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이야기는 픽션이며 실제 인물, 배경과 무관합니다）

'계곡에서 그건 뭐 였지?'

때는 뜨거운 태양볕이 이글이글 불타던 초열지옥을 뺨치는 여름이었다. 황간을 지나서 영동 좀 넘어서면 물한계곡이라는 곳이 있다. 중하류쯤 되는 곳에 자리를 잡고 놀았는데 바위가 정말 많은 곳이였다. 기슭을 제외하곤 온통 바위 천지라 해도 될 정도로 맨땅이 없는 곳이었는데 바위가 많아서 그런지 불볕에 달아올라서 엄청 더웠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그곳에서 어머니와 누나 두 명 매형 둘 사촌형 조카 네 명 까지 11명이나 되는 대인원이 커다란 천막을 치고 참 재미나게 놀고 있었다. 여튼 신나게 놀고 있다가 우연히 상류 쪽을 바라봤는데 왠 여자가 바위틈 사이사이를 뛰어다니며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그것도 정말 해맑에 웃으면서 말이다. 좀 특이하다 생각했는데 이내 신경을 끄고 난 낮잠을 잤다.

"엄마. 저 낮잠좀 잘께요. 아까 운전하느라 좀 피곤한가봐요."

"오, 그래. 오야 엄마가 안대 갖고 왔어. 그거 끼고 자."

"처남. 이따가 내가 운전할테니깐 고생했어 푹 쉬어!"

얼마쯤 지났을까 한참자고 일어나니 노을이 지고 있었다. 일어나서 컵라면을 하나 먹으려고 물을 붓는데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투둑- 투두둑- 투두두둑-."

떨어지는 양이 점점 늘어나다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하는데 이러다가 쓸려 내려가는 게 아닌가 싶어 물가에서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가족들이 여기는 지대가 많이 높아서 괜찮을 거라며 안심시켰다. 내가 봐도 확실히 다른 곳보다 지대가 많이 높은 도로보다 약간 아래 정도의 고지대라 문제는 없겠다 싶어 그데로 돌아서는데 저쪽 상류 쪽에 사람이 뛰어다니는 것 같은 형태가 보이는 거였다. 쏟아지고 있는 빗물 사이로 자세히 들여다 보니 아까 낮에 웃으면서 바위 사이를 뛰어다니며 춤을 추고 있던 그 여자가 그대로 있던 것이 아니겠는가. 비가 내리기 시작한지 20 분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고 계곡 쪽은딱 봐도 유속이 장난 아니던데 어떻게 저기서 춤을 추고 있지 하며 생각하는 순간에 바로 짐을 챙겼다. 

"엄마. 누나, 매형. 빨리 짐싸요!"

하면서 크게 말하고 이것저것 주워담고 있는데 가족들이 갑자기 왜 그러냐면서 다들 말리는 것이었다. 난 꺼름칙한 생각이 들어 '당장 짐싸!'하고 소리치며 실랑이를 벌였다. 가족들과 투닥이던 중 저위에 그 미친 여자가 이 날씨에 바위를 뛰어다니며 웃으면서 춤추고 있다. 이 상황이 뭔가 이상해서 아무리 생각해도 저건 사람이 아닌 것 같으니까 빨리 짐을 싸라 이렇게 설명을 하니 어머니도 곧 짐을 챙기셨다. 난 어머니꼐서 '뭔 헛소리를 하냐'하는 소리를 들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순조롭게 짐을 싸서 차에 챙겨 넣으셨다. 그렇게 가족들이 짐을 다 챙겨넣고 냇가를 봤는데 우리가 있던 야영지에서 냇가 바닥까진 최소 2 미터가 되는 높이였다. 그런데 야영지는 물에 잠겨있고 물이 갓길까지 철렁 거리고 있었다.

"쏴아아아-."

엄청난 수압에 굉음이 우렁차게 퍼져나갔다. 이렇게 미쳐버릴듯한 유속으로 흐르고 있는 냇가를 보며 비를 맞아 차갑게 식어버린 몸이었는데도 내 등뒤에서는 땀인지 비인지도 모를 것이 기분나쁘게 흐르고 있었다. 허탈감에 젖은 표정을 마주하며 가족들 앞에서 어머니는 입을 여셨다.

"그거 수귀인가보다. 지가 있는 계곡에 같이 길동무 삼을 사람들이 넘쳐나니 신났었나보다. 웃으면서 춤을추다니. 에이, 몹쓸 것..."

그날 이후로 가족들은 한동안 여행 가자라는 소리를 꺼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