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느낀 공포를 기억하시나요. [10] |
2024-02-23 02: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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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치킨No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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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적던 괴상한 이야기도 아니고 연쇄 살인마 이야기도 아니고 귀신 정보 글도 아니고, 단편도 아니에요. 처음 "공포" 라고 불릴만한 감정을 느끼셨을 때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을까, 있다면 무엇에 대한 공포였을까 하는 호기심에 적는 단순 흥미 위주의 잡설이에요.
저는 비교적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음 나이가 다소 어리신 분들은 모르시겠지만 제가 어릴 때는 주말 심야 시간대에 영화를 방영해주곤 했어요. OCN 같은 채널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공중파에서 틀어줬어요. 그 당시엔 OCN 같은 채널이 없었으니까.
아버지와 형과 함께 보곤 했어요. 종종 15세 이상 관람가나 19세 이상 관람가 영화도 방영해줬는데 저희 아버진 그딴 거 신경 쓰지 않으시는 편이시라 어린 나이에도 볼 수 있었어요. 약간 개방적인 분이셨죠. 태권도 학원비를 삥땅쳐서 놀다가 들켜도 사내새끼가 그 정도 깡은 있어야지, 이런 마인드시라 잔소리 한 두 문장하고 치우는 타입이셨어요.
아마 미국영화였지 싶어요. 동성애를 하는 남자가 있었는데 시대 배경이 중세고... 이 남자에게 직접 해를 입히기엔 왕도 쪼금 사정이 있어서 경고를 준답시고 이 남자의 남자친구의 목을 잘랐어요.
어처구니 없었을 거에요. 자고 일어나니 전날 자신과 사랑을 나눈 상대의 목이 잘려 있었으니까요. 대사도 기억합니다. 아마 와이프에게 "여자보다 더 예쁜 아이였는데..." 라는 식으로 대사를 쳤을 거에요.
당시는 덤덤했습니다만, 며칠 후 머릿속에 죽고 난 뒤엔 어떻게 되는가 라는 의문이 떠나질 않았어요. 당시 전 6세 정도였습니다. 사후 세계에 대한 개념조차 없으니 이건 답을 찾을 수 없는 종류의 의문이었습니다.
세 살 터울의 형이 나이에 비해 조숙했고 썩 괜찮게 절 대해줬기에 처음엔 형에게 물어봤죠. 형의 답은 간단했습니다. 영원히 잠을 자는데 꿈은 꾸지 않는거야. 라는 식이었죠. 당시 형은 9세였는데 저에게 막 설명을 하다가 이걸 줄이면 영면에 든다, 라는거야 란 식으로 말했죠. 꽤 조숙하죠? 하지만 이 대답에 저는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바나나 빵이라고 아실런지 모르겠는데 그걸 좋아했어요. 바나나를 넣은 이상한 빵은 아닙니다. 생김새와 사이즈가 딱 바나나라서 그렇게 부르는 빵이 있어요... 아무튼 그걸 못 먹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영면은 싫었죠.
이후 며칠을 고민했어요. 죽고 난 다음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견디질 못 해서 하루는 발작하듯이 괴성을 지르며 바닥을 굴러 다녔죠. 할머니가 나섰습니다.
"우리 치킨이는 극락 갈 기다 극락."
"극락이 뭔데?"
"부처님 있는 좋은 곳..."
"부처님이 누군데?"
"있어... 엄청 좋은 분이 계셔."
"바나나빵도 있어?"
"있지 있지. 산더미가 산더미를 이룰 정도로 많다."
문제는... 당시 부처라는 인물을 신용하기 힘들었어요. 종교적인 비하가 아니라 당시 전 6살이었던지라... 또 며칠 뒤 발작하니 어머니가 나섰죠. 이쯤 되서는 식음을 전폐한 건 아니고 편식을 헀거든요. 할머니들이 생각할 때 손자가 밥 먹는 량이 눈에 띄게 줄면 엄청난 재난이라도 온 냥 유난을 떠시거든요. 당시 국이나 찌개는 할머니가, 반찬류는 어머니가 했는데 아마 할머니가 어머니를 갈구셨겠죠.
어머니께서는 살 길이 많이 남았으니 천천히 생각해보자고도 하시고 별을 가르키며 별이 된다는 둥 여러가지 이야기하셨는데 제가 그걸 이해할 지능이 없었던 터라, 소용이 없었죠. 이제 아버지가 나셨어요. 절 더러 지옥에 가기 싫으면 착하게 살아야 한다했고 착하게 살면 천국에 간다 하셨는데 역시 지옥과 천국이 뭔질 물었죠.
아버지는 그 질문에 후회가 없냐고 물어보셨어요. 그렇다고 했죠. 그러자 뺨을 3대 갈기셨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힘을 빼고 갈기셨겠죠. 아버지는 배관공이시라 근력이 좋으시거든요. 게다가 당시엔 30대셨고. 진심으로 때리셨다면 아마 제 턱이 좀 더 이상한 모양이 됐을 확률이 높으니까 살살 치셨을 거에요.
...맞은 내 입장으로선 존나 아팠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이게 영원히 반복되는 게 지옥."
그리곤 지갑을 꺼내서 3만원을 주셨어요.
"나야 돈으로 주지만 니가 원하는 걸 쉴새 없이 주는 곳이 천국."
대충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의외로... 납득했습니다. 일단 그거 하난 이해하는데 성공했죠. 지옥은 안 좋은 거, 천국은 좋은 거...? 이렇게 적으니 저희 아버지가 폭력적여 보이지만 그건 아니에요. 중학교때 수학을 4점 받은 적이 있는디 그때도 그럴 수 있다 하시고 술 마시다 걸렸을 때도 역시 니는 내를 닮았으. 하고 말았거든요. 약간 방임주의? 다만 담배때는 좀 맞긴 했습니다.
흐음.... 근데 나이가 드니 사후세계는 역시 두려워요.
종종 서브 컬쳐에서 누군가 죽는 걸 보면 하루 종일 죽음의 뒷 페이지를 궁금해하죠.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요. 누군가 종교적, 영적 조언을 해줘도 "에이... 그건 이론적으로 무리지..." 라고 반쯤 자동으로 생각하는 인간이라...
그래서 전 아직도 죽음이 가져다 주는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어요. 이제 조금만 있으면 이 빌어먹을 의문과도 30년지기 친구가 됩니다. 여러분은 가장 처음 "공포라는 단어에 어울릴 정도의 두려움"을 느낀 적이 언제고 그게 무엇이었는지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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