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 아닌 꿈입니다만...

꿈의 시작은 침대부터였습니다.

갑자기 스르르 눈이 떠졌고 멍한 상태로

허기를 느꼈습니다. 그렇게 많이 배고픈 건 아닌데

무언가 좀 먹어야겠다란 생각이 들었죠.

동시에 귀찮다는 생각이 들어서 김치볶음밥을 먹기로 했어요.

이리저리 찬 꺼내고 요리하기 귀찮으니깐 대충 때우려구요.

방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와 주방으로 향했고,

벽돌 햄, 김치, 양파, 굴소스를 꺼냈습니다. 

김도 하나 꺼냈죠. 본격적으로 해먹을 건 아니라서

재료는 이만하면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우선은 밥을 퍼 찬장에 올려놓은 뒤

벽돌햄을 잘게 썰었습니다. 

스팸이 없다는 사실에 조금 의기소침해졌습니다.

며칠 전부터 눌러앉아있는 친구놈이 참치와 스팸을

아낌없이 쳐먹어 버리는 바람에 계란햄부침에나 넣던

벽돌햄을 볶음밥에 넣어야 한다는 사실에 조금 짜증이 났습니다.

양파는 1/3 정도 크기로 자른 뒤 

잘게 썰어줬고 김치 역시 잘게 썰었습니다.

햄이나 양파보다는 조금 크기가 있게요. 

그래야 식감이 좋으니깐.... 

자취생의 인생을 윤택하게 해주는 굴소스를 조금 덜어주고,

거기에 소금 조금, 후추를 소금보단 좀 더 많이, 설탕도 조금 덜고

계란 후라이를 하나 한 뒤에 계란을 따로 빼둔 뒤 다른 재료를

다 때려박고 볶기 시작했습니다. 볶는 순서를 지켜야 더 맛있긴 한데 귀찮았고 사실 그렇게까지 맛 차이가 난다고 생각지는 않아서...

살짝 익기 시작했다 싶을 즈음에 덜어둔 굴 소스의 반절 정도를 넣어주고 다시 슬슬 볶고 난뒤에 밥을 넣은 뒤 볶다가 나머지 굴 소스를 넣고 김을 부숴주기 시작했습니다. 도시락김이기 때문에 손에 기름이 묻는 게 싫어서 그냥 대충 짓뭉개가며 부수면서 나는 도대체 왜 꿈에서 이 지랄을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할 때쯤 누군가 절 툭 쳤습니다.

뭔가 엇! 하는 느낌과 함께 고개를 돌려보니 거기엔

며칠전부터 눌러앉아 제 스팸을 노략질해대는 친구가 서 있었습니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짜증스럽게 이 시각에 뭘 해먹는거냐, 너무 시끄럽지 않냐, 먹을거면 같이 먹지 치사하게 니 꺼만 하냐 등의 소리를 하는데 꿈인데 무슨 소릴 하는거야... 라고 생각하는데 문득 깨달았습니다.

이거 꿈 아니구나...

분명히 꿈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낼때도 차갑다고 느끼지 않았고 김치나 양파 등의 재료를 다듬을 때도 차갑지도 않았고 특히 양파를 썰 때 눈이 맵지도 않았으니까요. 전 양파를 썰면 양파의 죽음이 슬픈건지 눈물이 많이 나오는데 눈물도 안 나왔고 말이에요. 

재료나 밥을 볶는 일련의 과정중에서도 가스렌지의 온기를 느끼지 못 했고 허기를 채우기 위해 걸어나올때도 간혹 꿈에서 그렇듯 둥실둥실한 느낌이었지 제대로 걷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해서 꿈에서 김치볶음밥을 하는것도 참 웃기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친구의 잔투정을 들으면서 점점 현실감이 돌아오더라구요. 

다행히 베이거나 데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칭얼대는 친구에게 볶음밥을 반절 덜어주고 밥을 먹으면서도 기분은 풀리지 않았어요. 보통은 무언갈 먹으면 기분이 풀리는 편인데...

전 정신과에 상담도 하러 다니고 약도 타먹으러 다니거든요.

병명은 밝힐 수 없지만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는 병은 아닙니다. 다만 오래 병원을 다니다보니 환청을 듣는 사람이나 환시를 보는 사람들은 몇 차례 보았습니다. 볼 때마다 저 사람들은 정신의학적으로 이상이 생긴걸까 아니면 귀신에게 홀린걸까 라고 생각했었기에 그때 당시의 경험을 두고 내가 귀신에게 홀린건가 라는 생각을 했어요. 홀렸다면 아귀나 걸귀에게 홀린거겠지? 밥을 하고 있었으니깐? 라는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차라리 홀린거였으면 했습니다. 진단서에 몽유병이 추가되는 걸 바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몽유병은 물리적으로 위험하니까요. 다음 날 예약을 잡고 며칠 뒤 상담을 받으러 갔어요. 의사 선생님은 제 이야길 잘 들어보더니 술을 먹었는지부터 물었습니다. 술은 먹지 않았다, 라고 대답하니 뭔가를 차트에 적으시더니 일단 약을 처방해줄테니 먹어보고 또 이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필히 내원하라고 하셨고 스트레스로 인한 일시적인 체험일 수도 있다고 하셨어요. 현대인들은 스트레스 때문에 많은 이상증상을 느끼고,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있으며 일시적으로 환시나 환청을 보고 듣는 경우도 있는데

일상생활에 지장이 가는 환시나 환청, 혹은 이명을 지속적으로 듣고 있는 사람들보다는 처지가 낫다, 자신이 보기엔 스트레스성인 거 같다. 환자분이 가지고 있는 질환과 몽유병은 어떠한 연관도 없다. 숨기고 있는 질환이 있는 게 아니라면 자신의 판단은 그렇다  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주의사항을 알려주신 게 꿈이라고 판단되어도 잠을 잤던 곳에서 꿈이 시작되면 외부로 나가지 말라는 것이었어요. 이번처럼 자신의 판단대로 움직일 수 있는 케이스라면 밖으로 나가지만 않는다면 위험하지는 않다고..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이런 증상이 발생하면 그건 답이 없어서 현관에 걸 수 있는 잠금장치는 모두 채워두고 잠을 자라고 하시더라구요. 문을 잠그는 건 물론, 체인도 걸어두라는 이야기였어요. 초기니깐 의식이 없는 상황이라면 체인을 못 풀어서 밖에 못 나갈 확률이 높다고....

다행스럽게도 위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은 없습니다. 현관에서 깨거나 그런 경우도 없었고요. 스트레스성인지 무슨 이유에선지 1회성으로 지나가는 불쾌한 이벤트가 되었네요. 그래도 한동안은 가슴 한 켠이 묵직했습니다. 내가 미쳐가고 있거나, 귀신에 홀렸거나 둘 중 하나일테지... 근데 난 살면서 귀신을 본 적이 한번도 없으니 아마 미쳐가고 있는 걸거야. 라는 생각이 머릴 떠나질 않아서 무서웠어요.

친구는 명분을 얻어서인지 내심 안도하는 게 아주 괘씸했어요. 

"니가 또 이상한 짓을 할지도 모르니까 내가 며칠 더 같이 있어줄게"

라면서 잘난 체 하는 그 놈을 죽여 버리고 싶은 감정을 억제하는 것도 힘들었어요. 물론 진짜로 죽인다는 건 아니고 그 정도로 패고 싶었단 말이에요. 나이 30먹고 엄마가 용돈 줄였다고 가출한 새끼가 내 보호자랍시고 내 집에 지박령마냥 붙어 있는 건 유쾌한 일이 아니거든요.

친구 어머니는 날마다 전화해서 얘는 잘 있냐, 끼니는 거르지 않느냐, 밥 굶기지 마라 같은 소리나 해대고... 그런 소릴 할거면 식비를 계좌로 보내셔야지...

아무튼 이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들려주면 반응이 시큰둥한 편이 많더라구요. 나는 무서웠는데... 아는 누나 하나는 무당집에 가자고 하고. 이 누나는 환청을 듣는데 본인은 귀신의 소리를 듣는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환청이라기보다는 이명에 더 가까워서 정신과 약 먹으면 증상이 심해지기 전에 잡을 수 있을 거 같은데 말을 듣질 않아요. 자신은 미치지 않았다며 날뛰지...

전 귀신은 무서워하지만 무당은 믿질 않거든요. 진짜로 무당에게 영적인 능력이 있다고 해도 진짜보다 가짜가 더 많다는 그 무속인의 세계에서 제가 진짜 무당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안 한다는 표현이 더 맞겠지만.

암튼 그렇습니다. 오랜만에 와서 두서없이 막 적어댔네요. 다른 게시판에서 꿈 이야기가 나와서 이게 떠올라서 적어두고 가요.

좋은 주말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