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아는 자신이 불행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아빠는 누군지도 모르고.

엄마는 알코올 중독자에 집은 빚더미였지만,

자신의 가정사에 대해 슬퍼한 적도 없다.

남들과 달리 지나칠 정도로 감정이 평이해서였을 수도 있고,

특별히 욕심이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

그 또래의 다른 소녀들이 그렇듯 바람처럼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바람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조차 18살 나이에 엄마 빚을 대신 떠안고 퇴폐업소에 끌려 들어가자,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교복 대신 천박한 홀복을 입고 짙은 화장을 한 채 거울 앞에 선 수아는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운명을 저주했다.

그렇게 들어간 첫 접대.

아빠뻘을 넘어 할아버지뻘은 될법한 늙은 남자의 술 시중을 들게 되었다.

술 세잔이 들어가기도 전에 자신의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으며 탐욕스레 달라붙던 그 남자.

거부할 틈도 없이 얼굴을 들이밀고 수아의 입안으로 혀를 밀어 넣은 순간,

참아왔던 분노와 슬픔과 원망이 한번에 터져 나오며 수아는 그의 혀를 있는 힘껏 물어뜯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입으로 비명을 지르며 노려보는 그 남자의 눈을 똑바로 마주한 수아는

입안에 든 것을 마치 맛있는 음식인 양 천천히 씹어 삼키며 복수의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물론, 이후에 수아는 업소 관리를 맡은 건장한 사내에게 끌려가

발가벗겨진 채 죽기 직전까지 맞아야 했다.

몸 하나 까딱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 된 수아는 웃음을 터트렸다.

왜 웃는지 그녀조차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좋은 의미의 웃음은 아니었다.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워진 그녀는 눈앞이 흐려지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마침내 비참하디 비참한 이 삶을 끝낼 수 있기를 바라며.

하지만 신의 자비인지 악마의 장난인지, 그녀는 죽지 않고 다시 눈을 떴다.





수아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멀쩡한 옷을 입은 채 어떤 사무실 의자에 앉은 채였다.

그녀의 앞에는 새빨간 정장에 동그란 안경을 쓴 젊은 남성이 미소를 지으며 앉아있었다.

수아는 무언가 물어보려 했지만, 남자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잠깐. 아무 말도 하지 마. 난 말하는 걸 좋아하지 남이 떠드는 소리 듣는 걸 좋아하지 않거든.

그러니 입 열 생각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수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앞에 있는 이 남자는 누구일까?

수아의 의문을 눈치챘는지 남자가 이어서 말했다.

“아 그래, 내 소개를 안 했네. 난 그러니까 뭐랄까?

네가 돈을 갚아야 할 사람? 아니면 좀 무섭게 말해서 네 목숨을 가진 사람?

그렇게 빡빡한 거 싫으면 그냥 네 사장쯤 된다고 생각해.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내가 왜 너를 불렀는지 궁금하겠지?

간단히 말하자면

네가 내 사업장 중 한군데서 거나하게 저지른 짓을 듣게 돼서 말이야.”

남자는 여전히 미소 띤 얼굴로 수아의 눈을 보며 말했다.

“뭐 맘 같아선 그냥 여기저기 분해해서 팔아버리든가

손해 감수하고 화풀이 삼아 어디 강바닥에 던져버리거나 하고 싶긴 한데,

난 언제나 기회를 한 번씩 더 주는 스타일이거든.

그래서 마지막으로 너한테 기회를 주려고 하는 거야.”

남자가 손을 가볍게 들어 보이자 곧 검은 정장의 남자 하나가 나타나

수아의 앞에 빈 접시와 나이프를 내려 놓았다.

“그러니까. 살고 싶으면 나한테 보여줘.

네가 얼마나 미친년인지, 얼마나 독한 년인지.

‘아 진짜 독하게 벌어서 어떻게든 손해 메꿔줄 정도로 광기가 넘치는 애구나’

하는 생각이 들도록 해보란 말이야.”

수아는 이게 무슨 의미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 늙은이한테 했던 짓.

네가 너한테 직접 다시 해봐.

할 수만 있다면 살려줄게.”

수아는 떨리는 손으로 나이프를 집어 들었다.

“알지? 자르기만 하는게 아니야. 맛있게 먹는 것까지.”

남자는 즐거운 표정으로 수아가 나이프를 혀에 가져다 대는 걸 지켜보았다.






꽃님이는 잠에서 깨어나 천천히 눈을 떴다.

익숙한 공간. 사람의 시체를 고기로 만들어 내보내는 인육공장이었다.

몸을 일으킨 꽃님이는 방금 전 꾸었던 꿈을 떠올렸다.

아주 오래전의 일.

처음에는 악몽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기억의 파편일 뿐이었다.

그때의 그 견디기 힘든 사건으로 인해 미친 건지,

아니면 그저 그걸 계기로 숨겨두었던 광기가 피어난 것인지는 모른다.

다만 그날의 일이 꽃님이에게 금단의 식성을 가져다준 것만은 확실했다.

때문에 이렇게 인육공장으로 보내진 이후 정형하고 남은 사람 머리에서 혀를 뽑아 먹고 있던 것이다.

꽃님이는 버릇처럼 손가락으로 입안을 더듬어 보았다.

이제 와서는 혀가 잘려 나간 상실감보다는 냉장고가 빈듯한 공허함만 있을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싱싱한 혀를 먹은 게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아무래도 새로운 정형사를 구하는 데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한 모양이었다.

고기가 없는 정형 공장에서 꽃님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무의미하게 청소하고, 정리하고,

동네로 나가 찬거리를 산다.

그래도 정 적적하면 침대 아래에서 가방을 꺼내어 펼쳐 놓는다.

엄청난 현금다발.

그 붉은 옷의 남자가 수아... 아니 꽃님이를 마음에 들어 해서 특별히 더 챙겨준 것인지

아니면 그저 제정신으로 하기 힘든 일이기에 페이가 좋았던 건지.

이미 그 많던 빚도 다 갚고 벌써 이만큼이나 돈이 쌓여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이 돈을 가지고 정형 공장 밖으로 당당히 걸어 나갈 수 있겠지만

꽃님이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이곳에서 나가면 그렇게 안전하게 꽃님이의 식욕을 해소할 수 없을 테니까.




“꽃님이 있냐?”

운송을 담당하는 김실장의 목소리에 꽃님이는 서둘러 돈을 가방에 쓸어 담고는 밖으로 나갔다.

혹시 정형사를 데려온 것일까?

하지만 아쉽게도 밖에는 케리어 두 개를 든 김실장뿐이었다.

“좀 일이 있어서 당분간 여기서 사리고 있어야겠다.

새 정형사 구하는 건 어렵지 않은데 요새 짭새 새끼들이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네.

당분간 식당도 닫고 여기도 운영 못 하겠어.

나도 여기서 한 두어 달 수그리고 있을 거야.”

꽃님이는 크게 실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시체가 들어오지 않을 모양이었다.

꽃님이는 캐리어를 안으로 옮기며 슬쩍 김실장을 바라보았다.

“망할. 이 촌구석에 갇혀서 시간 보낼 생각 하면 눈앞이 깜깜하네.”

담배를 꺼내어 입술을 살짝 적시는 김실장.

그의 입술을 슬쩍 훑고 지나가는 혀를 본 꽃님이는 자기도 모르게 침이 고이는 걸 느껴야 했다.

물론 그저 생각만 할 뿐 김실장의 혀를 뽑아먹을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김실장은 그때 그 정형사처럼 바보스러운 남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신 김실장의 모습을 흘끗거리는 꽃님이었다.






며칠이 지났다.

어떻게든 시간을 잘 보내는 꽃님이와는 달리 김실장은 이곳에서의 생활이 힘든 모양이었다.

한동안 동네 파출소 소장과 술을 마시러 다니는가 싶더니

그마저도 지겨운지 그냥 누워서 티브이나 보고 있었다.

“꽃님아!”

샤워를 마치고 젖은 머리를 말리며 나오던 꽃님이를 김실장이 불러세웠다.

“잠깐 이리 와봐.”

꽃님이는 수건을 목에 걸친 채 김실장 앞에 섰다.

가벼운 츄리닝에 얇은 티 하나만 입고 있는 꽃님이의 모습은 묘하게 색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잠시 꽃님이를 바라보던 김실장은 이내 고개를 젓더니 다시금 티비를 바라보았다.

“아니다. 가봐.”

꽃님이는 조금 실망하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혹시나 하는 기대마저 사라지고 나자 참아왔던 욕구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있었다.

부드럽게 감겨오는 그 살덩이의 탄력과 까끌하면서도 질깃한 식감.

이를 앙다물 때마다 입안 가득 퍼지는 혈향과 육향.

짐승 따위의 혀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 특유의 맛.

아니 어쩌면 단순히 맛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먹는다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연약한 것을 취한다는,

자신을 깔보고 무시하는 이들의 약점을 뺏는다는 그런 쾌락 때문인지도 모른다.

먼 옛날. 수아라고 불리던 시절, 처음으로 느꼈던 그 쾌락처럼.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수아는 몸을 떨었다.

그랬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서 직접 물어뜯는 혀.

자신을 무시하고 업신여기고, 또 욕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던 그 눈빛이

공포와 고통과 충격의 눈빛으로 변하는 그 순간.

그 괴로운 표정을 보면서 천천히 혀를 씹어 삼키는 쾌락.

그것은 시체 따위에서 잘라 먹는 것 따위로는 비교할 수 없는 미식이었다.

꽃님이는 지금껏 고작 시체 혀에만 만족했던 자신이 우스워지기 시작했다.

혀라는 것이. 사람 혀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수많은 시체에서 게걸스레 혀를 뽑아먹으면서도 충족되지 못했던 공허함.

오래 지속된 갈망이 그 공허함의 정체가 뭔지 알려주었다.

깨달음을 얻은 이상 주저하고 있을 이유가 없다. 움직여야 했다.

입술을 가볍게 깨물어 보인 꽃님이는 다시금 침대 밑에서 가방을 꺼내어 들었다.

현금다발이 잔뜩 들어있는 가방.

꿈많은 시절에도 자유로운 삶을 바랬던 적 없던 꽃님이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절실하게 자유를 원했다.

바람이 되고 싶었다.

꽃님이는 분주하게 움직이며 가방 안에 자신의 짐들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10년 가까이 지낸 곳이지만 짐이라고는 옷가지 따위가 전부였다.

꽃님이는 앞으론 조금씩 욕심을 부려보기로 마음먹었다.

“꽃님아! 가서 맥주 좀 사 와라.”

거실에서 들려오는 김실장의 목소리에 꽃님이는 가방을 둘러매고 방에서 나갔다.




외출복 차림에 가방까지 둘러맨 꽃님이를 보고 김실장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뭐야? 어디 가게?”

꽃님이는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그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정육 도마로 향했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김실장은 꽃님이가 정육 칼을 집어 들고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야 이 미친녀..ㄴ..”

하지만 김실장의 말은 꽃님이가 찔러넣는 칼에 막히고 말았다.

뒤늦게 꽃님이를 밀쳐냈지만 이미 김실장의 목에서는 대량의 피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컥... 이.. 이 미친년이 갑자기.. 왜!!”

꽃님이는 한동안 고통스러워하며 바닥을 구르는 김실장을 기분 좋게 바라보다가

천천히 쓰러진 김실장 위로 자신의 몸을 포개었다.

김실장은 두려워하며 피했지만, 꽃님이는 야릇한 미소를 지은 채

김실장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 쥐고는 천천히 입을 맞추었다.

잠시 후 김실장의 비명과 함께 꽃님이는 꿈틀거리는 혀를 뽑아 물고는 천천히 음미하며 씹기 시작했다.

물론 김실장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우월감. 지금껏 자신을 노예나 짐승 정도로 생각하던 그를 내려다보며 그의 혀를 잘근잘근 씹어 먹는 이 쾌감.

등줄기에서 시작해 짜릿한 쾌락이 온몸을 훑고 지나가자, 순식간에 공허함이 채워져 갔다.

그 와중에도 김실장은 연신 입에서 피를 토해내며 무어라 말하고 있었다.

바람 빠진 소리만 나올 뿐이었지만 꽃님이는 김실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김실장은 욕설을 내뱉으며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빚 때문에 팔려 오면서 포주가 멋대로 지은 그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입 안에 있는걸 전부 씹어 삼킨 꽃님이는 천천히 김실장 쪽으로 몸을 숙였다.

“난 꽃님이가 아니야. 내 이름은 수아야.”

거의 10년 만에 듣는 자신의 목소리에 수아 자신 역시 놀랐지만, 김실장은 그야말로 경악하고 있었다.

오래전 의사는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 구조적 문제가 아닌 심리적인 이유라고는 했지만

그간 수없이 노력해도 한마디조차 낼 수 없었기에 사실상 포기하고 있던 목소리였다.

하지만 조금 어눌할지언정 지금은 말을 하는데 전혀 거부감이 없었다.

수아는 전에 없이 활짝 핀 얼굴로 몸을 일으키고는 내려놓았던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섰다.

이제 막 노을이 지기 시작한 밖은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바람...”

여전히 놀라웠기에 가만히 자신의 목소리를 곱씹어 보던 수아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한쪽 어깨에는 돈이 가득 든 가방을, 품 안에는 정육 칼을 고이 모셔놓은 채였다.

아직은 배가 고팠고, 세상에는 먹을 것들이 아주 많았으니까.



By. neptun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