"

"예, 맞아요. 전 남자친구 였던 사람..."

이 둘을 지켜보던 응급 구조원이 입을 때려던 찰나 다급하게 울리는 혜린의 휴대폰은 그녀를 놀라게 만들었다. 

'자기♥'

"잠시만요, 전화좀 받고요. 어 오빠, 무슨일이야 어디있었어. 왜 하루종일 연락이 안 된건데?"

다급한 그녀의 핸드폰 너머로 상준의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아, 미안. 핸드폰 액정이 나갔어서, 지금 막 수리 마치고 가는 길이야. 무슨 일 있어?"

수 분의 시간이 지나고 다급한 발걸음으로 상준이 뛰어와 소스라치게 놀란 효린을 껴안아 달랬다. 출동한 응급 구조원과 경찰은 사인을 주고 받더니 서로 입을 열었다.

"택배상자 안에 있던 사람은 김종민 군으로 확인 되었습니다. 칼을 소지한 것으로 봐서는 나쁜 의도 였던 것 같네요."

효린은 너무도 놀란 나머지 상준의 품안에서 오열하며 입을 열었다.

"어떤 의도요?"

"아무래도 전 남친이였던 사람이 보낸 물건이니 혼자서 열어 볼거라 생각했겠죠. 그리고 상자를 여는순간 나와서 아가씨, 당신을 죽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을 택배도둑이 실수를 해서 떨어트리는 바람에..."

"아, 선생님. 저도 좀 말해볼께요. 김종민 군의 사인은 뇌진탕으로 인한 즉사인 것 같아 보입니다. 방금 순경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말이죠. 저희도 발견했을때 좀 놀랐는데, 바로 바이탈 체킹을 해보니 심장이 멈춘지는 좀 된 시간이였던 것 같더라구요. 하아, 이거 참..."

이 난잡한 상황을 애써 비웃기라도 하듯 종민의 시체는, 너무나 행복한 미소를 지은채 피를 머금으며 점점 차갑게 식어갔다.

by. 나.마.7.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