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경희네의 믿지 못할 이야기다.

춘자는 젊은 시절 음주사고를 냈었다. 회사 회식 후 퇴근길에 만취 상태로 차를 몰았고, 인도를 지나던 어느 모녀를 치여 사망케 했다.
중년의 여인과 그녀의 고등학생 딸이었다. 두 사람은 유일한 가족이었기에 춘자는 한 가정을 몰살시킨 셈이었다.
그 사건으로 그녀는 징역을 살아야 했다.
출소 후 춘자는 결혼을 했고, 아이도 낳았다. 하지만 그녀가 마흔 즈음에 첫 딸 연희를 잃게 된다.
우연인지, 연희는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죽었다.
그 후 춘자는 우울증에 걸렸고, 3년을 치료 받아야 했다.
하지만 자식 잃은 부모의 고통은 더 길게 그녀를 괴롭혔다.
결국 그녀는 약간 정신이 이상해지고 말았다.

"엄마. 올해 언니 추도식은 그냥 집에서 하자. 태풍 온다잖아."
연희의 10주기 추도식이 다가오자 둘째 경희가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가족들은 춘자를 제외한 채 매년, 연희의 추도식 날 잔뜩 음식을 해서 그녀가 있는 납골당을 찾고는 했었다.
춘자는 비록 갈수는 없었지만 연희의 제삿 음식만은 손수 차렸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공교롭게도 태풍이 몰아쳤다.
춘자도 그렇게 하기로 하였고 추도식날이 되자, 연희가 좋아하는 음식을 차렸다.

태풍의 위력은 무시무시했다. 모든 걸 집어 삼킬듯한 강풍과 함께 억수같은 비가 내렸다.
가족들은 차분하게 연희를 추모했다.
그런데 시간이 열 두시에 가까워질 무렵...
갑자기 대문이 무섭게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밖에서 누군가가 미친듯이 문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누구세요?"
경희가 물었지만 그 사람은 답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문을 열려고 하자 막내 신희가 다급하게 막았다.
"언니 문 열지마."

문 두드리는 소리는 곧 멈췄다.
그러나 잠시 후 다시 쿵쾅거리는 소리가 났다.
"누구시냐구요. 자꾸 그러면 경찰 부릅니다."
경희가 크게 고함을 질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결국 경찰에 신고를 했고 잠시 후 파출소에서 순경 두 사람이 찾아왔다.
"그러니까 누가 자꾸 문을 두드린다는 말이죠?"
"네. 경찰관님들 오기 직전까지 계속 두드렸어요."
"그래요? 일단 좀 주변을 살펴보겠습니다."
순경들은 잠시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관리실에서 cctv를 확인했는데, 신고자분 집 앞에는 그 누구도 보이지 않던데요?"
"네? 그게 무슨 말이죠? 분명 누가 문을 두드렸어요. 우리 식구들이 다 들었다니까요."
경희네 가족은 경찰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순경과 함께 관리실로 내려가 직접 당시 상황을
눈으로 확인하자 너무 놀라 어쩔 줄을 몰랐다.
그들 집은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였고 양쪽 복도 끝에 cctv 카메라가 달려 있어 사각 지대가 없었다.
그런데 쿵쾅거리던 그 시각에는 정말 그 어떤 사람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귀신이 곡을 할 노릇이었다.
경찰관들은 그냥 돌아가고 말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언니 나 너무 무서워."
"엄마...엄마는 또 왜 그래? 왜 창문 앞에 서 있어?"
식구들이 모두 두려움에 떨던 그때 춘자가 이상 행동을 시작했다.
갑자기 작은 방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밖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엄마. 창문에서 떨어져 어서."
뭔가 이상함을 느낀 경희가 소리쳤다.
그때였다.
-똑똑....
이번에는 창문을 두들기는 소리...!
그리고 섬뜩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줌마. 문 좀 열어줘요."
어린 여학생의 목소리였다.
춘자는 홀린 듯 창문 고리를 잡았다.
"안돼 엄마. 열지마."
경희가 발악하듯 외쳤고 막내가 춘자를 부등켜 안고 창문을 못 열게 제지했다.
그렇게 간발의 차로 춘자를 막을 수 있었다.
그 후로도 날이 밝을 때까지 창문은 계속 두들겨졌고, 여학생의 목소리도 계속되었다.
경희네 식구들은 공포에 벌벌 떨어야 했다.

그 후 경희는 물어물어 용한 무당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의 공포에 대해 이야기했고 무당은 잠시 듣고 있다가 이렇게 말했다.
"원귀인데... 보통 원귀가 그냥 나타나지는 않거든. 최근에 뭐 남한테 해꼬지 하거나 원한 산 일 없어?"
"없어요. 엄마가 정신이 좀... 온전치 못해서..."
"정신? 그건 왜?"
경희는 과거의 일을 이야기했다.
듣고 있던 무당은 그제야 뭔가를 알겠다는 듯 말했다.
"수살귀야."
"그게...뭐죠?"
"우리말로는 물귀신."
"물귀신?"
"원래 수살귀는 물에 빠져 죽은 혼령이 사람을 잡아 당겨 수장시켜서 수살귀인데
조금 다른 의미로도 쓰여. 억울하게 죽은 령이, 그 한을 풀려고 계속 잡아 당기는거야."
"누구를요?"
"누구긴 누구야. 처음은 네 죽은 언니고, 다음은 니 엄마겠지. 그래도 원이 안 풀리면 뭐 다음 차례는 너고..."
"그 일은 십년도 더 넘었다구요. 그런데 왜 이제와서요?"
"매년 언니 추도식에 음식 싸 들고 갔다고 했지? 그래서 그래."
"네?"
"원방 말이다 원방."
"그게 뭔가요?"
"일단 그 납골당이 그 원혼의 집일게야. 한 번 가서 찾아봐. 꼭 엄마랑 같이 가서..."
무당은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고 무작정 납골당부터 가보라고 했다.

경희는 일단 엄마와 함께 언니가 있는 납골당으로 갔다.
그리고 며칠 후 경희는 충격에 휩싸이고 말았다.
연희의 유골이 놓여진 바로 아래 자리...!
어린 학생의 사진이 놓여 있었는데 춘자가 그것을 보자 오열을 하며 고통스러워 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학생은 바로 춘자가 음주운전으로 치어 사망케 한 그 학생이었다.
학생의 옆자리에는 그날 함께 죽은 엄마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언니와 그 모녀의 사망일이 같았다는 것...!

（맙소사. 어떻게 이런 일이...）
경희는 무당을 다시 찾아갔고, 무당은 그제야 자세한 설명을 했다.
"매년 네 언니를 찾아가 음식을 차려 놓은 걸 그 원령들도 함께 먹은거야. 그게 원방.. 즉 원한을 잠시 억누르게 한 것이지. 그런데 올해
는 못갔으니 원방이 사라지고 네 엄마를 찾아온거란다. 밥 달라고..."
"그...그럼 그때 우리가 창문을 열었다면...."
"네 엄마가 밖으로 뛰어내렸을게다. 수살귀는 잡아 당기는 귀신이거든."
경희는 소름이 돋았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되죠?"
무당은 수살귀를 물리게 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흔한 부적질은 아니었다.
"내년에는 음식을 따로 해서 가. 그 아이는 제삿상 차려 줄 엄마도 없잖아."
경희네는 무당의 말을 따랐다.
추도식 음식을 따로 챙겼고, 죽은 모녀를 위해 공손하게 제사도 지냈다.

그 후 경희네는 평온을 되찾았다.
춘자의 정신 상태도 조금씩 호전을 보였다.
하지만 가끔 일이 바빠 연니 연희의 추도식을 챙기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그럴때면 어김없이 깊은 밤 경희네 아파트 대문이 쿵쿵거리며 소란스러워졌다.
그리고 어린 학생이 목소리가 들려오고는 했다.
"아줌마. 문 좀 열어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