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의원님?”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씁쓸했다.

“내 자네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네만, 나도 그리 녹록지는 않아서 말이야.

그러니 너무 매정하게 생각지 말고 이해해 주게.

자네 어머님 병세가 그리 가볍지 않아 귀한 약제가 적지 않게 들어간다네.

나도 돈이 있어야 약제도 사고 탕약도 달이고 할 거 아니겠나?

그간 고생하는 자네를 봐서 외상으로 주긴 했지만,

이제 더는 사정을 봐줄 수가 없어.

내 외상값 닦달하지는 않겠네만, 이제 약 먼저 내주기는 힘들겠네.”

의원님이 원망스럽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군소리 없이 비싼 약을 내어 준 것만 해도 감사하기 그지없을 노릇이었으니

오히려 자신 쪽이 지나치게 염치없어 뵐 처지였다.

그럼에도 그저 돌아서지 못하는 건 어머님의 병세가 원체 깊어 서둘러 손을 쓰지 않고서는 못 배길 지경이었기 때문이었다.

“의원님. 제가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어머님께서 잠도 못 주무시고 힘들어하십니다.

그러니 한 번만. 다만 한 첩이라도 내어주시실 수 없겠습니까?

돈은 제가 무슨 짓을 해서라도 마련해 오겠습니다.”

“허허…. 참. 그렇게까지 애원하니, 내 사람 된 도리로 2첩 내어주겠네.

하지만 이게 정말 마지막이야.”

눈물까지 글썽이며 한동안 고개를 조아리며 감사를 표하며 내어주시는 약을 받아 나왔다.




혹여나 흘릴세라 약을 소중하게 품에 안고 집으로 가고 있자니 멀리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용아! 잠깐 기다려!”

동갑내기 친우 호정이가 당장이라도 쓰러질듯한 몰골로 내게 달음질쳐 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나 빨리 가서 어머님께 약 달여드려야 돼.”

가까이 다가온 호정이는 광대가 툭 튀어나온 모습을 한 채 잠시 숨을 골랐다.

본래부터 얄팍한 체구였지만 요즘 들어서는 꼭 살이 쥐어 짜내진 양 말라가고 있었다.

“용아! 너 돈 필요하지?”

다짜고짜 던져진 물음에 난 반색하며 대답했다.

“그럼! 안 그래도 당장 어머님 약값이 필요한 참이었어.

왜? 어디 괜찮은 품 거리라도 있어?”

호정이는 짐짓 불안한 얼굴로 사방을 둘러보더니 은근하게 말했다.

“이따가 해 넘어가면 마을 장승 아래로 나와. 혹여나 누구한테 말하면 안 된다?”

누가 들을세라 후다닥 자리를 피하는 호정이를 보며 조금 의아해했지만,

지금 당장은 어머님 약이 먼저였다.






약을 드시고 모처럼 편히 잠드신 어머님 곁을 잠시 지키고 있자니 금세 해가 떨어져 왔다.

역시 돈이 필요하다.

이제 약 없이는 잠들지 못하시는 어머님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돈을 구해야 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각오를 다지며 장승 아래로 가자 호정이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너 이 일에 대해서는 절대 절대 함구해야 해. 알아들어?

너랑 나랑만 알고 있는 거야.

이거 잘되면 우리 둘 다 큰돈 만질 수 있어.

너희 어머님 약값 정도가 아니라 큰 고을에서 명의님을 모셔올 수도 있는 거야.”

호정이는 그렇게 말하며 날 이끌고 뒷산을 올랐다.

어둑한 산길이라지만 달빛이 밝았기에 길이 나쁘지는 않았다.

“무슨 일이길래 이 오밤중에 산을 올라? 밤 짐승이라도 잡으러 가는 거야?”

호정이는 대답 대신 크게 숨을 들이쉬고는 설명했다.

며칠 전에 이상한 장사꾼 하나를 만났어.

그 사람이 말하길.

이 산에 귀한 약초가 싹터있으니 그걸 잘 키워서 캐오라는 거야.

큰돈을 주겠다면서.

그 장사꾼이 일러준 데 가서 그 귀한 약초 키우기 시작했는데, 나 혼자서는 벅차.

그래서 네 도움이 필요해.

우리 둘이 힘을 합쳐 그 약초를 잘 키워내는 거지.”

“약초? 아니 대체 얼마를 쳐준다기에 그 난리야?”

호정이는 혹여나 산새에게라도 들릴세라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쌀 100석. 온전히 잘 키워내면 100석 내어줄 거라 했어.

그러니까 나랑 반씩 나누자.

50석이면 너희 어머님 병환 정도는 싹 고치고도 남아.”

생각지 못할 정도로 많은 양에 입이 떡 벌어졌다.

귀한 약초라면 부르는 게 값이란 걸 잘 알고 있긴 하지만 대체 무엇이길래 그 정도 값어치를 하는 것일까?

“그 약초란 게 산삼이라도 되는 거야? 키운다는 건 또 뭐고?”

호정이는 다시금 주변을 살핀 후 내게 말했다.

“산삼 따위가 아니야. 훨씬 귀하지.”

마침내 도착한 그곳은 개울 옆 바위가 가득한 곳이었다.

습하고 해가 들지 않아 약초보다는 이끼가 잔뜩 자랄법한 그곳에 기묘한 풀하나가 나 있었다.

다섯 갈래로 갈라진 잎이 쭉쭉 뻗어있고 그사이에 검붉은 열매가 달린 것.

“혈삼. 이게 혈삼이라고 했어.

죽은 사람도 살릴 정도로 귀하디귀한 영약이야.

저 검붉은 열매가 완전히 새빨개 지면 다 자란 거래.

그리고 이게 뭘 먹고 자라냐면….”

호정이는 뒤춤에서 작은 칼 하나를 꺼내어 손바닥 안쪽에 생채기를 내었다.

이미 몇 번이나 이 짓을 했는지 호정이의 손바닥은 겹겹이 쌓인 상처에 딱지조차 들어앉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내가 말릴 새도 없이 호정이는 손바닥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혈삼에 흘려 넣었다.

마치 마른 재가 물기를 빨아먹듯 피를 취한 혈삼의 열매가 한층 더 붉게 물들어갔다.

“이렇게 키우는 거야.

어떻게든 나 혼자 해보려고 했는데, 한 명으론 턱도 없어.

짐승 피는 절대 안 되고 무조건 사람 피여야만 한 대.

그러니까 너랑 나랑 번갈아 가면서 이놈 목을 축여주자. 알겠지?

쌀 100석이야. 목숨값도 300석이 고작이라는데 그깟 피 조금에 100석이라니 수지맞는 장사 아니야?

신체 발부 수지부모 그딴 문자 쓸 생각은 하지도 말고.

어머님 병이 나으셔야 효도건 뭐건 할 거 아니야? 안 그래?”

마음이야 다소 불편했지만 적어도 그 말에는 틀림이 없었다.

때문에 말없이 칼을 내미는 칼을 받아들어 손바닥에 가져다 대었다.

“50석. 틀림없지?”

호정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지막 망설임이 사라졌다.

손바닥에서 느껴진 고통에 잠시 움찔했지만,

무리 없이 혈삼에 피를 흘려 넣을 수 있었다.

혈삼 열매는 한층 더 붉게 물들어갔다.




‘무리하면 안 돼. 욕심내서 피를 뿌려대면 얼마 안 가 혼절해 버릴 거니까.

하루하루 돌아가면서 딱 적당하게 먹이는 거야.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그렇게 해야 해.

다른 사람들은 못 믿어. 그러니까 우리 둘이 천천히 공을 들여보자.

비밀 꼭 지켜.

네가 그럴 리는 없겠지만 절대 배신하면 안 돼. 알겠지?’

호정이의 말을 떠올리며 혈삼에 피를 흘려 넣었다.

오늘로 엿새째.

벌써 세 번째 피주기 였지만, 혈삼 열매가 익는 데는 아직 한참 남은 것처럼 보였다.

병세가 나날이 안 좋아지는 어머님 생각에, 머리가 어질해질 때까지 피를 흘려 넣고는 비틀비틀 산을 내려왔다.

시간. 시간이 부족했다.

이제 와선 어디서 돈을 융통할 수도, 약을 구해 올 수도 없었으니 쌀이 50석 아니라 500석이라도

어머님 돌아가신 뒤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제는 말조차 잊고 그저 숨을 헐떡이며 누워계시는 어머님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피. 피가 필요하다. 돈이 필요하다. 그것도 아니라면 약이라도….

“약!”

혈삼은 분명 죽은 사람도 살리는 영약이라고 했다.

그거라면 어머님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모르긴 해도 그 정도 영약이라면 잘 달여 먹기만 해도 그깟 병세 따윈 금세 떨쳐낼 게 분명했다.

욕심 같아선 당장이라도 그 혈삼을 캐오고 싶었지만,

그래도 차마 호정이를 배신할 수는 없었다.

착잡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니 왠지 집안이 소란스러웠다.

“이보게 재용이! 이 시간에 어딜 갔다 온 겐가.

지금 어머님이 큰일이네. 내가 의원을 모셔왔으니 어서 들어가 보게!”

가끔 집에 들러 안부를 챙겨주시는 동네 어르신의 말에 난 다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어머님은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가쁜 숨을 몰아쉬고 계셨고.

의원님은 참담한 얼굴로 어머님 맥을 잡고 있었다.

“의원님. 어찌 된 일입니까? 어머님은…. 어머님은 괜찮으십니까?”

희망적인 대답을 기대했지만, 의원님은 고개를 저었다.

“너무 늦었네. 병세가 너무 깊어.

이 모자란 약사가 만든 약으로는 차도가 없으셨던 게지.

침을 놓아 드렸으니 고통은 좀 덜어질 테지만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들 것이야.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네.”

어머님의 괴로운 얼굴을 한동안 보고 있던 나는

안쓰러움에 자리를 뜨지 못하는 의원님을 뒤로하고 호정이에게 달려갔다.





“용이냐? 이 시간에 왜….”

눈앞에 호정이가 나타나자마자 난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호정아! 부탁한다. 우리 어머니. 우리 불쌍한 어머니가 오늘을 못 넘기실 것 같다.

지금 와서는 어지간한 약으로는 어림도 없어.

혈삼. 그 혈삼만 있으면 우리 어머님 살릴 수 있을 거야.

그러니 이렇게 무릎 꿇고 부탁한다.

그 혈삼 우리 어머님께 양보해다오.

그렇게만 해주면. 내가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 혈삼 값.

쌀 50석. 아니 100석! 내가 마련해볼게.

정말 몸을 팔아서라도 마련할 테니까 제발 부탁이다.

제발 우리 어머님 좀 살려주라.”

호정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하지만 곧 깊은 한숨을 뱉어내며 대답했다.

“그래. 사람이 중요하지 돈이 중요하겠어?

쌀 50석이고 100석이고 어머님부터 살리고 생각하자.”

“하…. 고맙다. 고맙다 호정아! 내가 진짜 이 은혜는 안 잊을게.”

“그래. 근데 일이 그렇게 간단치는 않을 거야.

그 혈삼. 바로 캐낼 수는 없거든.

그 장사치가 말하기를 설익은 혈삼은 독이나 다름없대.

이러나저러나 피가 더 필요해. 아주 많이.”

난 가만히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간신히 눌어붙은 상처에서는 옅은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호정아. 가자. 같이 가자. 그리고 부탁 하나만 할게.”





혈삼 앞에 서서 호정이가 양껏 피를 흘려 넣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열매는 검붉은색으로 아직 한참 피가 고픈 것 같았다.

어지러운지 관자놀이를 짚으며 손을 거둔 호정이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날 말리지 마.

내가 쓰러져도 피를 잘 먹일 수 있도록 해야 해.

열매가 익으면 그길로 혈삼을 캐다가 어머님께 가져다드려.

난 신경 쓰지 말고. 알겠지?”

호정이는 내키지 않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른손에 단단히 쥔 칼은 손바닥 대신 손목 깊숙이 파고들었다.

터져 나오듯 흘러나오는 핏줄기에 혈삼 열매의 붉은 기가 빠르게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용아! 정신 차려! 절대정신 놓지 마!”

다독이듯 외치는 호정이의 말에도 몸이 슬슬 말이 듣지 않았다.

무너지듯 쓰러지는 와중에도 혈삼을 향한 손은 거둘 수 없었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마침내 완연하게 붉은색으로 차오른 혈삼 열매를 보자마자

호정이가 달려와 마른 천으로 내 손목을 감쌌다.

“됐어! 해냈어! 저거 보이지? 이제 괜찮아! 그러니까 정신 바짝 잡고 있어!”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입안은 바싹 타들어 갔다.

뜨겁게 달군 쇠꼬챙이를 갈빗대 사이에 쑤셔 넣은 듯 가슴이 쓰라렸다.

그럼에도 혈삼이 익었단 사실. 어머님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마음이 평온해졌다.

정성 들여 땅을 헤집은 호정이는 거의 팔뚝만 한 혈삼 뿌리를 캐내어 내게 보여주었다.

마치 사람의 형상을 한 듯 고혹적인 자태의 붉은 뿌리.

그 신묘한 모습에 호정은 잠시간 넋을 잃은 듯 눈빛이 몽롱해졌다.

“호…. 호정아…. 우리…. 우리 어머니….”

간신히 뱉어낸 내 말에 호정이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 그래. 알았어. 내가 당장 가서 너희 어머님께 달여드릴게.

그러니까 넌 안심하고 몸 추슬러.

네가 죽으면 어머님이 얼마나 슬퍼하시겠어?

그러니까 절대 죽지 말고 정신 똑똑히 차려 알겠지?

금방 다시 돌아올게!”

날 듯이 산을 뛰어 내려가는 호정이의 뒷모습을 보며 차분하게 숨을 골랐다.

호정이 말이 맞다. 나도 살아야 한다.

내가 살아서 다 나으신 어머님 호강도 시켜드리고

호정이한테 은혜도 갚고 또 의원님께 빚진 것도 갚아야 했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아직 몸을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죽음의 문턱에서는 벗어난 듯 보였다.

‘호정이가 약은 잘 달여드렸을까?

어머니는? 어머니는 괜찮으실까?’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 내 귀에 저벅거리는 사람 발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일으켜 보려다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금세 포기하고는 누운 채 말했다.

“호정이냐? 어머님은? 괜찮으셔?”

하지만 들려온 대답은 호정이의 목소리가 아니라 음습하고도 딱딱한 목소리였다.

“사람을 잘못 보신 게로군요. 전 그 호정이란 청년이 아닙니다.

그냥 지나가던 장사치지요.”

힘겹게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엔 기묘한 도롱이를 쓴 사람이 서 있었다.

“어째 몸 상태가 좋지 않으신 듯한데, 혹 이것 때문에 그리 되신 겁니까?”

장사치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혈삼! 호정이가 어머님께 달여 들였어야 할 그 혈삼.

대체 왜 저 장사치가 저걸 들고 있는 것일까?

“조금 전에 산을 다급히 내려오던 청년에게 샀습니다. 쌀 100석을 어음으로 써주었죠.

혹 그이가 호정이란 청년입니까?

이상하군요. 마치 도망치듯이 다급하게 어음을 받아들고는 큰 마을로 가겠다고 하던데….”

장사꾼의 말에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호정이가 배신을?”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호정이가 약속을 어기고 장사치에게 혈삼을 팔아버린 뒤 도망쳐 버린 것일까?

배신을 당했다는 사실, 이용당했다는 괴로움보다는 어머님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그 혈삼은 제가 목숨을 걸고 키워낸 영약입니다.

그러니 제발 그걸 저희 어머님이 드실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게 없으면 저희 어머님은 오늘을 넘기지 못하실 겁니다!”

하지만 장사치는 고개를 저었다.

“대략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겠지만…. 제가 본디 장사치인지라 거저 드릴 수는 없습니다.

마침 제가 혈삼 씨앗이 조금 있으니 이걸 피워내 주시겠다 약속하신다면 어머님은 병이 나으실 겝니다.”

대답은 고민 없이 튀어나왔다.

“하겠습니다! 뭐든 할 테니 제발 어머님을 구해주십시오.”

장사꾼은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작은 씨앗을 꺼내어 들었다.

“이 씨앗을 삼키십시오.

그럼 이 혈삼 씨앗이 당신의 몸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당신의 피를 전부 빨아내어 꽃봉오리를 틔울 것입니다.

전 거기서 씨앗을 받아들 테고, 씨받기를 마친 혈삼은 다시금 새로운 피를 먹여 재배하는 거지요.

저에겐 씨앗들과 새 혈삼이 생기는 셈이고, 당신은 목숨 바쳐 어머니를 구해드리는 셈이지요.

그리하시겠습니까?”

대답은 필요 없었다. 즉시 입을 크게 벌리고는 장사치가 내 목구멍에 혈삼 씨앗을 밀어 넣기를 기다렸다.

거친 혈삼 씨앗을 삼킨 그 순간, 가슴이 째지는 고통이 찾아왔다.

피를 토하듯 꿈틀대고 있던 그때, 호정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용아! 괜찮아? 너 왜 그래? 혈삼은 어머님께 잘 달여드렸어.

드시자마자 금세 정신 차리셨고. 건강해지셨어.

널 보고 싶어 하시니까 어서 정신 차려. 어머님 뵈러 가야지!”

호정이! 역시 호정이는 배신을 하지 않았다.

장사치가 내밀었던 혈삼 역시 내가 키워낸 것이 아닌 다른 것임이 분명했다.

어머님도 건강해지셨다니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장사치의 말은 무엇이었을까?

“약속과 다르지 않습니까. 좋은 값을 쳐드린다 했건만 왜 혈삼을 다른 데 써버린 겁니까?”

호정은 그제야 장사치를 봤는지 흠칫 놀라며 대답했다.

“사람부터 살려야 할 것 아닙니까! 돈이 중하다지만 사람 목숨보다야 더하겠습니까?

아니, 그 전에 용이가 왜 이런 건지 말씀 좀 해보십시오. 뭐가 어찌 된 것입니까?”

호정이에게 무어라 말하고 싶었지만, 고통 때문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저 경련하듯 눈을 까뒤집으며 몸을 떨어댈 뿐.

“단기간에 혈삼에게 피를 너무 많이 준 까닭에 혈삼의 미움을 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대로 두었다간 금세 목숨을 잃고 말겠지요.”

장사치는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이건 혈삼의 저주 따위가 아니다. 장사치가 내게 먹인 혈삼 씨앗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를 알 리 없는 호정이는 애원하듯 장사치에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방법이 없겠습니까? 이제야 어머님이 괜찮아지셨는데 이렇게 죽으면 안 됩니다.

어떻게든 살려야 합니다. 방법이 없겠습니까?”

장사치는 대답했다.

“저렇게 된 이상 방법은 없습니다.

아마 저대로 목숨을 잃고 심장에서부터 새로운 혈삼을 피우겠지요.

그보다 약속을 어기셨으니 그 셈은 치르셔야겠습니다.

저에게 새 혈삼을 만들어 주셔야지요.

저 청년에게서 난 혈삼. 이전에 약속한 대로 제게 잘 키워서 가져다주셔야 합니다.

씨앗도 포함해서요. 물론 이는 계약위반에 따른 절차이니 값은 못 쳐 드립니다.

제가 힘겹게 싹틔운 혈삼을 남에게 줘버렸으니 그래야 이치가 맞지 않겠습니까?”

“아니 그런…. 당신은 온정도 없습니까?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 그런 망발을….”

장사치는 별다른 감정변화가 없는 듯 담담히 대답했다.

“온정은 온정이고 거래는 거래입니다. 그러니 이번엔 잘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죽은 저 청년을 욕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호정은 입을 다물었다.

그 잠시간의 침묵을 끝으로 나 역시 정신이 점차 흐릿해져 갔다.



By. neptun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