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천지에 요괴가 들끓던 시절.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은

살기 위해, 혹은 출세를 위해 창칼을 집어 들고 요괴사냥꾼을 자처했다.

허나 요괴란 것이 원체 요사스러운지라

어지간한 장정들 대여섯 명이 달려들어도

쉬이 당해내지 못하고 죽어 나자빠지곤 했다.

그러니 어디 가서 ‘나 요괴사냥꾼이오.’라고 할라치면

‘에잇 저 양반도 달포를 못 넘기고 가겠구만.’ 하기 일쑤.

그렇다 해서 요괴사냥꾼이란 것들이 다 명이 짧은 머저리들이었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요괴 따위는 물러터진 무 베듯이 숭숭 썰고 다니는,

이름만 들어도 요괴건 사람이건 벌벌 떨법한 요괴 사냥꾼들이 존재했다.




이제 막 마을로 들어서는 앳된 얼굴의 여인네도 그중 하나였다.

겉보기엔 넉넉한 집안의 막내딸래미 쯤 될런가 싶은 여리한 모습이었다.

“이곳이 맞는 듯합니다. 오라버니.”

상자가 들었는지 반듯한 모양의 보따리를 보물처럼 품에 동여맨 여인은

아무도 없는 허공에 대고 말했다.

“네. 곧 해가 질 터이니 그 전에 귀동냥을 마쳐야지요.”

꼭 누군가와 담소라도 나누는양 대답한 여인은 날랜 걸음으로 마을 시장에 들어섰다.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여인의 모습에 나무장수는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아잇 깜짝이야! 기척이 없는가 아님 걸음이 빠른가 깜짝 놀랐네.

그래. 못 보던 얼굴인데, 무슨 일이시오.”

“다름이 아니옵고 이 일대에 요괴가 나타났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혹 아시는 게 있으신지요?”

나무장수는 말도 말라는 듯 곧바로 푸념을 늘어놓았다.

“나타나다마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아주 죽을 맛이오.

산엘 올라가야 나무를 해와서 끼니를 때울 텐데,

그 요사스러운 놈이 뒷산에 자리 잡은 이후로 이런 쭉정이나 주워다 팔고 있소.”

나무장수는 앙상한 가지 더미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장정 열댓 명이 낫이며 쇠스랑이며 들고 그놈 잡으러 갔다가

반도 못 살아 돌아왔으니, 이거 참 앞길이 암담할 노릇이오.”

여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의 인사를 건네었다.

“말씀 감사합니다. 그럼...”

곧바로 뒷산으로 향하는 여인을 보며 나무장수는 기겁하며 말했다.

“거거 잠시! 어디 가는 게요! 곧 해가 떨어질 터인데!

밤이 되면 그놈이 내려오니 여인네 혼자 돌아다니면 큰일 나오!

저 감나무 집이 아낙들만 사는 집이니 가서 하루만 신세를 지겠다 부탁해 보시오.”

여인은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소녀 혼자가 아닌지라 오라버니께서 지켜주실 겁니다. 그럼...”

인사를 마친 여인은 그대로 몸을 돌려 걸어갔다.

허나 나무꾼은 그런 여인의 모습을 보며 턱이 떡 하고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까지 눈앞에 있던 여인이 눈 깜짝할 새에 저 먼 곳으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놀랍도록 빠른 걸음.

그제야 나무장수는 소문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나무상자를 매고. 바람처럼 날랜 여인! 맞아! 그 요괴 사냥꾼 오누이구나!”





그야말로 잔영만을 남긴 채 빠른 걸음으로 뒷산을 오른 여인은 잠시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이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겠지만,

그녀의 신통한 능력 덕에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다.

“이 근방인 듯합니다. 오라버니. 주변에서 망자들의 곡소리가 새어 나옵니다.”

곧 그녀에게만 들리는 목소리가 대답을 해왔다.

‘조심하거라. 언제 그 요괴 놈이 튀어나올지 모르니. 곧 해가 지니 잠시 기다리자꾸나.’

“네 오라버니.”

여인은 기쁜 듯 상자를 쓰다듬으며 인근 바위에 걸터앉았다.

풀잎 흔들리는 소리를 들으며 한동안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금세 땅거미가 내렸다.

이윽고 산이 완연한 어둠에 잠기는 순간,

여인의 눈빛이 바뀌었다.

여리하고 자애로운 눈빛은 강인하고 거칠어졌고,

작은 몸놀림. 그리고 가볍게 몰아쉬는 숨조차 전혀 다른 사람의 것이 되었다.

외형은 달라진 것이 없었으니, 마치 영혼이라도 바뀐 듯한 꼴이었다.

“가자. 안내하거라.”

‘네. 오라버니.’

여인은, 아니 여인의 오라버니는 금세 어둠 속에 녹아들어 언제인지 모르게 그 자리를 벗어났다.

이 기묘한 오누이가 조선 최고는 무리더라도

다섯 손가락 안에는 너끈히 들만한 요괴 사냥꾼.

해인과 달석.

놀랍게도 둘은 동생의 몸에 오라비의 영혼이 더부살이하는 기이한 오누이다.

낮에는 동생. 그리고 해가 지면 오라비.

동생 해인은 바람같이 빠른 여인으로 조금 전까지 있었던 사람이 발자국만 남긴 채 사라진다 하여 ‘낮의 발자국’이라 불리었고

오라비 달석은 은밀하고 그림자 같이 신통하게 움직인다하여 ‘밤의 그림자’라고 불리었다.




어둠 속에 몸을 숨긴 달석은 동생 해인이 이끄는 대로 은밀히 산을 올랐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소문의 요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잿빛 털에 등줄기를 따라 긴 가시가 촘촘히 박힌 승냥이 요괴.

그 모습에 오누이는 크게 실망하였다.

‘역시 소문이 부풀려진 듯합니다. 새하얀 호랑이라더니....’

“그렇구나.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으나 그래도 일은 마쳐야지.”

승냥이는 들려오는 인기척에 몸을 일으켜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의아해하는 승냥이의 목덜미에 뭔가 번쩍이는 것이 지나가는 듯한 그 순간,

아무런 전조 없이 승냥이의 모가지가 바닥을 굴렀다.

이윽고 나타난 달석의 손에 들린 단도에는 피 한 방울 묻어있지 않은 채였다.

‘하루라도 빨리 어머님은 풀어드려야 하는데. 저의 잘못인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습니다.’

머릿속에서 울리는 해인의 말에 달석은 자상하게 대답했다.

“네 잘못이 아니다.

서둘러야 하는 것은 맞으나, 이렇게 요괴를 잡아 고통받는 이들을 구원하는 것 역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어머님께서도 우릴 자랑스러워하실 테니 너무 조급해 말자꾸나.”

‘네. 오라버니. 그래도 하루빨리 그 순백의 범을 잡아 창귀가 된 어머님을 구해 드리고 싶습니다.’

둘은 조금 씁쓸한 기분을 느끼며 과거를 떠올렸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또 달석은 몸을 잃어 동생에게 혼을 맡긴 그날.





해인과 달석은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산 너머 먼 곳으로 일손을 도우러 나가시는 어머니는

오누이를 돌봐줄 시간이 부족하였지만,

오라비인 달석이 아버지처럼 해인을 잘 돌봐준 덕에 걱정 없었다.

하지만 어느 날, 유달리 늦게 돌아온 어머니는 물이 묻어 나올듯한 축축하고 음산한 목소리로 문밖에서 말했다.

“얘들아.... 이 어미가 왔다.... 그러니 문을 열어다오... 밖이 너무 춥구나...”

해인은 기쁜 마음에 문을 열려 했지만, 달석은 의아함을 느끼며 해인을 붙잡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활기찬 목소리로 오누이를 기쁘게 했던 어머니였다.

허나 지금은 마치 죽은 시체가 말하는 것 같은 섬뜩함이 있었다.

“어머니. 목소리가 많이 안 좋으신 것 같습니다.”

“밖이 너무... 추워서 고뿔이 왔구나.... 그러니 어서 문을 열어다오....”

달석은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못한 채 물었다.

“그럼 어머니 손을 보여주세요! 문풍지 안으로 어머니의 곱고 예쁜 손을 보여주세요.”

“손이... 꽁꽁 얼어서 문풍지를.... 뚫을 수가 없구나. 그러니 어서 열어다오.... 문을 열어다오....”

그 말을 들은 해인은 문풍지에 구멍을 내어 밖을 내다보았다.

“어머니! 어머니가 맞아요, 오라버니!”

달석이 말릴 새도 없이 해인은 문을 열었고,

오누이가 마주한 것은 그리도 기다리던 어머니가 아니라 털이 새하얀 호랑이 요괴.

해인이 본 것은 요괴에게 잡아먹혀 창귀가 된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달석은 뒤늦게 해인의 손을 잡아끌고 뒷문으로 내달렸다.

하지만 아이들의 뜀박질로는 요괴를 뿌리쳐 내지 못할 터였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뛰어! 무슨 일이 있어도 멈추지 마!”

달석은 그렇게 소리치며 해인의 손을 놓으려 하였다.

하지만 해인은 오라비의 손을 절대 놓지 않고 그야말로 죽어라 달려나갔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 더는 달릴 수 없던 해인이 뒤를 돌아보았을 때,

호랑이 요괴는 보이지 않았다.

“오라버니! 요괴가 없어졌어요! 돌아갔나 봐요!”

기쁘게 말한 해인이 옆자리엔 달석이 없었다.

그저, 저릴 정도로 꽉 잡고 놓지 않았던 달석의 팔뚝만이 해인의 손에 들려있었을 뿐.

해인은 오라비의 팔을 부여잡고 한참을 울었다.

울다가 지쳐 쓰러져 잠들고. 잠에서 깨면 다시 울기를 반복하던 해인의 앞에

한 요괴사냥꾼이 나타났다.

“호랑이 요괴에게 당했구나. 허나 다행히 혼을 빼앗기지는 않았다. 네가 꽉 잡은 덕에 육만 잃은 게로구나.”

커다란 칼을 허리에 차고 한쪽 눈에 기묘한 기운이 서린 기이한 사람이었다.

요괴사냥꾼은 해인에게 오라비의 팔을 상자에 봉해 영혼을 몸에 담는 요령을 알려주었다.

“창귀가 되는 것만은 막았으니 다행이라 할 수 있으나 오라비의 혼을 오래 담아두긴 힘들 것이다.

마음이 정리되는 대로. 오라비의 장례를 치러 좋은 곳으로 인도하도록 해라.”

머릿속에서 울리는 오라비의 말에 기쁨과 안도의 눈물을 흘리던 해인은 요괴 사냥꾼을 붙잡으며 말했다.

“저희 손으로 어머니를 구해 드리고 싶습니다. 요괴에게 복수를 하고 싶습니다! 저희에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요괴사냥꾼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가르쳐 줄 수는 있다. 허나 모든 요괴를 없애는 게 내 목표인 만큼,

너희의 복수를 기다려 주지는 않을 터이니 혹여나 내가 먼저 발견한다면 직접 베어내겠다.”

그렇게 그 요괴사냥꾼의 가르침을 받은 오누이는 금세 성장했고,

어느새 ‘낮의 발걸음’. ‘밤의 그림자’. 라는 별호를 얻어

어머니의 원수. 순백의 범 요괴를 사냥하기 위해 세상을 떠돌게 되었다.

허나 수년이 지났음에도 그때 보았던 새하얀 호랑이 요괴를 찾을 수는 없었다.

혹 다른 요괴사냥꾼에게 당했나 싶었지만

그런 요괴가 잡혔다면 금세 소문이 퍼질 터였다.

답답함을 느끼던 달석은 슬슬 밝아지는 하늘을 보고는 해인에게 말했다.

“해가 뜨는구나. 저 녀석의 시체를 가져가서 마을 사람들을 안심시켜 주어야지. 부탁하마.”

“네. 오라버니 걱정 놓으시어요.”

어느새 다시 몸으로 돌아오며 대답한 해인은 야무진 솜씨로 요괴의 시체를 묶어 갈무리했다.

‘언제나 궂은일만 하는 너를 보면 오라비 마음이 안 좋구나.

어서 그 요괴를 처단해 어머니를 편하게 해 드리고 나도 저승으로 가야 할 텐데.’

“그런 말씀 마시어요.

전 요괴가 죽은 이후에도 오라버니를 보내드릴 마음이 없습니다.

언제까지고 제 안에서 저를 돌봐주셔야지요.

아니 이제는 제가 돌봐드리겠습니다.”

‘아니다. 너 역시 시집을 가서 가정을 꾸려야지.

그때가 되면 난 짐짝이 될 터이니 진작 내가 가야 할 곳으로 가야 한다.’

“안 됩니다. 혹 다시 한번 그런 말씀 하시면 소녀 정말 화낼 것입니다!”

달석은 가슴이 미어짐을 느끼며 대답했다.

‘그래.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자. 그럼 뒷일을 부탁하마. 난 잠시 숨을 골라야겠구나.’

곧 달석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달석에게 몸을 내어준 것이 쉬는 셈인지 굳이 따로 잠을 잘 필요가 없는 해인과 달리

달석은 늘 얼마간 깊은 잠에 빠져들곤 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시간이 해인에게 유일한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달석이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해인은 몇 년 전 오라비 몰래 그 순백의 범을 찾아 복수를 마칠 수 있었다.

어머니를 죽인 분노. 그리고 오라비의 육을 빼앗아간 분노를 담아

그 새하얀 거죽이 전부 뻘겋게 물들 정도로 난도질하여 수수밭에 던져버렸다.

해인은 품에 맨 상자를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어머니는 이미 편히 보내드렸으니 걱정 마시어요. 오라버니.

허나 이를 말씀드리면 오라버니는 제 허락도 없이 저승으로 가시겠지요.

절대 안 될 일입니다. 전 오라버니를 절대 떠나보내지는 않을 겁니다.

저에겐 오라버니밖에 없으니 절대 놓을 수 없습니다.

비록 세상이 손가락질할, 결코 품어서는 안될 그릇된 연정이지만,

이 못난 소녀의 마음을 언젠가는 이해하시겠지요.”

해인은 애정어린 몸짓으로 상자를 꽉 끌어안아 준 뒤,

요괴의 시체를 끌고 마을로 내려갔다.



By. neptun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