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 무신론자인 친구가 있었다.
녀석은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종교를 그럴듯한 비지니스일뿐이라고 여기는 놈이었다.
당연히 귀신도 믿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의 일이다.
친구놈이 다 쓰러질 것 같은 오래된 연립 주택 한 채를 샀었다.
완공된지 무려 40년 가까이 된 집으로 이상하게 시세보다 저렴했다.
녀석은 혹시나 모를 재개발을 염두에 두고 투자 차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서 이 저렴한 집을 샀다.
근데 계약 후 이상한 소문이 들려왔단다.
귀신이 살고 있다나 뭐라나 그 집에서...

"웃기고들 자빠졌네.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어."

친구는 무신론자답게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나 안좋은 소문은 계속 들려왔다.
그 집에 들어갔던 사람치고 좋게 되서 나온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죽었고 누군가는 망했고 또 누군가는 폐인이 되었단다.
친구는 그래도 웃기만 했다.

"두고봐라. 내가 한 열배는 더 벌어서 나올테니까."

녀석은 그렇게 호언장담했고, 무려 그 집에서 10년을 거주하게 된다.
그런데 그 10년 동안 친구의 인생은 그야말로 나락을 떨어지고 말았다.
하던 사업은 제대로 망했고, 이혼으로 가정이 파탄났으며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져, 늘 약을 달고 살게 되었다.
주변에선 그 모든 것을 귀신 탓으로 돌렸다.

"거봐. 귀신이 있다니까 그러네."

이쯤되자 친구의 무신론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결국 10년을 다 채운 어느날 친구는 집을 팔기로 했다.
하지만 소문이 안 좋았던 그 집은 쉽게 팔리지 않았다.

"야.. 일단 나와. 너 거기 계속 살다가는 뭔 일이 생길지 모르겠다."

친구네 가족은 일단 녀석을 그 집에서 먼저 나오도록 했다.
그렇게 다급하게 인근에 따로 원룸을 얻은 녀석은 무려 10년 만에 그 귀신의 집에서 탈출하게 된다.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친구의 형편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하던 일도 차츰 풀렸고, 악화되던 건강도 호전의 기미가 보였다.

"거봐 임마. 진작에 탈출했어야지."

우리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고 친구도 더는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그리고 1년뒤...
그날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이었다.
자정 무렵 갑자기 녀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첫마디부터 심하게 떨리는 녀석의 목소리에서 심상찮음을 느낀 나였다.

"야...호석아...이...이게... 좀...이상해."
"뭔데? 너 뭔 일 있냐?"
"그게...그게 말이야. 누가...누가 주문을 했...어."
"뭔 소리야 그게? 좀 알아듣게 말해봐."
"누가 주문을 했다고....그 집으로..."

친구는 잔뜩 겁에 질려 소리쳤고 난 그 후 믿지 못할 이야기를 듣게 된다.

원래 그 무렵 친구는 재기를 꿈꾸며 닥치는 대로 일을 하고 있었다.
본업 외에도 2잡 알바 3잡 알바도 뛰었는데, 배달일도 그 중 하나였다.
그런데 며칠 전 배달 콜 하나를 받고 순간 깜짝 놀랐다고 한다.
전달지가 바로 옛날 자신이 살았던 그 낡은 연립이었던 것이다.
사실 그 집은 그때까지도 여전히 팔리지 않은 채 폐공가로 남아 있는 상태였다.
헌데 그곳에서 누가 주문을 넣었다고?
친구는 일단 가게에서 음식을 받고, 배달지로 갔단다.
그리고 곧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단다.
폐공가로 비워둔 집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더란 것이다.

너무 놀란 녀석은 그 길로 음식을 집 앞에 놓아 두고 경찰서로 달려갔다고 한다.
그리고 곧 사정 이야기를 늘어 놓았다.
경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니까 선생님 말씀은... 비워둔 집에 누군가 침입해서 음식까지 배달시켜 먹고 있다 이거죠?"
"네. 집에 불도 켜져 있더라구요. 분명 근처 노숙자거나 아님 중삐리 고삐리 애새끼들이겠죠."

경찰은 곧 친구와 함께 그 연립으로 갔다. 그런데 그곳은 온통 칠흙과 같은 어둠 뿐이었다.
마침 옆집 사람이 친구를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최씨네요. 오랜만입니다. 근데 무슨 일 났나요?"

경찰이 이야기를 하자 옆집 사람은 고개를 갸웃거렷다.

"어? 아닌데... 사람 드나드는건 못 봤어요. 항상 불도 다 꺼져 있죠. 여기 비워둔 거 아니었어요?"

친구는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고 했다.

"내가 진짜 봤다니까요. 누가 집에 들어가서 불도 켜고....배달도 시켰다구요. 여기 보세요 여기..."

녀석은 배달커넥트 앱의 화면까지 보여주었다.
경찰은 일단 조사를 해보겠다며 친구를 돌려보냈다.
그 후 친구는 여러번 같은 상황을 겪었고, 그럴때마다 경찰을 찾아가 하소연했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밝혀낼 수가 없었다.
그 무려 경찰도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고, 친구를 의심하기에 이른다.
결국 어느날 또 경찰서를 찾아온 친구에게 경찰이 말했다.

"선생님. 자꾸 이렇게 장난치시면 곤란합니다."
"장난이라니요. 아무도 살지 않는 폐공가에서 자꾸 배달주문을 넣는데 이게 말이 됩니까?"
"선생님. 저희도 다 조사를 해 봤습니다."
"뭔 조사요?"
"그 배달.. 선생님이 직접 시키신거잖습니까. 결제도 선생님이 직접 하셨고..."
"네? 그게 무슨 말이죠? 전 배달을 시킨 적이 없어요."
"배달 업체에 문의해서 이미 조사가 끝났습니다."

그러면서 경찰은 진짜 친구의 계좌로 음식값이 결제된 내역서를 보여주었다.
친구는 할 말을 잃었다고 했다. 나중에 보니 진짜 자기 계좌에서 음식값이 지불되어 있었다.
해킹이니 피싱이니 여러갈래로 신고를 또 해 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똑같았다.
범죄로 볼만한 흔적이 전혀 없다는 것! 즉, 본인이 직접 결제하고 주문을 넣은 것이 확실하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친구를 미친놈 취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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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나는 처음에는 녀석이 장난을 친다고 생각했다.
친구는 방방 뛰었다.

"진짜 아니야. 난 억울하다고. 배달비도 못 받았어..."
"배달비는 또 왜?"
"고객 요청 사항 불이행이래. 미친..."
"요청사항 불이행?"

알고보니 그 배달콜에 고객 특별 요청사항이 있었다고 했다.

-비번 xxxx샵. 문 열고 안에 넣어 주세요.

근데 친구는 너무 놀라 매번 집 앞에 음식을 놓아 두고 왔으니 확실히 요청사항 불이행은 맞았다.
난 이때까지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그럼 뭐 귀신이 시켜 먹기라도 한 모양이군. 야... 그러지 말고 요청사항대로 한 번 해 봐. 혹시 아냐 진짜 배달 시킨 그 귀신 얼굴이라도 볼지..."

장난이었다. 단연코 그것은 농담이었고 웃자고 한 말이었다.
그런데 녀석이 진짜 그렇게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2020년 12월 31일...
난 다가오는 새해를 기다리며 늦은 밤 홀로 맥주 캔을 따고 있었고, 모르는 번호로 영상통화가 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처음에는 피싱이나 뭐 사기일까 싶어 몇 번 받지 않았다. 하지만 그 후로도 미친듯이 벨이 울렸고 결국 받아보니 놀랍게도 친구였다.

"야... 너 뭐야? 이 번호 뭔데?"
"다른 사람 전화 좀 빌렸어. 잘 봐. 난 미치지 않았다고."
"너 거기 어디냐?"
"또 주문이 왔어. 나 지금 배달하러 간다."
"어디? 그 연립?"

친구는 영상통화로 배달앱의 화면을 보여주었다.
정말 배달지 주소가 녀석의 옛날 집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집 앞에 도착하고 난 깜짝 놀라게 된다.
정말 폐공가가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 것이다.
친구는 그 집 비번을 누르고 있었다.
난 순간 소리쳤다.

"야... 누르지마."
"너가 그랬잖아. 고객 요청사항을 제대로 이행해보라고..."
"농담이었지. 장난이었다고..야 임마. 그러지 마. 경찰...경찰 불러 새끼야."

내 만류에도 친구는 기어이 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순식간에 집안의 불이 모두 꺼졌다.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산한 목소리...

"이제 왔니?"

난 모골이 송연해졌다.

"야 임마.. 너 괜찮아? 빨리 거기서 나와 새끼야..."

난 절규하듯 외쳤다. 하지만 친구놈은 대답이 없었다.
영상통화의 화면은 곧 대문을 비추었다.
그러자 대문이 스르륵 닫히고 잠금장치의 달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진 통화 화면에서 난 그만 기절할듯 놀라고 만다.
배달앱 화면이었다.

-배달이 종료되었습니다!

전화는 그렇게 끝났다.
난 그 직후 경찰에 신고하여 그곳으로 갔지만 사람의 흔적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진짜라구요. 내 친구가 이 집으로 들어갔다니까요."

내가 아무리 호소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번에는 내가 미친놈이 되어야 했으니까...

그 후 친구의 행방은 묘연해졌다.
마치 바람처럼 사라지듯 흔적을 남기지 않은 채 행방불명...
난 거의 반년동안 경찰서를 찾아갔지만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했다.
내 말을 믿어주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으니까...

"사는게 팍팍하고 그러니까 그냥 숨어 버렸겠지..."

세상은 친구의 실종을 그렇게 치부했다.

-나 때문이다. 나 때문이야...

난 죄책감에 시달렸고, 그러던 어느날 마침내 한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날 바로 폰에 배달커넥터 앱을 깔고 등록을 마치게 된다.
터무니 없는 생각일지 몰라도 난, 내가 직접 그 일을 목격하기로 한 것이다.
그럼 어쩌면 친구의 행방을 알게 될지도 모를테니까...

하지만 그 후 1년이란 시간이 지나도록 그 불가사의하고 믿지 못할 일은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

-역시... 망상이었던가?

난 슬슬 모든 것을 잊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울 수 없을것 같았던 죄책감마저 조금씩 아물어가던 2021년 12월 31일 밤.
갑자기 울리는 익숙한 비프음이 나를 잠에서 깨웠다.

-띵똥...
-콜이 배정되었습니다.

배달앱의 콜 배정 안내였다.
이미 배달앱을 지운지 3개월 째...
그런데 콜 배정 안내가 온다고???
난 덜덜 떨리는 손으로 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난 경악했다.
배달지 주소가 바로 친구의 그 연립..!
선명하게 찍힌 고객 요청사항까지...

-비번 xxxx샵. 문 열고 안으로 넣어주세요.

난 손에서 폰을 떨어뜨렸다.
그러자 어디선가 누군가의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배달이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