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족관이라고 하면 어릴 때 학교에서 갔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모든 이들이 그랬듯이 가는길이 너무 기대되고 즐거웠다.

하지만 20여년이 지나 수족관으로 향하는 지금은

떨려오는 손을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어이, 아저씨는 여기 왜 끌려왔어?”

옆자리에 있던 쭉 찢어진 눈의 남자가 태평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평소라면 이런식의 관심이 귀찮고 짜증났을 테지만

잔뜩 긴장한 내겐 뭐라도 진정 할 수 있는 것이 필요했다.

“빚이요. 돈좀 만져보려고 사채 끌어다가 투자 했는데 망했거든요.

배갈라서 장기라도 빼가라고까지 했는데 이리 보내버리네요.”

남자는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그치. 그렇겠지. 나도 비슷하거든. 다 돈때문이겠지.

그래, 수족관에 대해서 아는건 좀 있고? 뭐 제대로 설명을 안해주던데.”

왠지 신나있는 듯한 남자의 말에 안그래도 복잡한 마음이 더 심란해 짐을 느끼며 대답했다.

“저도 별로 아는건 없네요. 그냥 엄청 위험하다는것만 들었어요.”

“그래? 뭐 빚쟁이 주제에 투덜댈건 없겠지만 뭔 말을 해줘야 알지. 참 너무들 하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야. 수족관이 뭔지는 모르지만 거기서 일하는게 뭐 얼마나 빡쎄겠어?

난 일해서 갚으라길래 무슨 고깃배 타던가 광산같은데 끌려가는줄 알았거든.

아무튼 뭐 잘 해봅시다. 나 박재훈이라고 하는데, 아저씨는 이름이 뭐야?”

그냥 상황파악이 안되는 건지 아니면 그저 머리가 나쁜건지 희희낙락하는 이 사람과는 달리

난 한가롭게 통성명이나 하고 싶지는 않았다.

원래 잔걱정이 많다는 말을 많이 듣긴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지금이야 말로 걱정이 안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했기에 대화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자 조용하게 내려서 지시에 따라 이동합니다.”

덩치큰 양복쟁이의 지시에 따라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물비릿내와 특유의 생선냄새가 확 풍겨왔다.

나와 재훈이란 남자는 양복쟁이를 따라 교육장처럼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자 각자 적당히 앉으시고. 당연히 수족관은 다 처음일테니 지금부터 설명할건데

두 번 설명 안하고 질문도 안받습니다. 그러니까 나중가서 몰랐네 잘 못들었네 이딴 소리 하지 마시고

얘기할 때 똑바로 들으세요.”

나와 재훈은 정신을 집중한채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위해 귀를 기울였다.

“여긴 수족관이라고 부릅니다.

이름그대로 물고기 키우고 또 그걸 관찰하는 장소입니다.

왜 그 아쿠아리움 같은데 가면 있는 그런 무지막지하게 큰 수조 있죠?

그런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 안에 뭐가 있느냐?

그냥 평범한 물고기들 이런게 아니라 진짜 어마어마하게 무시무시한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다 이겁니다.

피라냐 뭐 이런거는 댈 것도 아니게 무서운 놈들이 사람 잡아먹으려고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어요.

그놈들 관리하는일입니다.

먹이주고 청소하고 뭐 그런건데 말했듯이 원체 살벌한 놈들이니까 가볍게 보면 큰일납니다.

대신 여기 수당은 제법 쎄니까 버티기만 하면 빚 다 갚고도 남습니다.

죽을힘을 다하세요.

목숨 부지하고 돈 벌어가고 싶으면.”

재훈은 돈이란 말에 들뜬 얼굴을 보였고 난 죽을 수도 있다는 말에 하얗게 질렸다.

“자 기본적인 설명은 끝났으니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수조쪽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옷을 갈아입은뒤 도착한곳은 그 시설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듯한 커다란 방이었다.

“야, 돈 많은가보네. 이런데를 다 만들고.”

재훈의 순수한 감탄에는 나역시 조금 공감했다.

테니스장 정도는 가볍게 들어갈 만한 커다란 수조가 건물안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 양복쟁이가 말했던 것처럼 꼭 아쿠아리움 같은 모습이었다.

담백하게 꾸며진 수조안에는 내부 조명이 없어 어두운 상태였다.

다만 뭔가가 헤엄치고 있는 것이 어스름하게 보였기에 유리벽 가까이 붙어 눈을 가늘게 떠보았다.

그리고 잠시후 나와 비슷한 모습으로 유리벽을 살펴보던 재훈이 비명을 질러댔다.

거의 동시에 나 역시 기겁을 하며 유리벽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저 괴물은 대체 뭐야?”

수조 안에는 거의 사람 팔뚝만한 물고기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저 평범한 생선인 몸통과 달리 머리쪽이 끔찍한 모습이었다.

물결에 따라 나풀거리는 머리와 핏발선 눈. 그리고 물에 불어 한껏 부풀어 오른 피부.

물고기의 머리는 마치 익사한 사람의 얼굴을 가져다 붙인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인면어.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지만 어디에서도 이렇게 끔찍하게 묘사한 곳은 없었다.

인면어들은 달려있는 눈코입이 장식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듯이

연신 핏발선 눈동자를 굴려대었고 새파랗게 질린 입술을 뻐끔거리며 가시같은 이빨을 드러내 보였다.

패닉에 빠진 우리들에게 양복쟁이가 말했다.

“저 물고기에 대해서는 궁금해 하지도 말고 알려고 하지도 마세요.

그냥 관리만 하면 됩니다.

말했듯이 원체 흉악한 놈들이라 사람 손목정도는 뭉텅이로 씹어먹어 버리니까 조심하시고

먹이주는 법이나 이런 것들은 여기 담당자가 별도 교육을 할테니 제대로 배워놓으세요.”

우리는 수조안에 있는 것들에 너무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거기 둘.”

우리가 멍하니 있을 때 투박하게 생긴 한 남자가 우리에게 소리쳤다.

“신입이지? 난 여기 수족관 담당자다. 박실장이라고 부르고, 지금 바로 먹이 준비 해야 하니까 따라와.”

아직도 진정이 되지 않는 몸을 간신히 움직여 도착한 그곳은 식당의 조리실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다른점이 있다면 별다른 조리기구 없이 커다란 고깃덩이와 살벌하게 큰 칼들만 늘어서 있다는 것 뿐.

“저 고깃덩이 요령것 잘게 잘라. 딱 호두알만한 크기로.

뼈는 따로 대충 발라서 한쪽에 모아놓고. 그것도 다 던져넣을거야. 시간없으니까 30분 안에 처리해.”

박실장은 퉁명스럽게 고기 손질법을 알려주고는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이 미친 새끼들은 저딴 괴물을 어디서 구해 온거야?”

난 간신히 속내를 내비쳤다.

재훈은 내말에 대꾸도 없이 그저 멍하니 고기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끔찍한걸 봤으니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계속 멍하니 있을 수는 없으니 재훈을 다독여 작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후. 뭐 좋아요. 괴물이건 뭐건 생각은 나중에 하죠.

보아하니 저 실장이라는 양반 성깔이 보통이 아닐거 같은데

이거부터 빨리 해놔야 될 것 같아요.

괜히 잘못했다가 첫날부터 눈밖에 나면 어떻게 해요?”

방금 끔찍한걸 본 주제에 당장 눈앞에 보이는 걸 걱정하는 나도 참 나구나 싶어 쓴웃음을 짓고는

칼하나를 꺼내들고 고기토막을 집어들었다.

순간 재훈이 고기를 내려치려는 내 칼든 손을 붙잡고는 심각하게 말했다.

“아저씨, 잠깐만. 이거 좀 이상해.”

“알죠. 이상한거 저도 알아요. 아는데, 일단 물고기는 이따 생각해요.

당장 뭐 방법이 있는것도 아니니까 일단 이거부터 해놓고 그 다음에 뭘 해봐요.”

하지만 재훈은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게 아니었다.

심각한 얼굴을 한 재훈의 시선은 가득 쌓여있는 고기더미를 향해있었다.

“나 정육점 했었거든? 그래서 고기는 잘 아는데.

이거, 소도 아니고 돼지도 아니야.”

난 도마 위에 움켜쥔 고기토막을 바라보다가 설마하는 표정으로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사람이야 저거.”

순간 손끝에서 느껴지는 물컹한 고기의 촉감이 적나라하게 느껴지는 듯해 기겁을 하며 손을 떼었다.

“저거 그냥 사람잡아먹을 수도 있는 물고기가 아니야.

사람고기만 먹는 물고기인가 봐. 보기보다 더 미친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는 생각 이상으로 위험한 곳으로 끌려온 듯 했다.




그득 쌓여있는 고깃덩어리를 보자 심란함을 넘어 구토가 올라올지경이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며 재훈에게 물었다.

“이거 뭐라도 해야되는거 아니에요? 아무리 그래도 괴물한테 사람시체 던져주는 일은 좀 아니잖아요.”

재훈역시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땅히 방법이 떠오르는게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못하겠다고 하면 그 양반들 우리 산채로 그 수조에 던져버리지 않을까?”

일리있는 말이었기에 머리가 어질해졌다.

재훈은 한동안 머리를 굴리더니 마지못해 칼을 집어들었다.

“그래. 여기까지 와서 뭐 걸릴게 있겠냐? 죽으라면 죽어야 될 판에.”

그리곤 능숙하게 고기토막을 썰어담기 시작했다.

나 역시 별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그 소름끼치는 일에 가담 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작업이 반복되자 거부감은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좋게 생각하자. 적어도 우리가 이꼴이 나지는 않았잖아.

그냥 버티고 버텨서 한몫 단단히 챙겨 나가면 그만이야.

인면어건 시체건 다 잊어버리자고. 그럼 되잖아.”

재훈의 말에 내 손에도 힘이 실려가고 있었다.




“먹이는 이틀에 한번만. 먹이 줄때는 수조 위 높은 난간에서 살짝 떨어뜨려주고.

물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

인면어가 튀어오를 수 있으니 절대 수면 가까이 하지 말 것.”

난 배운 내용을 입으로 읊조렸다.

이곳 관계자들은 인면어라는 명칭을 쓰지는 않았지만 나와 재훈은 물고기들을 그렇게 불렀다.

일을 하다보면 간간히 연구자처럼 보이는 사람들이나 관광온 높은 사람들이 보이기는 했지만

우리가 자세히 볼일은 없었다.

우리 일은 먹이를 준비하고 청소를 하거나 여러 가지 잔심부름을 하는 것이었다.

별것 아닌 듯 했지만 뭐든 위험하거나 찜찜한 일 뿐이었다.

그나마 수조안으로 직접 들어갈 일은 없어서 거기에 감사할 뿐이었다.

“저거는 봐도봐도 적응 안될거 같은데?”

재훈이 수조쪽을 고갯짓하며 말했다.

나역시 가급적 가까이서 보지 않으려 했지만 호기심 때문인지 자꾸만 그것들에게 눈이갔다.

새카만 물속에서 흉측하게 헤엄치고 있는 인면어들.

없던 물 공포증이 생길 지경이었다.

만약 이곳을 빠져나간다 하더라도 절대 물속은 못들어갈 것 같았다.

소름을 털어내듯 몸을 한번 털어주고 재훈과 함께 먹이 준비실로 향했다.

오늘도 찜찜한 일을 해야겠구나 싶어 축쳐져있었지만 오늘은 고기더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제 안줬으니까 오늘 먹이주는 날 아닌가요? 왜 없지?”

곧 박실장이 나타나 우리를 불렀다.

“오늘 재료조달이 안되어서 먹이는 못준다. 대신 수조 펌프 점검 하고 필터 교체 할테니까 따라와.”

생각해보면 사람고기라는 것이 그리 쉽게 턱턱 구할 수 있을리 없었다.

“사람살점 썰어제끼는 거보다는 막일이 낫지.”

별생각 없이 좋아하는 재훈과는 달리 난 다시금 불안감이 고개를 들었다.

‘시체 계속 못구하면 우리가 먹이 되는거 아니야?’

그 두려움은 다음날에도 먹이가 들어오지 않자 겉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아무래도 뭔가 대비를 해야 할 것 같았다.




“팔 다쳤어요?”

손목을 연신 돌려대는 재훈을 보며 물었다.

“살짝 삐끗했나본데 아까 물건들다가. 뭐 별거는 아니야.”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재훈이었지만 난 그를 그냥 두지 않았다.

“별거 아니라도 치료해야죠. 혹시모르잖아요.”

난 구급상자에서 붕대를 꺼내서는 그의 손에 꼼꼼히 감아주었다.

내가 생각해도 좀 과한가 싶을 정도로 칭칭 감아놓자 재훈역시 기가 찬 듯 웃으며 이야기 했다.

“참나, 아저씨 호들갑 떠는거야 하루이틀 일은 아니긴 한데 이건 진짜 너무 오버다.

누가보면 손모가지 날라간줄 알것네.

뭐 됐다. 이왕이리된거 잡일 아저씨한테 다 짬때리고 환자인척좀 해야지.”

재훈의 말대로 얼핏봐서는 크게 다친것처럼 보였기에 난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모르니 대비해서 나쁠거 없다.

그 덕에 한손으로 슬렁슬렁 일하고 있는 그가 크게 얄밉지는 않았다.

난 그의 몫까지 열심히 움직이며 수조 외벽 청소 작업을 진행했다.

그렇게 한동안 일하고 있자니 박실장이 우리를 불렀다.

“거기둘 나 좀봐.”

우리가 돌아보자 박실장의 시선이 재훈의 팔에 닿았다.

“팔은 왜그래?”

재훈은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아 이게요. 제가 작업을 좀 하다가 너무 열정이 넘쳐서 좀 무리를 하는 바람에 살짝 부상을 당했습니다.”

누가봐도 꾀병같아 보였지만 박실장은 모르는건지 아니면 속아주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래. 그럼 너로 하지.”

재훈이 의문을 표하기도 전에 박실장 뒤에서 덩치큰 사내 한무리가 나타나 재훈을 붙잡았다.

“뭐야. 왜그래요?”

박실장은 전혀 감정이 섞이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먹이 수급이 늦어져서 자체 보급으로 해결할거야.”

설명은 그게 전부 였다.

재훈은 순식간에 바닥에 쓰러졌고 난 겁에 질린채 그 모습을 그냥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박실장이 커다란 도끼를 꺼내 재훈의 목을 겨누었을 때에는 나도 모르게 옅은 헛바람이 새어나왔다.

재훈은 겁에 질린채 수족관 유리벽이 떨릴 정도로 큰 비명을 토해내고 있었다.

처절한 비명이었지만 박실장이 도끼를 휘두르는 것만은 막지 못했다.

난 고개조차 돌리지 못하고 재훈의 목이 날아가는 것을 정면에서 지켜봐야 했다.

도끼에 머리가 날아갔음에도 재훈의 비명은 계속 내 머릿속에 남아 울려대는 듯 했다.

“머리는 따로 치우고 몸은 그대로 던져 넣어. 시간없으니까 빨리.”

박실장의 명령의 재훈의 몸은 순식간에 수조에 던져졌다.

시체가 수면에 떨어지기도 전에 튀어올라 달라붙는 인면어의 모습은 정말이지 끔찍했다.

인면어들은 허겁지겁 달려들어 시체를 뭉텅이째 베어 물었고

한톨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이 뼈째 우걱우걱 씹어먹기 시작했다.

수조 너머로도 뼈가 갈리고 으깨지는 소리가 들려올 정도였다.

아주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재훈의 몸뚱이가 살 한조각 남기지 않은채 사라지고

수조를 탁하게 물들이던 핏물마저 옅어지기 시작했다.

“너. 계속 일해. 저꼴나고 싶지 않으면.”

난 다급히 솔을 집어들고 다시 수족관 외벽 청소를 시작했다.

충격이 컸지만 몸을 움직이고 있자니 슬슬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내가 저꼴이 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그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갔다.

누군가 먹이로 줘야 한다면 당연히 약한 이를 선택해야 한다.

과하게 묶인 붕대는 누굴 먹이로 던져줄지에 대한 확실한 답을 줄수 있을게 분명했다.

내 준비가 기대이상으로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박실장의 눈치를 살피며 열심히 손을 움직이고 있었지만

수조에 비친 내 얼굴엔 옅은 웃음기가 서려있었다.



By. neptun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