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당신이 한적한 시골 산길에서 갑작스레 기름이 떨어졌다면 어떻게 할까?

보통이라면 보험을 부르면 되겠지만, 지금 내 상황이 좀 복잡한 이유로 그리 여의치 않았다.

주말에 허락도 없이 끌고 나온 회사 차였기에

여기서 보험을 부른다면 그 속 좁은 사장이 무슨 난리를 피워댈지 생각만 해도 아찔할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내 돈 들여 사람을 부르자니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됐다. 어차피 머리 복잡해서 바람 쐴 겸 무작정 밟은 거니까 그냥 즐기지 뭐.”

멍하니 운전해대느라 기름 떨어진 것도 못 본 멍청함을 낭만이란 말로 덮으며 느긋하게 길을 걷기 시작했다.

지도를 보니 몇 킬로 정도만 걸어가면 사람 사는 곳이 나올 터였다.

느린 걸음으로 왕복 두어 시간은 걸릴 테지만,

날씨도 좋았고 풍경도 마음에 들어 산책한다는 생각으로 다녀오기로 했다.

물론 그따위 낭만은 40분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똑같은 풍경에, 바람에 날리는 먼지. 불편한 흙길까지.

짐 될 것 같아 물병조차 들고 오지 않았기에 도랑에 고인 물이라도 떠먹을까 하는 고민을

진지하게 할 때쯤에야 간신히 마을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건물이 보였다.

그야말로 오아시스라도 만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면서 무작정 안으로 들어갔다.

“저기, 실례합니다! 안에 아무도 안 계세요?”

가정집 같지는 않고 공장이나 작업장 같았다.

돌아오는 대답이 없어 그냥 염치 불구하고 수돗물이나 슬쩍 퍼마실까 고민할 때,

안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안에 계세요? 저기 다른 게 아니라 혹시 물 좀 얻어 마실 수 있을까 하고...”

들뜬 나머지 실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인기척이 들린 가건물의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안은 정육점이나 마트에서 볼법한 고기 진열장 몇 개가 놓여있었다.

“정육점인가? 저기, 아무도 안 계세요?”

진열장을 흘끗 보고는 다시금 사람을 찾아 두리번거리며 안으로 들어섰다.

“저기, 실례합니다! 혹시 물 좀... 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때, 문득 진열장 안에 있는 것들이 눈이 들어왔다.

예쁘게 정돈된 것이 아닌, 그냥 검은 비닐봉지에 아무렇게나 담겨있는 고기들.

진열 보다는 잡고기를 모아놓은 듯한 그 비닐봉지 중 뭔가 비죽 튀어 나온게 있었다.

핏기없는 하얀 손.

분명 그건 사람의 손이었다.

나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고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놀란 마음을 진정시켰다.

귀가 빨개질 정도로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지만,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들어 내가 본 광경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찰칵. 찰칵. 찰칵.

몇 번의 셔터음이 나는 동안 조금 용기를 내어 그 봉지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다시 보고, 가까이서 봐도 분명 저건 사람의 손이다.

내가 아는 색과는 달리 심할 정도로 창백했지만,

사람의 손톱과 그 특유의 굴곡, 주름까지 명백히 사람의 손이었다.

대체 왜 저게 저기에 저런 꼴로 있는지에 대한 개연성을 머릿속에서 마구 짜깁기 하려는 찰나,

안쪽에서 누군가 갑자기 걸어 나왔다.

“으악!”

깜짝 놀라 바라보니 앳된 아가씨 한 명이 멀뚱히 서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 여자는 내 모습을 보고 약간 갸웃거릴 뿐 어떠한 말도, 어떠한 반응도 보여주지 않았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저게 뭐냐고 따지고 들어야 할까?

당장 경찰에게 신고해야 할까?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여자가 나온 곳 뒤쪽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누가 왔어?”

그 말에 반응하기라도 하듯, 난 그대로 몸을 돌려 전력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모르긴 몰라도 저 목소리의 주인공이 내가 본 손을 저 꼴로 만든 장본인임이 분명한 듯해서였다.

죽을힘을 다해 달리면서도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쓰며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조금만 더 가면 마을로 들어설 것이고, 작은 마을이라도 경찰서 하나쯤은 있을 터였다.

그곳에서 내가 본 걸 이야기하고 증거로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 모든 게 해결된다.

저 공장이 뭐 하는 곳이고, 나와 마주친 여자와 목소리만 들은 남자가 누구인지,

또 그 손은 무엇이며 거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경찰들이 알아볼 터였다.

가깝지 않은 거리였지만 절실함 때문인지 아니면 두려움 때문에 미친 사람처럼 달려서인지

오래지 않아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너무도 감사하게도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작은 파출소 하나가 기다리듯 날 맞이해 주었다.

“아! 감사합니다!”

지독히도 풀리지 않던 오늘, 드디어 기적을 주시는구나 싶어 중얼거리고는 단숨에 파출소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도와주세요!!!”

비명을 지르듯 소리치며 문을 박차고 들어서자,

의자에 기대어 졸고 있던 중년 경찰 하나가 화들짝 놀라며 일어났다.

아무래도 파출소장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아, 깜짝이야. 뭐야? 누구세요?”

경찰답지 않은 말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거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저기. 제가 우연히 저 외곽에 있는 공장 같은데 들어갔는데, 거기 사람 손이...”

최대한 조리 있게 내가 본 것을 설명하자 소장은 금세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거. 저~ 길 따라 쭉 가다 보면 있는 그 공장건물 말하는 거죠? 마당 있고.

거기가 정형 공장이에요.

정형 알아 정형?

가끔가다 동네 사람이 돼지 같은 거 잡으면 그거 먹음직하게 잘라서 내주는 데라고 거기가.

보니까 도시 사람이라 모르나 본데, 돼지 앞발 있잖아?

그걸 핏물 빼고 푹 삶으면 그게 얼핏 사람 손같이 생겼어.

그쪽이 본 게 족발 먹고 할 때 그 돼지 앞다리라고.”

살짝 깔보듯 한심하게 말하는 꼴에 기분이 나빠졌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사람 손이랑 돼지 앞다리도 구분 못 할까?

난 복잡한 설명 대신, 휴대폰을 꺼내 소장에게 들이밀었다.

“이게 돼지예요? 예? 이게 돼지 앞다리로 보이냐구요.”

내가 내민 사진을 본 소장은 그제야 얼굴을 굳히며 날 흘끔 올려다보았다.

그 당황하는 표정을 보니 왠지 이긴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저기. 잠시 기다려요.”

소장은 내가 충분히 만족할 만큼 어버버 거리다가 무전기를 들었다.

“어. 그래. 최순경아. 너 저기 마을 밖에 있는 고기 공장 있지? 거기 좀 한번 가봐야겠다.”

그가 안으로 들어가며 심각하게 무전을 이어나가자 난 그제야 되었구나 싶어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마음이 놓이니 잊고 있던 갈증이 괴롭혀 왔기에 종이컵이 흐물해질 때까지 정수기 물을 비워대었다.





“비닐이 한두 개가 아니었어요. 사람 한 명분은 넘을 거예요.

여자를 봤는데 얼굴도 정확하게 다 기억나요.

몽타주가 필요하면 그릴 수 있을 정도로.

그리고 남자 목소리도 들렸는데, 이것도 또렷해서 들어보면 확실히 알 수 있어요.

제가 협조해 드리겠습니다.”

갈증까지 사라지자 공포가 흥분감으로 바뀌었다.

흥분감에 젖어 차가 멈춘 사연부터 여기까지 오게 된 상황까지 시시콜콜 떠들어대었다.

소장이 듣건 말건 떠들어 대고 있자니 곧 파출소 안으로 최순경이란 사람이 누군가를 데리고 들어왔다.

“네가 본 게 이 사람 맞지?”

소장의 말에 난 최순경이 데려온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확실했다. 그 정형 공장에서 가만히 날 보고 있던 여자.

“네! 맞아요. 이 여자예요. 이 사람이 분명 거기에...”

“아니, 당신 말고.”

소장은 내 말을 가로막고는 여자를 보며 말했다.

“이 사람이 그 공장 갔었다는데 맞지? 너도 봤다며.”

여자는 내 얼굴을 잠시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소장의 대답에 최순경은 순식간에 다가와 내 팔에 수갑을 채웠다.

“잠깐 뭐야!”

내가 반항하려 하자 최순경은 무서운 힘으로 날 제압하고는 휴대폰을 뺏어 들었다.

“당신들 뭐야? 한패야?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이거 안놔! 이 개새끼들이!!”

당혹감에 쏘듯이 외쳤지만, 소장은 최순경에게 휴대폰을 받아들며 투덜거릴 뿐이었다.

“잘 잡아둬. 김실장 금방 온다니까. 하 그 새끼 참 말 많네.”

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그는 곧 멀뚱히 서 있는 여자에게 말했다.

“꽃님이는 어째 날이 갈수록 이뻐지네. 벙어리만 아니었어도 데려다 내 첩 삼을걸.

그랬음 너도 팔자 피는 건데 참 기구하다 그지?”

꽃님이라 불린 여자는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얼굴로 멀뚱히 서 있을 뿐이었다.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파출소 안으로 들어왔다.

“빨리 왔네. 김실장.”

소장의 대답에 김실장이라 불린 남자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게 뭔 난리인가 모르겠네. 이 양반이에요?”

난 김실장의 흉흉한 기세에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괜스레 눈치만 살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이거 사진이 어디로 새지는 않은 거 같으니까, 알아서 잘 수습해.”

소장은 김실장에게 지금까지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전하기 시작했다.

“소장님이 고생 많으시네. 오늘 저녁에 시간 비워두세요. 그냥 봉투만 던지는 건 정 없으니까 또 대접해야지.”

김실장은 날 잡아채서는 일으켰다.

“잠깐 누구신데 이렇게...”

“이제부터 입 뻥긋하는 순간 바로 눈깔 뽑힐 테니까 그런 줄만 알아요.”

김실장이 정중한 어투로 살벌한 말을 내뱉자 난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꽃님아 가자.”

난 수갑을 찬 채 영문도 모르고 김실장의 차에 올라탔다.

다행히 김실장은 조금은 부드러워진 어투로 설명을 시작했다.

“아저씨. 세상엔 있잖아. 모르는 게 신상에 좋은 것들이 있어.

오늘 아저씨가 본 게 그런 거야.

무슨 말인지 알아? 당신이 지금 보면 안 되는 걸 봤다고.

뭐 솔직히 맘 같아선 이 길로 어디 야산에 쥐도 새도 모르게 묻어...”

“살려주세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아무한테도 말 안 할 테니 제발 살려만...”

“아 진짜. 아저씨 아까 내가 뭐라고 그랬어?”

짜증이 치밀어오르는 듯한 그의 말에 난 다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래. 그냥 죽여버리는 게 나도 편한데, 그럼 또 꿈자리가 뒤숭숭하잖아 그치?

그러니까 우리 좋게 좋게 가자고.

당신 멀찌감치 차 세워뒀댔지? 기름 떨어져서.

사람 시켜서 기름 채워놨으니까 바로 여길 떠.

오늘 본 거 다 잊어버리고 이쪽으론 고개도 돌리지 말고 없는 사람처럼 사는 거야 알겠지?”

난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려줄 테니까 바로 출발해. 아 잠깐만 꽃님이 먼저 내려주고.”

김실장은 그 정육 공장 앞에 차를 세우고 꽃님이를 내려주었다.

“고기 관리 제대로 하라고 전해.

그리고 이제부터는 그냥 손도 따로 포장해.

통째로 달라는 미친 손님이 많다니까 그렇게 해줘야지.

들어가.”

꽃님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리자 김실장은 조용히 차를 몰아 내가 세워둔 차 앞에 멈추었다.

“내가 한 말 명심해. 차에 타는 순간, 뒤도 돌아보지 말고 여길 떠나는 거야 알겠지?”

그가 수갑을 풀어주자,

난 머리가 어지러워질 정도로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다급히 내려 차에 올라탔다.

과연 이미 손을 썼는지 기름이 채워져 있었다.

“개새끼들... 내가 이대로 넘어갈 것 같아? 경찰 새끼에 그 계집년까지 세트로 묶어서 보내줄게.”

김실장이 멀어지자 나는 뒤늦게 찾아오는 분노에 이를 갈며 차를 출발시켰다.

경찰서 따위로는 안 된다. 검찰청에 직접 찾아가서 하나도 빠짐없이 이야기하자.

증거는 사라졌지만 그래도 내가 잘 이야기만 하면 움직여 줄 게 분명했다.

이를 갈며 강하게 액셀을 밟았다.

차가 거친 소리를 내며 비탈길을 내달리던 그 순간,

갑자기 보닛 위로 돌덩이들이 우수수 쏟아지기 시작했다.

“으악!!”

무서운 소리와 함께 앞 유리가 쩍쩍 갈라지고, 굴러떨어진 돌을 밟은 차는 거칠게 요동치며 내 통제를 벗어나고 있었다.

큰 충격과 함께 차가 가드레일을 뚫고 공중에 떠오르고 나서야

애초부터 김실장은 날 살려줄 생각이 없었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직접 죽일 필요는 없다.

이렇게 간단히 사고사로 만들어 버리는 방법이 있으니까.



By. neptun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