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산속 시골 마을에 살았다.
다 합쳐도 20가구를 채 넘지 못하는 작은 마을.
그만큼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지만,
언젠가 큰 소동이 벌어진 적이 있다.
물론 그 소동의 중심에는 소년이 있었다.
추운 겨울. 몰아치는 눈송이가 발자국마저 순식간에 지워버리던 날.
소년이 사라졌다.
산으로 올라가는 걸 봤다는 동네 꼬맹이의 말에 주민들은 다급히 설산을 올랐다.
어른 무릎까지 쌓인 눈을 헤치고 온산을 뒤졌지만
소년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혹여나 추위에 지쳐 쓰러졌다면 금세 뒤덮일 정도로 눈이 퍼붓고 있어
장정들도 산에서 길을 잃으면 무사하기 힘들 터였다.
소년 어머니의 곡소리가 설산의 침묵을 깨며 꼬박 하루가 지났다.
낡은 손전등을 들고 밤새 소년을 찾아다니던 주민들은
이제 소년을 찾는다기보다는 소년의 주검을 찾고 있었다.
끝없이 쏟아지던 눈이 마침내 멈춘 이튿날.
소년은 마치 마실 나갔다 돌아온 마냥 멀쩡히 산을 걸어 내려왔다.
추위에 떨기는커녕 그 오동통한 볼에 여태 온기까지 남은 채였다.
주민들은 기쁨보다는 당혹스러움을 느껴야 했다.
꼬박 이틀을 저 눈밭에서 헤맸을 소년이
이제 막 안방에서 뛰어나와 소년의 볼을 부비는 어머니보다 혈색이 좋아 보였다.
어디 갔었냐고 다그치는 어머니의 말에 소년은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다리가 많고 털이 긴 새빨간 짐승이랑 같이 있었어요.’
알 수 없는 말이었다.
이 산이 아니더라도 빨간 털을 가지고 다리가 많은 짐승이란 건 있을 리 없을 터였다.
수 차례 되물어보아도 소년은 그저 웃으며 같은 말을 되풀이 할 뿐이었다.
‘그 짐승이 절 불렀어요. 따뜻하게 잘 보살펴 줘서 즐겁게 놀다 왔어요.’
물론 그날 이후 비슷한 짐승이 발견되거나,
목격담이 도는 일은 없었다.
소년은 아무런 일 없이 성장했고,
그 붉은 짐승에 대한 것도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오로지 소년의 어머니만이 시도 때도 없이 그날의 일은 물어왔지만,
소년은 그저 웃을 뿐 무어라 시원하게 대답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속절없이 시간은 가고 마을은 점차 쇠퇴하여 하나둘 도시로 떠났다.
소년의 가족 역시 도시로 이주했다.
어느새 청년이 된 소년은 남들과 다를 것 없이 바쁘고 또 지루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얻고, 또 짝을 만났다.
여전히 가족들과 함께였으며, 크게 모난 것도, 잘난 것도 없는 삶이었다.
소년의 어머니는 가끔, 기분이 우울해 질 때면, 혹은 모처럼 약주를 한잔 걸친 날이면 청년에게 물어왔다.
그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고.
청년은 언제나처럼 그저 웃을 뿐이었다.
다시 평화로운 나날이 계속되었다.
청년은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고, 나이를 먹었다.
어느새 머리가 희끗희끗해지기 시작한 중년이 되었음에도
어머니는, 이제 완연한 노인이 된 어머니는, 병상에 누워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날, 그 추운 설산에서 멀쩡히 살아 돌아온 그 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고.
여전히 속 시원한 대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아들은 언제나 그저 웃음으로 일관하거나
아주 가끔, 정말 가끔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다리가 많고 털이 긴 새빨간 짐승이랑 같이 있었어요.’
어머니는 임종 직전까지는 이말 이외에는 들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어머니가 힘겹게 마지막 숨결을 뱉어내던 날.
어느새 주름이 많이 늘어난 아들에게 마지막으로 물어왔다.
그날, 도저히 살아 돌아올 수 없을 그 매서운 눈보라 속에서 어떻게 살아 돌아왔냐고.
소년이자, 청년이자, 중년의 아들은 크게 한숨을 쉬고는 다른 가족들을 모두 물려
늙은 어머니와 나이 든 아들. 단둘이 방에 남았다.
그리고 마침내 숨기고 숨겨왔던 그 날의 일을 털어놓았다.
‘그 설산에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짐승이 한 마리 살았습니다.
지네처럼 다리가 많고 온몸은 새빨간 털로 뒤덮인 기묘한 짐승이었지요.
그 짐승은 자신의 모습이 싫었습니다.
사람이 되고 싶었죠.
산속 깊은 구덩이 속에서 나무뿌리에 주둥이를 박고 빨아 먹으며 벌레처럼 사는 게 아닌
평범한 사람이 되어 행복하게 살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소년 하나를 꾀어냈습니다.
머릿속으로 쉼 없이 자신에게 오라고 속삭여서
눈보라를 헤치고 자신의 굴로 찾아오도록 만들었지요.
그 소년을 따뜻하게 품어주며 소년의 뇌에 주둥이를 꽂아 천천히 빨아 먹었습니다.
소년은 하루 만에 말라비틀어진 나무토막 꼴로 죽어버렸지만,
그 덕에 붉은 짐승은 소년의 기억을 가진 채 소년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었습니다.
그토록 바라던 인간이 된 것이지요.
지금껏 속여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전 당신을 진짜 어머니처럼 극진히 모셨습니다.
저 먼 산속 깊은 토굴에서 백골이 되어버린 진짜 아들보다 더 잘 해왔으니
부디 저를 그때의 그 소년, 진짜 아들로 여겨주시길...’
아들이 아닌 아들의 말이 끝났을 때, 어머니는 이미 숨이 멎은 뒤였다.
진실을 알고 가셨는지 모르고 가셨는지 확실치는 않았으나
그에게 이미 그런 사실은 중요치 않았다.
그저 마침내 진실을 말함으로써
평생 거짓말을 해온 것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내 개운함을 느낄 뿐.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정체를 의심하는 유일한 존재가 사라져서 다행이라 생각할 뿐.
이제 그는, 아니 붉은 짐승은 마침내 완전한 인간으로서 안심하고 살 수 있겠다 생각했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자식들도 짝을 찾고 독립하고, 또 자식을 낳을 것이다.
토굴에서 살던 붉은 짐승은 절대 가질 수 없는 평범한 인간의 행복을 고스란히 누릴 수 있다.
붉은 짐승은 크게 만족하며, 마침내 평생 마음속을 어지럽히던 공간,
그 설산의 토굴에 대한 걸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아직도 그곳에 버려져 있는 소년의 주검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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