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의 사형집행.

검붉은 색으로 온갖 곳에 점철된 벽, 번호가 매겨진 죄수복을 입은 사람들. 그리고 날카롭게 날이 선 커다란 *단두대를 앞에 두고 기괴한 가면의 남자는 굳게 정체된 침묵을 삽시간에 파하며 여러 군중들에게 공지 하듯이 말을 꺼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어제까지 실시했던 전기의자가 너무 야만적이라는 의견이 분분해서, 오늘부터 처형 방식을 바꿔보았습니다. 이건 단숨에 끝나는 거니깐, 너무 겁먹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흐흐흐..."

76번의 남자는 이 상황이 너무나 무서웠는지 벌벌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들 그 남자와 마찬가지로 질겁하며 가면의 남자가 내뱉은 말에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자, 그럼. 어제 75번까지 했었나요. 그럼 76번 나와주십시오. 금방 끝나니 너무 겁먹지 마시고요. 흐흐흐..."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던 76번 남자는, 그 어떠한 저항조차 하지 못 한채 여러 군중들의 눈치를 힐끔힐끔 살피더니 곧 단두대 쪽으로 발을 떼었다. 남자의 불안정한 호흡이 온 사방에 퍼져왔다.

"허, 억. 허억..."

묵묵히 지켜보는 여러 군중들과 77번의 남자는 '우리의 말로가 저렇겠거니' 하며 눈을 떼지 못 할 뿐이였다. 아니, 그저 이 상황을 넋이 빠진 사람들 마냥 바라볼 뿐이였다. 이윽고 단두대 앞에 76 번 남자는 그곳에 몸을 뉘이고, 가면의 남자가 말하는 '사형집행'이 시작되었다.

"흐흐흐. 금방 끝나니깐 조금만 참아봅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즐거운 듯한 가면의 남자는 기괴한 자신의 얼굴이  덮고 있는 가면에 유리컵 마냥 투영되는 것처럼 표정을 바꾸며 처형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 순간 철컥 소리와 함께 76번 남자의 머리가 단두대 앞, 흥건한 피와 함께 나뒹굴었다. 채 감지도 못한 섬뜩한 분위기의 눈이 77 번의 남자 시선에 마주치며 그는 곧 꿈에서 깨어났다.

"하아, 하아..."

거친 숨소리가 방 모서리 구석구석 스며들며 남자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번호가 점점 가까워진다. 다음은 내 차례인데, 이런 꿈 꾸지 않을 수는 없을까?'

남자는 잠도 자는둥 마는둥 하며 이른 아침 꽤나 선명한 햇살을 맞이했다.

'그래 오늘은 용하다는 당집이라도 가야겠어...'

어느덧 시간은 지나 나름 선명했던 햇살이 날카롭게 내리부치는 오후 2시. 부처상이며 색동저고리며 *오방기와 향에 온갖 무속신앙 용품으로 즐비한 당집에서 무당과 77번 남자는 대화를 이어나갔다.

"흠, 꿈에서 사형집행이라. 그것 참 묘하구먼."

"네. 꿈에서 하루도 안 빠지고같은 꿈을 계속 꾸고 있어요. 이제 오늘쯤이면 제가 죽을 차례인데 무슨 방도가 없을까요?"

무당은 이내 생각이 난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꺼냈다.

"아, 맞다.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일세. 내가 신내림을 막 받을 무렵 여기에서 무당 일을 하시던 스승님이 나에게 전하셨던 말인데, 그거 상당히 위험한 꿈이라네!"

남자는 그저 무당의 말에 귀기울이며 숨 죽인채 경청할 뿐이였다. 무당은 이런 그를 보고 재차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자네가 방도를 원하니 내가 알려줌세. 그러니까 말이여, 꿈속에서 꿈인 상태를 자각하는 방법이 있다네!"

"네, 뭐라고요?"

"아니 그러니까, 꿈속을 자각하는 방법!"

남자는 무당의 미심적은 말에 의아해 하고 고개를 내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 선생님. 그게 안 되니까 그렇죠. 막상 꿈을 꾸면 현실처럼 너무 생생하니까요..."

무당은 못 마땅해 하는 사내를 보며 넌지시 젯 상에 타오르는 향불을 가르키곤 대화를 이어나갔다.

"허허, 현실 자각이라는게 있다네. 이 현실 자각이란 말이지, 특정 행동을 통에 그 상황이 꿈인지 생시인지 파악하는 거라네. 만약 자신이 꿈이란 것을 인식하고 또 꿈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말하는 순간, 눈 앞의 모든 것들은 저기 희뿌옇게 피어나 사라지는 향의 연기처럼 말끔히 사라지게 될 거라네. 거, 영어로 뭐였지. 루, 아. *루시드 드림처럼 말이지. 어려울 거 없다네."

어느정도 이해한듯한 남자는 무당에게 첨언을 구하는 눈치였다.

"저기, 선생님. 그, 현실자각이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고개를 끄덕거리며 무당은 설명하였다.

"자네의 손으로 코를 막고 숨을 쉬어보게나, 숨이 쉬어지나. 안 쉬어지지."

남자는 무당의 터무니 없는 말에 반박하였다.

"아니 선생님. 손으로 코를 막았는데 어떻게 숨이 쉬어집니까?"

무당은 슬며시 미소를 보이며 재차 말을 이어나갔다.

"옳커니, 바로 그거일세. 지금은 현실이라 불가능 하지만, 꿈이라면 쉬어질 거라네. 이렇게 하면 강제로 말이지, 꿈이란 것을 인식할 수 있을 걸세."

"오호!"

신기한듯 작은 탄성을 내보이던 남자의 행동을 단박에 끊고 무당은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흠. 또 하나 설명하건데, 꿈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이 방도에 대해 발설을 하면 아니 될세. 되려 위험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네. 명심하게나..."

"아, 감사합니다. 선생님. 복채는 얼마나..."

지갑을 꺼내려던 남자의 손을 작게나마 제지하며 무당은

"많은 돈은 필요없다네. 단지 그냥 점심공양을 한다 생각하고 딸랑 만원 한 장만 줘도 괜찮네. 자네 사정도 너무 딱하고 또 젊은 친구기도 하고 말이야. 대신 말이지, 꿈속에서 이 방도에 대해 절대로 절대로 말해서는 안 되네. 그럼 무운을 빔세."

이에 남자는 '아직도 세상은 따스하구나' 생각하고 무당을 향해 감사하다며 인사를 건내고 당집을 빠져나왔다.

'역시. 당집에 가길 잘 했어!'

남자는 조금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길을 나섰다.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다. 이제는 모든 속박을 벗어 날 수 있는 것처럼, 마치 붕붕 날아다니는듯한 기분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집 앞 골목에서 낮익은 실루엣이 말을 걸어왔다.

"어, 병건아. 이병건!"

꽤 이쁘장한 용모의 아가씨가 남자를 향해 인사했다.

"와, 쏘영이 아니야. 쏘영아 내가 쏠게 카페나 가자."

남자와 여자는 곧 카페에서 이러니 저러니 학점 알바 등등 여러 주제로 대화를 하며 따스한 햇살아래 피워나는 해바라기 꽃 처럼 이야기를 만개해나갔다. 문득 여자는 갑작스레 생각이 들어 약간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의 꿈이야기를 꺼내려 했다. 남자는 순간적으로 여자의 행동에 직감하며 고개를 끄덕거리곤 맞장구를 쳐줬다.

"쏘, 표정이 안 좋네. 무슨 일 있어?"

"아, 사실은 나 요즘 잠드는게 너무 무서워."

"왜?"

"요즘 들어서 이상한 꿈을 꾸거든. 사람들은 번호가 적힌 죄수복을 입고 있고, 광대같은 사람이 번호를 말하면 앞으로 나가서 차례대로 사형을 당하는 그런 꿈..."

사뭇 진지해진 여자의 눈빛과 입술을 맞이한 남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 그렇구나..."

동조하는 남자의 말을 뒤로 하고 그녀는 재차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꿈에서 내 번호가 80번이거든. 어제는 76번까지 사형당했어. 이대로 가다가는, 곧 내차례인데 무섭다 정말..."

"하아, 괜찮을 꺼야. 쏘, 그런 꿈은 개꿈일 꺼야. 해봤자 꿈인데 별일이나 있겠어?"

"그렇겠지?"

"그럼 아무일도 없을꺼니까 걱정하지말고 푹 자라. 쏘~."

애써 다정하게 여자를 위로하던 남자는 괜찮다는듯 엷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다독거렸다. 짧은 만남을 끝내고 집에 온 남자는 일찍 잠을 청하려 했다. 베게 맡에 머리를 뉘이며 남자는 곧 생각에 잠겼다.

'소영이도 나랑 같은 꿈을 꾸고 있었던 건가. 전염병도 아니고 참. 나도 이렇게 무서운데 그 애도 오죽하겠어. 하아...'

남자는 이윽고 꿈나라로 향했다. 검붉은 색으로 온갖 곳에 점철된 벽, 번호가 매겨진 죄수복을 입은 사람들. 그리고 날카롭게 날이 선 커다란 단두대를 앞에 두고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기괴한 가면의 남자. 또 그 꿈안에서 꽤나 낭낭한 목소리가 전해져왔다.

"흐흐, 다들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지옥의 꿈나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어제의 처형방식은 모두들 만족스러우셨나요. 자, 그럼 오늘도 사형집행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흐흐흐..."

남자는 공지사항을 떠벌떠벌 외치는 가면의 남자가 눈치채지 못 하게 고 개를 힐끗 돌려봤다.

'아, 소영이잖아, 소영이 맞구나. 근데 진짜 같은 꿈속이라니...'

말도 안 되게 우스운 상황이라 남자는 그저 고개만 떨굴 뿐이였다.

'하아, 소영아...'

기괴한 가면의 남자는 다시 입을 열어 사람들에게 외쳤다.

"자, 그럼. 기세를 몰아서 오늘도 재미있는 사형집행을 시작해보겠습니다. 거기 계신 77 번 남자 분 나와주세요, 이 커다란 단두대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의 따듯한 피를 느끼고 싶다네요. 흐흐흐..."

병건은 순간 낮에 무당에게 들었던 방도가 떠올라 코를 막고 천천히 숨을 쉬었다. 놀랍게도 숨이 쉬어졌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병건은 큰소리로 외쳤다.

"이건 꿈이야. 사라져, 당장 사라져!"

"흐흐, 미친놈..."

단말마의 욕설을 내뱉던 가면의 남자와 수 많은 군중들은 무당이 말했던 향 불의 연기처럼 하얗게 퍼져가며 일제히 사라져갔다.

"헉, 하아. 아하하, 아하하하. 아, 이게 진짜 되네. 하하하하."

이윽고 눈을 뜬 병건은 안도의 탄식을 뱉어내며 기뻐하였다. 자리에 일어나 마자 너무나도 기쁜나머지 그동안 만나지 못 하였던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동네 치킨집에서 만나자 라는 언질을 건내고 들뜬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하였다. 어느덧 시간은 저녁이 되어 그 는 준비를 하고 치킨집을 향해 갔다.

"딸랑-"

가볍지만 경쾌한 치킨집 풍경 소리가 퍼져나가며 창가 쪽 구석 자리에 낮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병건은 상기된 목소리로 그 들에게 인사를 건냈다.

"여, 다들 간만이네. 정환이도, 쏘영이도. 하하, 그나저나 쏘는 여전히 분귀기가 침울하네. 아이고오, 이 아가씨야 아직도 안 풀렸어?"

"하하, 건아. 말도 마라. 요즘 무슨 고민거리가 생겼는지 AI마냥 형식적으로만 말하더라. 근데 너는 뭔가 표정이 밝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냐?"

상기된 얼굴로 슬쩍 웃어보이며 병건은

"아 그럴 일이 있어. 드디어 거지같은 것들한테 도망쳐 나왔거든!"

"거지같은 것들이라니. 야 우리가 아무리 얻어먹는다고, 그런 드립 치는 거 아니다. 임마!"

당황해 하는 정환에게 남자는 멋적게 웃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아니, 오해하지 말고 임마. 그리고 오늘은 내가 쏜다고 했잖냐. 먹고 싶은 거나 시켜, 얼른. 암튼 오늘 거지같은 것들 한테 해방이 되서, 졸라게 기분 째진다. 하하!"

"아아, 알겠어. 여기 *왕갈비 치킨이 잘 나간다는데, 이거나 시킬까. 어떠냐 소영아 난 이거 먹고 싶어. 야, 쏘. 대답좀 해!"

친구 정환의 주문에 들은채 만채 식어버린 시선을 내리며 소영은 제법 침체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점점, 다가오고 있어. 내 차례가 다가오고 있다고!"

소영의 갑작스런 대답에 정환은 적잖히 놀래며 말을 꺼냈다.

"무슨소리야. 무슨차례?"

정환의 말이 끝나자 마자 병건은 그 둘을 두리번 거리며 무당이 알려준 방도에 대해 설명하려 하였다.

"걱정마. 그 악몽에서 벗어나는 방도를 알고 있으니까."

소영은 놀란 토끼눈을 하며 입을 열었다.

"오. 정말. 어떻게?"

놀란 소영과 의구심이 들어 고개를 갸웃거리는 정환을 마주하며 병건은 설명을 이어나갔다.

"봐봐. 손으로 코를 막고 숨을 쉰다면 어떻게 될까. 숨이 안 쉬어지겠지. 근데 꿈에선 쉬어져. 왜냐, 꿈이니깐. 그렇게 스스로 꿈이란 것을 자각하면, 그동안 널 괴롭혔던 것들한테 해방 될꺼야. 한번 해봐."

병건의 나름 진지한 설명에 정환은 토를 달며

"에이, 그런 거 다 미신 아니냐..."

부정하는 정환에게 눈치를 주며 병건은 주의사항에 대해 알려주었다.

"대신. 이 방도로 자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꿈속에서는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알겠지?"

설명하던 병건과 애써 부정하는 정환을 바라보던 소영은 왠지 모르게 낯선 분위기를 풍기며 묘한 미소를 띄우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 그거 였구만. 그렇게 도망친 거였구만. 흐흐, 흐흐흐흐...."

흠칫 놀라는 병건의 시야에선 치킨집 내부의 온화했던 조명은 온데 간데 보이질 않았고 온갖 곳에 검붉은 색으로 점철된 벽, 번호가 매겨진 죄수복을 입은 사람들. 그리고 날카롭게 날이 선 커다란 단두대가 보였다. 옆에 있던 소영의 모습은 기괴한 가면의 남자가 되어 날카로운 웃음소리를 무섭게 내뱉으며 그를 포박하고 놓아주지 않았다.

"자, 어제 문제가 생겨서 제대로 집행이 안됐죠. 기다리시는 분들이 많으니, 오늘은 제대로 해보겠습니다!"

군중으로 웅성거리던 꿈속은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아, 아아. 이러면 현실자각을 못 하는데...'

다급해진 그의 온갖 힘을 쥐어짜내는 저항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가면의 남자는 단두대로 그를 데리고 갔다.

"자자 갑시다, 겁먹지 마세요. 금방 끝납니다. 흐흐흐..."

어찌나 단단하게 포박했는지 병건은 몸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는듯 했다.

'말이 안 나와 몸에 힘도 안 들어가고. 아, 안 돼 이거 놔...'

이내 병건의 몸은 단두대로 뉘어졌고 가면의 남자는 기괴한 표정을 보이며 그의 귀에 나긋하게 속삭이듯 말했다.

"이봐, 어제는 잘 도망쳤지. 오늘은 운이 없네, 잘 가요..."

단두대의 시퍼런 칼날은 곧 떨어지고 가면의 남자는 그의 고통을 즐기는 듯 흉측하게 웃으며 병건의 시야에서 서서히 아주 서서히 사라져 갔다. 이윽고 병건이 눈을 떴을 때는 동네에서 제법 큰 종합 병원의 응급실이였다. 상당히 거북한 병원 특유의 냄새가 그의 코를 자극했다.

'으,으으...'

그때 마침 낯익은 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좀 괜찮아, 건아?"

여사친 소영이였다. 그녀는 초췌한 병건을 바라보며 안쓰러워 하고 있었다. 병건은 그녀의 물음에 천천히 입을 떼었다.

"어, 어떻게. 된 거야?"

그를 묵묵히 바라보던 그녀는 이 상황이 참 애석하다듯이 그와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건아, 너 말야. 치킨집에서 술에 취해 자다가 갑자기 의식이 없다고 정환이가 병원으로 데리고 왔어. 걔가 있었길래 망정이지 나도 울고불고 하면서 따라왔어. 이젠 좀 괜찮아, 걱정된다 야..."

물끄러미 바라보며 걱정하던 소영을 고맙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병건은 입을 열었다.

"그래, 역시 꿈이였구나."

그의 대답에 뭔가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그녀는 재차 말하였다.

"꿈, 꿈이라니?"

병건의 그녀의 물음에

"나, 사실 요즘 악몽을 좀 꾸었거든..."

"어떤 악몽인데?"

그의 대답에 병건은 모든게 끝난듯 힘없이 토로하였다.

"저, 저번에 네가 말한 그 꿈이랑 같아. 번호가 있는 죄수복을 입고 차례대로 사형을 당하는..."

며칠을 골머리 앓던 꿈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들은 소영은 깜짝 놀라며 입을 열었다.

"뭐, 그래서. 그래서 너는 몇 번이었는데. 건아?"

"나는 77 번이었고 꿈에서는 죽었는데 현실에선 다행히 살아있네 위험하긴 했지만..."

그는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들어 재차 대화를 이어나갔다.

"잠깐, 쏘. 네가 80 번이라 하지 않았어. 그럼 너도 얼마 안 남은 거 잖아?"

놀라는 눈치의 그를 다독이며 소영은 입을 열었다.

"아, 걱정마. 해결법을 알아냈 거든!"

걱정하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소영은 반색하며 설명하였다.

"그, 저번에 네가 말한 현실자각이라는 거. 특정행동으로 꿈인지 현실인지 확인하는거 말야. 예를 들어 손가락을 뒤로 꺾어봐서 만약에 꺾인다면 꿈이겠지?"

설명을 이어나가던 그녀의 대답에 병건은 신기해하며 말하였다.

"오. 손가락 꺾기. 그런 것도 있었네, 미리 좀 알려주지..."

제법 놀라워 하는 병건의 시선을 마주하고 소영은 기세등등하게 시범을 보이며 입을 열었다.

"응, 어제도 이 방법으로 그 꿈에서 깼거든. 봐, 현실이면 꺾일 리가 없는데!"

"뚜둑-."

상기된 기분으로 시범을 보이던 그녀의 손가락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꺾였다. 이내 곧 활기찬 소영의 표정은 보기좋게 어두워지고, 병상에 누워있던 병건은 기분나쁜 웃음소리를 내며 입을 열었다.

"흐흐흐, 오호. 네년은 어제 그런 방식으로 달아난 거 였구나. 이제는 못 도망쳐. 흐흐흐흐흐..."

그의 모습과 병실 내부는 온데간데 사라져 없어지고 소영의 시야에는 오직 검붉은 색으로 온갖 곳에 점철된 벽, 번호가 매겨진 죄수복을 입은 사람들. 그리고 날카롭게 날이 선 커다란 단두대를 앞에 두고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기괴한 가면의 남자만이 기분 나쁜 소리를 내뱉은 채 웃고 있을 뿐이였다.

주석

1: 단두대 （Guillotine）

프랑스 혁명 당시 프랑스에서 발명된 사형기구. 참수형의 발전형으로 볼 수 있다. 처음에는 루이제트（louisette）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가 언제부턴가 길로틴（기요틴）으로 알려졌다.

2: 오방기 

흔히 무속용품으로 알려져있다. 무속인들은 보통 오방기나 쌀 동전 향등을 이용해 신점을 보거나 한다. 색은 각각 적색（혹은 자색） 노란색 파란색 녹색 흰색이 있다.

3: 루시드 드림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꿈을 꾸는 것이다.

자각몽（Lucid Dream）이라는 용어는 1822년 데르베드생드니 후작 마리장레옹（Marie-Jean-Léon, Marquis d'Hervey de Saint Denys）이라는 이름의 프랑스 중국문화학자가 처음 이름 붙였다. 꿈을 꾸는 중에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깨닫거나, 처음부터 꿈이라고 알고 있는 꿈을 꾸거나, 인위적으로 유발하는 등의 상태에 따라 세부적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또한 꿈이므로 당연히 REM 수면 도중 일어난다. 높은 인지능력을 갖춘 사람이 자각몽을 꿀 확률이 높다고 한다.

4: 왕갈비 통닭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경기 수원의 대표적인 음식인 왕갈비와 우리네 국민들의 대표적인 메뉴인 치킨이 합쳐진 콤보요리（혹은 어레인지요리）

타지역에서도 꽤나 명성이 자자한 수원의 통닭거리에서 가게를 운영하던 김경재 사장이 2017년경에 연구, 고안한 메뉴이다. 이 지역 출신인 사장은 '만약 치킨이란 메뉴가 왕갈비 맛을 내면 어떨까'하고 재미있는 발상에서 아이디어를 냈고 잠도 다 설쳐가며 몇 달간의 연구 끝에 개발했다 전해진다. 일반적인 왕갈비 양념에 치킨 튀김옷과 잘 어울리는 '비법소스'를 추가했다. 사장의 기대와는 달리 처음보는 거무튀튀한 양념에 대중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 한다（되려 '이딴 메뉴가 다있냐'는 진상의 말도 들어야 했다고...）. 하루에 엄청 많이 팔려봤자 고작 10마리 정도였다 한다.（눈물을 머금고 2개월만에 가게 메뉴판 라인업에서 제외 시켰다고ㅠㅠ）. 그러다가 2년 후인 2019년, 영화 극한직업이 대흥행을 해서 폐지시킨 메뉴를 되살려 놓는데 성공을 하게 되었다한다. 지금은 수원의 대표적인 치킨 메뉴로 자리 잡게 되었다. （언제 왕갈비치킨맛 나는 만두나 빚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