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2 16:5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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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윈드앤드파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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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이야기는 픽션이며 실제 인물, 장소와는 무관합니다）
우물가의 그 아이
때는 00년대 초반 초등학교때의 일이였다. 나는 경기도에ㅇㅇ마을이라는 곳에서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온라인 게임이 이제 막 유행하던 때라 게임에 빠져서 학원을 빼먹기 일쑤였다. 그날도 집에서 학원을 땡땡이 칠 궁리를 하고 있었는데 일터에 나가신 어머니가 전화를 하시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집을 나갈 수 밖에 없었다. 일단 집을 나서긴 했는데 학원은 여전히 가기가 싫었다. 그래서 그냥 학원 입구를 배회하며 걷고 있었는데 그때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 왔다.
"야, 너 여기 살아?"
말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약간은 살집이 있어보이고 갈색 뿔테안경을 쓴 내 또래의 남자아이가 있었다.
"아니. 나 여기 학원 다니는데, 여기 건물 3층이야!"
그 아이와 그렇게 대면을 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쥐며느리를 잡으려고 바닥에 돌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때 내 뒤통수에서 그 아이의 말이 들렸다.
"어, 니 뭐 잡는거 좋아하냐. 괜찮다면 나랑 가재 잡으러 갈래?"
마침 학원에 가기 싫었던 나는 그 아이의 말이 너무나도 반갑게 들렸다.
"가, 가재. 그, 그럼 어서 잡으러 가보자!"
이런게 말하고선 무슨 생각에서인지는 몰라도 무작정 그 아이를 쫓아갔다.
그 아이는 ㅇㅇ마을 뒷편에 있는 산을 올라가더니 ㅇㅇ스포츠 센터 건물을 지나 인천 ㅇㅇ초등학교 쪽의 산을 오르고 점점 더 인적이 드문 외진 곳으로 갔다. 나는 처음 본 그 애에게 얕보이고 싶지 않아서 힘들다는 소리 하나 없이 혼자 이 악물며 따라올랐다. 그렇게 1 시간여를 더 넘게 따라 갔을까 내 얄팍한 자존심은 한 여름의 땡볕과 궂은 돌 길에 서서히 무너지고 설상가상으로 신고있던 신발도 샌들이라 발가락이 너무 아퍼 그 녀석에게 짜증과 투정을 부렸다.
"야, 임마. 어디까지 가야 가재가 나오는 건데. 가재 잡으러 가자며?"
그러자 그 아이는 히죽 웃으며 손가락으로 저 멀리있는 조그만한 빌라를 가르켰다.
"아, 저기가 ㅇㅇ 아파트거든. 군인들이 자는 곳인가봐. 저기만 지나면 17사단 이라는 부대가 있는데 거기서만 가재가 산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아, 진짜. 알겠다. 가재 없기만 해봐라..."
짧은 푸념을 하고는 다시 그 아이의 등을 쫓아서 산을 올랐다. 그렇게 다시 40 분에서 1 시간 정도를 걷자, 정말 산 속 깊숙한 곳에 조그만한 계곡이 눈앞에 보였다. 계곡에서 흘러나온 맑은 물이 작은 소를 이루며 흐르고 있었다. 거긴 정말 손바닥만 한 크기의 가재들이 여기 저기에 돌아다니고 있었다.
"봐봐. 진짜 가재가 있잖아. 이제 잡기만 하면 된다!"
그 아이는 의기양양하게 언성을 높혀가며 손가락으로 넌지시 가르켰다. 진짜 그 녀석이 했던 말이 거짓이 아님이 밝혀지는 순간이였다. 또 생전 처음 보는 가재들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에 짧게 나마 투덜거리고 짜증이 났던 마음은 봄철 햇볕을 받은 눈 처럼 사라져버렸다. 이젠 가재를 잡기만 하면 되는데 가재들이 너무 빨라서 난 겨우 한 마리만 잡았다. 실망감이 몰려와 표정이 꾸겨지자 같이 갔던 아이가 약간은 비아냥 거리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였다.
"하하, 니 되게 못 잡네~. 야, 저기 밑으로 내려가면 여기 물 끌어다 쓰는 우물이 하나 있거든 거기서 내가 잡아 줄께!"
그 아이의 말에 약간은 성질이 났지만 가재를 잡을 생각에 좋아라하며 그 우물로 향해갔다. 그 우물은 특이하게도 우물벽과 땅바닥이 맞닿아 있는 곳에 작고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곳에서는 쉴 새 없이 개울가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애는 자신의 옷이 젖는 것에 아랑곳 하지 않고 땅바닥에 착 달라붙어 손을 구멍에다 넣고는 무언가를 움켜쥐는 시늉을 했다.
"아. 진짜 안 잡히네. 아, 여기 다 있긴 있는데..."
"어, 너 지금 가재 잡는 거 맞아. 이런 곳에 가재가 있다고?"
나는 그 아이가 하는 걸 멀뚱이 바라보며 물어봤다. 그러자 그 친구는 다시 말을 꺼냈다.
"어, 있긴 있는데 자꾸 손 밖으로 도망간다. 그럼 네가 우물안에 들어가서 가재좀 몰아줄래?"
라며 대답했다. 나는 그 아이의 말에 '알겠다' 라고 하고는 우물의 벽을 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을 향해 발걸음을 내딯으려는 순간.
"키기기긱기기긱, 키히히이이힣..."
그 순간 마치 유리병을 날카로운 것으로 긁어내는 듯한 소름끼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나는 우물 벽에 시야가 거의 가려졌기 때문에 그 웃음을 누가 내는지 몰랐지만 정말 소름끼치는 것을 느끼며 우물로 내려 앉았다. 그러나 발이 땅에 닿질 않았던 것이였다. 그 우물은 보이는 것보다 훨씬 깊었고 땅바닥 쪽에 나있던 네모난 구멍은 우물의 물이 넘쳐 오르지 안게 하기위한 일종의 사이펀 장치였었다. 칠흙같이 어두운 우물 속으로 발이 쑥 하고 들어가서 다시는 못 나올 것만 같은 공포를 느끼며 미친 듯이 우물의 벽을 긁었다. 우물 벽을 발로 차면서 입과 코가 물 밖으로 나올 때마다 숨을 쉬는게 전부였다. 나는 그 상황에서도 그 녀석을 미친듯이 부를 뿐이였다.
"야, 야. 여기 너무 깊어. 나 빠진 것 같아..."
괴로워 하는 소리를 듣고도 이상하게 그 애는 대답이 없었다. 때마침 그 때까지 살아온 짧은 인생에서도 가장 후회되는 순간들만 머리속을 스치며 정신을 잃는 순간에 알 수 없는 어떤 빛이 보이며 왼발 끝에서 내가 신던 샌들을 누군가가 벗겨가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더니 다시 한번 물밖으로 떠오를 수 있었고 나는 깜깜한 늦 저녁에 고속도로 중앙선 위에 서있었다. 손톱은 다 까져버리고 옷은 진흙투성이에다 온몸은 흠뻑 젖은 생쥐 꼴로 말이다. 그리고 한 손엔 가재 한 마리를 움켜쥐고 왼발만 샌들이 벗겨진 채로 멀뚱이 서있을 뿐이였다. 그렇게 내가 처한 상황이 이해가 안 되서 한참 동안은 중앙선에 멍하니 서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겪은 일이 모두 현실로 와닿기 시작했을 때 나는 목놓아 울었다. 방금 물에 빠져 죽을 뻔 했는데 이젠 난데없이 차들만 휙휙 쏘다니고, 분명히 한낮의 땡볕이었는데 지금은 깜깜한 밤이고 도저히 정삭적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다행이 고속도로를 경유하는 분중에 나와 우리 부모님을 아시는 분이 계셔서 바로 연락을 드렸나 보다. 중앙선 가운데서 하염없이 울고 있었는데 날 발견하신 부모님의 차를 타고 밤 11 시가 되서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우리 부모님은 그저 아무말 없이 운전만 하셨다. 그러다 집에 다다를 때 쯤 17사단이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난 너무 울어서 끅끅 거리는 목소리로 그 이정표를 바라보고는
"엄마, 엄마. 나 저기 어떤 애랑 갔었다?"
훌쩍이며 힘없는 소리로 말하는 나를 그저 숨죽여 바라보는 엄마는 알겠다하는 느낌으로 고개만을 끄덕이셨다. 엄마의 소리 없는 대꾸에 나는 재차 말을 하였다.
"가서, 가재도 잡아왔어요. 봐봐..."
이렇게 말하고 한 손에 꽉 쥔 가재를 보여드렸다. 놀랍게도 가재는 아직 살아있어 보였다. 내말에 엄마는 가재를 들여다 보시더니 더 굳은 표정으로 아무말도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집에서도 부모님은 날 혼내지 않으셨다. 난 단순하게도 학원 빠진 것으로 혼나지 않게 되어서 약간은 기분이 좋아졌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나중에 부모님께 그 일을 말씀드렸더니 그 일이 있었던 일주일 전쯤에 ㅇㅇ마을에 사는 한 아이가 무엇인가 홀린 듯 가재를 잡으러 갔다가 그 우물에서 빠져 죽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ㅇㅇ 마을에 살던 부모님의 친구 분이 내가 학원에 가지 않고 어디론가 가는 것을 보셨고 계속 한 곳을 응시하며
"가, 가재..."
일관된 목소리로 정신나간 사람마냥 베시시 웃고서 '가재' 거리는 나를 보셨는데 그 사고가 났던 우물가 전에 산 쪽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하셨다. 나는 말로 형용하지 못 할 소름이 느껴졌다. 아마 우물에 빠져 죽었던 아이는 우물에서 빠져죽지 않게 막아준 것이고 나에게 가재를 잡으러 가자던 그 애는 우물로 사람을 유인해서 빠져죽게 만드는 나쁜 귀신이 아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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