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 [ 한문 ] 에 대한 이야기다.
어떻게 읽어야 하는 한문인지 마지막까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당시 우리들 사이에서는 ' 판도라 ' 라고 얘기했었다.
내 고향은 조용하고 평온한 시골이었다.
놀이터나 아이들이 놀만한 장소 하나 없는 썰렁한 마을이었지만
딱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마을 외곽, 긴 풀이 끝없이 이어지는 길에 덩그러니 서 있는 빈 건물 하나.
오랫동안 아무도 살지 않았던 것인지 허름한 시골마을의 건물들과 비교해도 더욱 낡고 더 허름한 느낌의 집이었다.
단지 이것 뿐이었다면 그저 ' 낡은 집 ' 에 불과 했겠지만
이 집이 눈길을 끌었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부모님이나 마을 어른들의 예민한 반응.
그 집에 대해 얘기를 하려고 하면 엄청 혼을 내고 어떨 땐 때려가면서까지 화를 낼 때도 있었다.
또 다른 하나, 그 집은 어째서인지 현관이 없다는 것.
창문은 있는데 사람이 출입하는 현관이 없었다.
누군가가 살았었다고 한다면 사는 동안 어떻게 들어가고 나온 것인지, 일부러 문이 아닌 창문으로 드나들었던 것인지
그런 수수께끼 같은 점들이 흥미를 끌어서 아이들 사이에서는 어느샌가 ' 판도라 ' 라는 호칭까지 붙어 화제가 됬었다.
이 시점에서는 ' 판도라 ' 라는 것에 대해 아직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나를 포함해서 많은 아이들이 ' 안에 무엇이 있는지 들어가 보겠어 ! ' 라는 다짐을 하기도 했지만
평소에 말만 꺼내도 엄청 혼났던 경험들이 있던 탓에 누구도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었다.
그 건물 자체는 어른들 없이 아이들끼리만도 갈 수 있었고, 인적도 드문 그런 곳이었다.
아마도 마을 아이들 대다수는 그 집 앞까지는 간 적이 있었을 것이다.
한동안은 그렇게 ' 판도라 ' 라고 불리는 집의 분위기만 즐기며 별 일 없이 지냈다.
중학교에 올라가고 몇 개월 안됬을때,
어떤 남자애가 ' 판도라 ' 이야기를 듣더니 흥미가 생겼는지 ' 가보고 싶다 ! ' 고 얘기 했다.
이 남자애를 A라고 칭하겠다.
A의 집은 A의 어머니가 원래 우리 마을 출신으로 다른 마을로 이사 가서 살다가 이혼하면서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고 한다.
하지만 A는 우리 마을은 처음이어서 ' 판도라 ' 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몰랐던 것 같다.
당시 나와 사이가 좋았던 B , C , D 중에 B와 C가 A와 친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모두가 친해졌다.
다섯이서 모여서 일상적인 잡담을 나누다가 우리가 여느 때처럼 ' 판도라 ' 에 대해 이야기 하자
궁금해진 A가 캐물은 것이다.
' 우리 엄마랑 할머니도 여기서 태어나서 자랐는데 그 얘기 물어보면 나도 혼나려나? '
' 혼나는 정도가 아니야, 우리 엄마 아빠는 진짜 쎄게 때렸다니까 '
' 우리 집도..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
A에게 ' 판도라 ' 에 대해 얘기하면서 각자 부모님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 했다.
대강의 설명이 끝나고 가장 큰 의문점인 ' 그 집에 무엇이 있는가 ' 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거야? '
' 모르지, 들어가 본 적도 없고 엄마 아빠한테 물어보면 혼나기만 하고 '
' 어른들은 뭐가 있는지 알고 있지 않을까? '
' 그럼 까짓 거, 뭘 숨기고 있는지 우리가 직접 알아내면 되잖아 '
A는 의기양양하게 얘기했다.
부모님한테 혼나는 것이 신경 쓰였던 나와 친구들은 처음엔 망설였지만,
A의 부추김과 그간 쌓였던 반항심이 작용했는지 결국은 모두 동의했다.
그 뒤에 약속을 잡으면서 놀 때엔 항상 함께 있었던 D의 동생（E） 도 같이 가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총 여섯 명이 이번주 일요일 낮에 모여 그 집에 가기로 했다.
당일 ,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 빈 집 앞에서 다들 만났다.
모두 과자 등을 담은 가방을 하나씩 짊어지고 와서는 완전 소풍을 온 기분으로 다 같이 들떠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 집은 수풀에 둘러싸인 공간에 변함없이 우뚝 서 있었고, 현관이 없었다.
건물은 2층 짜리 였는데 2층 창문까지 올라갈 수가 없어 보였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가려면 1층의 창을 깨고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 유리창 하나 물어주는 정도는 별 거 아니잖아? '
A가 그렇게 얘기하고는 거침없이 유리를 깨고 안으로 넘어갔다.
아무일 없이 끝난다고 해도 나중에 분명히 크게 혼나겠구나란 생각을 하면서도 다들 A를 따라 들어갔다.
창을 넘어 들어간 곳은 거실이었다.
왼쪽에 주방이 있었고 정면에 복도가 있고 그 왼쪽이 욕실과 화장실.
복도 끝 오른쪽은 2층으로 가는 계단과 본래 현관이 있어야 할 자리.
낮이라서 건물 내부는 밝았지만 왠지 모르게 복도 쪽은 어두웠다.
굉장히 낡은 외관에 비해 안은 상당히 깨끗하다고 할지.. 아무것도 없었다.
가구 같은 건 일절 없었고 사람이 살았었던 흔적도 없었다.
거실도 주방도 상당히 넓은 편이기는 했지만 지극히 평범했기에
' 아무것도 없잖아 '
' 평범하네 '
' 뭐든 간에 뭐라도 있을 줄 알았더니 ' 하며 모두가 시시해 했다.
가져온 과자들을 풀어서 둘러 앉아 우걱우걱 먹다가
' 그럼 2층에는 뭐가 있을까? ' 란 생각에 나와 D는 E와 함께 2층으로 가기 위해 복도로 향했다.
그러나 ' 복도는... ' 하면서 복도에 들어 선 순간,
나와 D는 심장이 멎을 뻔 했다.
길게 뻗어있는 복도는 중앙 왼편에 욕실과 화장실이 마주 보고 있었는데,
그 중간쯤의 위치에 화장대가 있고 그 앞에는 봉이 세워져 있었으며 그 봉에는 머리카락이 걸려 있었다.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가발처럼 머리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이랄까?
머리가 긴 여성의 머리카락이 그 모양 그대로 거기 있는 느낌이었다.
위치도 평균적인 키의 여성이라면 저 정도면 머리가 있겠다 싶은 높이에 조정되어 있어서 마치 여자가 화장대 앞에
앉아있는 모습을 재현한 듯 한 모습.
한 순간에 소름이 돋아서
' 뭐야?!! 저게 뭐야?!! ' 하며 약간의 패닉에 빠진 나와 D.
뭐야 뭐야 하면서 복도로 온 나머지 친구들도 기괴한 광경에 아연실색했고,
E만이 ' 저게 뭐야? ' 하며 의아해 했다.
' 뭐야 저게? 진짜 머리카락인가? '
' 몰라.. 가서 만져볼까? '
A와 B가 그런 대화를 하는 걸 나머지가 필사적으로 말렸다.
' 위험해! 하지마 이상하잖아 '
' 그래 하지마 '
어떻게 보더라도 이상해 보일 수 밖에 없는 그 광경에 공포를 느끼고 일단 모두가 거실로 돌아갔다.
거실에서는 그 기괴한 것이 보이지 않았지만, 복도 쪽으로 시선을 두는 것 조차도 싫었다.
' 어떻게 할까.. 복도를 지나지 않으면 2층으로 갈 수 없는데 '
' 난.. 싫어.. 저거 너무 이상하잖아 '
' 나도 뭔가 느낌이 안좋아 '
C ,D 와 나는 너무도 예상치 못한 광경을 보고서 완전히 의욕을 잃었다.
' 저걸 안 보면서 가면 되잖아 '
' 2층에서 뭐가 나오던 간에 계단 내려오면 바로 요기로 나갈 수 있잖아, 게다가 아직 낮이다? '
A와 B는 2층이 그렇게 보고 싶은 건지 빼기 시작하는 우리 셋을 부추겼다.
우리가 서로를 살피며 어떻게 할까 하다가 갑작스레 깨달았다.
' E.... E는? '
그제서야 모두가 눈치 챘다. D의 동생인 E가 없어진 것이다.
유일한 출구인 창문 바로 앞에 우리가 있었기 때문에 밖으로 나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건물 내부가 넓다고 해도 거실과 주방은 한 눈에 들어왔었다. 그곳에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할 E가 없어진 것이다.
' E !! 어디 있어 대답해! '
D가 열심히 동생을 불렀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 혹시 2층으로 올라간 거 아닐까? '
그 말 한마디에 모두가 복도를 바라보았다.
' 세상에!! 왜?! 뭐 하는 거야 걔?! '
D가 눈에 눈물이 맺힌 채로 소리쳤다.
' 진정해 , 일단 2층으로 가보자 '
무섭단 소리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는 바로 복도를 지나 2층으로 올라갔다.
' E !! 어딨어 '
' E , 빨리 안 나올래?! '
모두가 E의 이름을 부르며 계단을 올랐으나 아무 대답이 없었다.
계단을 오르자 방이 두 개가 있었다.
둘 다 문이 닫혀 있었다. 먼저 바로 앞에 보이는 방의 문을 열었다.
그 방은 건물 밖에서 바라 보았을 때, 창문이 보이던 방이었다.
안에는 역시 아무것도 없었고 E도 없었다.
' 저 쪽이네... '
우리는 다른 방문 앞에 다가가 천천히 방문을 열었다.
그곳엔 E가 있었으나 우리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방의 중앙에는 1층에 있는 것과 똑같은 것이 있었다.
화장대와 가운데 세워진 봉, 그리고 봉에 걸려있는 긴 머리.
섬뜩한 광경에 압도되어 모두가 망연자실한 채 움직일 수 없었다.
' 언니, 이게 뭐야? '
갑작스런 질문을 한 E는 순간 엄청난 행동을 저질렀다.
화장대에 다가가서 세 개의 서랍 중, 첫 번째 서랍을 열었던 것이다.
' 이게 뭐야? '
E가 서랍에서 꺼내어 우리에게 내민 것.
그것은 붓 같은 것으로 쓴 OO 이라는 한문이 적힌 한지였다.
멍한 채로 E를 바라 볼 수 밖에 없는 우리.
이때 어째서 바로 움직이지 못했던 건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E는 개의치 않고 한지를 다시 넣고는 서랍을 닫더니 두 번째 서랍에서 내용물을 꺼냈다.
완전히 똑같은 물건. OO 이라는 한문이 적힌 한지였다.
나는 더 이상 뭐가 어찌 되어가는 것인지 갈피도 잡지 못한 채로 덜덜 떨기만 했다.
D가 정신을 차리고 동생을 잡았다. D는 거의 울고 있었다.
' 뭐하는거야 너?!! '
동생을 호되게 나무라면서 한지를 뺏어 들고는 서랍에 다시 넣으려고 했나보다.
하지만 E가 한지를 꺼내면서 두 번째 서랍을 닫은 것이 문제였다.
당황했던 것인지 D는 두 번째가 아닌 세 번째 서랍을 열어버린 것이다.
드륵 하고 서랍을 연 순간, D는 안을 들여다보는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말 없이 서랍을 보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
' 뭐야.. 왜 그러는데 왜? '
겨우 움직일 수 있게 된 우리가 D에게 다가가려 한 순간, D는 쾅! 소리를 내며 서랍을 닫아버렸다.
그리고는 어깨보다 조금 길게 내려오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입으로 가져가서는 질겅질겅 씹기 시작했다.
' 야 뭐야 왜 그래? '
' D!! 정신 차려 '
모두가 말을 걸어도 반응 없이 그저 자신의 머리카락을 씹고 있을 뿐이었다.
그 행동에 겁을 먹은 것인지 E도 울기 시작했고 상황은 긴박해져 갔다.
' 어떻게 된거야? '
' 나도 몰라! 뭐야 도대체 ! '
' 아무튼 빨리 집으로 가자 여기서 나가자 '
D를 세 명이 들고 나는 E의 손을 잡고 서둘러서 그 집에서 나왔다.
그 동안에도 D는 계속 자신의 머리카락을 씹고 있었고 , 우리는 어찌할바를 모른 채
그저 ' 빨리 어른들한테 가야 해 ' 란 생각 뿐이었다.
그중 집이 가장 가까웠던 우리 집으로 뛰어들어 큰 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펑펑 울고 있는 나와 E. 땀 범벅이 되어있는 나머지 셋, 그리고 기괴한 행동을 하는 D.
어찌 설명을 해야 할지 몰라서 머리가 빙빙 돌고 있는데 내 목소리를 들은 엄마가 무슨 일 인가 하고 나왔다.
' 엄마 !! '
울면서도 어떻게든 상황을 설명하려 하는데 엄마는 갑자기 나와 나머지 친구들의 따귀를 때리더니 고함을 쳤다.
' 너희!! 그 집에 갔구나?!! 그 빈 집에 갔던 거지?!! '
처음 본 엄마의 화난 모습에 우리는 그저 열심히 고개만 끄덕였고,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 너희!! 전부 안에서 기다려! 지금 너희 부모님께 연락 할 테니까 '
그렇게 말하고 엄마는 D를 안아 부축해서 2층으로 데려갔다.
우리는 엄마가 말한데로 거실에 모여 멍하니 앉아서는 아무 생각도 ,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 한 시간 정도 그렇게 있었던 것 같다.
각자의 부모님들이 모두 모일 때까지 엄마와 D는 2층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어른들이 다 모였을 즈음, 엄마만 거실로 내려와서 말 했다.
' 이 애들.. 그 집에 들어갔데요 '
어른들이 엄마의 말을 듣자마자 동요하거나 경악했다.
' 너희들 뭘 본 거야? 거기서 뭘 봤냐구?!! '
각자의 부모님들이 일제히 자신의 아이들에게 질문을 해댔고, 우린 머릿속이 하얘져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A와 B가 어렵게 대강의 상황을 얘기했다.
' 우리가 본 건.. 화장대랑.. 머리카락 같은거... 그리고.. 창을 깨버려서.. '
' 다른건?! 그것만 본 거야?!! '
' 그리고.. 뭔지 알 수 없는 말이 적힌 종이.. '
그 한 마디에 모두가 조용해졌다.
그와 동시에 2층에서 엄청난 비명이 들렸다.
우리 엄마가 놀라서 2층으로 올라갔고, 몇 분 뒤에 엄마의 부축을 받으며 내려온 것은 D의 엄마.
보기 힘들 만큼 눈물 범벅이었다.
' 본 거니....? D... 서랍 안을 본 거니..? '
D의 엄마가 부축을 받으며 우리에게 물었다.
' 너희들.. 화장대 서랍장을 열고서 그 안을 본 거냐고?!! 2층 화장대 세 번째 서랍이었니? 그래?!! '
다른 어른들도 추궁하듯 우리에게 물었다.
' 첫 번째.. 두 번째 서랍은 저희도 봤어요.. 세 번째는 D만... '
말이 끝나자마자 D의 엄마는 엄청난 힘으로 우리를 붙잡으며
' 왜 안 말렸어!! 너희 친구 아니니?!! 왜 가만히 보고만 있었어?!! '
어른들 모두가 D의 엄마를 말렸고, D의 엄마는 겨우 진정이 되었는지 E를 데리고 다시 2층으로 올라갔다.
일단 상황은 그렇게 마무리되어 우리는 B의 집으로 이동했고, B의 부모님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 너희들이 간 그 집 말인데, 처음부터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이었다.
거기는 화장대하고 그 머리만을 위해 세워진 집이야. 나나 다른 어른들이 어렸을 때부터 있었어
그 화장대는 실제로 쓰여지던 것이고 머리카락도 진짜다.
그리고 너희가 보았다는 그 글자... 이 글자 맞지? '
그렇게 얘기하고 B의 아빠는 팬으로 OO 이라 적힌 종이를 우리에게 보여줬다.
우리가 맞다고 대답하자 B의 아빠는 종이를 확 구겨서는 쓰레기통에 던지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 이건 그 머리카락 주인의 이름이다.
뭐라고 읽는 지는 일단 알지 못하면 절대 입에서 나올 리 없게 지어져 있어.
너희가 알아도 되는 건 여기까지다. 앞으로는 그 집에 대한 이야기는 절대 하지 마라.
다시 가는 것도 안된다 알겠지? 일단 오늘은 모두 우리 집에서 지내는 걸로 하고 쉬어라 '
그렇게 얘기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B의 아빠에게 B가 어렵게 물었다.
' D는 어떻게 된 거에요? 걔가 왜 그렇게.. ? '
' 그 애 일은 잊어버려라. 이제 두 번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 일도 없고
너희들 하고도 다시는 만나지 못 할 거다. 그리고... '
B의 아빠는 조금 슬픈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 너희는 D의 어머니에게 앞으로 평생을 원망 받으며 살게 되겠지.. 이번 일이 누구의 책임 인가를 물을 생각은 없다.
다만, 아까 너희도 D의 어머니를 봐서 알잖아. 너희는 이제 그 애와 다시는 엮여서는 안돼 '
그렇게 B의 아빠는 방을 나갔다.
우린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날을 어떻게 보냈는지도 잘 모르겠다.
정말 긴 하루였다.
그 일 이후로 당분간은 평소처럼 생활 했다.
다음 날부터 우리 엄마 아빠도 다른 아이들의 부모님도 그 일에 관해서는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기에
D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학교에는 ' 개인적인 사정 ' 이라고 얘기한 모양인데, 약 한 달 뒤쯤 어딘가로 이사를 가버렸다.
우리들 집 외 다른 집에도 연락이 간 것인지
그 빈 집에 관한 이야기는 서서히 줄어갔다.
빈 집의 모든 창도 엄중하게 막아 놓아서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해두었다.
나와 친구들도 그 집에는 두 번 다시 가지 않았고 D의 일도 있어서 인지 점점 서로 멀어졌다.
고등학교도 각각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고 나도 다른 아이들도 마을을 떠났고 이제 10년이 되어간다.
여기까지 부족한 글을 읽어주었는데, 미안하지만 나는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결국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끝나버렸다.
마지막으로, 내가 대학을 졸업했을 때 즈음이다.
D의 엄마에게서 우리 엄마한테 편지가 왔었다.
그 때, 엄마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린 것이 지금도 마음에 남아 있다.
' 엄마에게는 자식을 위해서 마지막까지 숨겨두는 선택이라는 것이 있는 거야.
만약.. 그렇게 된 게 너였다면, 엄마도 같은 선택을 했을거야
그게 설령 잘못 된 선택이라 할 지라도 '
PS
이 이야기는 ' 판도라 ' 에 대한 미스테리를 설명하는 글이다.
우선, 이것은 엄마가 딸에게 세 가지의 의식을 행하는 것이 대대로 이어지던 어느 가문에 관한 이야기다.
먼저 그 가문에 대해 이야기 하겠다.
그 가문에서 딸은 어머니의 ' 소유물 ' 로써, 딸을 ' 재료 ' 로 하는 어떤 의식이 행해졌다.
엄마는 둘 내지는 세 명의 딸을 낳고 그 중 한명을 ' 재료 ' 로 선택한다.
선택한 딸에게는 두 개의 이름을 지어주고 하나는 엄마만이 아는 진짜 이름으로 평생을 숨긴다.
만에 하나 이름이 알려졌을 경우를 대비해서 원래 한문의 음/뜻 과는 전혀 다른 후리가나를 달기 때문에,
설령 그 한자를 안다고 하더라도 엄마 외에는 그 이름을 절대 발음 할 수가 없다.
ㅁ 후리가나 : 한문을 읽기 위한 히라가나
엄마와 딸 둘이서만 있을 때에도 절대 숨겨진 이름을 쓰지 않는다.
그 딸이 엄마의 ' 소유물 ' 이란 것을 강조/증명 하기 위함이다.
또, 숨기는 이름을 짓는 날에 반드시 화장대를 준비해서 딸의 10살 , 13살 , 16살 생일날 이외에는
절대로 딸에게 보여주지 않았는데 이것은 전부 앞으로 다가올 어떤 날을 위한 사전 준비다.
진짜 이름을 아무에게도 불리는 일 없이 ' 재료 ' 로써의 가치를 높히기 위해
어릴 때부터 엄마의 ' 교육 ' 이 시작된다.
그 ' 교육 ' 이라는 것은
- 고양이 또는 개의 얼굴을 조각조각 내기
- 꼬리만 남겨진 몸체를 기르기 （ 딸 주변의 모든 사람이 그것을 살아있는 것처럼 다루어서 딸이 그것이 정말 살아 있다고 믿게 끔 했다 ）
- 고양이의 귀와 수염을 사용한 주술을 가르쳐서 그 주술로 쥐를 죽이기
- 거미를 잘게 나누었다가 다시 원래 형태대로 맞추기
- 분뇨를 먹기 등등
모든 내용을 다 쓸 수가 없어서 일부만 기재한다.
하나하나가 전부 듣기만 해도 헛구역질이 날 듯한 내용들 뿐이다.
그 중에도 동물이나 벌레 , 특히 고양이와 관계있는 것이 1/3 정도였는데 그건 이유가 있었다.
이 가문에선 남자와 관계를 갖는 것은 단지 아이를 낳기 위함일 뿐이고
목적한 수의 여자아이를 낳는 시점에서 관계는 단절 된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에 대해 남자에게 사전에 얘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가문이나 주술에 대한 비밀을 캐려고 하는
남자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에 대한 대응으로 어느 대에서부턴가 남자와 관계를 할 때에 주술을 사용하여
남자에게 마물이 씌이도록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이 죽인 고양이 등의 원혼이 전부 남자에게로 가서
비밀을 캐려고 하는 남자의 집에 재앙이 일어나도록 하여 가문의 비밀을 캐지 못하게 했다.
' 재료 ' 로서 심어지는 어긋난 상식, 어긋난 가치관, 어긋난 기호 등을 위한 ' 이상한 교육 ' 은 대대로
모녀간에 13년 동안 이어진다.
이 기간 중에 세 가지의 의식 중, 두 가지가 행해진다.
하나는 딸이 10살이 되는 해, 엄마는 딸을 화장대 앞으로 데려가고
딸은 엄마에게 줄 손톱을 지정 받는다.
여기서 딸은 처음으로 화장대의 존재를 알게 된다.
양 손,발에서 어느 손,발톱을 몇 개나 제공할지는 그 대의 엄마가 결정한다.
여기서 말하는 제공이란 손,발톱을 빼는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손,발톱을 빼서 엄마에게 건네는 것.
화장대에 있는 세 개의 서랍 중, 가장 위의 서랍에 손,발톱과 숨겨진 딸의 이름을 적은 종이를 같이 넣는다.
그리고 엄마는 그 날 하루를 화장대 앞에 앉아서 보내게 된다.
이것이 첫 번째 의식.
또 하나는 딸이 13살이 되는 해, 똑같이 화장대 앞에 앉아서 딸은 치아를 제공하도록 지정 받는다.
이것도 세대에 따라서 그 수가 다르다. 스스로 자신의 치아를 뽑고 , 엄마는 그것을 화장대의 두 번째 서랍에
역시 숨겨진 이름을 적은 종이와 함께 넣는다. 그리고 또 그 날 하루를 엄마는 화장대 앞에 앉아 보낸다.
이 두 가지의 의식을 마치면 그 다음날부터 16살 때까지 3년간은 ' 교육 ' 이 진행 되지 않는다.
갑작스레 아무런 얘기도 없이 자유가 주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이 시기의 딸들은 대부분 엄마의 말대로 움직이는 인형과 같은 상태가 되어있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어렴풋이 남아있는 본인의 감정 때문인지 평범하게 살려고 하는 딸이 많았다고 한다.
3년 뒤, 딸이 16살이 되는 해에 마지막 의식이 행해진다.
그것은 화장대 앞에서 엄마가 딸의 머리카락을 먹는 것이다.
먹는다기보다 몸 속에 넣는다는 것이 중요했다.
민 머리가 될 정도로 거의 통째로 딸의 머리카락을 잘라서 화장대를 바라보며 정신없이 입에 넣고 삼킨다.
딸은 그저 가만히 지켜 볼 뿐.
엄마가 머리카락을 다 먹으면 그때 엄마는 딸의 숨겨진 진짜 이름을 부른다.
딸이 본인의 진짜 이름을 듣는 건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이것으로 의식은 완성되며 목적은 달성된다.
이 다음날부터 엄마는 온종일 자신의 머리카락을 우물거리기만 할 뿐,
폐인이 되어 죽는 날까지 격리되어 살아간다.
폐인이 되었다함은 말 그대로 엄마의 빈 껍데기 같은 것으로 엄마와는 완전히 별개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저 사람 모양을 한 풍선과 같은 것으로, 본인은 아무도 본 적 없고 들은 적 없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으로 도달한다.
이때까지의 일은 모두 ' 그곳 ' 으로 갈 수 있는 자격을 얻기 위한 준비였으며,
마지막 의식을 행하므로써 ' 그곳 ' 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 그곳 ' 은 미지의 장소로써 지금까지 같은 의식을 치뤄 자격을 얻어 온 엄마들이 살고 있으며
순결하고 완벽한 낙원과 같은 곳 이라고 한다.
그 낙원과도 같은 곳으로 간 엄마는 머리카락을 우물거리는 빈 껍데기만 남게 되는 것이다.
남겨진 딸은 엄마의 나머지 자매들이 키워준다.
딸을 두 세명 낳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엄마가 없어진 이후, 평범하게 자란 엄마의 자매들이 딸을 돌봐주게끔 하기 위함인 것.
엄마에게서 해방된 딸은 머리가 원래대로 자랄때 쯤, 남자와 관계를 가지고 아이를 낳는다.
그리고 이번엔 본인이 엄마의 입장이 되어 똑같은 일을 반복하여 ' 그곳 ' 으로 갈 준비를 한다.
여기까지가 이 가문에 대한 설명이다.
다른 내용들도 있으나 글로 쓰기엔 그 양이 너무나 많아서 쓸 수가 없다.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니 이어서 글을 쓰겠다.
사실 이 악습은 그렇게 오래 가지 못했다.
서서히 이 의식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 의문이 점점 커져서 차츰 엄마와 딸이 본래의 평범한 모녀 관계를 지향하게 되었다.
가문 내에서 이러한 분위기가 정착 되면서부터 악습은 사라졌고 결국에는 금지되었다.
다만,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에 숨기는 이름과 화장대의 관습만은 남겨두기로 했다.
숨기는 이름은 엄마의 증표로써, 화장대는 축하의 선물로써.
그렇게 긴 세월이 흐른 뒤,
그 가문의 한 아이가 태어났다.
여자 아이였다. 평범하게 자린 아이였고 사랑도 많이 받으며 자라왔다.
그렇게 원만한 인생을 살다가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 결혼도 하게 됬다.
그녀는 자신의 가문에 대해 어머니께 들은 바가 있어서 어느정도 알고 있었지만 특별히 관심을 갖지는 않았다.
그리고 자신과 똑 닮은 예쁜 딸도 출산했다.
어머니에게 배운 대로 숨기는 이름도 지어주고 화장대도 자신의 것과 똑같은 것으로 마련해주었다.
그렇게 행복한 나날이 지속되리라 생각했지만 딸이 10살이 되던 해, 사건이 일어난다.
그날 엄마는 어머니 집에 가 있었고, 집에는 아빠와 딸 뿐이었다.
볼 일을 마치고 밤이 되어서 집에 돌아와 보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손톱과 이가 몇 개씩 뽑힌 채로 딸이 죽어있던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잘 보관해두었던 딸의 숨긴 이름이 적힌 종이가 떨어져 있었고
딸의 뽑혀진 손톱과 이가 화장대 안에 들어 있었다.
남편은 어디 간 건지 보이지 않았다.
죽은 딸을 끌어안고 우는 것 말곤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이상함을 눈치 챈 마을 사람들이 바로 달려왔지만 그저 딸을 안고 울기만 하는 여성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 수 없는 마을 사람들은 일단 여성의 어머니에게 이 일을 알리기로 했고
나머지는 남편을 찾기 위해 흩어졌다.
그리고 여성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일을 주민들이 여성의 어머니에게 얘기했을 때 , 어머니는 침착했다.
' 알 것 같군.. 딸에게서 들은 의식을 시험해보려 한 것이겠지
자세한 것을 알려주지 않았으니 단편적인 부분밖에 몰랐을 텐데...
딸이 10살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군... '
그리고 같이 여성의 집으로 향했다.
' 우리가 나갈 때까지 아무도 들어와선 안돼.. ' 라고 얘기하곤 한동안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수 시간이 흐른 뒤, 여성의 어머니가 나와서
' 두 사람은 내가 공양했다. 남편은 찾지 안아도 돼, 이유는 알게 될 거야 ' 라고 주민들에게 전하고는 모두 돌려보냈다.
이후 남편의 행방에 대한 소식은 알 수 없었으나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 딸의 집 앞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됬다.
입에 한 가득 머리카락을 물고서.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묻자
' 이 시간 이후에 이 집에 들어가는 자는 저렇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저주를 걸어두었으니까.. 그 아이들은 악습에서 풀려난 새로운 시대의 아이들이야,
이렇게 된 것은 안타깝지만 하다못해 조용히 쉴 수 라도 있게 해주고 싶다.. '
얘기하고는 이 집을 그대로 남겨두라고 일러두었다.
집안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몰랐지만 집 안을 들여다보려 한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두 모녀의 공양을 위한 집으로써 오랫동안 남아있었다.
후에, 건물의 노후로 인해 철거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서야 주민들은 집에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되었다.
거기 있던 것은 내가.. 우리가 보았던 것,
화장대와 머리카락.
과거의 집은 2층이 아니었기 때문에 1층 현관쪽에 바로 세워져 있었다.
어떤 방법을 썼는진 모르지만 확실하게 머리의 형태를 갖춘 머리카락이었다.
이것이 그 ' 저주 ' 라고 직감한 주민들은 신중하게 화장대를 운반하여 새로 지은 빈 집으로 옮겼다.
이때 실수로 누군가가 화장대 서랍의 내용물을 봐버린 모양이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도 같이 공양을 드렸던 주민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한다.
빈 집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지어졌고,
현관이 없는 것은 출입을 하는 집이 아니기 때문이며 창은 햇볕이나 바람이 잘 들도록 하기 위함인데
이는 두 모녀에 대한 공양의 마음에서라고 한다.
이렇게해서 , 아무도 들어가선 안 되는 집으로 마을 전체에 전해지면서 어른들만이 아는 비밀이 된 것이다.
여기까지가 화장대와 머리카락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봤던, 우리가 봤던 화장대와 머리카락은 두 모녀의 것이었고 종이의 한문은 숨기는 이름으로 지어졌던 것이다.
빈 집은 아직도 존재하고 있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듯 하다.
그리고 D의 어머니가 보낸 편지에 대해서는 아무 말 하지 않겠다.
D와 D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고 있고 이것에 대해서 나는 어떤 말도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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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잼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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