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냥이다!!!”

늦은 밤, 밖에서 들려오는 외침에 머리맡에 둔 몽둥이를 들고 뛰어나갔다.

둘러보니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의 마을 청년들이 횃불이며, 괭이 따위를 들고는 사방을 살피고 있었다.

“어디냐! 승냥이는 어디야?”

이를 갈며 소리쳤지만, 들려오는 것은 우물간 옆 김씨네 아낙의 서글픈 곡소리 뿐이었다.

“안돼... 우리 애.... 우리... 우리..둘째...”

김씨는 거진 반토막 나다시피 한 몰골로 제 마누라에 안긴 채,

파들거리며 둘째 아들을 찾고 있었다.

보아하니 승냥이떼가 김씨네 둘째에게 덤벼들었고,

어떻게든 막으려는 김씨를 저 꼴로 만든 뒤, 애를 물고 도망간 모양이었다.

이걸로 벌써 몇 번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껄떡껄떡 피를 토해내며 점차 눈에서 생기가 사라져가는 김씨를 보며 욕지거리를 뱉어냈다.

“이런 옘병맞을!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짐승 새끼들!

산에서나 살 것이지 뭣하겠다고 예까지 내려와 애꿎은 사람을 물어가!”

안 그래도 초상집 같은 분위기에서 마구 뱉어내는 욕설에 누구라도 나서서 뭐라 할 법도 하건만,

다들 착잡하게 고개를 숙일 뿐 누구하나 입을 여는 이가 없었다.

얼마 전 내가 승냥이에게 색시를 잃은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어서 인지도 몰랐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그놈의 승냥이떼를 잡아 죽이지 않는 이상

나도, 마을 사람들도 발 뻗고 잘 수가 없었으니 어떻게든 손을 써야 할 터였다.

아닌게 아니라 승냥이들이 내려온 후로 닭이며 소는 물론,

사람들까지 물어가는 바람에 농사일은커녕 밖을 제대로 나돌아 다니지도 못하는 처지였다.

끝내 숨이 넘어간 김씨를 잘 보내주고 나자 갈 곳 잃은 분노가 가슴속을 태우는 바람에

잠도 이루지 못하고 부득거리며 이를 갈기만 할 뿐이었다.




밤새 뒤척이다가 슬슬 새벽빛이 기어들어 온 것을 본 뒤에야

다시금 몽둥이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 어두운 지금 혼자 밖을 돌아다니는 건 위험한 일이지만,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놈의 승냥이들의 골통을 부숴놓든,

아님 나도 색시따라 난자를 당하든 끝장을 보자는 각오로 무작정 걸음을 옮겼다.

한동안 돌아다니고 있자니 멀찌감치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승냥이인가 싶어 몽둥이를 쥐어 든 채 다가갔지만, 마주한 것은 승냥이가 아니라 기묘한 차림의 사내였다.

비도 안오는데 얼기설기 엮은 도롱이를 걸치고는 찬찬히 다가오는 것이었다.

“뉘시오?”

내 물음에 그는 몸이 떨려댈 정도로 음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저 지나가는 장사치입니다.

찾으시는 물건이 있으실 듯하여 이리 먼 걸음을 했지 뭡니까?”

왠지 나쁜 느낌에 고개를 크게 저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렇게 한가하게 물건이나 보고 있을 시간이 없소.

지금 마을에 난리가 났으니 그 한 몸 건사하고 싶다면 서둘러 이곳을 떠나시오.”

“난리가 났다 하심은... 혹 승냥이 때문이 아닌지요?”

장사치의 말에 난 놀라며 대답했다.

“아니 승냥이에 대해 어찌 아시는게요?”

“알다 마다요. 늘상 귀를 열고 사는 장사치 인지라 한발 앞서 소문을 들었지요.

물론, 제가 찾아온 이유 역시 그것 때문입니다.”

좀처럼 의심이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 때문에 장사치에게 되물었다.

“뭘 어떻게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이 그리 간단치가 않소.

그놈의 승냥이가 한두마리가 아니오.

덩치는 보통 승냥이의 곱절은 될법한 놈들이 수십 마리 몰려다니는데,

사람은 물론 일소마저 순식간에 물어 죽여서는 끌고 간다오.

마을 장정 전부가 달려들어도 잡기는커녕 그중 반절은 죽어나갈 거요.”

하지만 장사치는 과장된 웃음을 흘리며 내게 물어왔다.

“그리 위험한데 어찌 혼자 나오신 겝니까? 홀로 능히 승냥이를 잡을 수 있어서는 아닐테고...”

순간 할말을 잃고 멍하니 있자니 장사치가 이어서 말했다.

“그런걸 생각지 못할 만큼 원한이 깊으셨던 게지요.

다 압니다. 그렇기에 제가 이리 당신을 마주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필요하신 것. 원하시는 것을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장사치는 봇짐에서 한아름 정도 될법한 함 하나를 내렸다.

“이것은 지네함이라고 합니다. 안에는 작은 지네들이 잔뜩 들어있지요.

이것이 해결책이 될 것 입니다.”

“아니 그런 버러지가 든 것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오?”

지네란 말에 치를 떨며 말했지만 장사치는 차분하게 설명했다.

“그냥 버러지가 아니지요. 오래도록 승냥이 고기만을 먹여 키운 지네입니다.

승냥이를 먹은 지네를 요기가 그득 서린 함에 담게 되면,

그야말로 승냥이를 잡아먹는 훌륭한 사냥꾼이 되지요.

승냥이가 잘 다니는 길목에 놓아두고 이 잠금을 풀면,

요기를 잔뜩 머금은 지네들이 순식간에 팔뚝만하게 변해서는 끝도 없이 튀어나와 승냥이들을 전부 사냥할 것입니다.

제아무리 잘난 승냥이라 한들 범보다 빠른 다리와 솥뚜껑보다 단단한 껍질을 가진 이 지네에게는 먹잇감일 뿐이지요.”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광경이었지만, 적어도 승냥이를 잡을 수 있다는 말에 솔깃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그럼 마을 사람들이나 가축들도 위험한거 아니오?”

장사치는 내가 물을걸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곧바로 답했다.

“그렇기에 승냥이 고기만을 준 것입니다. 송충이는 솔잎만 먹는법.

승냥이의 피맛을 기억하는 지네들은 승냥이의 냄새를 맡자마자 그것들에게 달려들것입니다.

승냥이들이 모두 사라지면 그저 함의 뚜껑을 닫고 잠가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대로 십년이고 이십년이고 가지고 계시다가 필요할 때 다시 꺼내 써도 좋고.

그도 아니라면 그냥 강 바닥에 던져서 완전히 잊을 수도 있지요.”

불안감이 완전 사라진건 아니지만 역시나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 얼마면 되겠소? 마을 상황이 이런지라 돈 될만한건 없으나, 내 차후에 꼭 마련해서....”

“저는 장사치입니다. 아무리 신용을 먹고사는 장사치라고는 하나 아무 담보 없이 물건을 건넬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그러하니 당장 가지고 계신 것으로 값을 치르는게 어떠하십니까?”

타당한 말이긴 했으나 안타깝게도 값을 치를만할 무언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것이 맞는 말이지만 돈 될 만한 것이 없소. 가축은커녕 농사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으니...”

“그런걸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승냥이떼가 사람을 물어갔지만 전부는 아닐것입니다.

누구는 팔 한짝이 날아가고. 누구는 모가지가 달아나 숨이 멎었을 지언정

온전치 않은 시체는 남겼을테지오. 안그렇습니까?”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는 알수 없으나 장사치에 말에 틀림은 없었다.

온전히 물려간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어제의 김씨처럼 장례를 치를만한 몸뚱이 조각 정도는 남아있었다.

때문에 색시 역시 너덜해진 조각을 모아다가 어떻게든 묻어준 터였다.

“승냥이에게 죽은 마을 사람들의 유해 전부를 제게 넘기십시오. 그럼 이 지네함을 드리겠습니다.”

“이런! 모가지를 비틀어 버릴 놈! 그게 무슨 개뼉따구 같은 소리야!

유해를 넘기다니 어떤 육시랄 놈이 그따위 소릴 지껄여!!!”

벼락같이 소리를 지르며 당장이라도 머릴 부술 듯 몽둥일 들었지만 장사치의 말에 멈칫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어쩌시겠습니까? 이대로 승냥이에게 색시도, 친우도 뺏기고.

끝내는 몸뚱이마저 빼앗겨 성불도 못한 채 영영 구천을 떠도시겠습니까?

죽은 뒤에 유해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짐승에게 도륙당한 영혼은 결코 성불하지 못하고 고통받지요.

승냥이가 죽지 않는 한 절대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짐승에게 죽으면 성불하지 못한단 이야기는 진작에 들은적이 있었다.

때문에 어떻게든 잡아 죽이리라 다짐한 것도 맞다.

하지만 그걸 위해 유해까지 팔아 넘기는 것이 맞을까?

“너무 나쁘게 생각지 마시지요. 유해는 주술적인 목적으로 필요해서 구하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유해를 잘 수습해 드리고 영혼을 좋은 곳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불교의 화장과 크게 다를 바 없으니 너무 맘쓰지 마시지요.

이 함을 드리는 대로 아무도 모르게 유해들을 제가 잘 챙겨서 사라질테니

마을 사람들 역시 우려하실 것 없습니다.”

몽둥이를 내리며 시작된 고민은 해가 높이 떠오를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난 떨리는 손으로 지네함을 받아들었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서서 함을 열자, 과연 팔뚝만한 지네들이 스익스익 소리를 내며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그 끔찍한 모습에 당장이라도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놈들이 승냥이를 제대로 사냥하는걸 눈으로 똑똑히 보기 전에는 떠날 수가 없었다.

함에서 기어나온 지네들은 냄새를 맡듯 대가리를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곧 줄줄이 산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승냥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위협을 느낀 것인지 멀리 수풀에서 승냥이들이 튀어나와 깨갱거리며 지네들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그제야 크게 웃으며 승냥이들에게 소리쳤다.

“하하. 그래. 거기에 숨어서 노리고 있었구나 이놈들! 허나 이제 너희 그 질긴 명줄도 끝이다!

내 여기서 네놈들이 갈가리 찢겨지는걸 똑똑히 볼것이니 추하게 울부짖고 살려달라 구걸해 보거라!”

보다 가까이 보고 싶어 지네들을 따라 산길을 오르며 승냥이들이 지네에 감기는 꼴을 지켜보았다.

승냥이의 다리를 물고 몸통 가죽을 뚫어 대가리를 쳐박는 지네들 덕에 승냥이들은 순식간에 걸레짝이 되어 가고 있었다.

역시나 모든 지네가 나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승냥이 고기를 양껏 먹은 지네는 떨어져 나와서는 몸을 둥글게 말고 잠이 들었지만,

어차피 함에서는 지금도 지네들이 기어나오고 있으니 전혀 문제 없었다.

오래토록 마을을 괴롭혀 오던 그 많은 승냥이들이 버러지의 배를 채우고 사라지는데에는 정말이지 찰나의 시간만이 걸렸을 뿐이었다.

마지막 승냥이마저 지네에게 터럭하나 남기지 못하고 잡아먹히자 드디어 복수를 했다는 마음에 눈물이 다 흘러나올지경이었다.

“내 늦었지만 복수는 했소. 그러니 그대도 편히 쉬시오.”

죽은 색시를 다독이듯 말하고 몸을 일으키자 문득 걱정이 되었다.

가까이서 보겠다며 뛰어온 지라 함을 버려둔 채였고, 그 탓에 지금도 함에서는 지네들이 기어나오고 있었다.

먹잇감이 사라진 지네들은 여전히 배고픈지 대가리를 쳐들고 혹 먹을걸 찾아 냄새를 맡는 중이었다.

그놈들이 일제히 날 바라본다 느낀 그순간 등줄기에 오싹함을 느끼며 다급히 함을 놓아둔 곳으로 뛰어내려갔다.

하지만 마음이 앞선 탓인지 몇걸음 가지 못하고 돌부리에 걸려 굴러버리고 말았다.

다행히 금세 몸을 일으킬수는 있었지만, 다리가 긁힌 것 같았다.

그리고 긁힌 상처에서 피가 배어난다 싶은 그순간,

주변에 있던 모든 지네가 쇳소리를 내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놈들! 내 피냄새를 맡았구나! 저리가라! 내 여기서 죽을수는 없다! 적어도 함을 닫아야....”

하지만 승냥이떼도 어쩌지 못한 것을 내가 피할리 만무했다.

몽둥이를 휘두르며 어떻게든 몸을 빼려 애를 쓰던 그때, 뒤에서 장사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너무 늦었군요. 피냄새를 맡은 이상 당신이 살아갈 가망성은 없습니다.”

“이 후레자식이! 날 속였구나!”

“속이다니요 전 거짓을 말한적 없습니다. 그저 당신의 부주의로 지네들의 식성을 바꾸었을 뿐이지요.

뭐 도와드리려면야 못할건 없지만,

요새 들어 귀찮은 칼잡이 하나가 따라붙은지라 그냥 두는게 저로선 나을 듯 하군요.

그래도 걱정 마십시오. 당신 아내와 마을 사람들 유해는 제가 잘 챙겼습니다.

이제 이들의 영혼은 사령으로서 제가 쓰임새 있는 곳에 잘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역시 짐승에게 묶여 구천을 떠도는 것보다는 좋은 곳으로 간 셈이니 거짓은 없었던 겝니다.”

지네 한 마리가 모가지를 노리고 달려드는 것을 시작으로 온몸에 지네가 달라붙으며 내 살점을 파먹기 시작했다.



By. neptun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